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호 게이트’ ‘스폰서 검사’등 진흙탕 법조3륜

법조계 자체 셀프개혁은 한계 공수처신설이 답
전담반·암행감찰반 등 비리방지 내부개혁 글쎄?
양승태 대법원장 대국민 사과…사법부 역사상 3번째
변협, 경실련 “대법원장 사과·비리근절 대책, 실망”

[뉴스포스트=최유희 기자] 최근 사법신뢰가 땅에 떨어졌다. 법조계에서의 금전거래와 술접대, 사건 청탁 시도 등 온갖 비리가 터지면서 현직 검사장이 구속되는 것도 모자라 현직 판사까지 구속됐다. 여태껏 ‘법조를 지탱하는 세 바퀴’인 판사, 검사, 변호사들을 ‘법조3륜’이라 불러왔다. 그러나 3개의 바퀴가 저마다 역할을 다하며 제대로 잘 굴러가야하는 ‘법조3륜’은 “각종 술값, 용돈, 자동차 대주는 스폰서 없으면 검사 생활 못 하는 거냐”는 등의 비아냥까지 받으며 ‘비리3륜’으로 불리고 있다.

법원과 검찰이 동시에 각종 비리와 비위로 얼룩져 처참하게 신뢰를 잃자 자체개혁, 이른바 셀프개혁의 한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결국 사법부 개혁을 위해서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의 신설이 해법이라는 중론이 우세해지는 분위기다. 현재 법조계는 그야말로 손을 쓸 수도 없는 위기 그 자체이다.

잊을 만하면 다시 불거지는 법조비리

▲ 현직 부장검사에게 금품과 향응을 제공하고, 사건을 청탁한 의혹을 받고 있는 김 모 씨가 지난 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 전 고지 절차를 받기에 앞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검찰이 ‘스폰서·사건청탁’ 의혹이 있는 김형준(46·사법연수원 25기) 부장검사와 접촉한 것으로 녹취록에 등장하는 검사들에 대해 무더기 조사를 진행하는 등 ‘스폰서 부장검사’ 사건의 후폭풍이 거세게 일고 있다.

지난 8일 대검찰청 특별감찰팀은 이 같이 밝히며, 이에 대해 70억원대 횡령·사기 혐의로 서울서부지검에서 수사를 받던 ‘스폰서’ 김 씨 사건의 담당 검사 등이 김 부장검사와 따로 만난 것으로 알려지면서 부적절한 접촉이었다는 의심을 받고 있기 때문이라 설명했다.

앞서 김 부장검사는 지난 6월 서부지검 부장검사 5~6명과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식사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40만원가량으로 알려진 식사비용은 김 부장검사가 냈다.

이에 따라 서울서부지검 검사 8~10명과 김 부장검사가 김 씨 사건과 관련해 접촉한 것으로 알려진 의정부지검 고양지청 간부 등 현직 검사 10여명이 감찰팀의 조사선상에 오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뿐 아니라 김 씨가 김 부장검사 접대 자리에 다른 검사들도 동석했다고 폭로한 만큼 조사대상 검사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검찰은 이와 함께 김 부장검사가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장으로 있던 지난해 합수단 수사팀이 검사 출신 박모 변호사를 조사한 과정도 들여다보고 있다.

선후배 검사 사이이자 함께 근무한 인연까지 있는 박 변호사는 김 부장검사가 김 씨에게서 지난 2~3월 두 차례에 걸쳐 모두 1500만원을 건네받을 당시 1000만원을 자신의 아내 계좌를 이용하도록 해준 바 있다. 또한 금융위원회는 미공개정보를 이용해 박 변호사가 7000만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의혹을 포착해 지난해 11월 검찰에 통보했는데, 당시 이 수사를 맡은 합수단장이 바로 김 부장검사였다.

이러한 비리는 검사에 끝나지 않고 현직 판사까지 이어지고 있다. ‘정운호 게이트’를 수사 중인 검찰은 정운호(51·구속기소)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로부터 금품을 수수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인천지법 김수천(57) 부장판사를 지난 2일 구속했다.

이날 김 부장판사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성창호 영장전담부장판사는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구속영장 발부 사유를 밝혔다.

앞서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이원석)는 전날 김 부장판사에 대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 부장판사는 지난달 31일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해 17시간이 넘게 강도 높은 조사를 받다 긴급체포됐다.

김 부장판사는 정 전 대표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1억7000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성형외과 원장 이모(구속기소)씨를 통해 정 전 대표 구명 로비 대가 등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부장판사는 검찰 조사에서 금품을 수수한 사실관계에 대해서는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김 부장판사가 정 전 대표 소유였던 고가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레인지로버 중고차를 사실상 무상으로 인수한 것으로 보고있다. 김 부장판사는 정상적인 거래를 통해 매매했다고 주장했지만, 정 전 대표가 차량 매각 대금인 5000만원을 돌려줘 사실상 공짜로 사들였다는 것이다. 또 김 부장판사는 정 전 대표와 다녀온 베트남 여행 경비, 부의금 명목 400만~500만원 등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부장판사는 이 씨로부터 형사사건과 관련된 청탁을 받고 이를 들어줬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네이처리퍼블릭의 히트상품인 일명 ‘네이처 수딩 젤’의 ‘짝퉁’ 제품을 유통시킨 일당의 형사사건을 엄하게 판결해 달라고 이 씨가 김 부장판사에게 요청했다는 것이다. 당시 이 사건은 김 부장판사가 맡았다고 한다.

김 부장판사는 논란이 커지자 대법원 자체 조사과정에서 은행계좌 입출금 내역을 제출할 것을 요청받았지만 이를 거부한 것으로도 나타났다. 정 전 대표로부터 돈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입출금 내역을 제출할 필요가 없다는 게 김 부장판사의 거부 사유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10년 만에 고개 숙인 대법원장 “판사 구속, 참담”

▲ 양승태 대법원장이 지난 6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전국 법원장 긴급회의에 참석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 (사진=뉴시스)

검찰은 법조비리를 근절하기 위해 법조비리 전담반과 암행감찰반을 마련하는 등 본격적인 내부 개혁에 나섰다. 지난달 31일 대검찰청은 법조비리를 상시 집중단속하고 내부 청렴을 강화하는 방안을 중심으로 구성된 검찰조직 개혁방안을 밝혔다.

우선 검찰은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와 각급 지검 특수부에 법조비리 단속 전담반을 마련해 상시적인 단속에 나설 계획이다. 또 법조비리 단속 전담반에는 익명성이 보장되는 법조비리신고센터도 마련한다.

또한 국세청, 대한변호사협회 등 변호사단체와 협의체를 구성해 탈세 등 법조비리 정보도 상시 수집할 방침이다. 법조비리로 얻은 이익이나 탈루한 세금도 철저히 몰수·추징한다. 부장검사 이상 검찰 간부의 비위사건을 전담하는 특별감찰단도 신설한다. 특별감찰단장은 차장급 선에서 임명된다.

사법신뢰가 땅으로 추락한 것에 대해 검찰의 내부 개혁과 더불어 10년 만에 또다시 대법원장이 국민을 향해 머리를 숙이고 사과했다.

지난 6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4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전국 법원장 긴급회의에 앞서 ‘국민과 법관들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양승태 대법원장은 재판 업무와 관련해 억대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최근 구속된 현직 부장판사의 법조비리 사건에 대해 국민들 앞에 고개를 숙이며 “참담하다”는 심경을 밝혔다.

양 대법원장은 “아직 남은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분명히 가려져야 할 부분이 있지만, 법관이 지녀야 할 가장 근본적인 직업윤리와 기본자세를 저버린 사실이 드러났다”며 “그 사람이 법관 조직의 중추적 위치에 있는 중견 법관이라는 점에서 우리 모두가 느끼는 당혹감은 실로 참담하다”고 밝혔다.

이어 “한 법관의 잘못된 처신이 법원 전체를 위태롭게 하고 모든 법관의 긍지와 자존심을 손상하고 있다”며 “지난해 이어 다시 이 같은 일이 거듭돼 법관 전체의 도덕성마저 의심의 눈길을 받게 됨으로써 명예로운 길을 걸어가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해 온 모든 법관이 실의에 빠져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양 대법원장은 이번 사태에 대한 법관 조직 전체의 책임을 주장했다. “이런 일이 상식을 벗어난 극히 일부 법관의 일탈행위에 불과하다고 치부해서는 안 되고 우리가 받은 충격과 상처만을 한탄하고 벗어나려 해서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부끄럽고 송구스러운 마음일지언정 이 일이 법관 사회 안에서 일어났다는 것 자체로 먼저 국민께 머리 숙여 사과하고 깊은 자성과 절도 있는 자세로 법관의 도덕성에 대한 믿음을 줄 수 있도록 있는 힘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묵묵히 열심히 근무해왔던 법관들이 이번 일을 접하면서 느꼈을 큰 충격, 자신이 한 재판의 공정성마저 의심받는 상황에 대한 자괴감과 억울함에 대해서도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고 전하며 “어느 한 법관의 일탈행위로 법원이 신뢰를 잃게 되면 그 영향으로 다른 법관의 명예도 저절로 실추되고 만다”고 강조했다.

이어 “상황이 어떠하더라도 자기만은 신뢰와 존중을 받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라며 “이는 모든 법관이 직무윤리의 측면에서 상호 무한한 연대책임을 지고 있음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양 대법원장은 끝으로 전국 법원장들에게도 “오늘 회의에서 문제점을 진단하고 법관의 도덕성에 관한 논란이 일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해 내는 데 지혜를 모아달라”고 주문하면서 “국민 여러분께 실망과 충격을 안겨 드린 점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한편 전날인 5일 김재형(51·사법연수원 18기) 신임 대법관은 대법원 중앙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법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균형 감각과 합리적 사고를 바탕으로 국민의 신뢰와 공감을 얻을 수 있도록 제 모든 역량을 쏟아 붓겠다”고 밝힌 바 있다.

김 신임 대법관은 전·현직 판사가 연루된 최근의 법조비리 사건들을 의식한 듯 “사법부는 어느 순간엔 선망과 신뢰의 대상이었다가 어느 순간엔 불신의 대상이 된다”며 “신뢰와 불신이 교차하는 이러한 모순적인 상황을 해소해야 할 어려운 임무가 현재의 우리 법원에 맡겨져 있다”고 말했다.

“근본적 대책 없어” 실망 가득한 반응 잇따라

그러나 이러한 양 대법원장의 사과와 법원이 발표한 비리 방지 대책에 “실망스럽다” “근본적 개혁과는 거리가 먼 발언” 등의 비판의 입장도 나오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같은 날 성명을 통해 “부장판사 금품 수수에 관한 대법원의 형식적인 사과는 당연한 결과”라며 “법원은 자신의 권위 옹호를 고민하기 전에 국민의 사법적 고통을 해소하고 권력형 비리를 해결할 근본 개혁을 강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국민들이 사법부의 판결을 받아들이고 신뢰할 수 있는 전제조건은 높은 윤리성”이라며 “비위 판사를 엄정 조치하겠다는 양승태 대법원장의 대국민사과는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기에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또 “대검 감찰본부는 지난 5월 부장검사의 부적절한 돈거래 의혹을 보고 받았으면서도 감찰하지 않았다”며 “그간 사법개혁을 추진했지만 정운호 게이트, 진경준 게이트 등 과거의 문제가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경실련은 “더 이상 검찰이 현직 법조계 인사들이 연루된 비리들을 성역 없이 수사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며 “독립적인 고위공직자 수사기관을 설치해 사법 신뢰를 회복해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한변호사협회 역시 이날 법관비리 사태에 대한 양 대법원장의 사과와 법원이 발표한 비리 방지 대책에 “실망스럽다”고 비판했다.

변협은 논평을 통해 “대법원장은 법원장과 법관들을 대상으로 자성과 사과의 말을 할 게 아니라 직접 국민을 대상으로 사과문을 발표했어야 한다”며 대법원장의 사과가 형식에 맞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번 발표에서 법관비리를 막기 위한 몇 가지 대책이 제시되긴 했으나 법관의 부정을 예방하고 전직 법관의 비리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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