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우리말 공공문서 만들기③
일반 시민 9명 공공문서 지연시간 실험

뉴스포스트가 문화체육관광부와 (사)국어문화원연합회의 <공공언어 개선> 사업을 시작합니다.

주민등록증 신청서, 전입신고서, 인감증명서 등 공공문서는 우리 실생활에서 자주 접하지만, 복잡한 문서양식과 어려운 한자어가 가득해 늘 어렵게 느껴집니다. 공공문서는 어떻게 만들어지기에 왜 이렇게 어려울까요? 더 쉬운 공공문서를 만들 순 없을까요?

모든 국민이 쉽게 공공문서를 작성하도록 돕기 위해 뉴스포스트와 안양대 국어문화원이 함께 ‘쉬운 우리말 공공문서 만들기’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뉴스포스트=김혜선 기자] 정부는 지난 72년간 어려운 공공언어를 알기 쉽게 순화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지난 1948년에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50명의 ‘구법령정리위원회’가 설치돼 법령 안의 일본식 용어, 한자식 표현, 어려운 법령용어 등을 정비하는 사업을 시작한 것이 시초다.

이후 정부는 법령 용어 정비사업을 지속해왔고, 법령 뿐 아니라 ‘공공기관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통틀어 쉬운 우리말로 순화하는 작업까지 사업을 확장했다. 공공언어 순화 사업은 법령 정비를 담당하는 법제처 외에도 각 행정부처에서 시행하고 있는 사업이다.

순화 사업이 지속됨에 따라 법령 안에 별지로 첨부된 서식(공공문서)도 점점 알기 쉽게 변해왔다. 일례로 성인이 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접하는 ‘주민등록증 신청서’는 지난 2017년까지는 제출해야 하는 사진 설명에 ‘탈모상반신 사진’이라고 적혀 있다가, 최근 개정 서식에는 ‘모자 등을 쓰지 않은 상반신 사진’으로 쉽게 바뀌었다.

하지만 각 정부기관과 공공기관 등에서 사용하는 서식이 방대해 여전히 국민들이 어려워하는 공공문서가 많다. 본지는 지난 13일~15일 사흘간 총 9명의 일반인을 대상으로 국민이 쉽게 접하는 공공문서를 직접 작성해보고, 작성 방법을 몰라 찾아보는 ‘지연시간’을 측정해봤다. 그 결과 공공문서 작성이 어려워 지연되는 평균 시간은 6분 5초(작성 포기한 1명 제외)로 나왔다.

지난 13~15일간 일반인 9명을 대상으로 공공문서를 작성하며 지연 시간을 측정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사진=뉴스포스트 김혜선 기자)
지난 13~15일간 일반인 9명을 대상으로 공공문서를 작성하며 지연 시간을 측정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사진=뉴스포스트 김혜선 기자)

생활 관련 공공문서, 작성은 가능하지만 불편해

공공문서 작성 실험은 20~50대 남녀 8명과 60대 남성 1명 총 9명이 진행했다. 일상 생활에서 쉽게 접하는 공공문서를 직접 작성하면서, 모르는 내용이 나오면 해당 내용을 인터넷으로 알아보도록 했다. 인터넷 등 검색을 할 때는 초시계로 작성 시간이 얼마나 지연되는지 측정했다. 공공문서 작성을 위한 기본 정보(이름, 주민번호 등)는 가상으로 설정해 주고 작성했다.

일반 국민 9명을 대상으로 한 공공문서 작성 실험. 서식을 작성하다 모르는 내용이 나오면 인터넷으로 찾아보고, 검색 시간을 측정했다. 위에서부터 20~60대 여성, 남성 순.(그래픽=뉴스포스트 김혜선 기자)
일반 국민 9명을 대상으로 한 공공문서 작성 실험. 서식을 작성하다 모르는 내용이 나오면 인터넷으로 찾아보고, 검색 시간을 측정했다. 위에서부터 20~60대 여성, 남성 순.(그래픽=뉴스포스트 김혜선 기자)

실험자들은 연령대와 상관없이 공공문서 작성을 위한 ‘사전 조사’를 위해 인터넷을 이용했다. 눈앞의 공공문서를 보고 빈칸에 어떤 정보를 적어야 하는지 직관적으로 알아차리기 힘들다는 얘기다. 육아휴직 신청서를 작성한 윤성호(40대·남) 씨는 “처음에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하느라 작성 시간이 지연됐다”며 “전반적으로 어렵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지역가입자 납부예외를 신청한 오세영(30대·여) 씨도 “전반적인 신청 방법을 알아보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했다”고 했다.

윤 씨가 육아휴직 신청서를 작성하는 데 걸린 시간은 1분 27초. 하지만 배우자의 육아휴직 여부를 묻는 칸에 ‘예’를 작성해 작성 방법이 틀렸다. 윤 씨에게 주어진 기본 정보에는 배우자가 ‘출산 휴가’를 사용했을 뿐, 육아 휴직을 사용하지 않았다. 정부의 지원 제도를 잘 몰라서 벌어진 오류다.

하나의 서류에 다양한 신청서를 적는 방식의 공공문서도 작성에 혼란을 줬다. 근로복지공단의 생활안정자금 융자신청서를 작성한 임우용(30대·남) 씨는 “공단의 융자 신청 명목이 혼례비, 의료비, 장례비 등으로 다양하다”며 “서류 안에 ‘신청 구분’ 칸과 ‘융자 종류’ 칸에 중복으로 융자 명목을 작성해야 해서 상당히 헷갈렸다”고 설명했다. 앞서 본지가 서울시 자치구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공공문서에서 정보를 중복 기재하는 형식은 “민원인이 혼란스러워한다”며 지적됐던 사항이다.

공공문서 안에 설명이 되어있지만 글씨가 작아 작성방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기도 했다. 오세영 씨는 “서류 작성 시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지만, 국민연금 납부 유예를 위한 사유부호가 무엇인지 몰라 기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해당 내용은 두 번째 장의 작성 방법에 설명이 되어 있던 내용이다.

20대의 경우 생소한 한자어로 공공문서 작성에 어려움을 겪었다. 혼인신고서를 작성한 이해은(20대·여) 씨는 “전반적으로 작성에 어려움은 없었지만 ‘본(한자)’을 검색하는 데 시간을 썼다”고 말했다. 출생신고서를 작성한 정예일(20대·남) 씨도 “전반적으로 작성에 어려움은 없었으나 본적을 성만 쓰는 것인지, 어디의 성씨까지 다 쓰는 것인지 몰라서 검색했다”고 했다.

문장 축약을 위해 사용된 한자어 때문에 곧바로 내용이 파악되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었다. 사업자등록 신청서를 작성한 박은정(40대·여) 씨는 “사업장 관련 내용을 적다가 ‘임대인’과 ‘임차인’을 헷갈려 잘못 적었다”고 말했다. 정예일 씨도 “혼인중의 출생자, 혼외중의 출생자 같은 표현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고 했다.

이 밖에 가족 묘지 설치 허가 신청서를 작성한 홍순성(60대·남) 씨는 “사실 최근에 문중 묘지 설치 허가 신청서를 작성한 경험이 있다”며 “문중에서 묘지 관리를 전담하고 있기 때문에 신청서가 어렵지 않았다”고 말했다. 홍 씨는 공공문서 작성에 지연시간이 발생하지 않았다.

넘을 수 없는 ‘세금 신고 서류’의 벽

공공문서 중 실험자들이 가장 큰 어려움을 느낀 서식은 세금 관련 서식이었다. 부가가치세 신고서를 작성한 김복만(50대·남) 씨는 약 1시간가량 서류 작성을 위해 사투를 벌이다 ‘포기’ 선언을 했다. 김 씨는 “용어 자체가 생소하고 이해할 수도 없게 되어 있다”며 “전문가(세무대리인이나, 조세전문가)가 신고해야 할 수밖에 없도록 복잡하게 신청서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증여세 신고서를 작성한 이상선(50대·여) 씨도 “세금 관련 지식이 없다 보니 어떻게 쓰는지 몰라 막막했다”며 “작성예시를 찾아보니 ‘감’이 와서 작성할 수 있었다. 평소 세법을 모르는 사람이면 작성하기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씨의 지연 시간은 총 17분 2초로 8명(중도포기 제외)의 실험자 중 최장 시간이 걸렸다.

세금 신고 등 정부가 필요로 하는 특정 기준에 따라 작성 내용이 달라지는 경우, 해당 자료를 어디서 찾아봐야 하는지 안내해주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상선 씨는 “증여세 과세표준은 세법에 따라 다른데 이 기준을 안내해주든지, 어디서 찾아볼 수 있다는 식으로 설명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사업자등록 신청서를 작성한 박은정 씨도 “정부가 정한 업종과 업태를 작성하라는 칸이 있는데, 최소한 어디서 정부의 기준을 찾을 수 있는지 알려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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