경리단길과 전쟁기념관을 지나는, 마을버스 용산03

[뉴스포스트=강대호 기자] 용산에는 남다른 개성을 자랑하는 명소가 많다. 경리단길이 그랬다. 이태원과 해방촌 사이 외진 언덕이 한때 우리나라의 핫한 곳을 대표하는 거리였다. 남산자락 언덕길인 경리단길을 마을버스 용산03이 오르내린다.

마을버스 용산03. 남산자락의 언덕길인 경리단길을 운행한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마을버스 용산03. 남산자락의 언덕길인 경리단길을 운행한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힙한 거리의 원조 경리단길

경리단길은 서울 용산의 ‘국군재정관리단’ 앞을 지나는 도로를 말한다. 경리단은 국군재정관리단의 옛 이름이다. 그런데 이 도로의 정식 명칭은 경리단길이 아니라 ‘회나무로’이다. 사람들이 관습적으로 부르던 도로명이 고착된 사례다.

정식 도로명 ‘회나무로’, 관습 도로명 ‘경리단길’은 녹사평대로의 국군재정관리단 초입부터 그랜드하얏트서울호텔까지 약 900m의 언덕길을 말한다. 

경리단길 인근 주택가는 이태원과 가까운 지리적 이점으로 2000년대부터 외국인들이 모여 살면서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상권이 생기기 시작했다. 미군 기지가 평택으로 이전한 후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경리단 특유의 문화가 만개하자 2010년대부터는 한국인들도 즐겨 찾는 명소가 되기 시작했다.

경리단길 초입.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경리단길 초입.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사실 경리단길에 가려면 조금은 불편하다. 지하철을 타면 녹사평역에서 내려 제법 걸어야 하고 시내버스는 큰길 초입에서 내려 언덕길을 올라가야 한다. 승용차를 이용하더라도 좁은 언덕길을 달려야 하는 데다 주차 공간도 제한적이다. 그나마 마을버스가 경리단길 곳곳을 운행하는 유용한 교통수단이다.

그런 면에서 경리단길은 상권으로서는 좋은 입지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태원 상권의 임대료가 비싸지면서 옮겨간 위성 상권이었다. 그런데도 경리단길에 찾아가는 손님들이 많았던 이유는 자신만의 고유한 색깔과 콘텐츠를 가진 가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경리단길은 핫한 곳, 혹은 힙한 곳의 대명사가 되었다. 과거 기사들을 찾아보면 2012년경부터 뜨기 시작해 2015년과 2016년경에 절정을 이룬 것으로 보인다. 

그런 경리단길은 다른 지역에 큰 영향을 끼쳤다. ‘X리단길’이라는 거리 명칭의 원조이다. 서울만 하더라도, 마포구 망원동 ‘망리단길’, 송파구 석촌호수 인근 ‘송리단길’, 용산구 신용산역 인근 ‘용리단길’이 유명하다. 

범위를 전국으로 확대하면 검색으로 확인되는 지역만 20곳이 넘는다. 그만큼 경리단길이 우리나라 골목 상권에 끼친 영향이 크다. 그런데 정작 경리단길은 예전 같지 않은 분위기다. 마을버스 기사에게 관광객이 많이 탑승하냐고 물어보니 “거의 이 동네 주민이 탄다”며 경리단길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다고 했다.

그런데 경리단길 언덕 중간쯤에서 마을버스는 정류장을 약간 지나서 정차하곤 했다. 정류장은 경사가 심해서 승객에게 불편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만큼 경리단길은 경사가 심한 언덕길이다. 마을버스가 정차했다가 다시 출발할 때 힘들어 보일 정도다. 

경리단길을 오르는 마을버스 용산03.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경리단길을 오르는 마을버스 용산03.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길까지 좁은데 경리단길 곳곳에서 공사가 이뤄지고 있었다. 주변 상인에 따르면 “문 닫는 곳도 많고 그만큼 새로 들어오는 곳도 많다”고 한다. 

경리단길은 젠트리피케이션의 사례가 되기도 했다. 2018년을 기점으로 쇠락하기 시작한 것. 경리단길의 정체성을 만든 이국적이고 독특한 가게들은 폭등한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다른 지역으로 떠났고, 특히 2020년부터 시작된 코로나19 시대가 경리단길 상권에 강한 타격을 입히기도 했다.

2023년 여름 경리단길 곳곳은 옛 영화를 되찾기 위한 노력으로 뜨거운 모습이다. 경리단길을 빠져나온 마을버스 용산03은 녹사평대로와 이태원로를 거쳐 전쟁기념관으로 향한다. 

용산의 전쟁기념관.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용산의 전쟁기념관.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한반도 전쟁의 역사를 담은 전쟁기념관

용산에는 군사시설이 많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군이 주둔했고, 해방 후 그 자리에 미군이 주둔했다. 국방부가 있고 한때 육군본부도 있었다. 

그런 면에서 용산에 ‘전쟁기념관’이 있는 건 자연스러운 모습일지도 모른다. 용산의 대통령집무실 건너편의 전쟁기념관은 옛 육군본부 부지에 들어선 박물관으로 국방부 산하기관인 전쟁기념사업회에서 운영한다.

전쟁기념관 야외에 전시된 무기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전쟁기념관 야외에 전시된 무기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전쟁기념관에 가면 우선 야외 전시장에 전시된 각종 무기가 눈에 띈다. 항공기와 함정은 물론 포와 전차 등 2차세계대전과 6·25전쟁에서 사용된 대형무기 70여 점이 야외 전시장에 전시되어 있다. 실내에도 항공기와 전차가 전시되어 있다. 

전쟁기념관의 실내 전시실에서는 한반도 역사와 함께한 오랜 전쟁의 역사를 볼 수 있다. 선사시대부터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그리고 조선시대를 거쳐온 다양한 전쟁의 양상과 무기의 발달사 등의 콘텐츠를 전시하고 있는 것.

물론 6·25전쟁 관련 콘텐츠의 전시 비중이 높다. 3개의 전시관을 통해 각기 다른 주제로 한국전쟁을 조망했다. 각 전시관에 가면 다양한 그래픽과 조형물, 혹은 당시 실제 쓰였던 물품들로 6·25전쟁의 참상을 담고 있다.

전사자 명비.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전사자 명비.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본관 입구 한켠에는 ‘전사자 명비’가 있다. 이곳에는 창군기, 6·25전쟁, 베트남전쟁, 대침투작전 등에서 전사한 국군과 경찰, 그리고 6·25전쟁에 참전했던 유엔군 전사자의 이름을 새겨 넣어 그들의 희생을 추모하고 있다.

7월 어느 오후 전쟁기념관에는 다양한 어린이 단체 방문객이 찾고 있었다. 야외의 유엔 참전국 국기 아래에서는 자기 나라의 국기를 찾아보는 외국인들도 있었다. 다가오는 7월 27일은 6·25전쟁 정전 70주년이다. 잠깐이라도 전쟁에서 희생된 이들을 되돌아보는 하루를 보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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