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건축왕 정세권이 개발한 익선동과 북촌의 한옥마을을 걷다

[뉴스포스트=강대호 기자] 1970년대에는 학교에서 가정환경을 공개적으로 조사했다. 집에 전화가 있는지 텔레비전이나 냉장고는 있는지. 그리고 어떤 집에 사는지도 조사했다. 자가인지 전세인지, 아니면 월세인지. 혹은 양옥에서 사는지 한옥에서 사는지도.

당시 서울은 강남이 개발되던 시절이었고, 강북에는 크고 작은 서양식 주택들이 들어서던 시절이었다. 강북의 한 초등학교에 다니던 기자의 반에는 한옥에 사는 친구들이 더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친구들은 양옥에 살던 친구들을 부러워했다. 왠지 양옥은 새집 같고 한옥은 낡은 집처럼 생각되었기 때문이었을까.

한동안 낡거나 재래식 주택으로 취급받던 한옥이 지금은 주목받고 있다. 사람들에게 일생에서 잠시라도 머물고 싶은 집이 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전국에는 한옥을 테마로 하는 거리와 숙박업소가 많이 들어섰다. 서울도 한옥이 모여있는 곳에 사람들이 모여든다.

(2021. 05. 19) 북촌 전경. 산 등성이 굴곡을 활용해 한옥들이 들어섰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5. 19) 북촌 전경. 산 등성이 굴곡을 활용해 한옥들이 들어섰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익선동의 한옥마을

서울 종로구 익선동에는 한옥마을이 있다. 서울지하철 종로3가역이나 탑골공원에서 가깝다. 익선동 한옥마을을 하늘에서 본다면 네모난 분지처럼 보일 것이다. 주변의 높은 건물과 먹자골목이 한옥마을을 포위한 형국이다.

익선동 한옥마을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골목이 좁다는 것이었다. 두 사람이 나란히 걷는다면 골목을 꽉 채울 정도다. 연인이나 부부에게는 함께 걷기 좋은 길일 수도 있겠지만 마주 오는 사람을 신경써야 한다. 

(2021. 05. 19) 익선동 한옥마을의 카페.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5. 19) 익선동 한옥마을의 카페.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5. 19) 익선동 한옥마을.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5. 19) 익선동 한옥마을.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익선동 한옥마을에는 가게가 많다. 입소문이 난 예쁜 카페나 레스토랑은 물론 옷가게들도 많이 보인다. 타로나 사주를 봐주는 자판기도 보이고 사격장도 눈에 띈다. 상업시설 분포만으로 본다면 익선동은 여느 유흥가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몇 년 전 이 골목을 처음 방문했을 때와 비교해 많이 달라진 듯했다. 우선 주민들이 거주하는 집들이 상업시설로 대거 변신한 듯하다. 당시에는 가게뿐 아니라 한옥에 사는 주민들도 더러 볼 수 있었는데 지금 주택은 몇 없어 보이고 주민들도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남아있는 주택들 상태를 보니 아주 낡아 보인다. 익선동 한옥마을의 역사를 보여주는 듯하다. 낡고 오래된 한옥에 살던 주민들은 한때 재개발을 추진했고, 2004년에 익선동은 도시환경정비구역으로 지정됐다.

하지만 한옥이라는 특성과 여러 요인으로 인해 재개발은 힘들었다. 결국, 2014년 익선동 주민들은 재개발을 포기했다. 주민들은 익선동을 떠나기도 했고, 더러는 빈집으로 방치하기도 했다.

(2021. 05. 19) 익선동 한옥마을의 카페.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5. 19) 익선동 한옥마을의 카페.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5. 19) 익선동 한옥마을의 카페.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5. 19) 익선동 한옥마을의 카페.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그런데 재개발 철회가 익선동엔 오히려 기회가 되었다. 골목과 한옥을 경험하지 않은 젊은 세대들이 이곳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익선동 골목의 한옥에는 카페, 술집 등 상업시설이 들어오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게다가 '뉴트로 열풍'은 근대 한옥, 좁은 골목과 어우러지며 익선동을 새로운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게 했다.

북촌의 한옥마을

익선동에서 멀지 않은 북촌에도 한옥마을이 있다. 청계천과 종로의 북쪽이라는 의미를 지닌 북촌은 가회동, 재동, 계동, 원서동, 삼청동, 안국동, 인사동 등의 지역을 의미한다. 이곳에는 약 900여 채의 전통 한옥들이 있고 주민들이 실제 살고 있다.

북촌의 한옥마을은 익선동의 한옥마을과 느낌이 확 다르다. 익선동 골목이 좁다면 북촌은 골목에 차가 다닐 정도로 넓다. 그리고 익선동이 격자형 골목이라면 북촌은 지형지물을 이용해 골목 모양이 곡선과 직선으로 자연스럽게 흐른다.

(2021. 05. 19) 북촌 한옥마을.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5. 19) 북촌 한옥마을.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5. 19) 북촌 한옥마을.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5. 19) 북촌 한옥마을.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북촌의 한옥마을이 익선동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실제 주민들이 사는 주거 공간이라는 것이다. 물론 큰길에는 상업시설이 들어서 있다. 하지만 주거 공간과 상업공간이 확연히 나뉘어 있다.

익선동 골목을 걸을 때는 좁은 길 때문에 답답하고 멀리 바라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북촌 한옥마을을 걷다 보면 군데군데 멀리 트인 곳이 나온다. 주택의 구조도 언덕을 잘 활용해 경관이 확 트인 집도 많다. 

(2021. 05. 19) 북촌 한옥마을에는 언덕이라는 지형지물을 이용해 건축한 한옥이 많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5. 19) 북촌 한옥마을에는 언덕이라는 지형지물을 이용해 건축한 한옥이 많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5. 19) 개보수가 진행 중인 북촌 한옥마을의 어느 골목.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5. 19) 개보수가 진행 중인 북촌 한옥마을의 어느 골목.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북촌도 익선동처럼 공사가 진행되는 곳이 여럿 있었다. 익선동은 아마도 카페나 식당으로 개조하는 것으로 보였는데 북촌은 주택 개보수로 보인다. 북촌의 상점가에는 부동산 사무실도 많이 있는데 한옥 매입이나 임대를 알아보는 손님이 심심치 않게 방문한다고 한다. 

한편 북촌의 한옥마을은 정체성을 위해 관리하는 노력이 보이는 듯했다. 특히 한옥마을 곳곳에 서울시 소유의 ‘공공한옥’이 여럿 있다. 관광객이 자유롭게 체험할 수 있도록 전시관을 운영한다거나 한옥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식이다. ‘북촌한옥청’, ‘북촌한옥역사관’, ‘한옥지원센터’ 등이 그 역할을 맡고 있다.

건축왕 정세권, 그리고 도시한옥

익선동과 북촌의 한옥마을이 여러모로 다르지만 공통분모가 하나 있다. 바로 정세권이라는 사람이 이 지역을 개발했다는 것이다.

정세권(鄭世權)은 일제강점기에 북촌 일대에서 건축사업을 한 사업가다. 기록에 의하면 사업으로 많은 돈을 벌어 '건축왕'이라 불렸는데 독립운동에도 많은 돈을 기부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초기 일본인들은 청계천 남쪽에 기반을 두었다. 하지만 1920년대 들어 일본인들이 청계천 북쪽으로 진출하자 정세권 등 조선인 건설업자들은 이 지역에 민간 주택 건설 사업을 추진했다. 이는 조선인들의 거주 지역이 일본인들에게 밀려나는 상황을 막는 효과를 불러왔다.

북촌 한옥역사관에 전시된 도시형 한옥 평면도.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북촌 한옥역사관에 전시된 도시형 한옥 평면도.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정세권은 익선동과 북촌은 물론 당시 경성 여러 지역에 도시형 한옥을 건축했다. 그 과정에서 지배층이나 부자들이 살던 전통 한옥을 여러 필지로 쪼개는 도시형 한옥 개념을 도입했다. 이들 한옥은 구조를 네모(ㅁ) 안에 집약했고, 부엌과 화장실을 신식으로 개선했다. 그래서 도시한옥 혹은 개량한옥으로 불리기도 한다.

도시형 한옥은 6인 가족 정도가 살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사료에 의하면 가난한 사람들도 살 수 있도록 전세 개념은 물론 월부(月賦)와 연부(年賦) 개념도 도입했다고 한다.

(2021. 05. 19) 익선동 한옥마을의 소음 주의 안내판.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5. 19) 익선동 한옥마을의 소음 주의 안내판.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5. 19) 북촌 한옥마을의 소음 주의 안내.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5. 19) 북촌 한옥마을의 소음 주의 안내.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익선동과 북촌의 한옥마을을 걸으며 많은 사람을 볼 수 있었다. 만약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더욱 많은 사람과 마주쳤을 것이다. 물론 그중에는 한옥에 거주하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대부분이 한옥과 한옥마을의 외관을 시각적으로 관람했다. 그들에게 한옥이 무엇이냐 물어본다면 아마도 기와집을 떠올릴 것이다. 

한옥(韓屋)이라는 명사에는 우리나라 고유의 집이라는 의미가 담겼다. 우리 고유의 집에는 기와집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부 지배층이나 부자들이 살던 기와집보다 평범한 백성들이 살던 초가집이 오히려 더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가난의 상징이라며 1970년대에 초가지붕을 걷어 낸 후에는 일부 전시 공간에서만 구경할 수 있다. 

이런 상상을 해보았다. 만약 지금의 아파트 단지들도 재개발되지 않고 미래에 남아있다면 우리 후손들이 사진 찍으러 찾아오는 관광 명소가 되지 않을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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