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에서 인왕산 사이 정겨운 서촌 골목길

[뉴스포스트=강대호 기자] 경복궁 앞마당에 중앙청(옛 국립중앙박물관)이 있던 시절 광화문에 가면 왠지 몸을 움츠리곤 했다. 경계가 삼엄하기 때문이었다. 특히 1980년대에 대학생으로 보이는 청년이 광화문 인근에 가면 여지없이 검문과 함께 소지품 검사를 받기 일쑤였다. 근처에 청와대가 자리하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청와대 인근 도로는 일반 시민이 접근할 수 없었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후에야 청와대로 향하는 경복궁 서쪽 담장 길은 시민에게 열렸다. 때로 경계가 강화되고 야간에는 통행이 금지된 적도 있었으나 지금은 24시간 개방한다.

경복궁 서쪽 담장 길 인근에는 입소문 난 카페와 레스토랑 그리고 크고 작은 갤러리들이 모여있어 시민들이 즐겨 찾는 곳이 되었다. 청와대 앞길에는 여전히 검문소가 있지만 예전처럼 시민의 발을 잡아두진 않는다.

그리고 경복궁 서쪽에 자리한 동네들은 서촌으로 불리며 관광객들의 눈길과 발길을 잡아끌고 있다.

(2021. 05. 26) 경복궁 서쪽 담장길.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5. 26) 경복궁 서쪽 담장길.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서촌, 경복궁의 서쪽 인왕산의 동쪽 

서촌은 경복궁 서쪽에서 인왕산 동쪽 자락에 이르는 마을들을 일컫는다.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과 사직동을 아우른다. 청운효자동은 청운동, 효자동, 신교동, 궁정동, 옥인동, 통인동, 창성동, 누상동, 누하동 등을 포함하고, 사직동은 통의동, 적선동, 체부동, 필운동, 내자동, 도렴동, 당주동, 내수동 등을 포함한다. 

서촌이라는 이름은 북촌과 대비해서 자연스럽게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다만 주민들은 오랫동안 그저 통인동과 체부동 같은 동(洞) 이름으로 불러왔다고. 청운효자동과 사직동이 여러 법정동을 아우르는 데서 볼 수 있듯이 동 크기가 작다. 이 골목에서 저 골목으로 가면 다른 동이 나온다. 사료에 의하면 서촌은 원래 서소문 근처에 있던 마을 이름이었다고. 

조선 시대에 북촌이 주로 사대부나 부호가 살던 동네였다면 서촌에는 역관이나 의관 같은 전문직을 가진 중인들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유사 깊은 동네인 만큼 한옥도 많다. 하지만 오늘날 볼 수 있는 한옥 대부분은 1910년대 이후 지어진 도시형 한옥이다.

(2021. 05. 26) 서촌의 한옥.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5. 26) 서촌의 한옥.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5. 26) 시인 이상의 집터. 현재 전시 공간으로 운영한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5. 26) 시인 이상의 집터. 현재 전시 공간으로 운영한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지금은 전시 공간으로 운영하는 시인 ‘이상’의 집도 원래 145평이었지만 필지가 5개로 나뉘어 도시형 한옥으로 재건축되었다. 

서촌에는 골목들이 많다. 곧게 뻗은 골목도 있지만 대부분은 휘거나 경사졌다. 인위적으로 줄 맞춰 정비하지 않고 자연의 굴곡을 이용해 길을 내고 집을 지었다. 그런 모습에서 주민들과 관광객들이 정감을 얻는 듯했다.

점심시간 즈음 찾은 서촌에는 식사하러 온 시민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일부 식당에는 대기하는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기도 했다. 골목 사이에 숨은 카페나 레스토랑에도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차를 마시거나 식사를 하고 있었다.

(2021. 05. 26) 점심시간 서촌 어느 식당의 대기줄.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5. 26) 점심시간 서촌 어느 식당의 대기줄.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5. 26) 서촌의 골목들에는 카페와 레스토랑이 숨어있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5. 26) 서촌의 골목들에는 카페와 레스토랑이 숨어있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서촌의 골목길이 복잡해서 지도를 보며 목적지를 찾기에 조금은 불편했다. 그래도 사람들이 많이 향하는 곳을 따라가니 박노수 미술관이 나왔고 시인 ‘윤동주’의 하숙집터도 나왔다.

박노수 화가의 집은 1930년대에 한옥과 양옥을 절충해서 건축했다. 이곳은 1991년에 서울시 문화재자료 제1호로 등록되었고, 지금은 종로 구립 미술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박노수 화가의 작품과 자료를 볼 수 있지만 다음 전시 준비를 위해 휴관 중이다.

윤동주 시인의 옛 하숙집은 인왕산 수성동계곡을 올라가는 경사진 길에 있었다. 간판과 안내문이 없다면 그냥 평범한 다세대주택일 뿐이다. 청년 윤동주는 이 산길을 내려가 전차를 타고 신촌의 연희전문학교까지 통학했을 것이다. 때로는 산길을 올라가 인왕산 자락에서 시상을 떠올렸을 것이고

(2021. 05. 26) 시인 윤동주의 하숙집 터.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5. 26) 시인 윤동주의 하숙집 터.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5. 26) 시인 윤동주의 하숙집 터. 멀리 인왕산 자락이 보인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5. 26) 시인 윤동주의 하숙집 터. 멀리 인왕산 자락이 보인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인왕산 수성동계곡 그리고 옥인아파트

윤동주 시인의 하숙집에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인왕산이 나온다. 그리고 산 초입에는 수성동계곡이 있다. 마을버스 종점도 있다. 

만약 지하철 경복궁역에서 쉬지 않고 걷는다면 수성동계곡 입구까지 30분 정도 걸릴 것이다. 마을버스를 탄다면 10분도 안 걸릴 것이다. 서울 도심과 가까운 곳에 아름다운 바위산과 물소리 시원한 계곡이 있다니 놀라웠다.

(2021. 05. 26) 인왕산과 수성동계곡.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5. 26) 인왕산과 수성동계곡.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5. 26) 인왕산 수성동계곡.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5. 26) 인왕산 수성동계곡.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5. 26) 인왕산 수성동계곡의 기린교.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5. 26) 인왕산 수성동계곡의 기린교.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그런데 수성동계곡은 원래의 모습이 아니라 복원된 것이었다. 1971년에 인왕산 자락을 허물고 계곡을 메워 아파트를 세웠다고 한다. 인왕산을 가리고 있던 ‘옥인시범아파트’를 2010년에 철거했고, 그 과정에서 아파트 아래에 묻혀있던 수성동계곡이 드러났다. 그리고 계곡을 복원했다.

수성동계곡 발굴 과정에서 '겸재 정선'의 그림에 나오는 ‘기린교’가 발견되었고, 정선의 그림을 참조해 수성동계곡을 복원했다고 한다. 

기록에 의하면 옥인시범아파트에는 9개 동에 308세대가 살았다. 시유지였던 인왕산 자락에 들어선 콘크리트 건물은 1971년 건축 당시에는 서울의 랜드마크였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건물이 낡자 인왕산을 가리는 흉물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그래도 철거 과정에서 일부 흔적은 남겨졌다.

인왕산 등산로에 접한 한구석에 아파트의 잔해가 기념으로 남아있었다. 산을 가린다는 구박을 받았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보금자리였고 고향이었을 잔해였다. 

(2021. 05. 26) 옥인시범아파트 잔해.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5. 26) 옥인시범아파트 잔해.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5. 26) 옥인시범아파트 잔해.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5. 26) 옥인시범아파트 잔해.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대오서점 그리고 세종마을

서촌이 뜰 때 화제가 된 곳이 있다. 서촌 한가운데에 있는 ‘대오서점’이다. 한옥에 자리한 서점으로 오랜 시간 서촌을 지켰다고 한다. 한옥을 테마로한 카페와 레스토랑 등이 들어서는 시절에 대오서점은 여러 언론과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였다.

그런데 지난 4월 서촌을 찾았을 때 대오서점 간판의 페인트가 벗겨져 나간 게 보였다. 가게 유리창에는 카페 영업을 한다는 안내가 붙어 있었다. 내부 관람만 하려면 입장료를 내야 한다는 메모도 붙어 있었다.

대오서점의 과거 모습. (출처: 나무위키)
대오서점의 과거 모습. (출처: 나무위키)
(2021. 04. 21) 4월의 서촌 대오서점.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4. 21) 4월의 서촌 대오서점.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5. 26) 현재의 대오서점.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5. 26) 현재의 대오서점.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이번 주에 방문했을 때는 아예 차양으로 유리창이 가려져 있었다. 가게를 판다는 메모도 붙어 있었다. 서촌이 뜨자 서촌의 골목들에는 많은 변화가 생기는 듯했다. 동네 구경하러 오는 관광객들은 느끼지 못하겠지만 이 동네에 사는 주민이나 가게를 운영하는 주인들은 느끼는 무언가 영향이 있는 듯했다. 

서촌 곳곳에는 이곳이 ‘세종마을’이라고 알리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었다. 경복궁역 인근 먹자골목은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라고 명명됐다. 이 구역을 관할하는 지자체에서는 사람들에게 알려진 서촌이라는 지명보다는 자기네가 명명한 세종마을로 불리길 바라는 듯했다. 이 지역을 연구한 여러 논문에 의하면 반대하는 주민들도 많았다고 하는데.

세종마을은 분명 ‘세종대왕’과 연관을 지은 의미 있는 지명이긴 하다. 하지만 사람들 마음과 인식을 관청의 계도로 변할 수 있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2021. 05. 26) 세종마을 안내 플래카드.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5. 26) 세종마을 안내 플래카드.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5. 26) 세종마을의 먹자 골목.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5. 26) 세종마을의 먹자 골목.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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