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극장·단성사’ 등 토종 영화관들 자리한 종로극장가 쇠퇴
한때 한국영화 바로미터 역할했지만 OTT시대에 하나 둘 폐업

(2021. 08. 25) 서울극장 전경. 2021년 8월 31일까지만 영업한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8. 25) 서울극장 전경. 2021년 8월 31일까지만 영업한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서울극장이 8월 31일 상영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는다. 서울극장은 1978년 개관해 42년 넘게 종로3가 극장가를 지켰던 곳이다. 

지금은 대기업 계열사들이 극장 체인을 운영하지만 예전에는 영화제작사나 영화 배급사 혹은 흥행업자 같은 개별 사업자들이 극장을 운영했다. 서울극장도 영화제작사인 ‘합동영화주식회사’가 운영했다.

서울극장은 한때 개봉 영화 흥행의 향방을 점칠 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멀티플렉스 영화관과 넷플릭스 등 OTT가 제공하는 콘텐츠로 대중의 관심이 쏠렸다. 코로나19로 대중의 발길은 더욱 멀어졌다. 결국, 서울극장을 기억하는 이들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사라지게 되었다. 

(2021. 08. 25) 서울극장 로비에 걸린 한국 영화 포스터.서울극장을 운영하는 합동영화사가 제작한 영화들이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8. 25) 서울극장 로비에 걸린 한국 영화 포스터.서울극장을 운영하는 합동영화사가 제작한 영화들이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극장에서 영화관으로

극장(劇場)은 연극, 음악, 무용 등 예술 분야의 공연이나 영화를 상영하는 복합 시설을 의미한다. 그래서 일제강점기 우미관 등에서는 영화는 물론 연극과 독주회 같은 공연이 함께 열리곤 했다.

해방 후에도 한동안 극장은 영화는 물론 각종 공연이 열리는 장소였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가수와 코미디언이 출연하는 공연과 영화를 교차해 제공하는 극장이 있었다. ‘쇼도 보고 영화도 보고’. 하지만 영화 상영만 전문으로 하는 곳이 차츰 늘어났다. 극장에서 영화관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1980년대까지는 영화관을 분류하는 몇 가지 기준이 있었다. 우선 외화관(外畫館)과 방화관(邦畫館)으로 나뉜다. 외화는 외국 영화를, 방화관은 국내에서 제작한 한국영화를 의미한다.

영화관이 들어선 입지에 따라 혹은 각 영화관과 거래한 배급사의 성격에 따라 외화 전문 영화관과 국내 영화 전문 영화관으로 나뉘었다. 관련 자료에 의하면 종로3가에 있었던 단성사를 대표적 외화관으로, 을지로4가에 있었던 국도극장을 대표적 방화관으로 분류한다.

단성사의 1962년 모습. 단성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극장이었다. (출처: 국가기록원)
단성사의 1962년 모습. 단성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극장이었다. (출처: 국가기록원)

개봉관과 재개봉관으로 나누기도 한다. 멀티플렉스가 생기기 전, 디지털 영사 방식이 아닌 필름으로 영사하던 시절 이야기다. 당시 영화 배급 관행은 필름을 영화당 3벌 정도만 풀었다고 한다. 이 세 벌로 서울과 전국 영화관을 커버했다고. 

우선 필름 세 벌을 서울과 주요 도시의 영화관에서 먼저 개봉하고, 이후에 필름을 이어받아 도시 주변부 영화관에서 재개봉하는 방식이었다. 업계에서는 개봉 순서에 번호를 붙여 1번관(개봉관), 2번관(재개봉관), 그리고 3번관, 4번관, 5번관 등으로 구분하기도 했다. 

3번관 이후는 대중에게 ‘동시상영관’으로 알려진 곳이 많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영화관끼리 서로 확보한 다른 영화를 교차 상영해 두 편의 영화를 제공하는 효과를 얻은 것이다. 당시 회고를 보면 한 편 상영이 끝나자마자 동시상영관 직원들이 자전거를 타고 파트너 영화관에 필름을 전달했다고 한다. 

피카디리극장의 1986년 모습. (출처: designersparty 페이스북)
피카디리극장의 1986년 모습. (출처: designersparty 페이스북)

종로3가의 극장가

서울에서도 종로구와 중구는 개봉관들이 밀집한 곳이었다. 중앙극장, 국도극장, 스카라극장 그리고 명보극장과 대한극장 등. 특히 종로3가 네거리에는 한국 영화사에 기록될만한 영화관 세 군데가 있었다. 단성사와 피카디리극장, 그리고 서울극장이다.

단성사는 1907년에 개관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관이었다. 주변에 중고등학교가 많아 학생 관객이 많이 찾았다. 1959년에 개관한 피카디리극장은 영화 ‘접속’의 배경으로 나올 만큼 영화와 영화관을 상징하는 곳이었다. 피카디리 앞 광장에는 유명 영화인들의 핸드프린팅이 있었는데 지금은 영화관 로비로 옮겼다.

두 영화관은 돈화문로를 경계로 마주 보며 자리했고 서울극장은 종로 큰길을 건넌 곳에 자리했다. 거리상으로 매우 가까운 곳이다. 그래서 영화가 보고 싶을 때 종로3가를 떠올리는 서울 시민이 많았다.

“일단 종로3가에 가서 어떤 영화가 걸렸는지 봅니다. 그래서 보고 싶은 영화를 골라 들어가곤 했지요.”

1980년대에 서울에서 대학을 다닌 어느 50대의 말이다. 그는 서울극장이나 단성사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보러 갔는데 표를 구하지 못해 피카디리로 간 적도 있다고 했다. 때로는 웃돈을 주고 암표를 구하기도 했다고. 

예전에는 지금과 달리 단관 개봉, 즉 한 편의 영화를 한 곳의 영화관에서만 개봉하는 게 관행이라 흥행을 가늠하는 것도 극장 앞만 지키면 가능했던 시절이었다. 전산으로 관객 숫자를 집계하는 건 한참 뒤 이야기다.

영화 관계자들의 회고에 의하면 1980년대까지만 해도 단성사에서 표를 끊으려는 줄이 종묘 인근까지 늘어나 경찰이 출동한 적이 많았다고 한다. 서울극장과 피카디리극장에서 개봉하는 영화의 관계자들은 영화관 맞은편 2층 카페에서 매표소를 지켜보며 흥행을 점치기도 했다고. 

(2021. 08. 25) 단성사가 있던 자리에 들어선 건물. 귀금속 관련 업종이 입주한 건물이 되었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8. 25) 단성사가 있던 자리에 들어선 건물. 귀금속 관련 업종이 입주한 건물이 되었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8. 25) 옛 단성자 자리에 남은 흔적.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8. 25) 옛 단성자 자리에 남은 흔적.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우리나라 영화 흥행의 중요한 순간들을 기억하는 종로3가의 극장가는 예전 같지 않다. 단성사는 2003년도에 복합상영관을 신축했으나 2015년에 폐관했다. 건물 지하에 예전 단성사를 기억하는 공간이 있지만 지금은 운영하지 않는다.  건물 앞 구석에 옛 흔적을 기록한 표지석만 남았다.

피카디리극장은 2004년도에 복합상영관 겸 상가로 신축되었고, 지금은 ‘CGV피카디리1959’ 간판을 내걸었다. 영화관은 건물 지하에서 운영 중이다. 

단성사와 피카디리극장 모두 귀금속 관련 업종이 입주한 건물이 되었다. 근처 상권 자체가 종로구에서 지정한 ‘귀금속·보석산업 특구’이다.

서울극장은 1958년에 개관한 세기극장을 인수해 1978년에 이름을 바꿔 오픈했다. 이전 시절까지 합치면 60여 년을 영화관으로 대중과 호흡했지만 서울극장은 돌아오는 31일에 마지막 영화 상영을 예고했다. 

(2021. 08. 25) 옛 피카디리극장을 허물고 CGV피카디리1959와 귀금속 관련 업종이 입주한 건물이 들어섰다. 오른쪽 건물 2층 카페는 영화 '접속'에 나왔었다.(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8. 25) 옛 피카디리극장을 허물고 CGV피카디리1959와 귀금속 관련 업종이 입주한 건물이 들어섰다. 오른쪽 건물 2층 카페는 영화 '접속'에 나왔었다.(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8. 25) 유명 배우들의 핸드프린팅. 원래 옛 피카디리극장 건물 앞 광장에 있었다. 지금은 새로 지은 건물 지하 4층의 극장 로비에 있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8. 25) 유명 배우들의 핸드프린팅. 원래 옛 피카디리극장 건물 앞 광장에 있었다. 지금은 새로 지은 건물 지하 4층의 극장 로비에 있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멀티플렉스와 OTT의 시대 영화관의 운명

1998년에 개관한 ‘CGV강변11’은 우리나라 최초의 멀티플렉스 영화관으로 꼽힌다. 하지만 서울극장을 그 시초로 보기도 한다. 1989년 서울극장은 하나였던 스크린을 여러 개로 개조해 복층형 멀티플렉스의 초기 단계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시도에도 대기업들의 콘텐츠산업 수직화에는 버틸 여력이 없었나 보다. 서울극장 측은 폐관을 앞두고 그동안 받은 대중의 사랑에 보답하는 행사를 하고 있다. 31일까지 진행되는 ‘고맙습니다 상영회’ 이벤트를 통해 평일에 100장, 주말에 200장의 티켓을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2021. 08. 25) 서울극장 로비. 매점에서 티켓을 함께 팔고 있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8. 25) 서울극장 로비. 매점에서 티켓을 함께 팔고 있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8. 25) 서울극장 로비에서 관객들이 상영회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8. 25) 서울극장 로비에서 관객들이 상영회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폐관을 며칠 앞둔 어느 오전 서울극장에 가보았다. 11시가 안 된 시각이었지만 이날 분 상영회 티켓은 이미 마감되었다. 로비에는 상영 시간을 기다리는 관객이 여럿 있었다.

“극장이 없어진다니 아쉬워서 친구들과 나와봤어요. 상영회 티켓은 못 구했지만 나온 김에 다른 영화라도 보려 합니다. 젊었을 때 와보고 처음인 거 같아요.”

종로에서 고등학생 시절을 보낸 60대 일행들의 말이다. 그러고 보니 기자도 서울극장에서 영화를 감상한 건 20년이 넘은 것 같다. 그동안 집 근처나 직장 근처 멀티플렉스를 주로 찾았었다. 대기업 계열 아닌 영화관들이 버티기 어려운 업계 현실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만약 서울극장이 인간의 말을 알아듣는다면 인사를 전하고 싶다. “그동안 수고 많았습니다. 그리고 감사했습니다”라고.

한편 서울극장은 문을 닫지만 같은 건물에 입주한 ‘다양성 영화’ 상영 공간인 ‘인디스페이스’와 ‘서울아트시네마’는 계속 운영한다. 

(2021. 08. 25) 서울극장과 같은 건물에 입주한 다양성 영화 스크린은 계속 운영한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8. 25) 서울극장과 같은 건물에 입주한 다양성 영화 스크린은 계속 운영한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 참고 자료

이길성 이호걸 이우석, 《1970년대 서울의 극장산업 및 극장문화 연구》, 영화진흥위원회

김황재, 〈 한국영화 배급시장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에 대한 고찰〉,  영상문화콘텐츠연구

송영애, 〈1960~70년대 서울 개봉관 지형과 변화 연구〉, 로컬리티 인문학

양영철, 〈국내 멀티플렉스의 현황과 시설변화 추이〉, 영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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