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자 서울시교육청 부모·조부모교육 강사 인터뷰
5060세대 절반 황혼육아 경험, ‘할마·할빠’ 신조어도
자녀와 양육 갈등 상황 시 솔직한 대화로 합의점 찾아야
손주 양육 노하우…아이의 말은 경청, 감정에는 공감을
[뉴스포스트=이해리 기자] # 경기도 일산에 사는 이명옥(62) 씨는 주중엔 손자를 봐준다. 직장에 나가야한다는 딸의 부탁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서울 강동구에 사는 딸이 금요일 퇴근 후 부모님 집에서 아이를 데려갔다가 일요일 저녁 다시 데려다준 지 3년이 지났다. 딸과 손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황혼육아를 시작했지만 내 자녀를 기를 때와는 달라진 체력과 주변 환경 등 어려움에 부딪힐 때마다 내가 잘 양육하고 있는 것인지 혼란스럽다.
미래에셋은퇴연구소가 2018년 발표한 은퇴라이프트랜드보고서에서는 5060세대의 가족과 삶을 ‘부모은행’, ‘원격부양’, ‘황혼육아’, ‘더블케어’, ‘동상이몽’ 등 5가지 키워드로 정리했다. 5060세대의 대표 키워드 중 하나로 위의 사례와 같은 ‘황혼육아’가 꼽힌 것.
황혼육아란 노후를 바라보고 있는 5060세대가 자녀를 대신해 손주를 정기적으로 돌보고 있는 상황을 말한다. 미래에셋은퇴연구소의 조사 결과에 따른 실제로 손주가 있는 부모의 절반(51.1%)이 황혼육아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맞벌이 부부 증가 등 가정의 형태가 변화하면서 늘어난 황혼육아에 조부모들의 역할과 위치가 변화했다. <뉴스포스트>는 지난 3일 서울시교육청에서 부모·조부모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김민자 강사와 함께 양육 갈등 상황에서의 대처법, 건강한 손주 양육을 위한 마음가짐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전화로 진행했다.
- 과거와 비교해 조부모의 역할이 많이 달라진 것 같다.
할머니와 엄마를 합쳐 ‘할마’, 할아버지와 아빠를 합쳐 ‘할빠’ 등의 용어가 생긴 것만 봐도 조부모의 역할이 부모만큼 중요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과거에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단순히 놀아주거나 잠깐 양육을 도와주거나 하는 부분들이 있었지만 이제는 부모처럼 도맡아서 아이들을 키우는 경우가 많아졌다. 또 예전에는 손주를 봐줘야 하는 상황이라면 당연히 봐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지만, 요즘에는 조부모님들이 선택을 한다. 많지는 않지만 계속 거절하는 경우도 있다.
- 현재 손주를 양육하는 조부모의 주요 역할은 무엇인가?
우선 양육하고 돌봐주는 양육자의 역할과 남을 배려하고 존중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훈육자의 역할을 한다. 중요한 것은 정서적인 지지다. 부모의 경우 아이를 잘 교육하려는 생각이 강해 자꾸 가르치려고 하기 때문에 정서적인 지지는 부모보다 조부모가 훨씬 잘한다. 아이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정서적인 지지를 받으면, 나가서도 그 역할을 하면서 훨씬 관계도 잘하고 성장할 수 있다. 또 가족 안에 있었던 이야기들을 아이와 대화하면서 가족의 문화를 전달하는 문화 전달자의 역할을 한다. 마지막으로 모델링이다. 아이들이 부모를 보고 그대로 따라하는 것처럼 손주들이 조부모의 모습을 보고 ‘나도 저렇게 해야겠다’는 모델링이 된다. 우리 아이들을 교육할 게 아니라 우리가 모범을 보여야 한다.
- 손주 양육 시 조부모가 힘들어하는 부분은?
우선 신체적인 한계다. 지난 2018년 미래에셋은퇴연구소가 손주 양육 중이거나 과거 양육 경험이 있는 275가구를 대상으로 황혼육아의 어려움에 대해 조사한 결과 55.6%가 체력적 한계라고 답했으며, 시간 사용 제약이 49.8%로 뒤를 이었다. 조부모 나이대가 되면 인생의 황금기라고 부를 만큼 본인의 삶을 즐기려는 욕구가 강하다. 하지만 아이를 보다 보면 내 시간을 사용할 수 없다.
손주 양육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자녀의 태도도 어려움으로 꼽힌다. 처음에는 고마워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녀 본인도 모르게 의사소통 과정에서 당연함이 티가 나기도 한다. 섭섭함을 느끼게 되면서 갈등이 생기게 된다. 또한 양육방식 차이에 따른 어려움이 있다. 양육 방식의 차이는 일관성 없는 태도로 손주에게 혼란을 주기 때문에 꼭 자녀와의 합의가 필요하다.
- 어려움들을 어떻게 극복해나가야 하나?
양육 방식 차이의 경우 자녀와 계속해서 대화를 해야 한다. 같은 행동을 했을 때 엄마와 할머니의 반응이 다른 일관성 없는 태도는 아이에게 불안감을 준다. 자녀와 조부모가 서로 생각이 다를 때는 서로의 입장을 얘기하고 최선의 해결책을 합의해야 한다. 또 자녀들은 부모에게 감사한 마음을 끝까지 잊지 않고, 말로 표현해야 한다. 손주를 돌보는 것이 힘들더라도 “수고했다, 감사하다”는 말을 들으면 나의 고생을 알아주고,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힘이 난다.
- 손자녀와 갈등도 생길 것 같다.
어렸을 때는 조부모의 말을 잘 듣지만, 사춘기 때부터는 어른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 핵심은 소통이다. 어렸을 때부터 일상생활에서 아이의 감정과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어른의 입장에서는 다치거나 위험해서 ‘우리는 이렇게 해야 해’ 하며 저지하는 상황이 많다. 아이도 무엇인가를 하고자 하는 욕구와 생각, 자신의 감정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먼저 알아주고 공감해주는 훈련을 어려서부터 해야 한다. 아이는 나를 정말 아껴서 이 행위를 못하게 하구나 생각할 수 없다.
“ㅇㅇ가 이걸 너무 하고 싶구나. 그런데 할머니가 보니까 이걸 하면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어.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와 같은 대화의 과정에서 아이는 계속해서 생각할 수 있다. 또 조부모가 봤을 때 옳지 않더라도 아이가 너무 하고 싶어 한다면 시켜야 한다. 계속 막는다면 어른들이 안 보는 자리에서 몰래 할 수도 있다. 결과론적으로 할머니가 몰래 했다가, 할머니의 말대로 안좋은 경험을 안하면 아이는 ‘할머니 말씀이 맞구나! 할머니 말씀을 들어야겠구나’라는 생각을 할 것이다. 만약 아이가 했는데 너무 신나고 재밌었다면, 아이는 ‘아 내가 잘하는구나’ 자신감이 생기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 ‘효능감’을 갖게 된다. 이런 손자녀의 마음을 알아야 좋은 관계를 가질수 있게 된다.
- 조부모 교육의 주요 내용은?
아이들하고 대화하는 방법과 감정을 어떻게 들어줘야 하는지를 교육하고 있다. 나의 감정을 알아야 다른 사람의 감정도 받아줄 수 있기 때문에 조부모님의 감정을 살펴보게 한다. Education(교육)이라는 단어는 안에 있는 것을 밖으로 끄집어내서 키워주는 것이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우리는 밖에서 부모가 어떤 것을 아이에게 넣어주려고 하는 것을 ‘교육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잔소리를 하고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교육하는 방법은 잘못됐다는 것을 알린다.
- 손주 양육이 가정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은 무엇이 있나.
가장 긍정적인 영향은 아이가 누군가로부터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세상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가장 큰 사랑을 주는 것이 할머니와 할아버지다. 부모는 일도 해야 하고 마음에 여유가 없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그렇게 바쁘지도 않고 인생을 살아왔으니 아이에게 모든 걸 다 줄 수 있는 여유가 있다. 현실의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100% 다 받아주는 것은 쉽지 않다. 아이들이 어려서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인생의 어마어마한 자산이 된다.
- 코로나19로 온라인 수업이 많아졌다. 이에 대한 어려움이 많을 것 같다.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얘기를 해주는 것이 좋다. “할머니가 도와주고 싶은데, 잘 모르겠어”라고 얘기하는 것도 괜찮다. 아이들도 다 알아듣고 솔직하게 얘기할 때 마음이 전달되기 때문에 조부모를 무시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이런 부분에 대해 교육하는 프로그램도 많아졌기 때문에 상황이 된다면 배우는 것이 좋다. 컴퓨터를 다룰 줄 안다면 들어가서 찾아보기도 하고. 부모도 아이들을 키울 때 공부를 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 손주를 건강히 양육하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조부모님 자신이 행복해야 한다. 내가 행복하려면 몸이 건강해야 하고, 잘 먹고, 내 시간을 활용할 줄 알아야 하며, 나의 행복을 위한 것과 양육을 병행해야 한다. 나의 에너지가 고스란히 손주에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손주를 위해서라도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이것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나를 먼저 돌봐야 한다. 앞서 얘기했지만 자녀와 양육 방식에 대한 합의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할 수 있는 마음을 갖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손주 양육의 힘든 점을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표현하고 살아온 세대가 아니라 힘든 걸 감수하려고 하지만, 이럴 때 꼭 자녀에게 얘기를 해야 한다. ‘내가 조금 참고 말지’ 하다가 병이 나면 아이를 봐줄 수 없다. 문제가 생기면 꼭 자녀와 상의해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지금은 여성가족부나 구청에서 육아지원 프로그램들을 많이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자녀들이 알아보고 풀어나가야 한다. 또 조부모님들이 본인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하고, 꼭 나를 먼저 돌봐야 한다고 당부하고 싶다.
※ 김민자 강사 약력
광운대교육대학원 부모교육 전공
서울시교육청 전환기 학부모교육 전문강사
서울시 건강가정지원센터 청소년기부모교실 전문강사
송파청소년성문화센터 활동가
강서진로직업체험지원센터 강사
갈등관리 시스템디자인 전문가
지역사회교육 사회적협동조합 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