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순간을 정할 수 있다면?...초고령사회가 던진 질문

[뉴스포스트=강대호 기자] 노인이 주인공인 영화 <소풍>이 의미 있는 흥행을 하고 있다. 초고령사회가 다가오는 한국에 생각거리를 던져줘 더욱 의미 있다. 영화는 노인 문제와 세대 갈등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이를 보여주기 위해 노부모 부양으로 인한 가족 간 갈등이나 지역 개발을 대하는 세대 간 의견 차이 등을 서사로 녹여냈다.

무엇보다 <소풍>은 한국 사회가 쉬쉬하고 있는 화두를 직구로 던졌다. ‘웰다잉’ 혹은 ‘존엄사’라는 화두. 그래서 영화의 결말은 의미심장하고 반응은 둘로 갈린다. 충격 아니면 공감.

영화 '소풍'의 한 장면.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소풍'의 한 장면.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만약 국가가 노인 안락사를 권장한다면?

공교롭게도 요즘 <소풍> 외에도 노인 존엄사를 이야기하는 영화가 또 있다. ‘하야카와 치세’ 감독의 일본 영화 <플랜 75>가 그렇다. 

이 영화는 75세에 다다른 노인들의 안락사를 국가에서 지원한다는 설정이다. 정부가 주도한다는 점에서 존엄사라기보다는 ‘안락사’에 가깝다.  제목의 숫자 ‘75’는 일본 정부가 ‘후기 고령자’로 분류하기 시작하는 75세를 의미한다.

영화의 배경은 가상의 일본으로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가까운 미래를 그리고 있다. 영화 첫 부분에 노인들을 무차별 살해하는 청년이 나오는데 그는 ‘넘쳐 나는 노인이 나라 재정을 압박하고 그 피해는 전부 청년이 받는다’는 취지의 말을 남기고 자살한다. ‘노인들도 사회에 더는 폐 끼치기 싫을 것’이라며. 

이러한 노인 혐오 범죄에 응답하듯 나온 정부 대책이 ‘플랜 75’였다. 물론 75세 이상이라고 해서 모든 노인이 안락사 대상은 아니다. 스스로 선택하는 이가 대상이다. 따라서 ‘플랜 75’를 선택하는 노인도 선택하지 않는 노인도 있다. 

다만 영화에서 안락사를 선택하는 노인들은 더 이상 가족이나 사회로부터 보호받을 수 없다고 여기는 듯했다. 즉 다른 선택지가 없어 보였다.

영화 '플랜 75'의 한 장면. (사진:찬란)
영화 '플랜 75'의 한 장면. (사진:찬란)

영화 <플랜 75>는 노인 안락사를 다루지만 그렇다고 이를 옳거나 그르다는 잣대를 들이대지는 않는다. 삶의 아름다움과 숭고함을 이야기하는 한편 노화나 병으로 인간다운 삶이 더는 보장받지 못할 때의 절박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한국에서 안락사 혹은 존엄사 관련한 토론을 공론장으로 끌어내고 있다.

존엄사라는 화두

두 영화는 모두 노인의 마지막 선택으로서 ‘죽음’을 다룬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죽음이지만 이 죽음은 그 시기를 스스로 정한다는 점에서 논쟁적이다. 사회에서는 ‘안락사’ 혹은 ‘존엄사’로 표현한다.

다만 이들 표현에는 사회적으로 합의된 정의가 아직 없다. 그래도 공론장 등에서 언급되는 이들 용어를 정의하면 아래와 같다.

‘안락사’는 의료진이 환자에게 사망에 이르도록 약물 등을 투약하는 걸 의미한다. 주로 불치병 등 심각한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에게 적용된다. 고통받는 환자의 생명을 종결시키는 행위라는 의미에서 ‘안락사’라는 용어를 썼다. 하지만 행위 주체가 의료진이라 ‘사회적 타살’이라는 인식이 있다. 그래서 관련 법이 없는 곳에서는 형법 등의 살인죄를 적용받을 수 있다.

그래서 ‘조력 존엄사’가 대안으로 제시되었다. 의료진에게 약물 처방을 안내받은 후 환자 스스로 투입 시기를, 즉 죽음의 시기를 결정하는 방법이다. 그런 면에서 ‘의사 조력 자살’이라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형법상 자살 교사나 방조에 해당한다.

‘존엄사’는 환자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치료나 장치, 즉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 착용 등을 중단하는 걸 말한다. ‘연명의료 중단’으로도 불린다. 우리나라에서는 2018년 ‘연명의료결정법’의 시행으로 말기 환자나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 대해 환자 본인이나 가족 등의 의사에 따라 엄격한 조건에서 연명 의료행위 중단이 허용되고 있다.

'존엄사' 관련 용어. (그래픽:뉴스포스트 강은지 기자)
'존엄사' 관련 용어. (그래픽:뉴스포스트 강은지 기자)

지난 2월 초 네덜란드의 전 총리와 부인이 함께 안락사를 선택해 화제가 되었다. 네덜란드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안락사와 조력 자살을 합법화한 국가다. 또한 스위스,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형태로 안락사 또는 조력 자살이 허용되고 있다. 

특히 스위스는 자격을 갖춘 외국인에게도 안락사를 허용한다. 그래서 관련 단체에 가입한 한국인이 300여 명이 넘고 이 중 10여 명은 이미 스위스에서 안락사로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숫자의 많고 적음을 떠나 한국인 중에서 ‘안락사’ 혹은 ‘존엄사’를 적극적으로 고민하는 이가 적지 않고 실제 실행에 옮기는 이가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들이 생의 마지막 순간을 위해 스위스로 향하는 건 한국의 형법은 자살을 교사하거나 방조하는 걸 모두 처벌하고 있어 안락사나 조력 자살이 허용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는.

결론 내리기 어려운 결론

2022년 서울대병원 의료진들은 19세 이상 대한민국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안락사 혹은 의사 조력 자살에 대한 태도를 조사했다.

결과는, ‘안락사·조력 자살’에 ‘매우 동의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61.9%였고, ‘동의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14.4%였다. 즉 동의하는 비율이 76.3%였다. 최근 한 언론의 ‘의사 조력 사망’에 대한 의견을 묻는 조사에서는 시민 1,000명 중 81.0%가 이에 찬성했다. 

이 수치를 사회적 함의, 혹은 여론으로 곡해하면 안 되겠지만 공론화 분위기는 조성되고 있다. 지난 2022년에 ‘조력 존엄사’를 도입하는 내용의 ‘연명의료결정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되었고, 올 1월에는 헌법재판소가 ‘의사 조력 존엄사’를 허용해 달라며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을 정식 심판 절차에 회부하기도 했다. 

위의 서울대병원 조사에 참여한 시민들이 ‘안락사’나 ‘조력 자살’에 찬성한 이유로 △남은 삶의 무의미(30.8%) △좋은(존엄한) 죽음에 대한 권리(26.0%) △고통의 경감(20.6%) △가족 고통과 부담(14.8%) △의료비 및 돌봄으로 인한 사회적 부담(4.6%) △인권보호에 위배되지 않음(3.1%) 등을 들었다.

앞에서 언급한 두 영화도 이러한 이유 등이 안락사나 존엄사를 결심하게 되는 맥락으로 서사에 녹여져 있다. 무엇보다 극한의 고통 끝에 다다른 이에게 남은 선택지를, 마지막 선택을 담담히 보여주었다.

영화 <소풍>이 끝난 후 말다툼 소리가 들렸다. 모녀로 보이는 이들은 영화 마지막 장면에 대해 의견이 갈린 듯했다. 노모는 영화 주인공의 선택에 공감을 표한 듯하고 중년의 딸은 그 말에 상처를 받은 듯했다. 존엄사를 보는 시각이 당사자에 따라 혹은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른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아무튼, 어떤 대상에 어떤 이유를 내세우든 안락사나 존엄사, 혹은 조력 존엄사는 결론 내리기 어려운 결론인 건 분명하다.

저작권자 © 뉴스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