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시각의 ‘어린이다움’을 주입한 1970년대 어린이 잡지 기사들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5060 세대들의 아동 시절에 유행한 어린이잡지에서 지금의 그들을 있게 한 사회적 문화적 배경을 살펴보고 있다. 지난 기사들에서는 ‘과학입국’과 ‘기술보국’을 위해 주입식 지식생산을 담당한 어린이잡지의 정체성과 이들 잡지에 실린 광고들을 통해 당시 사회와 문화의 몇 가지 단면을 엿보았다. 

이번 기사에서는 1970년대 어린이지잡지가 연재한 기획기사들을 분석해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사회적 맥락이 그 시절 어린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지 살펴본다.

1978년 어깨동무에 연재된 '어린이 고발 시리이즈'. (사진: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 자료 캡처)
1978년 어깨동무에 연재된 '어린이 고발 시리이즈'. (사진: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 자료 캡처)

1970년대의 ‘어린이다움’은

1970년대 어린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던 잡지 <어깨동무>는 1978년 한 해 동안 다양한 기획기사를 연재한다. 그중 ‘어린이 고발 시리이즈(당시 표기)’가 눈에 띈다. 어린이와 관련된 무엇인가를 고발하는 코너다. 1978년 3월호처럼 어린이의 ‘허영심’을 다루기도 했고 2월호처럼 ‘학용품’과 관련한 여러 이슈를 다루기도 했다.

이들 소재는 주로 당시 한국 정부의 시책을 대변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어린이의 ‘허영심’을 고발한 3월호 기사 첫머리에 “절약과 저축”은 나라의 힘을 키우기 위한 가장 중요한 실천 방법이라며 “근면과 검소” 그리고 “절약과 저축”을 강조한다.

이 기사는 일부 어린이가 고급 시계를 차고 다니는 것을 허영심의 예로 든다. 어린이에게 왜 시계가, 그것도 고급 시계가 왜 필요하냐는 논조였다. 여기서 고급 시계는바늘 시계가 아니라 당시 유행하기 시작한 숫자로 표시되는 전자시계를 의미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어린이 잡지에서 전자 시계 광고를 흔히 볼 수 있다.

 

고급 시계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일까요. (중략) 우리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학교에 가면 수업 종에 따라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지요. 그래서 사실상 우리에게는 시계가 꼭 있어야 할 것은 아니지요.

기사는 이처럼 어린이는 '어른이 정한 대로만 움직이면 된다'는 가르침을 심어주고 있었다. 당시 정부는 산업국가를 만들기 위해 기업과 노동자는 물론 사회 각계각층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가는 나라를 지향했다. 어쩌면 그런 톱니에 어린이부터 포함되는 건지도 모른다. 

어린이의 ‘허영심’을 고발한 1978년 3월호에서는 ‘어린이다움’을 강조하기도 한다. “사람은 일생동안 각 성장 시기마다 해야 할 일이 있고, 또 갖추어야 할 일이 따로 있다”고. 따라서 어른 흉내를 낼 것이 아니라 “제 분수에 맞게 어른의 가르침”을 따르라고 강조한다. 물론, 그 가르침은 “검소하고 절약하는 습성”이다. 

‘어린이 고발 시리이즈’는 1978년 2월호의 소재인 ‘학용품’처럼 어린이가 접하는 주변 환경을 고발하기도 한다. 비싼 학용품 사용을 경계하면서 동심을 울리는 어른들의 상술을 고발했다.

기사에서는 품질이 조악한 각종 사례를 들며 불량 학용품이 시중에 많음을 지적한다. 그래서 제조사의 연락처 명기를 제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비자 보호가 법으로 정해진 지금과 다른 1970년대 현실을 보여주는 기사다. 

1978년 4월호에서는 ‘과외공부’를 고발했다. 기사의 논조는 점수만 잘 받게 하는 과외공부를 비판하며 스스로 공부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어깨동무>의 ‘어린이 고발 시리이즈’는 어린이다움을 계도하기도 했지만 때로는 사회적 권리를 찾아가는 시민으로서의 어린이를 계몽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어린이 문화를 재판정에?

1978년 기획기사 중 ‘어깨동무 재판교실’이라는 연재도 눈에 띈다. ‘텔레비전’이나 ‘용돈’처럼 어린이와 밀접한 주제를 재판정에서 따져보는 형식이다. 재판교실이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 피고와 변호인, 검사와 양측 증인들, 그리고 재판장을 출연시키는 등 실제 재판 과정을 그대로 옮겼다.

1978년 어깨동무에 연재된 '어린이 재판교실'. (사진: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 자료 캡처)
1978년 어깨동무에 연재된 '어린이 재판교실'. (사진: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 자료 캡처)

3월호는 “어린이와 만화”를 재판의 주제로 삼았다. 검사는 만화가 “알차고 유익한 내용”도 있지만 “자기 본분을 잊고” 있다며 만화를 고발한다. 특히, “황당무계한 내용”, “저속한 대화”, “수준 이하의 무성의한 그림” 때문에 “어린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은 사례들을 밝힌다.

나아가 검사는 “공상 과학 만화”가 “망상의 세계”를 꾸미고, 명랑만화가 “웃음을 준다는 구실”로 사람들을 “골탕 먹이는 유치한 내용”으로 꾸민다며 비판한다. 계속해서 검사는 “지나친 모험심 자극”은 위험을 부르고, “옳지 못한 장난”은 어린이들을 “말썽꾸러기”로 만들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외에도 부모 등 어른들이 증인으로 등장해 만화가 “어린이들의 정서 발달에 영향을 끼치는 위험한 존재”라고 증언한다. 물론, 변호인과 변호인이 부른 증인들은 “(만화가 문제가 있지만)모든 만화에게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취지의 반대 변론을 펼친다.

결국, 피고로 나온 (만화를 대표하는)만화는 최후 변론에서 물의를 일으킨 점들을 반성한다. 하지만 “어린이들의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며 “너그러운 판결”을 내려줄 것을 호소한다. 이에 재판장은 “애독자의 좋은 의견”을 기다리겠다며 재판을 마친다. 

 

피를 튀기는 싸움, 동물을 학대하는 잔인성, 허무맹랑한 공상 과학 이야기, 위험한 모험심의 자극 등등의 내용의 만화는 결코 어린이들에게 바람직한 것이 못 된다고 생각합니다.

만화 재판 기사의 다음 호, 즉 4월호에 실린 만화에 대한 판결문 중 일부다. 독자 의견을 고려했다고 하지만 교장 선생님의 훈시처럼 읽히기도 한다. 재판장은 다만 “뚜렷한 사명감”을 갖고 “그림 하나 대사 하나 하나에 최선”을 다해 “어린이들에게 봉사”해야 한다며 피고 ‘만화’에게 무죄를 선고한다.

1978년 3월호에 나온 ‘만화’에 관한 어른의 시각을 지금과 비교하면 어떨까? 어쩌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들도 만화를 보며 자란 세대겠지만 자녀가 교과서나 참고서보다, 혹은 글이 많은 도서보다 만화를 더 좋아한다면 싫어하지 않을까?

한편, 1978년 2월에는 ‘텔레비전’도 피고로 등장했고 그 판결문은 3월호에 실린다. “외국 만화와 연속극” 일색인 텔레비전의 어린이 프로그램은 주로 “시간을 채우기” 위해 편성된 것이라 “어린이들은 아쉬움과 불만”을 가지게 되어 “어른들 프로”를 보게 되고 “부모님의 꾸중”을 들으면서까지 “많은 시간을 텔레비전에 빼앗기고” 있다며 유죄를 선고한다. 

1978년 어깨동무에 연재된 '어린이 재판교실'의 판결문. (사진: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 자료)
1978년 어깨동무에 연재된 '어린이 재판교실'의 판결문. (사진: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 자료)

국가가 바라는 시민상을 아동 시절부터

이번에 소개한 기사들이 게재된 <어깨동무>는 박정희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가 설립한 ‘육영재단’에서 발간한 잡지였다. 대통령 가족이 관여하는 재단이라 그랬을까 국가가 시민에게 바랐던 모습을 어린이에게도 적용한 것을 잡지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과거의 시민들은 국가 발전을 위해 복무해야 하는 소모품 취급을 받으며 눈과 귀, 그리고 입을 닫고 살아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단지 보여주는 것만 보고, 들려주는 것만 듣고, 허용된 말만 뱉어야 하는 시절이었다. 

어린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국가 발전을 위해 국가가 바라는 모습으로 자라나야 하는 어린 시민들. 어린이는 그저 가르침의 대상, 어른의 부속물로 취급받지 않았을까.

그 어린이들이 자라서 5060 세대가 되었다. 이제 선배 시민이다. 이들은 그들의 조국을 새로운 모습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런데, 가까운 미래에 한국 역사책은 이들을 어떤 세대로 기록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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