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을 극복하는 선조들의 이야기에 감정 이입하는 시청자들

[뉴스포스트=강대호 기자] KBS2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이 화제를 끌고 있다. <고려거란전쟁>은 역사 시간에 강감찬 장군과 귀주대첩 정도로 언급되는 고려와 거란 간의 전쟁을 그린 대하드라마다. 

대하드라마는 기존 드라마와는 결이 다른 이야기를 펼쳐 특히 중장년 남성 시청자들로부터 사랑받아온 장르였다. 그러한 대하드라마의 맥을 잇는 <고려거란전쟁>은 선 굵고 묵직한 서사의 드라마를 기다려온 대중들의 이목을 끄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KBS 2TV 대하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 (사진=KBS)
KBS 2TV 대하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 (사진=KBS)

대하드라마, 장편의 사극 드라마

대하소설은 “사람들의 생애나 가족의 역사 따위를 사회적 배경 속에서 시대의 흐름에 따라 포괄적으로 다루는” 유형의 소설이라고 사전에서 정의한다. 박경리 작가의 『토지』와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이 대표적 대하소설이다. 

대하드라마도 대하소설의 정의와 맥이 통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일본의 NHK가 1963년부터 대하드라마 시리즈를 제작하기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KBS가 그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 해석이 있기도 하다. 

KBS에서 대하드라마라는 표제로 제작된 드라마는 1981년 1월 5일부터 방영된 <대명>이 최초였다. 이후 대하드라마는 주로 왕조의 역사나 전쟁을 다뤘다. 일상의 이야기를 다루는 여느 드라마와는 그 궤가 달랐다. 정쟁이나 전쟁이 주요 서사여서 특히 중장년 남성 시청자들의 이목을 끈 장르였다. 

KBS 대하드라마의 대표작으로는, 1996년 11월부터 1998년 5월까지 159회를 방영한 <용의 눈물>, 1998년 6월부터 2000년 3월까지 186회를 방영한 <왕과 비>, 2004년 9월부터 2005년 8월까지 104회를 방영한 <불멸의 이순신> 등이 있다.

이들 대하드라마는 한때 주말 KBS 9시 뉴스가 끝나자마자 편성돼 남성 시청자들을 TV 앞에 묶어두는 효과를 노리기도 했다. 때로는 대하드라마 끝나는 시간에 KBS2에서 <개그콘서트>가 시작돼 두 프로그램이 서로 시청자를 끌어주는 전략을 펼치기도 했다.

이처럼 KBS의 간판이었던 대하드라마는 100회는 기본이고 <태조 왕건>처럼 200회가 넘는 프로젝트도 있어 제작비 부담이 컸다. 하지만 짧고 가벼운 드라마가 트렌드가 되며 상대적으로 길고 묵직한 대하드라마는 방송사는 물론 대중의 관심이 줄어들게 되었다. 그렇게 대하드라마의 분량이 50회 정도로 줄어들더니 한동안 KBS에서 대하드라마를 보기 힘들었다. 

그러던 2021년 12월부터 <태종 이방원>이 KBS2에서 32회 분량의 드라마로 방영되었다. 하지만 평균 시청률 5.3%로 최소한 10%는 넘겼던 과거의 대하드라마들과 비교하면 저조한 수치였다. 물론 지난 몇 년간의 드라마 시청률 추세로 보면 나쁘지 않은 수치였지만, 주로 중장년들이 시청하면서 화제성 확산에 한계가 있었다는 평이었다.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

지난 11월 11일부터 KBS2에서 주말 밤에 방영되는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은 32회로 기획되었다. 과거의 대하드라마와 비교하면 서기 993년, 1010년, 1018년 등 25년간 3차례 벌어진 고려와 거란 사이의 전쟁을 담아내기에는 짧은 분량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고려거란전쟁>에서 거란의 1차 침공은 등장인물들의 회고 정도로 표현되었고, 2차 침공이 드라마 초반을, 3차 침공과 귀주대첩이 드라마 중반과 후반을 장식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조선시대나 삼국시대와 비교해 고려의 역사는 드라마 소재로서 소외된 경향이 있었다. 그나마 고려 건국을 후삼국시대의 연장선에서, 혹은 고려 말기를 조선 개국의 출발점으로 그렸었다. 즉 독자적인 시대보다는 역사 흐름의 연결 지점으로서 고려시대를 주로 다뤘었다. 아니면 무인 집권기나 몽골 지배기처럼 혼란스러웠던 시절의 고려를 다루었거나.

그런 점에서 <고려거란전쟁>은 고려시대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드라마다. 특히 거란이 침공해 벌어진 세 번의 전쟁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는 의미가 있다. 어쩌면 고려의 자주와 독립이 흔들릴 수도 있었던, 고려 역사에서도 중요한 변곡점이 된 전쟁이었다. 

KBS 2TV 대하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 (사진=KBS)
KBS 2TV 대하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 (사진=KBS)

8회가 방영되는 동안 이 드라마가 가진 미덕이 보였다. 인물이 보이는 것이다. 역사 교과서에서는 강감찬 장군의 활약이 주로 언급되지만, 전쟁의 승리에는 한두 명의 영웅적 지도자뿐 아니라 많은 이의 희생이 뒤따른다는 걸 <고려거란전쟁>은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후세들이 잘 알지 못했던 영웅들, 이름 없이 사라져간 영웅들을 그리고 있다.

이런 인물들의 대표로 고려 임금 현종(김동준 분)과 전쟁 영웅 강감찬(최수종 분)이 등장한다. 현종은 쿠데타 세력이 옹립한 힘없는 임금이었지만 전쟁을 통해 각성하며 지도자로 성장하는 인물로 나온다. 

그리고 후세에 장군으로 알려진 강감찬은 사실 문신 출신이었다는 걸 보여준다. 그랬던 강감찬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나라를 구한 장군으로 성장하는 이야기가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많은 이에게 이름이 낯설 수도 있는 강조(이원종 분) 장군과 양규(지승현 분) 장군의 서사가 새롭다. 강조 장군은 거란의 포로가 된 후 투항을 거부하며 처형당한 고려군 총사령관이고, 양규 장군은 병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거란의 주력을 끝까지 괴롭힌 장수다. 

역사책에는 이름과 전투 정도로 남은 두 인물이 드라마를 통해 재조명되었다. 거기에는 두 배우 이원종과 지승현의 열연도 한몫한다. <고려거란전쟁>에서는 두 배우뿐 아니라 많은 배우가 그 시대를 살면서 나라의 고난을 함께한 이들을 연기하고 있다. 

<고려거란전쟁>은 이렇듯 나라의 위기를 두 눈으로 목격하고 몸소 겪는 이들의 선택과 행동을 그리고 있다. 무엇보다, 전쟁의 혼란 속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건 피지배층인 백성들이라는 메시지도 함께 전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 백성이 이름 없는 영웅이 될 것이라는 메시지도.

전 세대에서 관심을 끄는 '고려거란전쟁'

<고려거란전쟁>은 32회로 기획되었으니 지난 주말 8회가 방영되어 이미 4분의 1이 지났다. 앞으로 속도감 넘치는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화제성도 더욱 올라가지 않을까.

그런데 <고려거란전쟁>의 인기에 중장년층뿐 아니라 MZ세대도 한몫하는 것으로 보인다. OTT 평가를 보면 그렇다. KBS 대하드라마로는 처음으로 <고려거란전쟁>을 넷플릭스에 동시 공개하면서 넷플릭스 한국 일간 인기 순위 1위를 차지했다. 

또한 OTT 통합검색 및 추천 플랫폼 키노라이츠 선정 11월 4주차 콘텐츠 랭킹에서도 1위에 올랐다. <고려거란전쟁>은 사극의 주요 시청자층인 중장년 세대는 물론 MZ세대들까지 매료시킨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전 계층에 걸쳐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이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동안의 대하드라마는 실제 역사를 소재로 하면서 오늘날의 세상을 비춰주는 거울 역할을 해왔다. 과거 인물이 등장하고 역사 속 이야기가 나오지만, 시청자들에게 오늘날 이야기로 느껴지게 했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시청자들은 고려시대 선조들이 그랬듯이 오늘날에도 모든 이가 힘을 합쳐 고난을 헤쳐 나가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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