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의 희망과 목표가 담긴 신년 달력
'장식용·교과서 포장' 등 그시절 활용법

[뉴스포스트=강대호 기자] 은행에서 나온 달력이 귀하다고 한다. 걸어두면 돈이 들어온다는 속설이 있어 인기가 있는 은행 달력이다. 혹시나 해서 은행에 재직 중인 지인에게 메시지를 넣어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달력 관련 청탁은 사절”이라고 했다. 사실 달력이 나오자마자 거의 소진됐다고 했다.

병원이나 약국 달력을 걸어두면 건강해진다는 속설도 있었다. 일부 대학병원과 민간 종합병원에서, 그리고 대형 약국 체인 등에서 달력을 배포하고 있었다. 그런데 달력에 관해 알아보다 보니 중장년과 노인 세대에게는 날짜 확인 이상의 의미가 달력에 있었다.

금융권과 기업 등에서 배포한 2024년 달력. (사진=뉴스포스트)
금융권과 기업 등에서 배포한 2024년 달력. (사진=뉴스포스트)

달력의 다양한 용도

천체 움직임의 이치를 파악해 시간의 규칙을 알아냈다는 건 인류 초기의 혁명 중 하나였다. 특히 농업 분야에서는 혁신으로 이어졌다. 최소한 씨를 언제 뿌려야 하는지 알 수 있다는 건 곧 생산의 확대와 연결되었고 인류의 발전과도 이어졌다. 

즉 시간의 규칙을 과학적으로 정리한 달력은 농사에 중요한 데이터를 제공했다.

조선시대에 동지 즈음이면 관상감에서 만든 ‘역서(曆書)’, 혹은 책력을 민간에 배포했다. 역서에는 음력과 함께 농사 절기와 관련된 정보들이 담겨 있었다. 오늘날에는 한국천문연구원에서 매년 역서를 제작한다. 현재 시중에 나온 모든 달력은 모두 한국천문연구원에서 배포한 역서를 토대로 만든다. 

음력과 절기를 알려주는 달력은 특히 농촌에서 중요하게 쓰인다. 매일 한 장씩 뜯어내는 달력인 일력이 특히 그렇다. 

일력에는 양력과 음력, 그리고 절기와 같은 농사에 필요한 정보가 담겨 있다. 주로 단위 농협이나 비료회사, 혹은 종묘사 같은 농사 관련 업체에서 만들어 홍보용으로 배포했다. 일출과 일몰, 그리고 사리와 조금처럼 어촌에서 필요한 정보가 담긴 일력도 있다.

만약 어느 시골집에 일력이 아닌 대기업이나 금융기관의 달력이 걸려있다면 일종의 자랑거리일 수도 있었다. 은행 중견 간부로 정년퇴직한 김병철(69세) 씨의 사례가 그랬다. 

“경북의 산골 마을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대학을 졸업해 서울에서 은행을 다닌 제가 부모님에게는 큰 자부심이었습니다. 연말마다 보내드리는 은행 달력은 부모님의 기쁨이었고요. 누가 방문할 때마다 서울에서 은행에 다니는 아들이 보내줬다 자랑하셨으니까요. 여유가 있어 여러 부 보내드리면 친한 분과 나누며 뿌듯해하셨고요.”

달력은 과거에 실내장식처럼 쓰이기도 했다. 주거 공간으로서 아파트가 늘어나며 가전제품과 소파 등 가구가 중산층의 상징으로 자리 잡을 때 벽에 걸린 액자는 실내장식의 화룡점정이었다. 하지만 액자로 걸 그림이 없다면 좋은 디자인의 달력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1970년대와 80년대에 아버지는 일본 관련 무역회사를 운영하셨어요. 연말이면 일본 거래처에서 보내온 달력들을 집에 갖고 오셨어요. 어머니는 일본 관광지나 서양의 명화가 인쇄된 달력을 좋아하셨고, 저와 형은 자동차, 특히 스포츠카가 인쇄된 달력을 좋아했지요. 어머니가 명화 달력을 응접실에 걸어두고 흐뭇해하신 모습이 생각납니다.”

경기도 성남에 사는 강형권(58세) 씨의 기억에 공감하는 중장년 등 선배 세대들이 많지 않을까. 날짜만 인쇄된 달력도 많지만, 보통은 그림이나 사진 등 예술적 디자인이 가미된 달력이 많다. 그래서 과거에 거실에는 그 집에서 확보한 가장 좋은 디자인의 달력이 걸리곤 했다. 물론 가장 유명한 회사의 달력이 걸리기도 했지만. 달력은 어쩌면 그 집안의 사회적 위치를 보여주는 척도이기도 했다. 

그런데 50대와 60대 커뮤니티에 달력을 화두로 던지자 다양한 달력 활용법에 관한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대표적인 게 교과서 표지 포장지였다. 

1970년대에는 초등학생들이 새 교과서를 받으려면 값을 치러야 했다. 초등학교가 의무교육이었지만 ‘육성회비’라는 학비가 있던 시절이었다. 반면 헌 교과서는 무료였다. 많은 학생이 선배들이 물려준 헌 책을 썼다. 새 책이라도 표지가 얇아서 교과서 표지 포장은 필수였다. 이때 쉽게 구할 수 있는 포장지가 달력이었다.

“어머니는 달력 뜯은 종이를 상하지 않게 장롱에 보관해 두셨어요. 그러곤 학기 초마다 교과서 표지를 싸주곤 하셨죠. 보통은 달력 뒷면 하얀 면이 앞으로 나오게 싸주셨지만, 간혹 좋은 그림이 있으면 앞으로 나오도록 싸주셨어요. 그리고 포장된 표지 위에 교과서명과 제 이름을 함께 적어주셨지요.”

서울 송파에 사는 오성희(59세) 씨처럼 교과서 표지 포장에 관한 추억도 많았지만, 이 또래 남자들은 달력으로 딱지를 만든 추억을 소환했다. 간혹 두꺼운 재질의 달력이 있었는데 딱지로 만들기에 제격이었다고. 남자들의 달력과 관련된 기억에는 군대 시절에 관한 추억도 한몫했다.

군대 내무반의 달력에는 날짜 위에 동그라미들이 처져 있었다고 한다. 날짜 위에 표시된 동그라미는 훈련이나 행사 날짜를 확인하는 용도이면서 휴가일이나 외박일, 혹은 전역일을 확인하는 용도였다. 특히 전역을 앞두고는 ‘D-00’처럼 카운트다운 식으로 표기하기도 해 군 생활의 마지막을 견디는 힘이 되기도 했다고.

한 대형서점의 달력 매대. 캐릭터를 활용하거나 다양한 콘셉트의 달력이 판매되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한 대형서점의 달력 매대. 캐릭터를 활용하거나 다양한 콘셉트의 달력이 판매되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시대에 따라 달력도 변화하는데

은행 달력이 품귀 현상을 빚어 중고 시장에서 웃돈을 주고 구할 정도지만 사실 오늘날 달력의 인기는 예전 같지 않다. 대신 달력 기능이 있는 다이어리와 스마트폰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 그래도 달력은 마케팅 수단으로 여전히 인기가 있다. 특히 탁상용 달력이 그렇다. 

이러한 달력 대부분은 무료로 배포되지만, 때로는 돈을 주고 사기도 한다. 연예인이 모델인 달력이나 기부 목적으로 제작된 달력, 혹은 차별된 디자인 콘셉트로 제작된 달력은 온오프라인에서 인기리에 판매되기도 한다.

새해 달력을 마련한다는 건 가는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통과의례였다. 그렇게 새해 달력을 걸며 희망찬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하기도 했다. 오늘날 달력의 인기가 예전 같지 않더라도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은 같을 것이다. 무엇보다 모두의 꿈과 희망이 현실로 나타나는 2024년이 되길 바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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