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변화되고 확장되는 일산 신도시를 가다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일산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신도시다. 정부는 1989년 서울의 주택 가격을 안정시키고 주택 공급을 확대하기 위해 ‘성남시 분당동 일대 540만평’, ‘고양군 일산읍 일대 460만평’ 규모의 주택도시 건설을 결정했다. 

정발산 공원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일산 신도시의 1994년 모습. (출처: designersparty 페이스북)
정발산 공원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일산 신도시의 1994년 모습. (출처: designersparty 페이스북)

분당과 일산은 서울에서 가까웠지만 외딴 시골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분당은 서울 방향 경부고속도로 거의 끝자락에 있는 비닐하우스 많은 농촌 마을이었고, 일산은 휴전선과 가까운 일선 마을이었다. 일산은 특히 1980년대에 서울에서 시위가 벌어지면 경찰이 체포한 가담자들을 경찰 버스, 일명 닭장차에 실어다 버린 곳이기도 했다. 

그런 장면은 1980년대를 다룬 드라마와 영화에서 간혹 나온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데모를 하다 잡힌 보라(유혜영 분)와 영화 <1988>에서 경찰의 불법 구금에 항의하는 연희(김태리 분)를 체포해 실어간 곳이 경기도 파주와 고양이었다. 지금의 일산 근처다. 그만큼 서울에서 먼 곳이었다.

군사 도시에서 신도시로

경의선 열차가 지나는 고양과 파주는 예로부터 교통의 요지였고 경제적으로도 부유한 지역이었다. 상업이 발달한 개성과 수도인 서울을 잇는 경로에 자리했기 때문이다. 고양과 파주는 이런 지위를 6·25전쟁 전까지 누렸다. 해방 후 경기도 땅 개성은 38선 이남에 있었다. 

(전쟁 후) 서울과 개성은 서로 다른 국가의 도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파주와 고양은 교통의 요지가 아니라 한국의 최전방 지역이 되었고, 군사 기지의 배후지가 되었습니다.

도시문헌학자 김시덕이 쓴 《대서울의 길》의 한 대목이다. 1980년대만 해도 차량을 이용해 서울에서 고양이나 파주로 가려면 통일로밖에 없었다. 당시에 이 도로를 이용한 기억이 있는 사람들은 곳곳에 있었던 검문소와 대전차 콘크리트 방어 시설들을 기억할 것이다.

그래서 이 지역 중심에 있는 일산의 신도시 개발 계획을 군 일각에서 반대했다고 한다. 6공화국은 여전히 군 출신들이 요직을 차지한 군사 정권이었고 전방 지역에 군 시설이 아닌 대단위 아파트 단지를 짓는다니 안보에 문제 있다고 반발한 것이다. 

이 갈등을 해결한 것은 당시 대통령인 노태우였다. 지난 26일에 사망한 그는 북방 정책 같은 긴장 완화 정책을 자기의 치적으로 삼고자 했다. 일산 신도시 개발도 그 목적으로 볼 수 있다. 노태우는 이 지역에 주둔한 9사단의 사단장이었던 경험을 살려 군과의 마찰을 정리했다고 전해진다.

한편 신도시 건설을 찬성하는 조건으로 군 측에서는 다양한 요구를 했다고.

국방부는 또한 몇 가지 우스꽝스러운 요구를 해왔는데 북서쪽 끝에 (내 기억에 따르면) 폭 50m 정도의 수로를 파고 물을 채워서 적의 진입을 막아 달라는 것 하나와 또 하나는 북서쪽에 건설하는 아파트는 고층으로 해서 북서 방향을 길게 일자 배치를 한 다음 옥상에 고사포대를 설치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일산 신도시 개발 계획에 관여한 안건혁이 쓴 《분당에서 세종까지》에 나오는 대목이다. 당시 군이 일산 일대를 어떻게 바라봤는지 잘 설명하고 있다. 개발 당사자의 회고가 아니더라도 일산 신도시 개발이 어느 정도 군사적 방어 용도가 있다는 소문은 세상에 널리 퍼져 있다.

(2021. 10. 25) 일산의 아파트 단지.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10. 25) 일산의 아파트 단지.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안건혁의 회고처럼 일산 신도시 일부 아파트 단지는 일자로 길게 늘어서 있고, 도심 외곽에는 해자로 쓰일 수 있는 인공 하천도 있다. 

그 아파트 단지에 가면 총안구가 설치된 것으로 의심되는 아파트 복도가 있고, 단지 상가도 유개호 모양으로 건설되었다.

일산 답사에 함께한 여행작가 지일환도 “냉전 시대 동독 드레스덴 중심가에 일자로 건축된 (유사시 방어시설인) 건물군이 연상된다”고 했다. 

(2021. 10. 25) 일산의 대화천. 배수로 기능도 하지만 해자 역할도 한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10. 25) 일산의 대화천. 배수로 기능도 하지만 해자 역할도 한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이산포로 가는 큰길 옆으로 흐르는 대화천은 신도시 개발 당시에 만든 콘크리트 배수로였다. 하지만 해자(垓字)이기도 했다. 도심과 외곽을 구분하고 유사시 군사적 방어 기능도 갖는다. 대화천은 인공 하천이지만 수목이 성장하며 물새가 날아들어 생태하천으로서도 가치가 있는 공원이 되었다.

가고 싶은 곳 일산

일산에 살지 않는 사람들에게 일산은 즐길 곳이 많은 도시로 알려졌다. 특히 1997년부터 개최되는 꽃 박람회는 서울뿐 아니라 전국에서 관람객이 찾아오는 축제가 되었다. 정식 이름은 ‘고양 국제 꽃 박람회’이다. 고양시 호수공원, 즉 일산 호수공원에서 열린다.

1990년대 초반의 일산 호수공원. (출처: designersparty 페이스북)
1990년대 초반의 일산 호수공원. (출처: designersparty 페이스북)

일산 신도시 개발 계획에 관여한 안건혁에 따르면 호수공원이 지금은 일산의 대표적 명소가 되었지만 원래는 “신도시 대상지의 모양이 불규칙해서 생겨난 자투리땅에 불과했다”고 한다. 

당시 설계자들은 일산 신도시가 장항동 너머 한강 변까지 확장될 것을 염두에 두고 신도시 중앙에 자리할 공원으로 디자인했다. 하지만 호수공원까지만 개발되어 위치상 도심 끝자락에 자리한 공원이 되었다고. 다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인공 호수공원로 기록되었다.

(2021. 10. 25) 일산 호수공원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인공 호수이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10. 25) 일산 호수공원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인공 호수이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킨텍스는 우리나라 대형 전시장을 대표한다. 코엑스가 한때 대형 전시장 역할을 도맡았지만 킨텍스는 주차와 주변 연계성 등 도심 외곽에 자리한 장점을 최대한 살려 입지를 굳혔다. 원마운트는 복합위락시설이다. 인근에 방송 시설이 있고 호수공원과 연결되는 가로수길도 있어 사람들이 많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여기서 원마운트(One Mount)는 일산(一山)을 의미한다. 일산에는 '한뫼'라는 이름을 가진 시설도 많이 보이는데 이 역시 일산을 뜻한다.

그리고 일산은 경기도 고양시의 일산서구와 일산동구를 일컫는다. 분당이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를 가리키는 것처럼. 하지만 일산에 살지 않는 사람들은 인근 고양시 덕양구와 파주시까지 일산 권역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일산 주민들은 철저히 구분하지만. 

백마역과 애니골의 흔적

기자에게 일산에 대한 가장 오랜 기억은 백마역과 관련 있다. 1980년대 중반 신촌역에서 백마역까지 가는 경의선 열차 노선은 청년들에게 인기 있었던 당일 여행 코스였다. 신촌역에서 출발한 기차를 타면 모래내 즈음부터 창밖으로 시골 풍경을 볼 수 있었다. 

백마역 인근도 마찬가지였다. 기찻길 옆으로 농촌 정경이 펼쳐졌고 옛 마을 주변으로는 ‘화사랑’ 등 선술집들이 있었다. 그곳에 데이트를 즐기는 젊은 커플도 많이 찾았지만 답답한 세상을 막걸리로 푸는 학생도 많이 찾았다. 기자도 그 한구석에서 친구들과 세상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2021. 110. 25) 백마역 인근 철길 건널목을 지키는 최승영 반장.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110. 25) 백마역 인근 철길 건널목을 지키는 최승영 반장.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10. 25) 애니골의 '백마 화사랑'. 지금은 교육문화공간으로 쓰인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10. 25) 애니골의 '백마 화사랑'. 지금은 교육문화공간으로 쓰인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년 10월 어느 날 찾은 백마역과 그 주변은 싹 바뀌어 있었다. 아담했던 옛 기차역은 커다란 역사로 새로 지었고 인근의 농촌은 아파트 단지로 변해버렸다. 다만 철길은 그대로였다. 철길 사이 마을들을 이어주던 건널목도 그대로였다. 그 너머에 애니골이 있었다. 아기자기한 카페와 식당들이 모인 동네다.

애니골 중심에는 ‘백마 화사랑’도 자리했는데 1980년대에 유명했던 그 선술집이 아니라고 한다. 그곳은 1990년대 초반 일산 신도시 개발 과정에 헐렸다고. 현재는 ‘교육문화공간’으로 쓰이는 공적 시설이 되었다.

일산 답사를 마치며 기자는 백마역 인근 철길 건널목을 지키는 최승영 반장과 서로가 기억하는 일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철길 인근까지 개발될 텐데 그렇게 되면 건널목은 아마도 지하로 들어가 사라지지 않을까요." 

그의 말이 아니더라도 일산은 계속 변화되고 확장되고 있음을 느끼게 한 답사였다.

"땡땡" 소리를 내며 차단기가 내려오고 열차가 지나갔다. 무개화차에 실린 탱크를 보니 이 지역이 접경 지역임을 알게 한다.

백마역 인근을 지나는 전차를 실은 열차. 일산은 신도시이지만 접경 도시임을 알게 한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백마역 인근을 지나는 전차를 실은 열차. 일산은 신도시이지만 접경 도시임을 알게 한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알립니다
해당 기사 제목([도시탐구] ‘가장 큰 인공호수’ 품은...)에 대해 ‘우리나라의 최대 인공호수는 세종호수공원에 있다’는 독자 의견이 있었습니다. 이에 관련 내용을 수정하고 후속으로 팩트체크 기사를 다뤘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관심에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다양한 의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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