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의 힘 보여준...'소풍·건국전쟁' 관람객 발길 잇따라
'초고령사회 영향' 주류 부상...실버산업 시장성은 '골드'

[뉴스포스트=강대호 기자] 실버세대가 다른 계층과 비교해 콘텐츠 소비를 덜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지난 1월에 발표한 <Content Industry Trend Brief 24-1호>의 ‘한국인의 시간과 돈, 어느 콘텐츠에?’라는 조사 결과였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이 조사에 따르면 ‘실버세대(60세 이상)’은 콘텐츠 소비 시간에서 조사 대상의 평균보다 2.86시간(-12.27%) 적은 20.48시간을 소비했고, 콘텐츠 소비 금액은 평균보다 8,363원(-21.08%) 적은 31,310원(월평균)이었다. 또한 콘텐츠 소비에 들어가는 시간 비중은 TV 시청 36.05%, 유튜브 동영상 26.84%, OTT 20.64%, 음악 콘텐츠 9.15% 등의 순이었다. 

이 통계에서 극장 영화 감상은 0.39%였다. 이렇듯 실버세대의 극장 방문은 흔치 않은 여가 활동에 속한다. 그런데 중장년과 노인 세대를 극장으로 이끄는 영화 두 편이 있다. <소풍>과 <건국전쟁>이 그것이다.

영화 '소풍' 포스터.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소풍' 포스터.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남 얘기 같지 않은 영화 ‘소풍’

영화 <소풍>은 절친이자 사돈 사이인 두 친구가 60년 만에 함께 고향 남해로 여행을 떠나며 16살의 추억을 다시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았다. 이 영화는 연기 경력을 합쳐 200년에 가까운 나문희, 김영옥, 박근형 배우의 열연이 돋보인다. 여기에 가수 임영웅이 만든 OST ‘모래 알갱이’가 여운이 더해져 관객들에게 울림과 감동으로 다가가는 영화다.

영화 <소풍>은 상업영화가 아닌 독립영화로 분류된다. 저예산으로 제작되어 예술영화 전문관 등 소규모로 개봉되었다. 13일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에 따르면, 영화 ‘소풍’은 설 연휴 마지막 날인 지난 12일 3만 8,182명의 관객을 더해 누적 관객 17만 4,456명을 기록했다. 관객이 몰리며 상영관도 확대되는 추세다.

이렇듯 <소풍>은 지난 7일 개봉해 6일 동안 줄곧 독립·예술영화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지키며 흥행 순항을 이어가고 있다. 전체 박스오피스 기준으로는 5위에 올랐고, 실관람객 평점 9점대를 기록하는 등 전 세대 관객의 호평 속에 입소문이 나고 있다. <소풍>의 손익분기점은 약 25만 명 정도로 알려졌는데 이대로의 속도면 손익분기점 돌파도 멀지 않아 보인다. 

노인이 주인공인 한국 영화는 드문 일이다. 그것도 80대 노인들이 주인공인 영화. 그래서 <소풍>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영화로 기록될 듯하다. 노년의 삶을 현실적으로 그렸기 때문에 더 그렇다. 

영화는 고향 절친이자 사돈지간인 두 친구 은심(나문희), 금순(김영옥)이 60년 만에 함께 고향 남해로 여행을 떠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여정에서 은심과 금순은 소녀 시절처럼 티격태격하기도 하고, 은심의 첫사랑이었던 태호(박근형)을 만나 그 시절의 따뜻한 추억을 마주하게도 된다.

그러나 이들의 소풍은 마냥 따뜻하고 유쾌하게만 진행되지 않는다. 몸은 예전 같지 않고, 자식들은 이들에게 받아 갈 것들만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영화 <소풍>은 노년의 삶을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80대 부모의 재산과 부양을 둘러싼 가족들과의 갈등, 노년의 요양원 생활, 존엄사 등의 이야기를 드러낸다. 묵직한 이야기 속에서 유일하게 변치 않고 이들 노인에게 버팀목이 되는 존재는 자식도 배우자도 아닌 노년의 친구들뿐이다.

그래서일까. <소풍>을 개봉한 상영관에는 노년층 관람객들이 많이 찾고 있다. 영화 속 이야기이지만 자신의 이야기일 수도 있어서 더욱 몰입한 관객이 많아 보인다는 평이다. 

건국 1세대들의 이야기, ‘건국전쟁’

<건국전쟁>도 화제다. 고(故) 이승만 전 대통령과 건국 1세대들의 희생과 투쟁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이 영화는 한미동맹, 농지개혁, 독도 영유권 확보 등 이승만 전 대통령의 업적을 중점적으로 다뤘고, 그를 자유 민주주의 수호자로 조명하는 데 집중했다.

지난 1일 개봉한 <건국전쟁>은 설 연휴 동안 23만6,441명이 관람해 누적 관객 32만9,950명을 기록했다. 전체 박스오피스 3위에 오르는 한편 손익분기점 약 20만 명을 크게 넘어선 성과를 얻었다.

다큐멘터리 '건국전쟁' 포스터. (사진=다큐스토리)
다큐멘터리 '건국전쟁' 포스터. (사진=다큐스토리)

<건국전쟁>은 약 3억 원의 예산으로 제작돼 개봉 초기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치지 못했다. 그래서 이승만을 추억하는 노년층이 주로 관람했는데 연휴 기간에 관객이 몰리면서 개봉관이 확대되기도 했다. 이러한 깜짝 흥행은 정치권 인사들의 추천이 크게 작용했다. 특히 여당 지도부들의 관람 릴레이와 SNS 관람평이 마케팅과 홍보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런 현상은 특정 관객층을 타켓팅하는데 성공한 결과로 보인다. 극장 통계에 따르면 '건국전쟁'을 관람한 관객 대부분은 고연령층이다. 즉 건국 1세대들과 심정적으로 가까운 계층이라고 할 수 있다. 

<건국전쟁>의 CGV 연령별 예매 분포를 보면 20대 관객이 8%인데 50대 경우 45.4%다. 성별 예매 분포는 여성 51.2%, 남성 48.8%로 비슷하다. 이러한 수치로 관객 성향을 분석할 수는 없지만, 특정 세대 혹은 계층 위주로 소비되고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다만 인터넷과 SNS 등에서 <건국전쟁>은 호불호가 갈린다. 이승만 전 대통령과 건국 1세대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승만의 부정적 행적을 다큐에서 다루지 않은 측면 때문에 비판받기도 한다.

다큐멘터리는 사실과 사료에 기반한 영화 장르이지만, 해석과 연출은 감독의 영역이다. 그리고 선택은 관객의 몫이다. 그런 면에서 <건국전쟁>은 특정 계층, 특히 노년층 등에게 어필했고 이들에게 보고 싶었던 영화로 자리매김하는 데 성공했다.

콘텐츠 업계 주류 부상 ‘노년층’

지난해 12월, 한국 콘텐츠산업 관련 트렌드 전망을 제시한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콘텐츠 산업 트렌드 2028> 연구에서, ‘콘텐츠에 빠진 골드실버’의 등장을 주요 트렌드 키워드로 꼽았다. 

이 연구에서 ‘골드실버’는 경제력과 시간적 여유가 있어 콘텐츠 소비에 적극적인 중장년 이후 세대를 말한다. 또한 2022년에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조사한 통계에 따르면, 모바일 동영상 콘텐츠의 메인 이용자층은 5060 세대다.

그러니까 중장년 이후 세대가 콘텐츠 시장에서 주류로 부상하고 있는데 이들 세대의 콘텐츠 소비 파워를 보여주는 사례가 영화 <소풍>과 <건국전쟁>인 것.

물론 두 영화는 규모나 이야기 작법 측면에서 기존 상업 영화와는 차이가 있다. 다만 '노년 세대가 보고 싶어 하고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다면 이들 세대를 영화관으로 이끌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렇듯 노년층 관객들의 감정을 건드리고 공감을 일으킨 영화 두 편이 극장가 분위기를 바꾸고 있다. 이런 현상은 어쩌면 초고령사회를 앞둔 한국에서 콘텐츠 산업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주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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