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세대’의 애환①] “우리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
[‘50+세대’의 애환①] “우리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
  • 이해리 기자
  • 승인 2019.07.17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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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육아에 손주병, 할마, 할빠 등 신조어도
사회 전반 제도 개선, 정책 활성화돼야

“정신 줄 꽉 잡고 살아야 해. 우리 5060세대들은”

5060세대는 우리 현대사회와 닮았다. 5060 세대가 사회에 진출해 활발히 활동했던 시기에 우리 사회도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뤘고 이들이 은퇴할 때쯤 우리 사회의 고성장은 끝났다. 앞으로 5060세대가 살아갈 노후는 이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환경이다. 초고령 사회, 청년 실업, 만혼, 맞벌이 가정 등 사회 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함에 따라 위로는 노부모 부양을, 아래로는 자녀와 심지어는 자녀의 자녀까지 지원하기도 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중장년층 10명 중 4명은 노부모와 미혼 성인 자녀를 동시에 부양하는 이른바 ‘낀 세대’로 나타났다. 은퇴를 목전에 두고 있지만, 가족 부양과 노후 사이의 갈등에 봉착해 있는 5060세대의 현주소를 <뉴스포스트>가 ‘황혼 육아’, ‘더블케어’, ‘셀프부양’ 등의 키워드로 살펴본다. -편집자주

자녀를 대신해 손주의 유치원 입학식에 간 이 모 씨. (사진=뉴스포스트)
자녀를 대신해 손주의 유치원 입학식에 간 이 모 씨. (사진=뉴스포스트)

#서울 송파에 사는 이 모(67) 씨는 주중에 손주를 봐준다. 맞벌이하는 딸네 부부는 첫 신혼집을 옥수동에 얻었지만 3년 전 아이를 맡기기 위해 부모님 댁 근처로 이사를 왔다.

이 씨의 일과는 오전 7시에 일어나 손주를 씻기고 아침을 먹여 유치원에 보낸다. 3시 손주를 하원 시키고 학원까지 픽업해 집에 돌아오면 6시가 다 된다. 손주의 저녁을 차리고 씻고 재운 뒤,다음날 유치원 가방을 싸두는 것까지 이 씨의 몫이다. 원래는 등·하원 정도만 도울 생각이었지만 딸이 회사 일로 바빠지자 평일 동안 맡아 키우게 됐다. 손주가 클수록 요구하는 것이 늘어나는데다 특히 유치원의 잦은 참여수업이 체력적으로 부담이라고 말했다.

이 씨는 “손주의 유치원 입학식 날 딸아이네가 부득이하게 못 와 직접 갔는데 참여 학부모 중 90%는 부모들이 왔더라. 의자에 몇 시간 아이와 앉아있었는데 긴장한 탓에 다리가 저리고 불편해 그날 밤 한숨도 못 잤다. 체력적인 한계를 절실히 느꼈다”라고 말했다.

이 씨의 자녀 박 모 씨는 “부모님의 생명을 담보로 아이를 맡기고 있다고 생각한다. 마냥 죄송스럽다”라면서 “주변에 둘째를 가지라고 조언해 주는 사람은 있지만, 부모님의 건강을 생각하면 안 될 얘기”라고 말했다.

#경기도 수원에 사는 심 모(63) 씨는 평소 10분 거리인 아들 집에 머물며 손자를 본다. 맞벌이로 힘들어하는 아들 부부를 외면할 수 없어 손자를 봐주기로 했지만 고된 육아와 집안일에 몸이 성한 곳이 없다.

심 씨는 “맞벌이를 해야 내 아이가 경제적으로 좀 더 풍요로울 것이고, 부모로서 도움을 주는 하나의 방법이 손주 양육이라고 생각한다”라면서 “내 아이와 손주들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 힘든 줄 모른다고 하지만 몸은 지쳐가고 망가져 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황혼 육아로 인해 심 씨의 손바닥은 피부가 다 벗겨지고 두피도 다 헐어버렸다. 아침부터 밤까지 손목과 무릎, 허리 통증에 시달리며 파스를 달고 산다. 하루하루 쌓이는 피로는 감당하기 힘들다. 

한 어린이집 참여 수업에 아이의 부모님 대신 할머니가 참석했다. (사진=뉴스포스트)
한 어린이집 참여 수업에 아이의 부모님 대신 할머니가 참석했다. (사진=뉴스포스트)

◇ 허리 휘는 황혼 육아

지난 2014년 국립국어원에서 신조어로 지정된 ‘손주병’이라는 단어가 있다. 황혼 육아로 어린 손주를 돌보며 육체적 정신적으로 골병이 든다는 의미다. 이 씨처럼 체력이 떨어진 노년층이 육아에 시달리면서 건강에 문제가 생기는 사례들이 늘고 있다. 

황혼 육아는 5060세대의 대표적인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미래에셋은퇴연구소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손주가 있는 5060세대의 절반 이상(51.1%)은 황혼 육아를 경험했다.

외벌이로는 먹고살기 빠듯한 현실에 남편과 아내 모두 경제활동을 하면 아이들을 봐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통계청이 발표한 맞벌이 가구 비율을 살펴보면 2013년 41.5%에서 2014년 42.6%, 2015년 43.5%, 2016년 45.7%, 2017년 47.3%를 기록하며 꾸준히 증가해왔다. 

2년째 맞벌이를 하는 두 딸의 아이들을 봐주고 있는 정 씨(61)는 “자식은 처음에는 고마워라도 했지 이제는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다”라면서 “자식들도 일에 지쳐 집에 오니 너희 애들 돌보는 것 때문에 아프다고 말하기도 힘들다”라고 전했다.

5060세대는 황혼 육아의 가장 힘든 점을 체력적 한계라고 말한다. 시간 사용 제약(48.9%), 당연하게 생각하는 자녀의 태도(21.5%) 등도 애로사항이다.

정 씨는 친구들과 모임에 나가서 얘기하다가도 손주들 올 시간에 맞추기 위해 먼저 일어나는 일이 많다 보니 모임에도 나가지 않게 되었다고 말했다. 일이 있어 하루를 쓰려고 해도 자녀들 눈치를 봐야 하고, 내 시간 없이 일에 치여 사는 것이 제일 힘들다고 토로했다.

◇ 고강도 ‘무상’ 노동

5060세대들은 은퇴 시점이 다가오는 나이임에도 육아를 다시 시작하며 정작 내 삶은 없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황혼 육아에 대한 경제적 보상은 잘 이루어지고 있지 않았다.

미래에셋 은퇴 라이프 트렌드 조사 보고서를 보면 양육에 대한 수고비를 정기적으로 받는 집은 34.9%에 불과했다. 비정기적으로 받는다고 답한 27.6%를 합해도 총 62.5%에 그쳤다. 평균적으로 양육 수고비를 받은 가구의 평균 수령액은 70만 원이었는데, 이는 150~200만 원이 드는 외부 육아도우미를 고용했을 때보다 절반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다.

이 씨의 경우 딸에게 매달 금전적인 수고비를 받고 있었다. 이 씨는 “수고비는 정당한 노동의 대가라고 생각한다“며 “다만 그 돈을 아이를 위해 쓰지 내 용돈으로 사용하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어 “작년에 아이 이불을 털다 어깨가 삐긋해 관절주사를 맞고 재활치료도 꾸준히 하고 있다“며 “매달 한의원에 다니느라 지출이 크다“고 덧붙였다.

양육수고비를 받아도 본인보다는 자식과 손주를 위해 사용하는 5060세대들도 적지 않다. 한화생명이 한 대형 카드사의 소비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60대의 자녀 관련 카드 지출은 유치원비가 가장 높은 순위를 나타냈다. 

어린이용품인 인형, 완구, 아동용 자전거 등의 카드 지출액을 보면 40대는 7만3,000원, 50대에는 7만5,000원인데 비해 60대에는 8만2,000원으로 증가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정 씨는 “두 딸에게 각각 30만 원 정도를 받는데 두 아이를 챙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라면서 “내 자녀와 손주를 보살핀다는 부모의 마음으로 감수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 사회 제도 개선, 정책 활성화 목소리

황혼 육아가 늘어나는 이유는 조부모 외에 다른 대안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황혼 육아의 부담을 덜기 위해서는 영유아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사회 전반의 제도 개선과 관련 정책의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정부는 시설 중심의 공공 보육을 넓히고 아이 돌보미와 같은 개별 양육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아직까지 조부모 양육이 가장 많이 이뤄지고 있다.

이에 지난해 11월 이용호 무소속 의원은 손자녀를 돌보는 조부모에게 양육수당을 지급하는 내용을 주요 골자로 한 ‘아이돌봄 지원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조부모가 교육 이수 등으로 자격을 갖춰 아이돌봄서비스 제공 기관에 ‘손자녀 돌보미’로 등록하면 아이 부모의 소득수준에 따라 양육 수당을 지급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현행법으로는 조부모에게 양육비를 지원하는 사업은 서초구와 광주광역시의 손주 돌보미 서비스 정도다. 서초구의 경우 손자녀를 돌보는 관내 조부모가 양육 교육을 이수하면 6~12개월까지 매달 최대 24만 원을 지급한다.

이 의원은 “할마(할머니+엄마), 할빠(할아버지+아빠)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조부모 도움을 받는데 ‘가족이니까 당연하다’라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할마, 할빠는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며 “국가 관리가 이뤄지면 수당 지급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조부모가 관련 교육을 받게 되는 만큼 육아 방식을 두고 벌어지는 가정 내 갈등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서울교육청은 학령기 손자녀 교육지원 증가에 따른 학조 부모 대상 교육 필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지난 6월부터 ‘조부모 대상 학부모 교육’을 시범 운영하고 있다. 

교육 프로그램은 총 3번 이루어지며 ▲노인 세대의 자기 탐색과 조부모 역할 이해를 위한 ‘나는 이런 조부모가 되고 싶어요’ ▲손자녀 발달 및 학교생활 이해를 위한 쑥쑥 자라는 손자녀 마음 읽기 ▲손자녀와 효과적인 관계 맺기를 위한 다가가는 공감 대화법 등으로 구성됐다.

서울시 교육청 관계자는 “이번 교육을 통해 손자녀의 육아를 넘어 교육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학조부모의 역할을 재조명하고, 학조부모로서의 자존감을 고취하고 당당한 교육의 참여자로 자리매김하는 시간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이해리 기자 h42182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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