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1주기
관련법 제정했으나...유족은 2년째 거리로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한국서부발전의 하청업체에서 야간 근무하다가 사망한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故 김용균 씨의 1주기가 왔다. 세간의 파장을 일으킨 김씨의 안타까운 죽음 이후 관련법이 개정됐지만,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여전히 위험한 환경에 노출돼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사진=뉴스포스트 DB)
(사진=뉴스포스트 DB)

11일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가 이날 발표한 ‘석탄화력발전산업 노동인권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석탄화력발전산업에 종사하는 하청 노동자들의 산업 재해 사고는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유해하거나 위험한 작업의 외주화로 안전 보건 문제가 악화하면서 하청 노동자가 산재 사고의 주된 희생자가 된다는 게 보고서의 설명이다.

현재 국내에서는 5개 발전 공기업 산하 12개 지역, 61호기의 석탄화력발전소가 운영 중이다. 지난해 기준 5개 발전 공기업 내 간접고용 이른바 비정규직 노동자 수는 약 4,600명으로 전체 노동자 중 27%에 해당한다. 지난 2014년부터 2018년까지 5년간 5개의 발전 공기업에서 327건의 산재 사고가 발생했고, 334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사상자 97%에 해당하는 328명이 하청 노동자일 뿐만 아니라 산재 사망자 20명 전원이 하청 노동자였다.

이번 조사는 한국서부발전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씨가 사망한 사건 이후 진행됐다. 앞서 지난해 12월 11일 새벽 김씨는 한국서부발전이 운영하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 벨트에 몸이 끼어 숨진 채 발견됐다.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 소속 계약직 노동자였던 김씨는 이날 혼자서 야간작업을 하다가 사고를 당했다. 해당 업무는 입사 4개월차 비정규직 노동자인 김씨가 하기엔 매우 위험했고, 사고 당시에는 2인 1조 근무 원칙도 지켜지지 않았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2월 21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故 김용균 씨의 동료가 생전 모습이 담긴 고인의 사진 피켓을 들고 집회에 참가했다. (사진=뉴스포스트 DB)
지난해 12월 21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故 김용균 씨의 동료가 생전 모습이 담긴 고인의 사진 피켓을 들고 집회에 참가했다. (사진=뉴스포스트 DB)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

유족들은 김씨의 사망 이후 거리로 나왔다. 김씨의 모친인 김미숙 씨는 ▲ 비정규직 철폐 ▲ 위험의 외주화 근절 ▲ 산재 사고 예방 및 피해 지원 ▲ 산업안전법 개정 등을 촉구하며 노동자가 일하다 죽지 않은 세상을 만들게 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성과도 있었다. 지난해 12월 이른바 ‘김용균법’이라고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무려 28년 만에 개정된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 적용 대상이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에서 특수고용노동자 등 ‘노무를 제공하는 자’로 확대됐다. 원청업체의 안전보건 책임도 일부 강화됐다. 하지만 해당 개정안은 정작 김씨와 같은 노동자를 지킬 수 없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수은이나 납 같은 위험 물질을 다루는 작업은 하청을 금지했지만, 일부는 정부 승인을 조건으로 하청이 가능하다. 건설과 조선, 철도는 물론 김씨가 일했던 발전 분야는 적용 대상에서 빠졌다.

유족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은 산업안전보건법 개정만으로는 노동자들을 위험으로부터 제대로 보호할 수 없다며 투쟁 수위를 높여갔다. 당정도 이를 외면할 수 없어 올해 4월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를 출범시켰다. 특조위는 약 4개월간의 진상조사를 통해 노동자 직접 고용, 2인 1조 근무 보장 등이 담긴 22개 권고안을 발표했다. 이마저도 22개 안 중 17개 안이 이행되지 않는다고 노동계와 유족들은 지적하고 있다.

28년 만에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됐지만, 정작 이를 가능하게 했던 김씨는 해당 법안에 포함되지 않았다. 김씨를 보호하지 못하는 김용균법은 다음 달 시행에 들어간다. 인권위는 “석탄화력발전산업이 국민의 생명 및 안전과 직결되는 산업인 만큼 종사하는 모든 노동자의 인권보장을 위해 특조위에서 권고한 사항의 이행과 다양한 법적, 제도적, 행정적 개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뉴스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