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쟁, 인류의 양심을 시험하다
한국군도 민간인 수십 명 살해 기록
피해 유족, 한국에 첫 국가 배상소송
“피해 사실을 공식 인정받고 싶다”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프랑스의 잔혹한 식민 지배를 받던 베트남은 전쟁을 통해 스스로 제국주의의 압제를 무찌른다. 하지만 독립의 기쁨도 잠시, 베트남은 냉전의 이데올로기 앞에 남과 북으로 갈라져 또다시 전쟁의 화마에 휩싸인다. 1955년 시작된 내전은 양대 진영의 이념 갈등이 짙어질수록 국제전 양상을 띠게 된다. 초강대국 미국이 공산 진영인 북베트남을 무너트리기 위해 전쟁에 뛰어든 것이다.

지난달 21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산하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태스크포스(TF)’가 베트남 전쟁 민간인 학살 피해 유족 응우옌 티탄 씨의 국가배상 청구 소송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제공)
지난달 21일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태스크포스(TF)’가 베트남 전쟁 민간인 학살 피해 유족 응우옌 티탄 씨의 국가배상 청구 소송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제공)

‘베트남 전쟁’으로 불리는 이 사변은 1975년 모두가 알다시피 남베트남과 미국의 패배로 끝난다. 민중의 지지를 받던 북베트남이 승리했지만, 20년에 걸쳐 계속된 전쟁으로 민중들이 입은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게 됐다. 잔혹한 식민 지배를 스스로 무찌른 약소국은 또다시 강대국에 의해 유린당했다. 기적적으로 약소국은 위기를 극복했지만, 민중들의 피해는 고스란히 남아있다. 혹자들은 베트남 전쟁을 두고 ‘민중의 위대한 승리’라면서도 ‘인류의 양심에 그어진 상처’라고 말한다.

베트남 전쟁은 한국 현대사와도 연관이 깊다. 전쟁 당시 한국 정부는 미국의 동맹국 자격으로 국군을 파병했다. 이들은 남베트남 편에 서서 북베트남을 상대로 싸웠다. 하지만 한국군의 총부리는 북베트남 군대에만 향하지는 않았다. 1999년 9월 한겨레 21은 한국군이 베트남 전쟁 당시 민간인을 대상으로 학살을 저질렀다고 최초 보도해 사회에 충격파를 던졌다. 한국 역시 ‘인류의 양심에 그어진 상처’에 한 획을 더했던 것이다.

역사적 차원에서는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이 자행한 민간인 학살 범죄가 사실로 기록됐지만, 정치적 문제에서는 꾸준히 소외돼 왔다. 현재 한국 정부는 베트남 전쟁 당시 국군 범죄에 대해 사실로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베트남 정부 역시 한국군 민간인 학살 문제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학살 피해 유가족 당사자들은 양측 정부로부터 수십 년간 소외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수십 년간 소외당하던 학살 유족들은 2020년이 돼서야 가해자들에 직접 맞서기 시작했다. 지난달 21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 산하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태스크포스(TF)’는 베트남 전쟁 한국군 민간인 학살 피해 유족 응우옌 티탄 씨를 대신해 국가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한국 정부를 상대로 베트남 전쟁 학살 피해 유족이 소송을 제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뉴스포스트>는 베트남 전쟁 당시 자행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범죄와 소송 과정 등을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티탄 씨의 소송대리인단(이하 ‘대리인단’)과의 이달 12일 인터뷰를 진행했다. 대리인단은 변호사 14인으로 구성됐다. 인터뷰 내용은 변호사 개인이 아닌 14인 공통의 의견이다. 코로나 19 확산 방지를 위해 서면으로 진행했다.

지난달 21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산하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태스크포스(TF)’의 기자회견 중 민변 관계자들이 베트남 전쟁 민간인 학살 피해 유족 응우옌 티탄 씨와 영상 통화를 하고 있다. 티탄 씨는 소송 대리인단을 보고 활짝 웃었다. (사진=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제공)
지난달 21일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태스크포스(TF)’의 기자회견 중 민변 관계자들이 베트남 전쟁 민간인 학살 피해 유족 응우옌 티탄 씨와 영상 통화를 하고 있다. 티탄 씨는 소송 대리인단을 보고 활짝 웃었다. (사진=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제공)

50년 전 그날, 한국군에게 가족을 잃었다

대리인단에 따르면 티탄 씨는 일명 ‘퐁니·퐁넛 마을 학살 사건’의 피해자다. 해당 사건은 전쟁의 화마가 지속하던 1968년 2월 12일에 일어났다. 한국 청룡부대는 베트남 꽝남성 디엔반현 퐁니, 퐁넛 마을 주민 70여 명을 학살했다고 알려졌다. 당시 티탄 씨는 퐁니 마을에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이 사건으로 오빠인 응우옌 득상 씨를 제외하고 어머니와 언니, 동생, 이모, 사촌 동생을 전부 잃었다. 티탄 씨 나이 만 8세 때의 일이었다.

티탄 씨는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복부와 둔부에 심각한 총상을 입었다. 병원으로 옮겨져 장을 연결하는 대수술을 받아야 했고, 8개월 동안 입원 신세를 져야 했다. 이때 입은 부상은 50여 년이 지난 현재에도 커다란 흉터로 남아있다. 오래 서 있거나 앉아 있을 때 통증을 겪는 등 부상 후유증도 크다. 대리인단은 “무엇보다 가족들이 처참하게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후 현재까지 끊임없는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며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고 교육의 기회도 박탈당한 채 힘겹게 살아왔다”고 티탄 씨가 겪은 고통을 간접적으로 전했다.

어린 나이에 심각한 총상을 입는 것도 모자라 현재까지 정신적·육체적·사회적 고통을 겪는 티탄 씨는 2020년 민변을 통해 국가배상 청구 소송이라는 어려운 싸움을 시작했다. 민변은 2015년 한베 평화재단에서 주최한 베트남 평화기행을 계기로 한국군 민간인 학살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2018년 4월에는 시민단체들과 함께 베트남전 시민평화법정에 법률팀으로 참여했다. 민변은 당시 시민평화법정의 원고였던 티탄 씨의 위임을 받아 이듬해 가을 소송대리인단을 정식으로 모집했고, 지난달 21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정식으로 소장을 접수했다.

티탄 씨는 이번 소송을 통해 자신이 겪은 끔찍한 피해가 역사적 사실이었음을 인정받고자 한다. 대변인단은 “(티탄 씨는) 1968년 2월 12일 퐁니 마을에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발생했고, 당시 퐁니 마을에 살았던 원고 및 원고의 가족들이 피해를 당했다는 사실을 대한민국 법원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기를 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21일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태스크포스(TF)’가 베트남 전쟁 민간인 학살 피해 유족 응우옌 티탄 씨의 국가배상 청구 소송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제공)
지난달 21일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태스크포스(TF)’가 베트남 전쟁 민간인 학살 피해 유족 응우옌 티탄 씨의 국가배상 청구 소송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제공)

한국군 전쟁범죄, 이제는 우리가 답해야 할 때

티탄 씨의 사례인 ‘퐁니 사건’의 경우 당시 퐁니 마을 근처에 주둔하던 미군이 목격한 사실을 토대로 작성한 내부 보고서가 2000년경 미국 내에서 비밀 해제돼 국내에서도 내용이 상세히 알려져 있다. 또 마을에서 작전을 수행했던 한국군 청룡부대 1대대 1중대원들의 진술도 확보돼 있다. 대리인단은 “주요 증거들 및 증거들 사이의 일치성을 두고 보면 퐁니 사건의 존재를 부인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대리인단은 퐁니 사건의 증거들과 배상 관련 법 조항을 통해 소송을 진행할 전망이다. 이들은 “국가배상법에 의하면 국가는 공무원(군인)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민간인 살해·공격행위)해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에 대한 양측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로 티탄 씨의 싸움은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정부의 경우 베트남 전쟁 당시 벌어진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문제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한 적이 없다. 사실 인정이나 진상 조사 역시 마찬가지다.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베트남 전쟁에 대해 간접적으로 유감 표명을 한 게 전부다.

대변인단은 “지난해 4월경 학살 피해자 및 유족 103명이 베트남 전쟁 민간인 학살 문제의 진상조사와 공식사과를 요구하는 청원서를 정부에 제출했지만, 국방부는 ‘보유 자료에 관련 내용이 확인되지 않고, 베트남과의 공동조사 여건이 조성되지 않아 진상조사도 어렵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했다”며 “현 정부 역시 이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진상조사 의지나 계획은 없다고 보인다. 이 같은 상황에서 소송은 원고가 강구할 수 있는 유일한 제도적 수단”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뿐만 아니라 베트남 정부 역시 민간인 학살 문제를 밝히는 데 소극적이다. 일각에서는 베트남이 ‘승전국 지위’ 때문에 학살 문제를 가벼이 여기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변인단은 “베트남 정부가 소극적인 것은 사실이나 이유가 명확하게 알려져 있지는 않다”며 “이번 소송은 학살 피해자 응우옌 티탄 개인이 원고가 돼 제기하는 소송이다. 베트남 전쟁 학살 피해자들은 학살 문제가 공론화되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세력이 대한민국 사회에 존재하는 점 역시 티탄 씨의 싸움에 어려움이 될 수 있다. 실제로 2015년 4월 티탄 씨 등 학살 피해 유가족들이 참여한 국내 행사가 참전군인들로 이뤄진 보수단체의 격렬한 반발로 장소 예약이 취소되는 등 파행을 겪기도 했다.

대변인단은 이번 소송이 양국과 양국 국민들과의 대립 및 갈등을 조장하는 게 아니라고 설파했다. 이들은 “국적을 불문하고 무장한 군인들이 비무장 상태의 민간인을 살상해서는 안 된다는 보편적 인권의 요청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며 “근본적으로 한 개인의 50여 년간 떨칠 수 없었던 깊은 고통에 대한 진술이다. 그가 한국인이 아니라고 해서 고통의 크기가 다르거나, 다르게 취급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소송의 원고인 티탄 씨는 베트남 전쟁 한국군 민간인 학살 문제를 해결을 지지하고 이를 위해 노력한 많은 한국인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대변인단은 “이 하나의 사건이 소송화되기까지 한국의 시민단체들과 수많은 시민이 오랫동안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왔음을 원고도 잘 알고 있다. 감사하다”며 티탄 씨를 대신해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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