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마트가 기저귀 할인 판매를 시작한 지난 18일 오전 서울 이마트 용산점 기저귀 코너에서 고객들이 기저귀를 고르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포스트=최병춘 기자] 불경기가 장기화되면서 생존 위한 저가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실적 부진이 전 산업업종으로 확산되면서 너도나도 저가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온라인 시장에 밀린 대형마트가 가격 전쟁을 선포하는 등 유통가에 가격 경쟁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중국 발 중저가 돌풍이 불고 있는 IT업계, 부진을 거듭하고 있는 금융권, 자동차 등 중공업까지 저가 경쟁 흐름이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크게 제기, 과열되는 저가 경쟁이 치킨 게임 양상으로 치달으면서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대형마트, 온라인 상대 가격 경쟁 선포

최근 가장 치열한 저가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곳은 유통업계다. 온라인 유통업의 성장으로 최악의 부진을 거듭하고 있는 대형마트들이 파격적인 가격 정책을 앞세워 온라인쇼핑몰과 소셜커머스 등을 상대로 가격 전쟁에 나섰다.

이마트는 온라인몰과 소셜커머스 등 유통 전 채널로 가격 경쟁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 18일 온라인몰과 소셜커머스 업태의 대표 상품인 기저귀를 온·오프라인 전체 채널 최저가로 판매키로 한 이후 22일 분유까지 전선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하기스 매직팬티는 대형(92P)과 특대형(76P)이 각각 2만8300원, 2만9200원으로 가격을 조정했다. 마미포 대형(72P)과 특대형(54P)이 각각 1만8400원, 1만7100원으로 조정된다.

이번에 선보이는 상품은 하기스 매직팬티 박스형(대형 92개 2만8천500원/특대형 76개 2만9천600원)과 마미포코 360핏 팬티 박스형(대형 72개 1만8천500원/특대형 54개 1만7천200원)으로, 이마트 매장과 이마트몰에서 같은 가격에 판매된다.

대형마트 업계와 비교해서는 최대 35%, 소셜커머스 등 온라인 업체보다도 최대 15%가량 저렴한 가격이라고 이마트는 설명했다.

분유도 할인에 나섰다. 이마트는 남양, 매일, 일동, 롯데푸드 등 국내 분유업계 주요 4개사의 1위 브랜드 15개 제품을 선정, 기존 판매가 대비 35% 가량 할인된 가격에 판매키로 했다.

분유 가격 역시 대형마트 업계 대비 최대 39%, 온라인몰과 소셜 커머스 대비 최대 35% 저렴한 수준으로 낮춘 것이다.

임페리얼 XO는 1~4단계 각각 2만4860원, 2만5260원, 2만원, 2만380원에 판매된다. 엡솔루트 명작은 1~4단계 각각 2만3390원, 2만3390원, 1만8990원, 1만8990원 등에 판매된다.

이마트는 지난 22일까지 온·오프라인 대표 유통업체 가격 조사를 통해 기저귀와 분유의 가격을 정했다. 이마트는 다음주부터 기저귀와 분유에 대한 가격을 매주 목요일 조정한다는 방침이다. 일별 가격 조사를 통해 주단위 최저가격을 유지한다는 계획이다.

또 기저귀, 분유 같은 유아용품뿐 아니라 주기적으로 반복 구매해야 하는 생필품까지 최저가 판매를 확산하겠다는 방침이다.

롯데마트도 소셜커머스와의 가격경쟁에 동참했다. 롯데마트도 지난 18일부터 분유 상시 최저가 판매에 들어갔다.

이 같은 파격 행보는 온라인의 공세로 대형마트가 생활필수품 시장에서 밀려나면서 꺼내든 카드다.

실제로 소셜커머스 업체들의 핵심 상품 중 하나인 기저귀는 지난해 이마트에서는 매출이 26.3%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통과정이 상대적으로 단순한 온라인 마트들이 보다 저렴하게 제품을 판매하고 있던 가운데 쿠팡에서 기저귀, 분유 등의 제품에 ‘최저가 보상제’를 실시하면서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리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과 소셜커머스가 급성장으로 대형마트의 시장이 잠식되고 있다는 위기감 또한 이 같은 가격 경쟁을 유발한 배경을 꼽힌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12월 및 연간 소매판매 및 온라인쇼핑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53조9340억원으로 전년(45조3200억원) 대비 19.1% 늘었다. 온라인쇼핑 거래액 중 모바일쇼핑 거래액 증가폭은 더 컸다. 모바일쇼핑 거래액은 24조4270억원으로 2014년(14조8700억원)보다 64.3% 늘었다.

반면 대형마트는 지난해 거래액이 2.4% 증가하는데 그쳤다. 대형마트는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중반까지 빠르게 성장하며 2003년부터 제1의 소매업태로 부상했으나 이후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다.

내수 부진, 저가 경쟁 확산

이 같은 저가 경쟁은 비단 유통업계만의 흐름은 아니다.

전반적이 소비침체와 중국산 저가 제품 유입 등으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IT분야도 가격 경쟁이 한창이다. 특히 알뜰폰 시장이 본격화되고 샤오미·화웨이 등 중국 스마트폰 제품이 국내 시장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휴대폰 시장도 저가 경쟁 대열에 합류했다.

이밖에도 자동차업계도 정부의 개별소비세 인하라는 정책적 지원과 함께 내부 프로모션 등을 추진하며 가격 인하 폭을 확대하는 분위기다. 글로벌 시장에 부진과 수입차의 시장 점유율이 확대되면서 치열해진 내수 시장 선점 싸움이 점차 가격 경쟁으로 이어지는 상황이다.

가격 경쟁이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소비자의 구매 여건은 나아질 수 있다. 하지만 가격 경쟁이 기업간 출혈경쟁으로 확전, 이에 따른 장기적인 성장 저하 등 부작용에 대한 우려 또한 커지고 있다.

대형마트가 유통비 추가로 부담되는 역마진을 감수하고 온라인 몰과 벌이고 있는 가격 경쟁이 자칫 단기성 이벤트로 끝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기저귀와 분유 등 일부 생필품 품목의 역마진 발생이 전체 매출 줄 타격 보다는 오히려 고객 유치와 온라인 시장 확보에 따른 부가적 판매 상승 효과를 불러 올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대형마트의 납품하는 제조업체들은 정상적인 가격에 납품하기 어려운 상황이 올까 긴장하고 있다.

경쟁이 극심해지면 출혈 경쟁이 벌어져 ‘납품단가 후려치기’가 나타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납품업체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다.

▲ 이마트가 기저귀 할인 판매를 시작한 지난 18일 오전 서울 이마트 용산점 기저귀 코너에서 고객들이 기저귀를 고르고 있다. (사진=뉴시스)

출혈경쟁 확전, 부작용 우려

저렴한 가격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알뜰폰 시장도 비슷한 고민에 빠져있다.

폭발적인 성장을 가져다준 저가 경쟁이 오래 지속되기 힘들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기초체력이 부실한 알뜰폰 사업자가 파격적인 가격 할인을 유지하는 것이 부담이 될 것이다.

에넥스텔레콤과 이지모바일은 2014년 말 부채 비율이 각각 700%와 1천400%에 달했다. 영업이익과 순이익도 적자와 흑자를 오가는 수준이었다. 세종텔레콤은 부채 비율이 100%로 안정적이었으나 지난해 영업이익이 5억원으로 급감하고 49억원 순손실이 나면서 적자 전환했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일부 알뜰폰 사업자들의 재무 상황은 우려스러운 수준”이라며 “이들이 저가 공세를 오랫동안 지속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가입자는 폭발적으로 증가했지만 아직 수익성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진단이다. 여기에 저가 경쟁이 경영난을 앞당길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50분 무료 통화 요금제는 실제 소비자의 통화 시간이 50분을 넘지 않으면 회사 입장에서 수익성을 확보하기 쉽지 않다. 월 4만원대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는 기존 통신사보다 월 8천원가량 저렴한데, 브랜드, 부가서비스, 결합판매 등의 열위를 고려할 때 인기를 끌기 어렵다는 게 지배적인 의견이다.

우체국 알뜰폰 업체들의 경우 지난해 모두 흑자전환에 성공했지만, 업계 전체로 보면 여전히 수백억원의 적자를 보고 있는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유업계의 경우 무리한 출혈 경쟁으로 인한 부작용이 가시화되고 있다.

소비 부진과 과잉공급으로 어려움을 겪던 우유업계서는 학교 급식 최저입찰제 과도한 경쟁이 ‘가격 후려치기’ 논란으로 확산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서울우유는 학교급식 입찰에 우유(200㎖) 한팩 가격으로 150원을 써 냈다. 기존 무상우유급식 단가인 430원은 물론 제조원가인 280원에도 훨씬 못 미치는 금액이다.

업계는 서울우유의 공세로 시장이 교란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에 한국낙농육우협회 측은 지난달 학교우유급식 저가 덤핑입찰 방지를 위한 제도 마련을 농식품부·낙농진흥회에 공문을 통해 공식 요청했다.

손정렬 한국낙농육우협회 회장은 “최저가 입찰제가 시행되면서 지난해 무상우유급식 단가(430원·200㎖)에도 크게 못 미치는 200~300원대에서 공급단가가 낙찰되고 유통질서 문란이 발생하고 있다”며 “최저가 덤핑입찰 확대로 학부모들과 학생들의 선호도나 선택권이 무시되고 ‘저급우유’, ‘물탄우유’로 우유를 폄하하는 현상이 발생되고 있어 학교우유급식 품질 불신과 신뢰도를 하락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생존을 위한 가격 경쟁 전략이 시장 우위를 점할 수 있겠지만 자칫 출혈 경쟁으로 이어져 전체 시장의 경쟁력 저하를 불러 올 수 있다”며 “가격 전략과 동시에 서비스 향상 등 차별화된 경쟁력 확보에도 주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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