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징역 선고 받은 ‘농약 사이다’ 박 할머니

국민참여재판 배심원 7명 전원 “박 씨, 유죄”
박 씨 “우리 집에 농약 없다…억울해 잠도 못자”
검찰 vs 변호인, 유무죄 밝혀내기 위해 법적공방
1심 무기징역 선고에 박 씨 결국 항소

[뉴스포스트=최유희 기자] 지난 7월 발생한 경북 상주의 한 마을회관에서 사이다에 농약을 몰래 넣어 사람을 죽거나 다치게 한 ‘농약 사이다’ 사건의 피의자로 지목된 박모(83)할머니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이 5일 동안 진행됐다.

닷새간 열린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 7명은 만장일치로 박 씨를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도 박 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하지만 박 할머니의 가족들은 판결에 항의하며 “지문 등 직접 증거가 없고 범행 동기가 없다”며 항소의 뜻을 밝히고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조용한 한 마을에서 벌어진 끔찍한 ‘상주 농약 사이다’ 사건의 치열한 진실공방전을 살펴봤다.

닷새간의 ‘농약 사이다’ 국민참여재판

▲ (사진=뉴시스)

배심원 선서, 재판장 최초 설명, 모두절차, 쟁점 및 증거관계 정리, 증거조사, 피고인신문, 최종변론, 재판장 최종 판결 등의 순으로 5일간의 국민참여재판이 지난 7일부터 11일까지 진행됐다.

검찰은 박 씨의 유죄를, 변호인단 측은 박 씨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모두 583건에 달하는 증거 자료를 제출하는 등 치열한 법정공방을 이어갔다.

제1차 국민참여재판에는 살인 및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 기소된 박 씨를 비롯해 배심원 9명(남5·여4), 검찰 측 5명, 변호인단 측 5명, 박 씨와 피해자 가족 등 모두 100여명이 참석했다.

검찰과 변호인단은 이번 재판에 신고자, 피해자, 마을 주민, 행동분석 전문가, 사건 수사 경찰관, 외부 전문가 등 모두 18명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검찰은 이번 사건에 대해 “올해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상주 농약사이다 사건으로 자칫하면 미궁에 빠질 수 있었던 사건”이라고 설명하며 박 씨 집에서 농약(메소밀) 성분이 든 박카스병이 나온 점, 마을회관 사이다병 뚜껑으로 사용된 드링크제 뚜껑과 제조일자가 같은 드링크제 10병이 발견된 점, 박 씨의 집 주변에서 발견된 농약병 등을 증거로 제시했다.

또한 박 씨가 사건 발생 당시 입었던 흰색 저고리(상의)와 꽃무늬바지(하의), 지팡이, 목장갑, 전동휠체어 등 박 씨의 물건 21개에서 농약(메소밀) 성분이 검출된 점, 범행 은폐 정황이 촬영된 블랙박스 영상, 할머니가 사건 전날 화투놀이를 하다 심하게 다퉜다는 피해자 진술 등을 주요 증거로 내세우며 박 씨의 유죄를 주장했다.

이 뿐 아니라 사건 당일 박 씨가 피해자들이 농약이 든 사이다를 마신 뒤 구급차가 출동한 것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마을회관 정문의 한쪽을 닫고, 구급대원들에게 마을회관 안에 다친 사람들이 더 있다는 것을 알리지 않은 점 등을 유죄 증거로 내세우며 박 씨가 범행을 은폐하려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이와 함께 박 씨의 거짓말탐지기 검사 결과 명백한 허위진술이 나왔다는 점과 사건 당시 혼자 위험을 피한 점, 검.경조사에서 박 씨의 진술이 일관적이지 않은 점, 검찰조사에서 진술거부, 진술에서 마을회관 도착시간을 계속 늦추고 있는 점 등이 정황상 박 씨가 범인임을 가리키고 있다고 지목했다.

또한 검찰이 박 씨에 대한 임상심리검사결과 박 씨는 ‘허위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검사결과에 따르면 박 씨는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비하하는 특성과 상황에 대해 피상적으로 행동방향을 결정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박 씨 “나이 80 넘어 왜 그런 짓을 하느냐” 혐의 전면 부인

▲ (사진=뉴시스)

지난 10일 진행된 제4차 국민참여재판 피고인 신문에서 박 씨는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이날 검찰은 박 씨에게 “평소 마을회관을 어떻게 가느냐”고 묻자 “전동흴체어를 타고 직진으로 간다. 근데 그날은 집 구경하러 민 씨네(피해자) 집에 들렸다. 이런 일 있었을 것 같았으면 안갔지”라고 설명했다.
“사건에 대한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마을회관에 가기 전 평소에 가지 않던 민 씨네 집에 간 것이 아니냐”는 검찰 질문에는 “민 씨가 집 고친 것을 구경하기 위해 갔다”고 답했다.

박 씨는 사건 당일 사이다를 마시지 않은 이유에 대해 “마가루를 타먹고 마을회관에 가 배가 불러 안 먹었다”고 답하며 “억울하다. 나이 80이 넘어서 왜 그런 짓을 하느냐”고 반박했다.

검찰은 피해자 6명 중 처음으로 구조된 신모씨가 119에 의해 구조될 당시 왜 신고를 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도 집중적으로 압박했다.

이에 박 씨는 “신 씨가 구조될 당시 왜 구급대에게 회관 안에 다른 피해자들도 있다는 것을 얘기 안했느냐"는 질문에 "마을주민 박씨(최초 신고자)가 119에 신고해서 다 신고가 된 줄 알았다”고 증언했다.

아울러 “신 씨가 구조된 후 나머지 피해자들이 구조되기 전 왜 마을회관 현관문을 닫았느냐, 범행을 숨기려 한 것이냐”는 물음에 “문을 닫지 않았다. 억울하다”고 반박했다.

또 자신의 집에서 박카스병(범행도구)과 농약(메소밀)병이 발견된 이유에 대해서는 “왜 내 집에서 나왔는지 모르겠다”고 밝히며 경찰이 확보한 박 씨의 옷 등에서 메소밀 성분이 검출된 것에 대해서는 “피해 할머니들 입에 묻은 거품을 닦아주다 묻은 것”이라는 기존의 입장을 고수했다.

이날은 박 씨의 아들인 김모씨가 변호인 측 증인으로 나서기도 했다. 변호인단은 김 씨에게 경찰이 메소밀이 들어 있던 박카스병(범행도구)을 찾는 과정에 대해 집중적으로 물었다.

변호인단은 김 씨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박카스병이 발견될 당시와 지금 보고 있는 사진이 같은 모습인가”라고 물었고, 김 씨는 “발견 당시에는 병 전체에 흙이 묻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경찰이 박카스병을 발견할 당시 상황을 설명하라”고 주문하자 “경찰이 집 마당에 들어서자 마자 1분 만에 병을 찾았고, 그 과정에서 눈을 찡끗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면서 “경찰이 병을 발견 후 바로 현장사진(증거사진)을 찍는 것을 보았느냐”고 묻자 “본 적 없다”고 답했다.

검찰 측과 변호인 측의 첨예한 대립

박 씨 유·무죄를 밝히기 위한 검찰 측과 변호인단 측의 날선 공방 끝에 피의자 박 씨는 살인 및 살인미수 혐의로 1심에서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대구지방검찰청은 지난 11일 대구지방법원 제11호 법정에서 열린 ‘상주 농약 사이다’ 사건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에서 재판부에게 이번 사건의 피의자 박 씨에 대해 6명의 할머니를 숨지거나 중태에 빠뜨린 혐의로 이 같이 선고했다.

검찰은 이날 최종 의견진술 과정에서 “범행 방법이 잔혹·대담하고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이 없었다”며 “피고인이 범인이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증거가 충분함에도 범행을 부인하고 이번 사건으로 마을이 파탄났다”며 “2명이 사망하고 피해자들과 유가족이 상처를 입는 등 죄질이 중대하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박 씨가 구조처리를 하지 않고 납득되지 않는 행동을 보였다면서 특히 메소밀(농약) 성분이 들어간 뚜껑이 없는 박카스 병과 ‘동부메소밀 농약병’이 박 씨의 집 마당에서 발견된 점을 결정적인 단서로 봤다.
박 씨의 자택 내부에 있던 마시지 않은 박카스 병과 쓰레기통에 있던 박카스 병, 경찰이 조사 과정에서 입수한 박카스 병 등을 포함하면 모두 10개(한 박스)가 되고 제조일자까지 동일한 ‘한 박스에 담겨있던 제품’이라는 주장이다.

특히 박 씨네 집에서 압수된 농약 성분이 들어있던 박카스 병은 뚜껑이 없어 사건현장에서 발견된 사이다병의 뚜껑(박카스 뚜껑)이라는 이야기도 성립이 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검찰은 박 씨의 옷과 지팡이, 전동차 등 21군데에서 메소밀 성분이 광범위하게 검출된 것은 박 씨가 농약을 박카스 병에 옮기거나 사이다에 농약을 섞는 과정에서 박 씨의 손에 농약이 묻었고, 결국 나머지 물건에도 성분이 옮겨간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이에 대한 논리로 마을회관 바닥에 있던 이물질(구토물 등 액체) 증거에서는 메소밀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고 있다.

검찰은 “피해자의 구토물에서 메소밀이 나왔다면 바닥에 있는 구토물 증거물에서도 메소밀이 나와야 말이 된다”며 “그래야만 박씨의 바지 주머니 안쪽 등에서 검출된 메소밀 성분에 대한 설명도 납득이 된다”고 언급했다.

검찰은 특히 “피고인은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피해자 1명이 마을회관 앞에서 1차적으로 구조된 모습을 보고도 이를 알리지 않고 50여분 동안 구조 노력을 하지 않았다”며 “오히려 거품을 물고 쓰러진 피해자들이 자고 있었던 걸로 알았다는 상식에 어긋나는 주장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검찰 측은 증인으로 나섰던 대검찰청 과학수사부 행동분석담당관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대구과학수사연구소 직원의 판단 결과 박 씨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점을 증거로 들었다.

박 씨의 행동분석을 담당한 행동분석담당관에 따르면 박 씨가 면담 도중 농약 이야기만 나오면 다리를 구부렸다 펴고 헛웃음을 짓는 유의미한 반응을 반복했다는 것이다.

또한 박 씨가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을 때 기분 좋은 모습을 보인 반면, 구속영장이 청구된 후 받은 경찰 조사에서는 ‘머리가 아프다, 다리가 아프다, 변호사 없이 하지 않겠다’고 해 조사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는 점도 증거로 들었다.

이러한 1심 무기징역 선고에 박 씨는 불복하며 항소했다. 대구지법 제11형사부는 ‘상주 농약 사이다’ 피고인 박 씨의 가족들이 항소장을 제출했다고 15일 밝혔다.

이에 박 씨는 대구고법에서 2심 재판을 받는다.

박 씨 변호인단은 직접 증거 등이 없다는 이유로 박 씨의 무죄를 주장하고 있으며 “재판부의 결정을 납득하기 힘들다”며 “이번 항소를 통해 박 씨가 명백한 무죄임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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