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향욱 기획관 신분제 막말 계기 ‘학벌주의’ 공론화

신분제 공고화 온상 ‘출신학교’, 학벌주의 없어져야
“고위공무원단 가운데 SKY대 출신 절반 넘어서”
사교육의 가장 주 원인 출신대학 진입위한 목적
전 세계 최고수준 대학진학률, 청년고용률은 심각
사교육걱정, 출신학교차별금지법 제정 1인 시위

[뉴스포스트=최유희 기자] 나향욱 교육부 전 정책기획관이 “신분제를 공공화해야 한다” 등의 막말 논란으로 파면되는 등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실제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학벌주의가 만연하다. 영어 유치원, 사립초, 국제중, 특목고/영재고/자사고를 졸업한 뒤 SKY 대학이라는 특권 학교 경로를 거치면 ‘30대 대기업, 금융권, 공기업, 공무원’으로 진출이라는 특권층 경로 라인이 이미 형성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우리나라의 사교육 문제 역시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교육부 사교육비․사교육의식조사(2009년~2013년)에 따르면 사교육의 가장 큰 원인은 ‘취업 등에 있어 출신대학이 중요하기 때문’인 것으로 나타나 학벌주의에 대한 문제점은 계속 지적되고 있다. 이에 병폐를 고치기 위한 출신학교차별금지법 제정이 국회에서 추진되는 등 출신학교 차별 금지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입시와 취업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조건, 학교 간판

▲ (사진=사교육걱정없는세상)

지난해 9월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이 인사혁신처에서 제출받은 ‘현 정부 출범 이후 신규진입한 고위공무원단 출신고·대학 현황’ 자료에 따르면, 새롭게 진입한 고위공무원단 가운데 SKY대(서울대, 고려대, 연대) 출신이 절반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새롭게 진입한 고위공무원단은 총 672명이었고, 서울대·연대·고대 출신이 절반을 넘어선 341명(50.7%)이었다. 대학별로는 서울대 출신이 217명(32.3%)으로 가장 많았고, 연세대 73명(10.9%), 고려대 51명(7.6%), 방통대 38명(5.6%), 성균관대 30명(4.5%) 등으로 서울에 있는 상위 5개 대학 출신 비중이 무려 60.9%를 차지했다. 출신 고교별 비중은 경기고가 10명으로 가장 많았고, 순천고·강릉고가 각 9명, 경동고·광주고도 각 7명 순이었다.

고위공무원단 성별 편중은 더욱 심각했다. 남성이 95%인 640명이고, 여성은 32명(5%)에 불과했다. 전공별로는 행정학이 119명(17.7%)으로 가장 많았고, 법학이 83명(12.4%), 경제학이 70명(10.4%), 정치외교학 31명(4.6%) 등의 순으로 사회과학계열 출신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당시 진선미 의원은 “고위공무원단이 국가의 주요정책을 결정하는 막중한 자리인 만큼 특정 대학출신 편중이 심화되는 것이 자칫 정책의 편향성과 국민적 소외감을 가져오지 않을까 염려스럽다”고 지적하고 “학연·지연이 중시되는 우리나라 공직사회 문화에서 정책적 편향성을 갖지 않도록 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하 사교육걱정)’은 “SKY 대학과 수도권 소재 대학이 아닌 지방대와 고졸 출신은 16.1%에 불과하다”며 “지방대 출신으로서 고위 공무원단에 속하는 것은 바늘구멍 들어가기와 같은 현실이다”고 설명했다.

사교육걱정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최근 5년간 임용된 신규 법관 중 SKY 대학이 차지하는 비율이 79.9%, 경력 법관은 72.2%에 이르러 전체 법관 중 76.1%를 차지하고 있다. 서울대 한 대학만 놓고 보더라도 무려 신규 법관의 51.5%, 경력 법관의 43.5%로, 전체의 47.5%라는 어마어마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공무원, 법관 뿐 아니다. 공기업 10곳 중 4곳 역시 여전히 채용 차별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6월 사교육걱정은 기획재정부가 지정한 총 30곳의 공기업 중 2016년 4~5월 공개채용이 진행되었던 10곳을 대상으로 입사지원서 상의 학력 기입란과 출신학교명 기입란의 유무를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에 따르면 공기업 10곳 중 4곳이 입사지원서 상에서 학력이나 출신학교명을 기입하도록 요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수력원자력,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한국관광공사(수시채용)의 경우 여전히 학력 기입란과 출신학교명 기입란을 유지하고 있고, 부산항만공사의 경우 출신학교명 기입란은 삭제했으나 학력 기입란은 그대로 두고 있었다.

지역인재(비수도권 지역인재, 이전지역 인재)전형을 운영한 공기업 6곳 중 4곳에서도 출신학교명 기입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신학교 정보를 요구하는 기업은 한국가스공사, 한국중부발전, 한국서부발전, 한국수력원자력(수시채용) 등이다.

“학교와 직장에 더 이상 출신학교 정보 기재 안해야해”

▲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가 지난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사교육대책 TF - 출신학교차별금지법 제정 공청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더불어민주당 사교육대책태스크포스(TF)와 사교육걱정이 입사지원서와 입학전형자료에 출신학교에 대한 정보를 기재하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출신학교차별금지법안’을 내놨다.

지난 18일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출신학교차별금지법 제정 공청회’가 개최됐다.

이날 공청회에서 박래형 사교육걱정 법률위원은 주제발표를 통해 제정안 시안을 공개했다. 제정안 시안에 따르면 사업주는 채용공고에서 특정 학력 이상 또는 이하로 제한하거나 학력별로 직급을 달리해 모집할 수 없다. 채용서류와 면접 과정에서 학력 정보를 제시·요구하는 행위도 금지한다.

특정학교 중심으로 채용설명회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학력을 이유로 근로조건, 직업환경, 시간외근로, 교대근로, 근로시간단축, 징계를 달리 적용할 수 없으며 임금 및 금품을 차등 지급하거나 호봉 산정을 다르게 정할 수 없다.

교육기관의 경우도 학력과 출신학교를 이유로 교육기관에 지원·입학·편입을 제한·금지하거나 교육활동에 대한 지원을 달리할 수 없다. 특정학교출신만 충족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하는 등 출신학교를 이유로 입학의 기회를 주지 않거나 제한하는 행위도 금지된다.

또한 입학전형자료에 출신학교 정보를 제시·요구하는 행위도 할 수 없다. 입학심사 시 출신학교에 따라 입학전형의 점수를 차등 부여하는 등 출신학교를 평가 기준으로 해서도 안 된다. 만약 대입·취업 준비생이 전형 과정에서 피해를 봤다고 느끼면 기업이나 대학에 정보 공개 청구를 할 수 있고, 기업 등은 30일 이내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

사교육걱정은 이처럼 시안을 공개하며 입시와 취업에서 출신학교차별을 금지할 경우 학습역량과 직무능력 중심으로 평가가 이뤄지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사례로 입시에서 출신학교와 지역을 암호화 한 ‘블라인드 전형’과 직무능력을 강조한 ‘NCS(국가직무능력표준) 기반 입사지원서’를 제시했다.

이에 교육·노동계 관계자들은 불필요한 사교육비를 경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출신학교차별금지법 제정 취지에 공감했다.

이날 공청회에 참석한 권태성 고용노동부 고용정책총괄과장은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만 사교육비가 들어간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30, 40, 50대 사이에서도 학벌 중심 사회로 인해 경력에 불필요한 학위를 취득하는 경우가 많다”며 “고용노동부에서 가장 전문가로 칭하는 ‘명장’인 사람들도 학력수준이 낮을 경우 다시 대학을 가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권 과장은 “우리나라 대학진학률은 70%를 넘어 전 세계 최고수준이지만 산업구조와 맞지 않아 청년고용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며 “고등학교만 나와도 괜찮은 직장을 가질 수 있는 사회가 된다면 사교육에 관한 국민적인 부담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모든 대학·기업의 입시와 채용과정을 점검하기 어렵고 출신학교를 기입하지 못해 생기는 다른 부작용도 염려된다는 점을 들어 법제화를 추진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이견차도 오고갔다. 이와 더불어 대학 입시에서 출신학교란을 삭제할 경우 오히려 일반고에 대한 역차별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건재 서울 미양고 교장은 “지금은 대학입시에서 입학원서를 비롯해 각종 전형에서 요구하는 서류에 다양한 형태로 출신학교가 기재되고 있다”며 “원천적으로 입학 관련 모든 서류에 출신 고등학교가 기재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행정적으로 가능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대학입시에서 대세로 자리 잡은 학생부종합전형의 경우 학교에서 이수한 모든 활동이 기록된 학교생활기록부를 평가하는 것인데 경우에 따라서 출신학교의 교육과정과 학교교육계획을 참고할 수도 있다”며 “출신학교가 익명으로 비공개됐을 때 학교장 추천전형, 학생부종합전형 등이 무력화돼 다시 수능점수 중심의 정시전형이 확대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학력 집착하면 원천적 기회 박탈? “불필요한 경력쌓기 급급”

▲ 출신학교 차별 금지법 제정 촉구 국회 1인 시위 : 윤지희(7/14), 송인수(7/15) (사진=사교육걱정없는세상)

한편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채용 차별 해소를 위한 ‘고용정책 기본법 일부개정 법률안’ 관련해 의견을 표명했다. 모집‧채용 시 차별금지 사유에 ‘학력’을 추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성별, 신앙, 연령, 신체조건, 사회적 신분, 출신지역, 혼인‧임신 또는 병력 등의 이유로 차별을 해서는 안된다고 밝히며 차별 금지 이유에 ‘학력’을 추가한 것이다.

개인의 능력보다 학력을 중시하는 취업시장의 관행, 이 때문에 구직자들이 필요 이상으로 학력에 집착하고 취업 초기 단계부터 원천적으로 기회를 박탈당해 불필요한 경력 쌓기에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입한다고 밝혔다.

학력지상주의 풍토에 기인한 학력간 지나친 임금 격차와 고학력 실업의 부작용, 학력 인플레에 따른 인력수급 불균형 등의 문제와 이와 관련된 사회적 비용을 고려했을 때 그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러한 출신학교차별에 대해 사교육걱정은 ‘망상이 아니라, 신분제 공고화는 현재 진행형이다’는 성명서를 내고 지난 14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 및 ‘출신학교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이들은 우리는 ‘출신학교 차별 금지법’이 국회에서 제정이 되는 그날까지 결코 이 운동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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