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
옛 흔적이 감쪽같이 사라지곤 하는데

한때 농경 국가였던 우리나라는 공업 국가가 되며 도시화를 겪었다. 도시화는 옛것을 그냥 허물고 새것을 급히 세우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사라져가는 것이 도시에는 많다. 한때는 소중한 보금자리나 일터였던 곳이, 혹은 피와 땀이 담긴 곳들이 개발을 명목으로 묻히거나 버려졌다. <도시탐구>는 언젠가 누군가는 그리워하고 궁금해할 지금은 사라지거나 희미해진 그 흔적들을 답사하고 기록해 나갈 예정이다. -편집자주-

[뉴스포스트=강대호 기자] 서울은 원래 한 나라의 수도(首都)를 의미하는 순수한 우리 말이다. 어원을 따져 올라가면 ‘서라벌’에서 ‘셔블’, 셔블에서 ‘서울’로 변했다. 수도를 의미하던 일반명사 서울이,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의 수도 이름인 ‘서울’, 즉 고유명사로 변한 것이다. 

명사(名詞) 서울의 변천 못지않게 대한민국 수도인 서울은 변해왔다. 하지만 조선 시대가 아닌 지금도 사대문 안쪽만 진짜 서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쩌면 서울 투어를 나서는 많은 외국인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외국인을 위한 핵심 투어 코스는 사대문 안의 궁궐과 그와 관련한 유적을 돌아보는 거니까.

하지만 눈을 돌려보면 서울은 넓다. 넓은 만큼 사람도 많이 산다. 경기도와 인천에 살면서 서울과 관련해 일하는 사람들까지 합치면 남한 인구의 절반이 될 만큼 서울의 영향력은 크다. 이렇게 거대한 서울은 어느 날 갑자기 넓어졌다거나 인구가 순식간에 불어난 건 아니다.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서울은 오랜 세월 서서히 성장해왔다.

동아일보 연재소설 이호철의 '서울은 만원이다' (출처:동아일보)
동아일보 연재소설 이호철의 '서울은 만원이다' (출처:동아일보)

서울은 넓다.
아홉 개의 구(區)에, 가(街), 동(洞)이 대충 잡아서 삼백팔십이나 된다. 동쪽으로는 청량리 너머로 망우리, 동북쪽으로는 의정부를 바로 지척에 둔 수유리, 우이동, 서쪽으로는 인천 가도 중간의 영등포 끝, 동남쪽으로는 한강 건너의 천호동 너머, 서남쪽으로는 시흥까지 이렇게 굉장한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넓은 서울도 삼백칠십만이 정작 살아 보면 여간 좁은 곳이 아니다. 가는 곳마다, 이르는 곳마다 꽉꽉 차 있다. 집은 교외에 자꾸 늘어서지만 연년이 자꾸 모자란다.

이호철의 장편소설 <서울은 만원(滿員)이다>에 나오는 구절이다. 1966년 동아일보에 연재된 이 작품은 1960년대 중반 서울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재현했다는 평을 듣는다. 

위 구절을 보면 서울 동서남북의 경계로 망우리, 수유리, 천호동, 시흥 등을 언급한다. 바로 196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확장된 서울의 경계와 일치한다. 그 전에는 지금의 강남 3구를 포함한 많은 곳이 서울이 아닌 경기도에 속했다. 

이 소설이 쓰인 당시와 지금을 수치로 비교하면 서울의 변화를 엿볼 수 있다. 1966년에 9개의 구(區)가 있었다면 2021년 2월 현재 25개의 자치구가 있고, 당시에 동(洞)이 약 380개 있었다면 지금은 425개의 행정동이 있다. 그리고 1966년에 약 370만명이 살았다면 2021년 2월 현재 약 965만명이 산다. 

그렇다면 서울은 어떤 과정을 거쳐 성장해왔을까.

지금의 서울인 한성(漢城)을 수도로 삼은 조선 시대에는 사대문 안과 성저십리(城底十里), 즉 한성부 도성으로부터 십 리(4km) 이내의 지역까지 서울이었다. 오늘날의 서울특별시 강북구· 동대문구·마포구·서대문구·성동구·성북구·용산구·은평구와 여의도 일대, 그리고 종로구·중구·광진구의 일부와 중랑구 면목동이 성저십리에 속했다.

'동국여도'의 '도성도'. 한성 도성과 성저십리가 나와 있다. (출처: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소)
'동국여도'의 '도성도'. 한성 도성과 성저십리가 나와 있다. (출처: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소)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중 '경조오부도'. 한성 도성과 성저십리가 나와 있다. (출처: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소)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중 '경조오부도'. 한성 도성과 성저십리가 나와 있다. (출처: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소)

이후 일본 강점기인 1914년의 군면 통폐합, 1936년의 행정구역 개정, 그리고 대한민국 건국 후 1963년의 행정구역 개편 등을 통해 서울은 경계를 넓혀 왔다.

1914년의 군면 통폐합에서는 조선 총독부에 의하여 대대적인 행정구역 개편이 이루어졌다. 그 과정에서 조선 시대와 대한제국 시절 독립된 도시였던 한성부는 경성부(京城府)라는 경기도의 한 도시로 격하되었고, 성저십리 지역은 경기도 고양군 소속 면(面)으로 편입되었다.

이후 1936년의 행정구역 개정에서는 총독부의 ‘대경성계획’에 따라 경기도 일부 지역이 경성부에 편입되었다. 원래 한성부 성저십리에 속했던 지역은 물론 경기도 시흥군에 속했던 영등포, 흑석동, 대방동 등이 경성부로 편입된 것이다. 이때부터 서울은 한강 남쪽으로 영역을 넓히게 되었다.

1963년 행정구역 개편에선 경기도 일부 지역이 대거 서울특별시에 편입되었다. 당시 경기도 양주군의 일부가 지금의 도봉구·노원구·동대문구로, 경기도 시흥군의 일부가 지금의 강서구· 양천구·금천구·관악구로 편입되었다. 또한, 경기도 광주군과 시흥군에 속했던 강남구·송파구· 서초구, 즉 지금의 강남 3구도 이때 서울이 되었다. 현재 서울의 경계가 얼추 완성된 것이다. 

1963년 행정구역 개편에 의한 서울 경계. 지금의 강남구와 서초구는 성동구와 영등포구에 속했다.  (출처:나무위키)
1963년 행정구역 개편에 의한 서울 경계. 지금의 강남구와 서초구는 성동구와 영등포구에 속했다. (출처:나무위키)

참고로 1963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지금의 강남구·송파구·강동구는 성동구청 관할이었고, 서초구는 영등포구에 속했다. 워낙 넓은 지역이라 1970년대 중반까지는 구청에서 파견한 출장소가 행정업무를 담당했다. 강남구는 성동구청의 언주출장소에서, 송파구와 강동구는 성동구청의 송파출장소와 천호출장소에서 맡았다. 서초구는 영등포구청의 신동출장소 관할이었다.

지난 1963년에야 서울이 지금의 모습이 된 것처럼 서울의 역사도 원래 고정된 것이 아니라 계속 변해오고 지금도 만들어지는 중이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서울로 대표되는 우리나라의 도시들은 원래 지금 모습이 아니라 순간순간 시간을 에너지 삼아 자라왔고, 지금도 성장하고 있다. 

물론 성장을 멈춘 도시도 있고, 그중 일부는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도시는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 같기도 하다. 하지만 성장으로 표현되는 개발은 옛것을 버리고 새것으로 대체하는 것을 의미할 때가 많다.

오래된 건물을 허물고 그 자리에 새 건물이 들어서고, 굽이굽이 옛길을 곧바른 새길로 바꾸는 것은 얼핏 발전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옛것을 망설임 없이 허물고 그 잔해를 흔적도 없이 쓸어버리곤 한다. 그렇게 사라져간 도시의 옛 흔적들이 많다.

기자는 2020년부터 어린 시절 살았던 여러 지역의 집들을 답사하고 기록하고 있다. 어떤 곳은 거의 50년 만에, 또 어떤 곳은 몇 년 만에 방문했다. 물론 내가 어릴 때 살았던 주택은 다가구 주택이나 상가 건물로, 5층짜리 아파트는 초고층 아파트로 변해있었다. 하지만 멀리 보이는 산과 크게 바뀌지 않은 도로 구획에서 옛 흔적을 조금이나마 찾을 수 있었다. 

물론 그때와 지금은 전혀 다른 길이지만 그 길을 걸었던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의 나를 떠올릴 수는 있었다. 기자의 눈에는 사라진 건물을 허물고 들어선 새로운 건물만 보이는 건 아니었다. 비록 내가 살았던 집들은 사라졌지만 내 기억 속 이야기는 내 눈과 귀에 생생하게 보이고 들렸다.

수유동에서 바라본 북한산 인수봉. 어릴 적 동네의 흔적은 사라졌지만 인수봉이 보이는 모습은 그대로였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수유동에서 바라본 북한산 인수봉. 어릴 적 동네의 흔적은 사라졌지만 인수봉이 보이는 모습은 그대로였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홍대앞 쇼핑거리. 예전에는 한적했던 기찻길이 번화한 관광 명소로 변했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홍대앞 쇼핑거리. 예전에는 한적했던 기찻길이 번화한 관광 명소로 변했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도시탐구> 는 도시의 원형을 복구한다거나 옛것을 다시 재현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은 아니다. 다만 사라져가는 도시의 여러 곳을 언젠가는 그리워하고 궁금해할 누군가를 위해서 쌓는 기록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도시탐구>는 도시의 특정 지역을 답사하고, 때로는 옛 흔적을 탐구하는 연재가 될 것이다. 감상적이기보다는 과거와 현재의 사회사와 문화사를 담아서 담담하게 기록해 나갈 예정이다. 

이 기록이 누군가의 마음에 닿아서, 그 누군가에게 닥칠 수 있는 과거에 대한 그리움과 궁금증을 달랠 수 있는 기록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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