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들 분노에 정부 화들짝...조기에 소정 성과
인권조례 개정 움직임...갈등 사항 여전히 남아

대한민국의 교사(敎師) 지위는 시대가 변하면서 달라졌다. 서슬 퍼런 권위주의 시대에 교사는 교실의 절대자이자 법이었다. 체벌과 ‘촌지’는 존경받는 스승님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정치적 민주화 이후에도 교실 내에서는 오랜 시간 민주주의가 정착되지 못했다. ‘학생 인권’이란 개념이 대중화된 지 불과 20년도 채 되지 않았다. 국민 대다수가 교실에서 존중받지 못했던 세대인 가운데, 2023년 대한민국은 무너진 교권(敎權)이 새로운 문제로 떠올랐다. -편집자 주-

13일 교원단체 관계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국회 입법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13일 교원단체 관계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국회 입법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13일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교권회복과 강화를 위한 국민의힘-교원단체 간담회'를 열고, 교원단체 관계자들과 만나 이른바 '교권회복 4법'이 오는 21일 국회 본회의의 문턱을 넘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교권회복 4법'은 교원의 정당한 생활지도를 아동학대 금지행위 위반으로 보지 않는 '초중등교육법'과 '유아교육법', 악성 민원을 교권 침해로 규정하고 교사가 아동학대로 신고돼도 정당한 사유 없이 직위를 해제하지 않는 '교원지위법', 정당한 교육활동에 대한 보호자의 협조 의무를 명시한 '교육기본법'을 말한다. 

이른바 '서이초 사태'가 발생한 지 약 2달 만에 교사의 교권 회복을 위한 법안들이 개정될 전망이다. 법안 세부 조항에는 이견이 있을지라도, 국민의힘과 야당은 모처럼 정치적 갈등 없이 교권 회복이라는 큰 줄기에 동의하는 모양새다. 전국 교사들이 일제히 나선 지 2달 만에 교권회복 4법이라는 가시적 성과가 나온 것이다.

전국 교사 투쟁 2달 

지난 7월 18일 서울 서초구에서 초등학교 교사가 학부모 민원에 시달리다 교내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추락한 교권은 교육계가 해결해야 할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전국의 교사들이 주말마다 광장으로 모여 뜨거운 아스팔트 열기를 온몸으로 맞이하면서 교육 당국에 교권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서이초 교사의 죽음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의 선생님들 모두가 일상적으로 겪고 있었다. 학생들의 문제 행동에도 아동학대 처벌이 두려워 나서지 못한 교사들은 학부모들의 폭압적인 민원까지 감당해야 했다. 실제로 민원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교사들의 사례가 뒤늦게 알려지거나, 서이초 사태 이후에도 또 다른 교사가 비슷한 이유로 목숨을 끊었다.

(그래픽=뉴스포스트 강은지 기자)
(그래픽=뉴스포스트 강은지 기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교육 당국은 서둘러 대책을 마련했다. 당장 올해 2학기부터 문제 학생을 교사가 적극 대응할 수 있게 됐다. 휴대전화 사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면서 학생들이 수업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교권 침해의 가장 큰 원인이던 민원 상담에 대해서도 예약제로 전환하는 등 교육 당국이 조치를 마련했다.

소정의 성과에도 교사들의 울분은 가라앉지 않았다. 이달 4일 서이초 교사의 49재를 맞아 전국의 교사들이 연가까지 반납하며 추모 집회를 열었다. 당초 교육부는 집회 참여 교사들에게 징계 등 엄벌을 내리겠다고 경고했으나, 수십만 교사들의 분노에 입장을 180도 바꿨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서이초에서 추모 발언을 하다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교권 회복을 위한 9부능선

교육계와 정부 당국, 정치권이 모두 교권 회복의 필요성에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교육부가 학생인권조례에 문제를 걸면서 갈등의 소지는 여전히 남게 됐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정부서울청사에서 시·도부교육감 회의를 열고 전국 시·도교육청에 학생인권조례 개정 추진을 촉구했다.

교육부가 지난 1일 마련한 '교원의 학생생활지도 고시'와 학생인권조례가 일부 충돌한다는 게 개정 촉구 이유다. 고시에서는 교사가 학생의 휴대전화를 통제할 수 있으나, 학생인권조례에서는 안전을 위한 목적이 아닌 이상 소지품 검사나 압수를 금지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와 시·도교육청 역시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서울시의회와 충청남도의회는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을 발의했지만, 진보 성향의 교육감들이 반대하고 있다. 반면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은 학생과 보호자의 책임과 의무, 징계 절차 등을 포함하는 개정안을 도의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현직 교사들의 반응은 양분됐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학생인권조례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폐지나 재정비에 반대하고 있다. 교권 회복과 보호를 위해서는 한 목소리를 내지만,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입장은 정반대인 상황이다.

달라진 교칙을 뒷받침할 예산 마련도 시급하다. 민원 상담이 예약제로 진행되는 등 교직원들의 업무가 증가하면서 인력 보강이 필수가 됐다. 지난달 <뉴스포스트>와 인터뷰를 진행했떤 전희영 전교조 위원장 역시 "모든 정책은 예산과 인력이 수반되지 않으면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어 교육부는 구체적인 계획을 마련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한 바 있다.

전 위원장은 오늘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과의 간담회에서도 "여야의 조속한 합의로 1호 민생 법안으로 교육활동보호법을 통과시켜 주기를 요청드린다"며 "현장 실태에 대한 전수조사, 구체적 지원 대책 수립을 적극 추진해 주고 이를 위한 긴급 예산 확보를 요청드린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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