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문동 5총사 회상하며 떠나는 추억여행속으로

교복입고 누구나 한번쯤 먹어본 값싼 떡볶이
한국 찾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한 ‘해미순교성지’
최규하 전 대통령이 30여 년간 거주했던 동룡이네
시간이 멈춘 듯한 허물어진 담벼락, 좁은 골목의 동네

▲ 응답하라 1988

'응답하라 1988'은 우리를 온통 추억으로 휘젓고 종영했다. 그렇게 열병처럼 번진 복고열풍은 과거의 대중가요를 다시 주목받게 했고 '영웅본색' 등 20~30년 전 인기 영화들의 재개봉을 부추겼다. 언뜻 떠올리기엔 그리 멀지 않은 과거지만 찬찬히 생각해보면 많은 것이 달랐던 그때. 아쉽다 못해 아름다웠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드라마 속 쌍문동 5총사를 좇아 여행을 떠났다.

방과 후 우르르 몰려가던 브라질 떡볶이
충남 서산 얄개분식

▲ 35년 동안 한자리를 지켜온 얄개분식. 문을 열면 쌍문동 5총사가 있을 것만 같다

학교 앞 분식집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던 추억 하나쯤은 누구에게나 있다. 방과 후 허름한 분식집에서 사 먹던 값싼 떡볶이 한 접시가 왜 그리 맛있었는지. 그러고 보면 분식만큼 추억을 자극하는 음식도 없다.

추억의 분식집은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에서도 주요 장소로 등장했다. 이름하여 '브라질 떡볶이'다. 쌍문동 5인방은 문턱이 닳도록 가게를 들락거리며 아지트 같은 그곳에서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브라질 떡볶이는 특이한 이름 때문에 허구처럼 보이지만, 실제 서울 정의여고 후문에 있던 분식집이다. 다만 90년대 중반 이후 자취를 감춰 이제는 찾아볼 수 없다.

▲ 아담한 얄개분식 내부

응팔에 등장한 브라질 떡볶이는 충남 서산시 해미면 읍성마을에 위치한 '얄개분식'이다. 지은 지 50년이 넘은 건물에 자리한 이 분식점은 35년 동안 한곳에서 장사를 이어왔다. 오래된 미닫이문을 열고 가게 안으로 들어서면 마치 과거로 시간여행을 온 듯하다. 세월의 흐름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내부는 한눈에 다 들어올 만큼 아담하다. 한편에 놓인 연탄난로에선 온기가 피어오르고, 벽에 걸린 메뉴판은 가격을 여러 번 고쳐 쓴 흔적으로 얼룩덜룩하다. 응팔에서 한 접시에 300원 하던 옛날 떡볶이는 어느새 3000원이 됐다.

이곳이 한때 브라질 떡볶이였던 흔적은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노란색 야자수가 그려진 플랜카드와 출연자들의 사인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드라마 속 등장 장면이 담긴 사진도 조그맣게 붙어 있다.

▲ 푸짐한 모둠떡볶이

자리를 잡고 앉아 주문하면 한참 뒤에 음식이 나온다. 미리 만들지 않고 주문을 받고나서 조리하기 때문이다. 삼삼오오 앉아 가장 많이 먹는 메뉴는 모둠떡볶이. 아삭하게 데친 콩나물 위에 쫀득한 밀가루 떡과 꼬들꼬들한 라면, 어묵, 계란, 만두 등이 푸짐하게 얹혀 나온다. 가격은 2인분에 1만원. 살짝 비싼 감은 있지만 추억을 곁들여 먹는 재미에 후회는 없다.

▲ 서산 읍성마을의 정겨운 풍경

분식집에서 나와 골목을 따라 산책에 나서면 오래된 풍경이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슬레이트 지붕이며 작은 창 틈새에 눈처럼 수많은 이야기가 쌓여 있다. 허름한 간판을 내건 철물점과 양복점에서는 정겨운 세월의 향기가 묻어난다. 낡은 집 마당을 지키는 강아지를 만나거나 산책하는 고양이를 따라 걷다 보면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 서산 읍성마을의 정겨운 풍경

골목을 빠져나와 큰 길을 건너면 해미읍성 진남문이다. 해미읍성은 현존하는 조선시대 읍성 중 원형이 가장 잘 보존돼 있다. 조선 초기 충청병마절도사가 근무한 영(사령부)이 자리한 곳인데 충무공 이순신 장군도 1579년 훈련원 교관으로 부임해 10개월간 근무했다.

읍성 인근에는 충청지역 무명 순교자들을 기리는 해미순교성지가 있다. 2014년 한국을 찾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내친김에 해미읍성에서 차를 타고 서쪽으로 1시간쯤 깊숙이 들어가면 태안 안면도다. 이곳 꽃지해수욕장과 방포해변은 가출한 동룡이(이동휘)를 쌍문동 4인방이 데리고 오는 장면에 등장했다. 드라마에서 대천해수욕장으로 나온 꽃지해수욕장은 실제 1970~80년대 전국에서 손꼽히는 여름휴양지였다. 할배바위, 할매바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낙조가 특히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 혜리와 택이가 과자와 커피를 나눠 먹은 슈퍼도 명물이 됐다

지해수욕장 옆에 자리한 방포해변에서는 천안슈퍼가 비중 있게 나왔다. 파란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낡은 건물과 '민박'이라고 적힌 간판이 정겹다. 덕선(혜리)과 택(박보검)이처럼 고요한 겨울 바다를 바라보며 따뜻한 커피 한잔 마셔도 좋겠다.

도롱뇽 동룡이네 집 알고보니
최규하 전 대통령 가옥

▲ 1층 거실 전경. 1970~80년대 서울 중산층의 전형적인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응팔 10화와 15화에는 동룡이의 가슴 아픈 이야기가 등장한다. 동룡은 생일을 맞아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보험 일로 항상 바쁜 엄마가 1년에 한 번 맛있는 밥상을 차려주는 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일날 식탁에는 미역국 대신 돈이 놓여 있었다. 외로운 집이 싫던 동룡은 점점 밖으로 나돌기 시작했고, 오토바이를 타다가 사고를 당해 경찰서까지 가게 됐다. 이 일로 부모님께 크게 혼날 거라 예상했던 동룡은 엄마의 따뜻한 보살핌에 마음을 놓게 되고, 그리워하던 미역국을 먹으며 행복해한다.

다른 주인공의 집이 모두 의정부 세트장인 것과 달리 동룡의 집은 실제로 존재한다. 바로 최규하 전 대통령이 30여 년간 거주했던 서울 마포구 서교동 가옥이다. 주택은 전직 대통령의 사저라는 느낌보다 1970~80년대 서울 중산층의 전형적인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극 중 동룡이네 집 사정과 딱 맞아 떨어진다. 위 에피소드 역시 최 전 대통령 집에서 촬영됐다. 미역국 대신 돈이 놓여 있던 식탁도, 동룡이가 미역국을 먹던 식당도, 동룡의 아버지가 출근을 위해 서둘러 나오던 안방도 모두 이곳을 배경으로 했다.

최규하 대통령은 1973년부터 1976년 제12대 국무총리에 임명되어 삼청동 총리공관으로 이주할 때까지, 그리고 대통령에서 퇴임한 1980년부터 2006년 서거할 때까지 줄곧 이곳에서 지냈다. 지금은 등록문화재 제413호다. 서울시는 보존을 위해 2009년 유족으로부터 가옥을 매입, 복원해 2013년 10월부터 무료 개방했다.

주택은 지상 1·2층과 지하층으로 이뤄졌다. 내부에는 거주 당시 생활유물 500여 점이 원형 그대로 보관돼 있다. 1층에는 안방과 응접실, 부엌, 대통령 부인이 기거하던 작은방이 자리했다. 응접실은 최 전 대통령이 외부 방문객을 맞아 담소를 나누고 말년을 보내던 곳이다. 놓치지 말고 살펴봐야 할 물건은 하늘색 선풍기와 창문형 에어컨. 주일대사 시절인 1953년 구입한 일제 선풍기는 막내딸의 땀띠가 심해 마련한 것이다. 벽에 걸린 에어컨은 장남이 미국에서 생활할 때 구매한 것인데 아버지를 위해 한국에 들여왔다고 한다.

▲ 응팔에 가장 비중 있게 등장한 1층 부엌
▲ 영부인 홍기 여사가 식구들의 밥을 준비하던 지하 부엌

동룡의 이야기에 주로 등장하는 1층 부엌은 영부인 홍기 여사가 다과를 내오는 장소로 사용됐다. 부엌은 두 곳에 있는데 1층 부엌은 주로 손님을 맞이하는 식당으로 쓰였고, 지하 부엌은 가족의 식사 준비를 위한 장소로 이용됐다. 손때 묻은 식기류와 가구가 인상적이다. 식탁 위에는 봉황이 그려진 커피잔과 받침, 애연가로 소문난 최규하 전 대통령의 재떨이와 성냥이 놓여 있다.

동룡의 아빠가 안방에서 나오는 모습은 영부인 홍기 여사의 방 앞에서 촬영됐다. 남편과 함께 검소한 삶을 실천한 홍기 여사의 방에는 단출한 화장품과 꿰매 사용하던 베갯잇, 즐겨 입던 한복 등이 남아 있다.

2층에는 최 전 대통령의 서재와 자녀 방이 있다. 지금은 전시관으로 사용 중인 자녀 방에는 최 전 대통령이 외교관 시절 발급받았던 여권과 국무총리 임명장, 연금 명세서 등이 전시돼 있다. 또 최 전 대통령이 착용했던 양복과 구두, 자녀들과 손자들이 보낸 편지, 당시 1원짜리가 수북이 담겨 있는 홍기 여사의 동전 지갑 등도 볼 수 있다.

지하 공간은 부엌, 방, 보일러실, 부엌살림 창고 등으로 이뤄져 있다. 외교관 시절을 함께 보낸 여행가방과, 살림살이의 변천사를 엿볼 수 있는 식기들, 2004년까지 실제로 사용했다는 연탄보일러실이 인상적이다.

덕선이가 청재킷 휘날리며 전력 질주하던 골목
인천 십정동 열우물 벽화마을

▲ 1980년대 어디쯤에서 시간이 멈춘 듯한 인천 열우물 벽화마을

쌍문동 골목을 재현한 의정부 세트장을 제외하고 응팔의 주요 촬영지는 대부분 인천이다. 덕선이가 다니는 쌍문여자고등학교는 인천 남동구 간석동에 있는 신명여고가 배경이고, 정환(류준열)이와 선우(고경표)가 다니는 쌍문고등학교는 서구 석남동 인천보건고에서 촬영했다. 또 중국에서 바둑 대국을 벌이는 친구 택(박보검)을 위해 덕선이가 음식을 사서 나른 곳은 차이나타운이다.

인천 부평구 열우물 벽화마을도 응팔의 배경으로 등장했다. 덕선이가 언니의 청재킷을 몰래 입고 학교에 갔다가 부리나케 집으로 달음질하던 골목이 바로 그곳이다.

행정구역상 명칭이 십정(十井)동이라 '열우물'로 불린다. 이름처럼 열 개의 우물이 있었다는 얘기도 있지만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다. 80년대 어디쯤에서 시간이 멈춘 듯한 마을은 이웃에 자리한 고층아파트 단지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허물어진 담벼락과 콘크리트 계단은 미로처럼 얽혀 있고, 좁은 골목은 울퉁불퉁 경사가 져서 올라가기도 내려가기도 만만치 않다.

▲ 30년 가까이 마을 입구를 지키고 있는 정겨운 문구점
▲ 100원의 행복, 추억의 뽑기 게임

하지만 마냥 삭막할 것 같은 이 낡은 동네는 구석구석 그려진 벽화를 만나는 순간 인상이 정다워진다. 험한 계단은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로 변신했고 거친 담벼락엔 탐스런 해바라기 꽃이 활짝 피었다. 향기를 쫓듯 팔랑이는 나비와 알록달록 고운 옷차림의 아이들도 보인다.

유명 벽화마을처럼 화려하고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정겹고 인간미가 느껴진다.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가게도 마음을 무장 해제시킨다. 마을 입구에서 30년 가까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문구점에는 추억의 뽑기 기계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100원짜리 동전 하나를 넣고 손잡이를 드르륵 돌리면 밤톨만한 캡슐이 댕그르르 굴러 나온다.

떡을 뽑고 고추를 빻던 예전 방앗간도 남아 있다. 불린 쌀을 갈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는 동네 아낙들은 없지만, 먹음직스러운 가래떡이 줄줄이 흘러나오는 풍경은 고향집처럼 푸근하다. 갓 뽑은 따끈한 가래떡을 사서 한입 베어 물면 경사를 오르내리는 수고로움 따위는 금세 잊게 된다.

▲ 1981년 문을 연 잉글랜드 왕돈가스. 응팔에서 정환이네 가족의 외식 장소로 등장한다

마을에서 나와 차를 타고 25분쯤 동인천역 방향으로 향하면 정환이네 가족이 외식하러 갔던 '잉글랜드 왕돈가스'가 있다. 1981년 개업해 35년째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돈가스집은 맛도 훌륭하지만 80년대 느낌이 그대로 남아 있는 인테리어로 유명하다. 드라마 속 장면처럼 “밥 드릴까요? 빵 드릴까요?”라고 묻는 종업원의 모습에서 80년대 경양식집의 향수가 피어오른다.

돈가스는 하루에 정해진 수량만 판매하며 오후 3시부터 5시까지는 브레이크타임이다. 식사 시간에 맞춰 도착하게 된다면 번호표를 받고 기다리는 걸 각오해야 한다.

사진 및 자료제공 한국관광공사

*여행tip

*여행tip

얄개분식
주소 : 충남 서산시 해미면 읍성마을4길 24
문의 : 010-7397-3223

꽃지해수욕장
주소 : 충남 태안군 안면읍 꽃지2길 49-2
문의 : 태안군청 관광진흥과 041-670-2691

방포해변
주소 : 충남 태안군 안면읍 방포1길 29-1
문의 : 태안군청 관광진흥과 041-670-2691

최규하 전 대통령 가옥
주소 : 서울 마포구 동교로15길 10(지하철 2호선 합정역 2번 출구에서 도보 15분, 6호선 망원역 1번 출구에서 도보 10분)
문의 : 02-3144-2038

열우물 벽화마을
주소 : 인천 부평구 상정로 50(상정초등학교 앞 상정문구슈퍼 옆길)

잉글랜드 왕돈가스
주소 : 인천 중구 우현로90번길 7
문의 : 032-772-7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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