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순라길을 따라 걷는다
종묘와 서순라길 한옥 마을에 담긴 이야기들

[뉴스포스트=강대호 기자] 주변 사람들에게 ‘돌담길’ 하면 어떤 곳이 생각나는지 물어보았다. 덕수궁 돌담길을 제일 많이 꼽았다. 경복궁 주변과 북촌을 꼽는 사람들도 있었다. 덕수궁과 경복궁의 돌담길도 좋지만 기자는 서순라길의 돌담길을 꼽고 싶다. 고즈넉하고 평화로워 잠시 생각에 잠겨 걷기에는 이만한 길이 없다고 생각한다.

서순라길은 종묘의 서쪽 담장을 끼고 이어진 길을 말한다. 조선 시대에 종묘에는 종묘와 주변 지역을 순찰하는 ‘순라청’이 있었는데 그 이름을 따서 길 이름으로 지었다. 서순라길은 종묘 서쪽 순라길이라는 뜻이고, 동순라길은 종묘 동쪽 순라길을 말한다.

종묘 입구. 여기서 왼쪽으로 가면 서순라길이 나온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종묘 입구. 여기서 왼쪽으로 가면 서순라길이 나온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종묘 입구에서 담장을 끼고 왼쪽으로 가면 나오는 서순라길.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종묘 입구에서 담장을 끼고 왼쪽으로 가면 나오는 서순라길.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걸으면 좋은 길, 서순라길

서순라길 걷기는 서울시 종로구 종묘광장공원의 ‘종묘’ 입구에서 시작하면 좋다. 기자는 하늘도 맑고 공기도 깨끗한 4월 어느 날 서순라길을 찾았다. 서순라길은 종묘 정문을 바라보고 왼쪽 담장 쪽으로 잠시만 걸으면 나온다.

서순라길에 들어서면 오른편으로 종묘 담장이 쭉 이어진다. 담장 너머로는 벚나무 등 온갖 나무들이 솟아오른 모습이 보인다. 담장 바로 옆 1차선 일방통행로에는 차량이 가끔 지나다닌다. 토요일과 일요일 서순라길에는 차가 다닐 수 없다.

서순라길 종묘 담장 너머 나무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서순라길 종묘 담장 너머 나무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서순라길의 돌담길.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서순라길의 돌담길.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보행로에는 널찍한 돌이 깔렸다. 도돌도돌한 돌 표면에 신발 바닥이 닿는 촉감이 딱딱하지만 도심의 보도블록을 밟을 때와는 전혀 다른 감각으로 다가온다.  담장 너머로 나무들이 보이고, 길게 이어진 돌담길도 보이고, 두 발로는 돌을 밟기 때문인지 마치 숲에서 산책한다는 착각을 하게도 만든다.

이런 착각은 왼쪽을 잠시 바라보면 깨질 수밖에 없다. 보행로 왼편에는 예쁜 카페와 레스토랑들이 줄지어 자리하고 있다. 여기는 도시 한복판이었다. 마침 황사도 물러가고 햇볕도 좋은 날이라 창을 열어 놓은 카페와 식당에서 사람들은 여유 있는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작년에 서순라길 도로 정비를 한 이후 유동인구가 계속 늘고 있어요. 주말에는 가족 단위 손님과 커플 손님이 많이 방문하지요.”

서순라길에서 6년째 카페를 운영 중인 A씨(여)의 말이다. 서울시는 지난해 11월 종로구 창덕궁 앞 일대를 보행 네트워크로 촘촘히 연결하는 ‘창덕궁 앞 도성 한복판 주요 가로 개선공사’를 완료했다. 

도로 정비 전에는 불법 주차한 차량과 점포들에서 내놓은 물건들이 많았었는데 모두 정리된 지금은 걷기 좋은 길이 되었다고 A씨는 전했다.

서순라길의 카페.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서순라길의 카페.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서순라길에는 카페와 레스토랑뿐 아니라 주얼리 공방과 주얼리샵 등 귀금속 관련 업체들도 많이 보였다. 서울주얼리지원센터 관계자에 의하면 종로구에는 약 3천여 주얼리 업체가 있고, 그 종사자는 7천5백명이 넘는다고 한다. 

“부모님이 30년 넘게 귀금속 제조업과 판매업을 하고 계셔서 저는 자연스럽게 주얼리 디자인에 관심 두게 되었어요. 그리고 감성이 담긴 곳에 주얼리샵을 열고 싶었고요. 여기 서순라길이 그런 곳이었죠. 한옥도 마음에 들었고요.”

서순라길에서 주얼리샵을 운영하는 박애리씨의 말이다. 디자인은 그녀가 직접 하고 제조는 아버지의 도움을, 판매는 어머니의 도움을 받는다고 한다. 서울주얼리지원센터 관계자는 귀금속 특구인 종로구에는  가족들이 함께 주얼리 관련 사업을 하는 곳이 많다고 전했다.

서순라길의 주얼리샵.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서순라길의 주얼리샵.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서순라길과 골목들에 담긴 이야기들

서순라길을 걷다 보면 곳곳에서 골목들과 이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기자는 그 골목들에 들어가 보길 권한다. 서순라길처럼 예쁜 카페와 식당, 그리고 주얼리 공방도 있지만 한옥과 한옥이 들어선 골목을 걸어보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50년 전만 해도 여기는 전부 한옥이었어요. 수백 년 된 집들도 있었는데 뭐. 그런데 개발이다 뭐다 해서 허물고 양옥이 들어서기 시작했어요. 그나마 남은 한옥들도 수리하려면 여기저기 허락을 받아야 해서 애물단지가 된 적도 있었지요.”

서순라길이 지나는 권농동(勸農洞)에서만 57년을 산 송정순(80세) 할머니의 말이다. 그녀는 젊은 시절 집안 어른들과 동네 노인들에게 들은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권농동과 인근 봉익동은 조선 시대에 궁궐에 채소를 공급하던 곳이 있었고, 내관과 무수리처럼 궁궐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많이 살던 동네라고 전했다. 

서순라길과 이어진 골목.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서순라길과 이어진 골목.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서순라길 인근 대각사에서 내려다 본 한옥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서순라길 인근 대각사에서 내려다 본 한옥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전쟁 후에는 지금처럼 돌담길을 볼 수 없었어요. 그 길까지 모두 집들이 들어찼었으니까. 담장 옆에 장독대도 있었고, 자기네 뒷담처럼 사용한 집들이 많았지요. 아마 무허가 주택들이었을 거에요. 서울시장이 바뀔 때마다 조금씩 정리했으니까. 이제는 길이 뚫리고 깨끗한 공원처럼 되었네요.”

송할머니의 기억을 쫓아가다 보니 여러 분야 논문들과 정부 보고서에 나온 이 지역 도시개발 역사를 할머니의 목소리로 생생하게 듣는 듯했다. 

종묘에 인접한 권농동과 봉익동 일대는 1962년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오랫동안 재개발은커녕 집수리조차 할 수 없었다. 이 지역이 낙후해진다는 지적이 많아지자 1993년에 종묘 담장 인근 서순라길 일대 토지가 도로부지로 수용되었고, 1995년에 지금의 서순라길이 만들어졌다. 그 과정에서 종묘 담장 인근의 한옥 주거지들은 대거 철거되었다.

그리고 2010년 이후 서순라길에는 새로운 장소성이 부여되었다. 한옥을 정비하고, 전통문화거리로 조성하고, 인근에 귀금속 특화 거리도 만들었다. 주변이 정비되자 한옥을 콘셉트로 한 카페와 레스토랑, 그리고 주얼리샵이 들어섰고 사람들도 찾기 시작했다.

서순라길 인근의 한옥 콘셉트의 레스토랑.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서순라길 인근의 한옥 콘셉트의 레스토랑.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종묘를 허문다고? 우리나라 최초 도시개발 갈등

서순라길 따라 종묘 끝자락까지 걸으니 길 건너로 창덕궁이 보인다. 그런데 공사가 한창이다. 종묘와 창덕궁을 도로 위 터널로 잇는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조선 시대에 종묘와 창덕궁은 한데 이어져 있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경성 확장 과정에서 종묘와 창덕궁 사이를 허물고 길을 내 버렸다. 당시 신도시로 개발되던 지금의 돈암동을 경성 중심부와 빠르게 연결하기 위함이었다. 만약 거기에 길을 내지 않는다면 동대문까지 멀리 돌아가야 했다. 

그런데 ‘종묘 관통선’ 공사로 갈등이 벌어졌다. 망한 나라의 왕가와 양반 후손들은 종묘가 신성한 곳이라며 크게 반대했고, 조선총독부도 처음에는 이들의 의견에 존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다수의 경성 사람들은 교통의 편리함을 들어 찬성했고, 여론도 그렇게 돌아섰다. 

1922년 9월 21일 동아일보 <종묘 존엄을 훼손할가 하야 리왕뎐하께옵서 크게 진념> 기사와 1928년 6월 17일 동아일보 <여러 해를 두고 결말이 안나, 북간선신작로문제> 기사 제목들만 봐도 종묘를 허무는 도로 공사 때문에 오랜 갈등을 겪었던 당시 상황을 알 수 있다. 어쩌면 우리나라 최초의 도시개발 갈등일지도 모른다. 

당시 신문기사뿐 아니라 서울시립대학교 국사학과 염복규 교수의 <서울의 기원 경성의 탄생>에서도 종묘 관통선 과정에서 생겨난 갈등을 당시 총독부 자료를 인용하며 잘 설명한다. 한 나라를 힘으로 통치하면서도 도시개발로 인한 갈등이 벌어지자 전전긍긍하는 조선총독부 모습에서 도시개발의 어려움을 잘 느낄 수 있다.

종묘와 창덕궁을 잇는 공사. 도로 건너편이 창덕궁이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종묘와 창덕궁을 잇는 공사. 도로 건너편이 창덕궁이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서순라길은 그런 이야기들을 품고 있었다. 돌담길과 마주한 카페, 레스토랑, 주얼리샵들을 바라보며, 끊겼다가 다시 이어지는 종묘와 창덕궁을 바라보며, 지금의 모습으로 정비되기까지 겪었을 역사의 켜를 느끼게 한다. 

도시개발은 분명 그 지역에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온다. 물론 숨기거나 가리고 싶은 게 있으면 그냥 허물거나 안 보이는 곳으로 쫓아버리기도 한다. 다만 그것을 그리워하는 사람의 마음까지 배려한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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