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각종 이슈로 한중 관계가 날이 갈수록 날카로워지고 있는 가운데, 문화계에서는 ‘동북공정’에 버금가는 움직임이 포착돼 논란이 커지고 있다. 한국 고유의 전통을 중국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일반 누리꾼들의 일회성 주장을 넘어 문화 산업 일선에서도 벌어지고 있어 대응이 시급해 보인다.

샤이닝니키 한국 서버.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샤이닝니키 한국 서버.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한복(韓服)은 선사시대 때부터 현대까지 전해 내려오는 우리의 사상과 관습, 문화, 기술 등이 깃은 민족 고유의 의상이다. 약 1,600년 전 고구려 고분 벽화나 백제, 신라 유물에서도 확인된 한복은 시대에 따라 변화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한복의 형태는 조선 중기 이후에 정착된 양식이다. 치마와 저고리, 바지, 두루마기, 조끼, 마고자, 갓 등이 일반적이다.

한복이 한민족 고유의 전통 의상이라는 데에 이견을 다는 이는 없다. 그런데 최근 중국의 한 게임 회사와 관련한 논란이 한복의 국적 싸움으로 비화됐다. 중국의 게임 제작사 페이퍼게임즈의 ‘샤이닝니키’가 이달 초 공식 커뮤니티를 통해 한국 서비스에 한복 콘텐츠를 출시하자 엉뚱하게도 중국인들이 분노하기 시작했다.

중국 유저들은 “한복은 중국의 명(明)나라 의상”, “중국 55개 소수민족 중 조선족의 옷”등의 주장들을 펼쳤다. 그러면서 우리의 한복을 중국의 ‘한푸(漢服)’라고 가리켰다. 한국 유저들은 분노했다. 중국 유저들의 주장에 한국 유저들이 반박하면서 싸움은 지속됐다. 급기야 이들의  다툼은 SNS를 통해 양국 온라인 커뮤니티까지 번졌다.

제작사는 중국 유저들의 손을 들어줬다. 자사의 웨이보를 통해 한국 유저가 중국을 모욕할 경우 채팅 금지와 계정 정지 조치를 취하고 중국의 전통과 국가의 존엄을 지키겠다고 밝혔다. 분노한 한국 유저들은 환불 요청을 하거나 탈퇴 움직임을 보였다. 국가 간 네티즌 싸움까지 번진 샤이닝니키 사태는 제작사가 지난 5일 한국 서비스를 종료하면서 일단락됐다.

샤이닝니키는 한국 서버에서 철수했지만, 한복의 국적에 대한 논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 8월 말 열린 ‘2020 미스 홍콩 선발대회’에서는 후보들이 장기자랑을 할 때 한복을 입고 부채를 든 댄서들이 등장했고, 한 예능 프로그램에는 한복을 입은 여성들이 우리의 대표적인 전통 음식인 김치를 만드는 장면이 방영돼 논란에 불을 지폈다.

한복을 차려입고 경복궁을 구경하고 있는 시민들.  (사진=뉴스포스트DB)
한복을 차려입고 경복궁을 구경하고 있는 시민들. (사진=뉴스포스트DB)

역사에선 명나라가 조선 옷을 금하다

중국이 한복을 자국의 의복이라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근거는 명나라 의복 양식이다. 1368년부터 1644년까지 존재했던 명나라는 풍화와 같던 중국의 역사에서 보기 드물게 수백 년간 지속했던 왕조다. 조선과도 지리적, 정치적으로 가까웠다. 이 같은 배경 탓에 양국 간의 문화적 교류는 활발했다.

실제로 조선의 관복과 예복은 중국의 영향을 받았고, 명나라에서는 반대로 고려 의상이 유행했다. 명나라 이전 원(元)나라에서 고려양(高麗樣)이라고 일컫는 고려 복식이 유행을 탔기 때문이다. 원나라가 멸망하고 명나라가 세워지면서 명대 초기에는 고려식 복식이 유행했다. 제9대 황제 홍치제가 고려양을 금지할 때까지 유행은 지속했다. 

배화여대 김소현 교수가 2002년 발표한 ‘조선시대 복식에 나타나는 전통양식과 중국양식’ 논문에 따르면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은 국가의 예복을 중국에서 유래한 외래 복식 위주로 구성했다. 이 역시 세월이 지나면서 부분적으로 한국화 하기도 했다. 다만 평상복의 경우 우리의 복식 전통이 강하게 남아있다.

김 교수는 “고려 복식이 원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나 한편으론 고려 양식이 원에서 유행했던 것처럼 명에서도 고려양이 유행했다”며 “중국이 북방민족의 지배 아래 들게 되면 한족의 기본 복식의 틀까지 완전히 이민족의 것으로 바뀌었음에 비해 우리는 중국 양식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에도 끝까지 우리 고유의 양식을 지켜나간 게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비슷한 내용은 중국 측 기록에도 있다. 15세기 명나라 관리 육용(陸容)이 저술한 ‘숙원잡기(菽園雜記)’에는 ‘마미군(馬尾裙)’이라는 조선식 치마가 당시 유행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치마가 도래된 초기에는 신분이 높은 사람들만 입었으나 명나라 제8대 성화제 즉위 말년에는 신분의 높낮이와 상관없이 대중적으로 유행했다.

지난 2010년 1월 청년 단체들이 서울인사문화마당에서 중국의 문화동북공정 저지와 한민족역사문화지키기 거리 캠페인을 벌였다. 당시 중국 누리꾼들이 유튜브 등을 통해 태권도와 농악 등 우리 고유 문화를 중국의 문화 일부분인 것처럼 홍보하는 것을 저지하려는 목적이었다. (사진=뉴시스)
지난 2010년 1월 청년 단체들이 서울인사문화마당에서 중국의 문화동북공정 저지와 한민족역사문화지키기 거리 캠페인을 벌였다. 당시 중국 누리꾼들이 유튜브 등을 통해 태권도와 농악 등 우리 고유 문화를 중국의 문화 일부분인 것처럼 홍보하는 것을 저지하려는 목적이었다. (사진=뉴시스)

한복 우기기, 동북공정 시즌2 시작되나

사료만 살펴봐도 한복이 명나라 옷이라는 중국 측 주장은 쉽게 반박할 수 있다. 1600년 이상의 역사가 담긴 한복은 시대마다 변했지만, 우리 고유의 문화와 생활양식을 총체적으로 담은 전통 복식이다. 한복을 단순히 텔레비전 사극에서 자주 등장하는 조선 후기 양식으로만 이해한다면 명나라 복식이라고 오해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한복에 대한 왜곡이 단순한 중국 누리꾼들의 억지가 아니라 문화 ‘동북공정(東北工程)’이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동북공정이란 중국이 지난 2002년부터 5년간 추진한 역사·문화 연구 사업이다. 중국의 동북 지방을 연구하는 사업인데, 이곳은 러시아와 북한과 국경이 맞닿아 있어 중국이 매우 민감하게 여기는 지역이다.

동북공정은 중국의 현 국경 안의 모든 역사와 문화를 중국의 것이라고 보는 시각 때문에 당시 한국에서 큰 논란이 됐다. 과거 중국의 동북 지역을 지배했던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문화까지 중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노무현 정부는 2006년 ‘동북아역사재단’을 출범하기도 했다.

동북공정은 공식적으로 끝났지만, 여파는 여전히 남아있는 듯하다. 한복을 명나라 의상이나 중국 소수민족의 전통 의상으로 보는 시각이 중국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조선족들의 주요 거주 지역이 실제로 중국 동북 지방이기도 하다. 제2의 동북공정이 시작될지 모른다는 우려에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일련의 논란에 대해 공식적인 대응을 하지는 않고 있지만, 유감을 표명한 바 있다.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 10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샤이닝니키 사태에 대해 “굉장히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대응도 필요하겠지만, 한복이 우리나라 전통 의상임을 세계에 알리는 데 더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뉴스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