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옥희 기자

[뉴스포스트=안옥희 기자] 일상에서 쓰이는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신조어들에는 이 시대 사회상이 담겨 있다.

경기 불황으로 인해 극심한 취업난을 겪는 청년세대에서는 특히 자신들의 처지를 자조적으로 이르는 신조어들이 많이 쓰인다.

연애⦁결혼⦁출산 3가지를 포기한 ‘3포 세대’, 여기에 내 집 마련과 인간관계까지 포기한 ‘5포 세대’, 이 다섯 가지에서 취업과 희망까지도 포기하면 ‘7포 세대’가 된다.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점차 늘어남에 따라 최근에는 숫자를 붙이기보다 ‘N포세대’로 부르는 추세다.

취업이 되지 않아 준비 기간 장기화에 따라 취업 전까지 학생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 졸업을 미루는 ‘화석 선배’(졸업하지 않고 학교에 다니는 고학번 선배)라는 말도 흔히 쓰인다.

이는 기업들이 대부분 신규 채용 시 졸업자보다는 졸업예정자를 선호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취업 기회가 좀처럼 닿지 않거나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지 못해 부모의 경제력에 기대 살아가는 취업준비생들은 ‘빨대족’, ‘캥거루족’으로 불린다.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만 25세 이상 성인 자녀를 둔 부모 262명을 조사한 결과 10명 중 4명(40%)은 퇴직을 앞두고 노후 준비를 시작해야 할 나이에도 여전히 자녀를 부양하며 취업 바라지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50대 이상 고령층을 중심으로 취업률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취업 전 인턴 경험이 필수처럼 여겨져 ‘티슈 인턴’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기업에서 취업준비생들을 티슈처럼 쉽게 뽑아 쓰고 쉽게 버린다는 의미다.

정식 취업이 어려워지자 여러 회사를 옮겨 다니며, 단기간 인턴직을 전전하는 청년층이 늘어 ‘호모인턴스’, ‘부장인턴’이라는 말도 생겼다.

좁아진 취업 관문을 뚫기 위해 취업준비생들이 쌓아야 하는 스펙을 일컫는 ‘취업 3종 세트’는 기존 학벌⦁학점⦁토익점수에서 최근 어학연수 경험⦁자격증⦁공모전 입상⦁인턴 경력⦁사회봉사⦁성형수술 등의 항목이 추가된 ‘취업 9종 세트’가 됐다.

특히 인문계열 전공의 취업률이 낮아 ‘인구론’, ‘문송합니다’라는 말도 생겼다. ‘인구론’은 ‘인’문계 졸업생 ‘구’십 퍼센트가 ‘논’다는 뜻이다.

2014년 교육부의 ‘전국 4년제 대학정원 및 취업률’ 자료에 따르면 인문계열 졸업자 취업률은 47.8%, 공학계열의 취업률은 67.4%였다.

이처럼 인문계열 전공자들이 취업시장에서 ‘서류광탈’(빛의 속도로 빠르게 서류전형 바로 탈락)이 되며, 철저하게 외면받는 현실을 반영해 ‘문과라서 죄송합니다’의 줄임말인 ‘문송합니다’라는 말이 널리 쓰였다.

‘취업 9종 세트’ 스펙을 갖춰 어려운 관문을 뚫고 취업에 성공하더라도 청년세대는 ‘이케아 세대’로 분류되기 일쑤다.

세련된 디자인에 저렴한 가격의 가구 브랜드 이케아(IKEA)처럼 각종 스펙을 보유했으나 낮은 급여(‘열정페이’)에 고용 불안과 과도한 업무량, 긴 노동 시간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이케아 세대’ 취업자 대부분은 회사에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하지만, ‘티슈 인턴’, ‘취업 9종 세트’, ‘서류광탈’의 단계를 거쳐 어렵게 구한 일자리를 쉽게 그만둘 수 없으므로 사생활도 없이 회사 일에 매몰돼 사는 ‘사축(社畜)’(회사에서 기르는 동물)으로 길든다.

청년실업과 취업 관련 신조어들을 보면 모두 자조적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관련 제도나 정책, 시스템의 미비로 인한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할 생각은 하지 않고 시스템에 뺨 맞은 개인에게 책임을 돌려 ‘정신승리’를 강요하는 세태에 대한 ‘풍자’로 읽어도 좋을 것이다.

언뜻 가볍고 경박해 보이는 이 신조어들은 시쳇말로 ‘웃프다’(웃기고 슬프다: 웃을 수도 없고 울 수도 없다는 뜻)고 할 정도지만, 해당 신조어가 탄생하게 된 배경과 맥락을 따져보면 우리사회⦁시대상이 생생하게 담긴 ‘촌철살인’의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부터 큰 공감대를 형성하며 널리 쓰인 ‘헬조선’, ‘흙수저’, ‘노오력’ 역시 짧은 단어지만, 그 말이 지닌 함의는 작지 않다.

지난 총선을 앞두고 실시된 대학생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학생들이 바라는 청년 정책 1위는 ‘청년일자리문제 해결’이었다.

정책입안자나 식자층들은 이런 신조어들을 사용하는 것만이 청년세대와의 소통이 아님을 알고 신조어들이 쓰이는 현상에 대해 면밀히 분석해 그 속에 담긴 ‘언중유골’의 메시지를 읽어야 한다.

개원한 20대 국회에서는 특정 신조어들의 생성과 확산을 어떤 분야의 문제점⦁결핍을 드러내는 ‘신호’나 ‘징후’로 캐치해 정책에 반영하는 등 청년들의 현실과 목소리가 수렴된 제대로 된 청년정책이 만들어지길 바란다. 

저작권자 © 뉴스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