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한 팩트체크가 필요한 ‘최초’, ‘최대’, 그리고 ‘최고’.

한때 농경 국가였던 우리나라는 공업 국가가 되며 도시화를 겪었다. 도시화는 옛것을 그냥 허물고 새것을 급히 세우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사라져가는 것이 도시에는 많다. 한때는 소중한 보금자리나 일터였던 곳이, 혹은 피와 땀이 담긴 곳들이 개발을 명목으로 묻히거나 버려졌다. <도시탐구>는 언젠가 누군가는 그리워하고 궁금해할 지금은 사라지거나 희미해진 그 흔적들을 답사하고 기록해 나갈 예정이다. -편집자주-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얼마 전 한 기사에 댓글이 달렸다. “일산호수공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호수공원이지 최대 호수공원은 세종에 있죠.” 기자가 연재하는 ‘도시탐구’에서 일산을 다룬 기사에 대한 지적이었다. 

기자는 기사에서 일산호수공원이 “다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인공호수로 기록되었다”라고 썼고, 제목을 “가장 큰 인공호수 품은 일산...”이라고 달았다. 

결론은, 독자의 지적이 옳았다. 일산호수공원에는 30만㎡의 인공호수가 조성되었고, 세종호수공원에는 32만㎡의 인공호수가 조성되었다. 

기자는 어떤 과정으로 기사를 썼는지 되돌아보았다. 오류를 정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잘못된 근거를 토대로 기사를 쓰게 되었는지 알아내어 같은 오류를 다시 범하지 않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세종호수공원. (출처: 나무위키)
세종호수공원. (출처: 나무위키)

오류를 찾아서

기자는 ‘도시탐구’ 연재를 위해 문헌 자료를 토대로 기초 조사부터 한다. 문헌은 크게 세 종류를 이용한다. 관련 도서와 논문, 그리고 보고서. 

만약 청계천을 기사 소재로 잡았다면 우선 청계천을 다룬 책을 구해 읽는다. 다음에는 청계천을 연구한 학술 논문을 살펴본다. 이때 사회학자, 건축학자, 공학자, 예술가 등 다양한 분야의 시각이 담긴 논문들의 초록을 검토해 필요한 논문을 찾는다. 보고서는 정부나 지자체 혹은 기업 등 누구의 의견을 대변하는지 고려해 참고한다. 

이번 기사의 경우 일산 신도시개발에 참여한 ‘안건혁’이 쓴 《분당에서 세종까지》와 도시문헌학자 ‘김시덕’이 쓴 《서울선언》, 《갈등도시》, 《대서울의 길》 등을 참고했다. 일산신도시를 다룬 논문은 많았지만 기사에 참고할 논문은 찾지 못했다. 보고서도 마찬가지였다. 현장 답사에 비중을 두었던 기사였다.

참고 도서 중 안건혁의 책에 일산 호수공원 조성 과정이 나온다. 기자는 “일산의 호수공원은 그 면적이 무척 넓어 총면적 103만 4000㎡, 호수 면적 30만㎡에 이른다.”라는 구절을 보고 관련 키워드로 인터넷을 검색했다. 일산호수공원이 “우리나라 최초”와 “우리나라 최대”라고 강조한 기사와 인터넷 문서들이 기자의 눈에 띄었다.

거기서 몇 발자국 더 갔어야 했다. 크로스 체크를 해야 했는데 그러지 않은 게 오류라는 불상사를 일으켰다. 

1996년에 개장한 일산호수공원은 2012년까지는 우리나라 최대 인공호수를 보유한 호수공원이었다. 하지만 세종호수공원이 2012년에 부분 개장하고 2013년에는 완전 개장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인공호수를 가진 호수공원이 바뀐 순간이었다. 

기자는 게을렀음에 반성한다. 한편으로는 인공호수의 정의와 용례를 정확히 짚어야 할 필요도 느꼈다.

인공호수는 무엇인가?

인공호수라는 단어는 호수에는 사람의 힘으로 만든 호수가 있고, 그렇지 않은 자연호수가 있다는 의미이다. 생성 원인에 따라 호수를 구분한 것이다.

자연호수로는 석호(潟湖)가 있다. 과거에는 만(灣), 바다가 육지 속으로 쑥 들어온 곳이었다가 퇴적 작용 때문에 바다와 연결이 끊겨 호수가 된 곳을 말한다. 동해에 가면 경포호, 송지호, 영랑호 등 바닷가 근처에 형성된 석호를 볼 수 있다.

화산 활동으로 생겨난 화산호(火山湖)도 자연호수이다. 대표적인 화산호로는 ‘칼데라호(Caldere lake)’가 있는데 화산이 분출될 때 꼭대기가 폭발되어 없어지거나 꺼져서 생긴 호수를 말한다. 백두산 천지가 칼데라호다. 반면 분화구에 물이 괴어 지름 1km 이하의 호수가 된 곳을 ‘화구호’라고 한다. 한라산 백록담이 화구호다.

백두산 천지. 화산 활동으로 호수가 된 칼데라호이다. (출처: 픽사베이)
백두산 천지. 화산 활동으로 호수가 된 칼데라호이다. (출처: 픽사베이)

인공호수는 특정 목적을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호수를 말한다. 댐이나 방조제 등으로 물길을 막거나 가두어 만든다. 오래전에는 농업용수 조달을 위해 만들었지만 오늘날에는 수력 발전과 홍수조절을 위해 만들기도 한다. 때론 간척사업 때문에 방조제로 바다를 막아 호수가 되기도 하는데 시화호가 대표적이다.

기자는 30여 년 전 운전면허를 따자마자 아버지 차를 끌고 포천의 ‘산정호수’에 드라이브를 갔다. 자가용 시대에 들어서며 교외 드라이브 코스로 인기 있던 곳이다. 산정(山井)이라는 이름처럼 산 위에 우물 같은 호수가 있었다. 규모도 크고 주변 경관도 아름다웠는데 놀라운 점은 일제강점기에 농사용 저수지로 축조된 인공호수라는 사실이었다. 

잠실의 석촌호수는 원래 한강의 물길이었다. 한강의 섬이었던 잠실은 1970년대 초에 남쪽으로 흐르던 물길을 막아 육지가 되었다. 예전에 흐르던 물길의 흔적이 석촌호수로 남았다. 

(2021. 06. 07) 잠실 석촌호수. 한강 물길을 막아 호수가 되었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6. 07) 잠실 석촌호수. 한강 물길을 막아 호수가 되었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이렇듯 우리가 접하는 호수들이 인공호수인 경우가 많다. 한강 등 우리나라의 강을 따라 축조된 댐들은 거대한 인공호수이기도 하다. 소양호, 충주호, 대청호가 대표적이다. 면적보다는 저수 용량으로 그 규모를 표현한다. 소양호는 29억t, 충주호는 27억 5000t, 대청호가 15억t이다. 내륙의 바다라는 표현과 어울리는 규모다.

그런 면에서 “최대 인공호수”라는 표현을 일산호수공원이나 세종호수공원에 쓰면 틀린 표현인 듯하다. ‘최대 호수공원’ 혹은 ‘최대 인공호수공원’이라고 써야 맞는 표현일 것이다. 

1990년대 초반 신도시개발 당시 관계자들은 택지 개발은 물론 공원 등 녹지 조성도 염두에 두었다. 그 결과 일산에 인공적으로 조성한 호수공원이 들어섰고, 다른 신도시에도 인공호수공원이 들어선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다른 신도시와 차별이 중요했던 지자체와 부동산 관계자들이 일산호수공원을 “우리나라 최초”라거나 “우리나라 최대”라고 내세우지 않았을까. 

언론이 이를 받아 썼을 것이다. 그러한 기사들을 각종 인터넷 문서들이 받아 썼을 것이고. 어쩌면 세종시에 호수공원이 들어서기 전까지는 맞는 표현이었을지도 모른다. 박제된 과거의 기록과 게으른 타성이 조화를 이룬 오류였다.

‘최초’, ‘최대’, ‘최고’의 유혹에 빠지기 전에

남들보다 앞서 뭔가를 최초로 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만약 남들이 따라서 하면 그 뭔가는 원조가 되니까. 남들보다 큰 무엇을 만들었다는 것 또한 자랑할 만하다. 하지만 경쟁심을 유발하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더 큰 무엇을 만들고 싶다는 유혹에 빠지게 할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그 큰 무엇을 들여다보면 그것이 커진 이유를 알 수 있다. 만약 호수공원이라면 인근 택지와 녹지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혹은 그 호수로 편입된 옛 저수지나 유입되는 자연 하천의 용수량에 따라 규모가 결정된다. 그 크기로 조성할 수밖에 없는 주위 환경이 있는 것이다.

우리가 자주 쓰는 ‘최초’, ‘최대’, ‘최고’라는 명사에는 그 뒤에 오는 문장을 설명하는 많은 사연을 담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연유에 다가가기보다는 그저 ‘최초’, ‘최대’, ‘최고’가 주는 어감에 함몰될 때가 많다. 그래서 흔한 감탄사처럼 쓰이는지도 모르겠다. 신뢰감이 필요한 단어들인데도.

한편 인터넷이라는 바다에 뜬 기사는 수정하거나 지우지 않으면 서버가 살아있는 한 영원히 박제된다. ‘최초’, ‘최대’, ‘최고’라는 키워드를 쓰고픈 유혹에 빠질 때 몇 걸음 더 들어가는 신중함이 필요한 이유다.

 

 ※ 참고 문헌

안건혁 《분당에서 세종까지》, 한울

박치현 《한반도의 댐》, 한국학술정보

경기개발연구원 《경기도 인공호수의 수질개선과 효과적인 관리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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