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쓰레기 집합장에서, 문화 콘텐츠의 중심지로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지난 1일 월드컵대교가 개통됐다. 한강의 31번째 교량으로 서울 마포구 상암동과 영등포구 양평동을 연결한다. 왕복 6차로 길이 1980m인 월드컵대교는 교각 사이가 넓어 큰 배가 지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다리 중앙에는 약 100m 높이의 주탑도 있는데 한강 교량 중 가장 높다. 

​​2021년 9월1일 개통된 월드컵대교.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8. 30) 2021년 9월1일 개통된 월드컵대교.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월드컵대교는 개통되기 전부터 유명세를 치렀다. 지난 7월 BTS가 미국 방송에 출연해 히트곡인 ‘버터(Butter)’ 라이브 공연을 펼쳤는데 그 배경이 월드컵대교였다. BTS는 어두운 밤 화려한 조명이 비치는 다리 위에서 춤추고 노래했다. 세계 곳곳 아미(ARMY, BTS 팬클럽)들이 열광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BTS 덕분에 전 세계에 아름다운 다리로 낙인된 월드컵대교는 한때 골칫거리였다. 착공부터 완공까지 11년 걸릴 만큼 우여곡절을 겪었다. 한강 위 짓다 만 교량은 한동안 흉물 취급을 받았고, 개통된 월드컵대교와 연결된 상암동도 한때는 사람들이 접근하기 꺼리던 동네였다.

지난 7월 월드컵대교에서 BTS가 히트곡 '버터'를 라이브 공연했다. (사진: 빅히트뮤직)
지난 7월 월드컵대교에서 BTS가 히트곡 '버터'를 라이브 공연했다. (사진: 빅히트뮤직)

난초가 어우러진 곳이 쓰레기 산으로

서울 마포구 상암동을 지도로 보면 한강과 면한 구석에 ‘난지도(蘭芝島)’라는 지역이 있다. 현재 ‘노을공원’과 ‘하늘공원’이 자리 잡은 곳이다. 난지도는 원래 한강 지류인 난지 샛강과 한강 사이의 작은 섬이었다. 이름에서 보듯 난초와 갖가지 식물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섬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해발 8m의 난지도는 홍수가 잦았다. 난지도를 키워드로 과거 기사를 검색해 보면 ‘수해’나 ‘익사’ 같은 제목들이 많이 보인다. 그래서 별다른 산업이 발붙이지 못하고 농작물을 소규모로 경작하는 서민들이 자리 잡았다. 이들의 바람은 한강에 제방을 세워 수해 걱정 없이 농사를 짓는 것이었다. 

이들의 바람 때문일까 1977년경 제방 공사가 이뤄졌다. 하지만 난지도는 1978년부터 서울의 온갖 쓰레기가 모이는 처리장이 되었다. 그리고 난지도에는 쓰레기 처리로 돈을 버는 노동자들이 몰려들었다.

쓰레기를 파헤치기 위하여 먹는 사람, 생존의 이유도 목적도 없이 그저 그렇게 구겨넣고 또 끈에 매여 끌려가듯 쓰레기 산으로 올라가 쓰레기를 뒤적거리는 사람들…

‘정연희’의 장편 소설 《난지도》에 나오는 대목이다. 쓰레기 매립장이 된 난지도와 난지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묘사했다. 당시 난지도를 기록한 르포를 보면 주민 중 “95% 이상이 쓰레기업에 종사”했다. 그들 중에는 “전과자가 많고 대개 전부터 각 지역에서 쓰레기를 취급하던 재건대 출신”이 많다고도 기록했다.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 (출처: 나무위키)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 (출처: 나무위키)

그렇다면 난지도에 쓰레기가 모이기 전에는 어디에다 서울 쓰레기를 버렸을까. 구의동, 장안평, 개포동, 하일동, 목동 등이었다. 이 지역은 현재 번듯한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섰지만 1960년대와 70년대만 하더라도 서울 주변부였다. 그곳에서 쓰레기를 줍고 분류하고 처리하던 사람들이 난지도에 모여 ‘도시광산’을 이뤘다. 쓰레기는 자원이었다.

쓰레기는 누군가에게 버림받았지만 누군가에게는 일용할 양식을 주는 귀한 재물이었다. 유재순의 르포르타주 《난지도 사람들》은 1985년 당시를 그린다. 

요구르트병, 막걸리병, 부드러운 플라스틱이나 비닐 등과 고철, 중철, 신철로 나뉘는 쇠붙이 종류, 고무와 구리, 양은, 순면의 헝겊은 난지도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곧 쌀이나 다름없는 아주 중요한 에너지였다.

난지도에는 1978년부터 1993년까지 서울 시민이 버린 온갖 쓰레기가 쌓였다. 원래 해발 8m의 낮은 섬이었으나 나중에는 해발 100m의 쓰레기 산이 되었다. 한강을 지나다 보면 상암동 쪽에 보이는 두 개의 낮은 산이 과거 쓰레기 매립장 흔적이다.

(2021. 08. 30) 한강 건너에서 바라본 노을공원(왼쪽)과 하늘공원.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8. 30) 한강 건너에서 바라본 노을공원(왼쪽)과 하늘공원.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쓰레기 섬을 월드컵공원으로

지금의 상암동에 익숙한 사람들은 과거 쓰레기가 산을 이뤘던 시절을 상상할 수 있을까. 성산대교 근처만 가도 쓰레기 냄새가 났었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에는 여의도와 목동에서도 그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강북 강변도로와 쓰레기 매립장 사이에는 나무를 심어서 시각적으로 가릴 수는 있었겠지만 공기를 타고 경계를 넘는 악취는 막을 수 없었다.

난지도에 더는 쓰레기를 받을 수 없게 되자 서울시는 그 대책으로 생태공원으로 만든다. 물론 인근에서 2002 월드컵 경기가 열리기 때문에 그와 연계한 계획이었다. 9천2백만 톤의 쓰레기가 쌓인 곳이 복원 과정을 거쳐 4개의 공원으로 이뤄진 월드컵공원이 된다. 그곳에 ‘노을공원’과 ‘하늘공원’이 있다. 상암동 한강 변 낮게 솟은 산처럼 보이는 곳이다. 

(2021. 08. 30) 노을공원 산책로.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8. 30) 노을공원 산책로.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8. 30) 노을공원 산책로.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8. 30) 노을공원 산책로.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두 공원을 한강에서 바라보면 저곳이 한때 쓰레기 산이었나 싶을 정도로 많이 변했다. 공원을 직접 걸어보면 더욱 그렇다. 숲이 우거지고 산새가 지저귄다. 심지어 꿩도 돌아다니고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인 맹꽁이도 산다. 

하지만 잘 정비된 산책로를 걷다 보면 발밑에 쓰레기가 묻혀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곳곳에 ‘메탄가스 포집’ 시설이 있기 때문이다. 쓰레기 매립장을 공원으로 만들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지반 유실과 붕괴 방지’ 그리고 ‘침출수와 메탄가스’ 관리였다. 

(2021. 08. 30) 메탄가스 포집시설. 노을공원에는 이런 시설이 많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8. 30) 메탄가스 포집시설. 노을공원에는 이런 시설이 많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8. 30) 노을공원의 매립가스 이송관로.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8. 30) 노을공원의 매립가스 이송관로.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노을공원과 하늘공원 주변에는 메탄가스를 관리하고 활용하는 재생에너지 시설이 들어섰다. 여기서 포집한 메탄가스를 열에너지로 만들어 월드컵 경기장과 상암동, 성산동의 아파트 단지로 보낸다. 침출수는 처리공정을 거쳐 한강으로 방류한다.

쓰레기가 쌓인 곳에는 ‘상부복토’와 ‘사면안정화’ 과정을 거쳤다. 그 위에다 숲을 조성했다. 노을공원에는 서울시는 물론 여러 기업과 각종 시민 단체들도 나무를 심었다. 그중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추모의 숲’이라 쓰인 팻말이 유독 눈에 남는다. 맑은 공기를 선사하는 숲이 되라는 염원이 담긴 듯했다.

(2021. 08. 30) 노을공원의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추모의 숲.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8. 30) 노을공원의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추모의 숲.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두 공원의 정상은 넓게 펼쳐졌다. 노을공원에는 야영장이 들어섰고 하늘공원은 억새밭으로 유명하다. 한때 사람들이 코를 찌푸리며 인상을 짓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관광객들이 찾고 싶은 곳이 되었다.

밤이면 노을공원 정상에서 석양은 물론 도시의 야경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별도 볼 수 있다. 그만큼 밤이면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곳이다. 노을공원 입구 '노을별누리'에서 별 관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가을은 목성과 토성이 잘 보이는 계절이다.

(2021. 08. 30) 노을공원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8. 30) 노을공원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8. 30) 노을공원 정상의 야영장.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8. 30) 노을공원 정상의 야영장.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전 세계의 관심이 쏠리는 상암동 방송가

옛 난지도를 포함하는 상암동은 방송가가 되었다. KBS, MBC, SBS 등 지상파는 물론 JTBC, CJ E&M, 교통방송 등 여러 방송사가 입주했다. 한때 여의도가 방송가였다지만 지금 방송가의 명성은 상암동으로 넘어오는 모양새다. 

방송가라는 분위기 탓일까 상암동 거리는 젊어 보인다. 강남이나 광화문 혹은 여의도 같은 사무실 밀집 지역과 비교해 자유로운 분위기다. 하지만 교통은 좀 불편한 듯하다. 지하철역은 중심지에서 멀고 차를 이용해도 접근성이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이번 월드컵대교 개통이 상암동으로의 접근이 가까워지는 효과가 있을까. 

아무튼 상암동 거리를 지나다 보면 쓰레기 매립장이었던 시절은 상상할 수 없다. 전 세계로 콘텐츠가 퍼져나가는 곳이 되었으니까. 한때 서울에서 버린 모든 것들이 모인 곳이었지만 지금은 전국은 물론 전 세계의 관심이 몰리는 곳이 되었다.

(2021. 08. 30) 상암동 방송가를 상징하는 조형물.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8. 30) 상암동 방송가를 상징하는 조형물.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 참고 자료
정연희, 《난지도》, 신아출판사
유재순, 《난지도 사람들》, 글수레
서울연구원, 〈2014 경제발전경험모듈화사업: 난지도 생태공원 복원〉, 서울특별시
임태훈, 〈 난지도가 인류세에 묻는 것들〉, 문화과학
최병천, 〈난지도 리포트-난지도 사람들의 생존을 위한 삶〉, 새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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