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에서 왕십리를 거쳐 뚝섬과 광나루까지

[뉴스포스트=강대호 기자] 동대문은 교통의 요지다. 예로부터 한양과 도성 밖 한성부의 동부를 연결하는 길이 있었다. 1899년부터는 서대문에서 청량리 인근 홍릉을 연결하는 전차가 동대문을 지났고, 이 노면전차에 전력을 공급하는 화력발전소와 전차 차고가 동대문에 있었다. 노면전차가 폐지된 후 동대문의 전차 차고 자리는 고속버스터미널이 되었다.

또한 동대문에서는 왕십리를 거쳐 뚝섬까지, 뚝섬에서 광나루까지 운행하는 ‘기동차’도 출발했다. 외형은 노면전차와 닮았지만, 정체성은 달랐던 대중교통 수단이었다.

동대문관광호텔 앞에 있는 '경성궤도회사 터' 표지석. 이 자리가 기동차 종점이었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동대문관광호텔 앞에 있는 '경성궤도회사 터' 표지석. 이 자리가 기동차 종점이었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내연 기관의 힘에서 전기의 힘으로

기동차는 1930년부터 1966년까지 동대문에서 왕십리와 뚝섬 등 서울 동부 지역을 운행했다. 이 교통수단이 기동차로 불린 이유는 도입 초기에 내연 기관의 힘으로 달렸기 때문이다. 전기의 힘으로 달린 전차와는 태생부터 다르다. 운영하는 회사도 달랐다.

경성전차 혹은 서울전차라고 불린 노면전차를 운영한 회사는 경성전기주식회사였다. 경성전기는 전차 사업 외에도 경성에서 전력 사업과 전화 사업을 펼쳤다. 경성 혹은 서울에서 노면전차는 1899년부터 1968년까지 운행했는데 해방 후에는 경성전기 등 여러 전력회사를 합병한 한국전력에서 운영했다.

 사업 초기 기동차는 경성교외궤도주식회사가 운영했다. 1930년 11월 왕십리와 뚝섬 사이에 4.3km의 궤도를 부설한 게 그 시작이었다. 하지만 경영이 어려워지자 1932년 4월 경성궤도주식회사로 사업이 이관되었다. 경성궤도회사는 사업을 인수한 후 경성전차와 궤도를 공유하던 동대문에서 왕십리구간에 기동차 전용 궤도를 부설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경성궤도회사가 운행하던 차량은 기동차였다. 기동차는 내연 기관의 힘, 즉 연료를 동력으로 엔진을 구동하는 차를 의미한다. 경성궤도의 기동차는 원래 기관차가 앞에서 끌어주는 1량짜리 열차였다. 당시 신문 기사들을 보면, 기동차의 연료는 “까소린”, 즉 가솔린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행당지하보차도. 왕십리역으로 진입하는 철로 아래다. 여기로 기동차가 지났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행당지하보차도. 왕십리역으로 진입하는 철로 아래다. 여기로 기동차가 지났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그런데 기동차는 전차로 바뀐다. 기관차가 끌어주는 게 아니라 경성전차처럼 전기의 힘으로 달리는 노면전차가 된 것이다. 당시 신문 기사들을 종합하면, 1935년 8월부터 동대문과 뚝섬 구간에 전차를 도입했다. 연료가 전쟁 물자이기 때문에 비축해야 했던 당시 일제 상황이 엿보인다.

1939년에는 뚝섬에서 광나루 구간도 전차를 도입했다. 1939년 7월 30일 동아일보의 '서독도-광장리간 전차 운전 인가' 기사는 “까소린 대책”으로 뚝섬 광장리 간을 “까소링카” 대신에 전차가 운행된다는 소식을 전했다. 

기사에서 언급된 ‘까소린 대책’은 중국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일본에 대해 미국이 석유 수출을 금지한 후 나온 대책으로 보인다. 대륙 침탈은 물론 동남아시아와 태평양으로 전선을 확대해 가던 일본의 당시 상황을 알 수 있다. 

승객은 물론 화물까지

기동차는 전차가 되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기동차로 불렀다. 사업 초기 경성궤도회사는 동대문에서 뚝섬 사이를 운행했다. 이 노선에는 동대문, 왕십리, 상후원, 유원지 등 11개 역이 있었다. 

1934년 12월에는 상후원역에서 갈라져 화양리와 구의동을 거쳐 광장리까지 가는 지선을 추가로 건설했다. 상후원역은 지금의 지하철 2호선 뚝섬역 부근에 있었는데 광장리 노선의 환승역이기도 했다.

왼쪽으로 갈라지는 길이 상후원역이 있었던 '왕십리로14길'. 고가철도가 휘어지는 곳에 지하철 2호선 뚝섬역이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왼쪽으로 갈라지는 길이 상후원역이 있었던 '왕십리로14길'. 고가철도가 휘어지는 곳에 지하철 2호선 뚝섬역이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기동차를 운영한 경성궤도회사는 승객 유치를 위한 별도의 사업을 펼치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뚝섬유원지 운영이었다.

뚝섬유원지는 1934년 7월 경성궤도주식회사가 동뚝섬역 인근 한강 변에 유원지, 수영장, 어린이 놀이터 등을 만든 데서부터 시작됐다. 교외 소풍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한편 승객 확대를 꾀하는 의도가 있었다. 같은 해 10월에는 유원지역도 신설했다.

기동차는 주로 승객을 운송했지만, 화물도 실어 날랐다. 왕십리와 뚝섬 일대는 조선시대부터 채소류 경작지로 유명했다. 그래서 1930년대 이후에 기동차는 서울 도심으로 농산물을 실어 나르는 화물차 역할을 했다. 

기동차는 인분을 운반하기도 했다. 청계천 변 기동차 역 인근에는 서울의 인분이 모이는 저장소가 있었다. 기동차는 이곳에 모인 인분을 왕십리와 뚝섬 일대로 실어 날랐다. 서울의 인분은 왕십리와 뚝섬 일대의 농경지에 거름이 되었다.

기동차는 해방 후와 전쟁 후에도 달렸지만 다른 교통수단에 밀려 퇴장하게 되었다. 서울시가 1953년에 기동차 사업을 인수했고 1961년에 폐지를 결정했다. 기동차가 완전히 운행을 멈춘 건 1966년이었다.

기동차의 흔적

기동차가 폐지된 후 기동차가 다녔던 궤도는 싹 걷혔다. 그래도 길을 모습을 눈여겨보면 기동차가 다녔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서울 지하철 4호선 동대문역 7번 출구 앞에 ‘경성궤도회사 터’ 표지석이 있다. 동대문관광호텔 1층의 패스트푸드 가게 유리창 바로 앞에 있다. 이 건물이 들어선 자리가 기동차 시발지였다. 호텔 바로 옆에서 연결되는 ‘종로44길’에 기동차 궤도가 있었다. 

동대문의 기동차길. 청계천 변 건물 뒤 골목길로 기동차가 다녔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동대문의 기동차길. 청계천 변 건물 뒤 골목길로 기동차가 다녔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동대문의 기동차길. 오른쪽으로 갈라지는 길이 기동차길. 주변 건물은 궤도를 걷어낸 자리에 들어선 것이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동대문의 기동차길. 오른쪽으로 갈라지는 길이 기동차길. 주변 건물은 궤도를 걷어낸 자리에 들어선 것이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오늘날 궤도는 사라졌지만, 완만하게 휘는 길의 윤곽이 기동차길의 흔적임을 알려준다. 기동차는 청계천을 따라 달렸다. 오늘날 청계천을 따라 들어선 건물들의 뒷골목이 기동차길이었다. 인근 주민 중 기동차를 기억하는 이가 어느 골목에 기동차 궤도가 놓였는지 알려주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기동차길’이라 쓰인 도로 표지판이 있었다고도 했다.

왕십리역 인근에서도 기동차길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왕십리역으로 진입하는 철로 아래를 지나는 굴다리인 ‘행당지하보차도’가 그것이다. 지하보차도 안에는 이곳으로 기동차가 다녔다는 유래가 쓰인 표지판이 있다. 

2호선 뚝섬역 인근에는 상후원역이 있었다. 상후원역이 있었던 왕십리로14길에는 지목이 철도용지로 된 땅이 있다. 화양동의 한 도로에도 여전히 지목이 철도용지인 땅이 있다. 기동차가 다녔던 길의 흔적이다. 

뚝섬역 인근 '상원길'의 SK테크노빌딩. 기동차길 안내 표지판이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뚝섬역 인근 '상원길'의 SK테크노빌딩. 기동차길 안내 표지판이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뚝섬역 인근 '상원길'의 SK테크노빌딩. 기동차길 안내 표지판이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뚝섬역 인근 '상원길'의 SK테크노빌딩. 기동차길 안내 표지판이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뚝섬역 인근 SK테크노빌딩 뒤 ‘상원길’에는 그곳이 예전에 기동차가 다녔던 길임을 알리는 안내판이 있다. 뚝섬역 일대의 지도를 확대해 보면 사선으로 휘면서 뚝섬유원지나 광장동까지 이어지는 이면 도로가 있다. 옛 기동차길의 흔적이다.

서울전차는 서울역사박물관 앞에 모형이 전시돼 있다. 하지만 기동차는 사진으로만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사진이 1963년에 성동교를 지나는 기동차를 촬영한 것이다. 멀리 언덕 위에 한양대가 보이고 왕복 2차선 정도 되는 성동교에는 사람이 직접 끌고 가는 수레들도 보인다. 그리고, 기동차 안에는 승객들이 빼곡히 타고 있다. 

과거 왕십리와 뚝섬, 광나루 등 서울 동부 지역 시민들의 발이 되어주었던 기동차는 지금 사진과 기록 몇 장 정도로 남아 있다.

1963년. 성동교를 지나는 기동차. (사진=서울역사아카이브)
1963년. 성동교를 지나는 기동차. (사진=서울역사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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