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가까운 분당의 주택 단지
산자락을 허무는 개발 때문에 녹지가 줄어드는 부작용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기자는 분당에 산다. 친교를 나누는 자리에 가면 어디에 사는지 물을 때가 있다. 분당에 산다고 대답하면 상대방은 이렇게 되묻곤 한다.

“어느 아파트에 사세요?” 

기자는 분당에 살지만 아파트에 살지 않는다. 빌라라고도 하는 공동주택에 산다. 분당에는 아파트 단지만 있는 게 아니라 단독주택 단지와 빌라 단지도 있다.

(2021. 09. 30) 성남시 분당구 이매동에 옛 마을이 있었음을 알리는 표지석. 분당이 신도시로 개발되기 전에는 전형적인 농촌이었다. 분당은 아파트가 많지만 아파트 아닌 주거 형태도 존재한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9. 30) 성남시 분당구 이매동에 옛 마을이 있었음을 알리는 표지석. 분당이 신도시로 개발되기 전에는 전형적인 농촌이었다. 분당은 아파트가 많지만 아파트 아닌 주거 형태도 존재한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아파트 아닌 분당의 주택

기자는 아파트에서 오래 살았다. 1976년 12월부터 2019년 8월까지, 강남에서 시작해 목동을 거쳐 분당의 아파트에서 살았다. 10살 무렵부터 살았으니 55년 인생의 많은 순간을 아파트와 함께 했다. 

삶의 일부와도 같았던 아파트를 떠난 이유가 몇 가지 있었다. 16년을 함께한 반려견을 떠나 보낸 집이 싫어지기도 했지만 아파트로 둘러싸인 분위기가 너무 답답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분당 불곡산 아래 주택가 분위기가 너무 맘에 들었다. 그곳에 살고 싶어졌다.

물론 익숙한 아파트를 떠나기에는 큰 결심이 필요했다. 하지만 아내의 공감 덕분에 실천에 옮길 수 있었다.

여러 달 시간을 들여 발품을 팔아 맘에 드는 집을 찾았다. 산 바로 아래 위치하고 옥상을 마당처럼 가꿀 수 있는 빌라였다. 이사한 지 2년이 지난 현재 만족도 높은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2021. 09. 30)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의 주택가. 불곡산 자락이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9. 30)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의 주택가. 불곡산 자락이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9. 30) 분당 불곡산 자락 기자의 집 옥상.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9. 30) 분당 불곡산 자락 기자의 집 옥상.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자연 친화적인 분당의 주택 단지

1차 신도시 개발 계획에서 정부는 녹지 비중이 높은 주거 도시를 만들고자 했다. 분당의 경우 총면적의 35.9%를 주거용지로 조성했다. 주거용지를 주택 유형으로 분류하면 단독주택용지가 10%, 공동주택 부지가 18%, 아파트용지가 72%였다.

분당 도시계획 관계자에 따르면 정부 최초 계획에는 공동주택 단지를 만들 계획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도시계획 관계자들이 아파트로만 한 도시의 주택을 짓는 것은 지나치게 단조로운 모습이 될 것이라 지적했다고. 그래서 공동주택 단지들도 함께 개발되었다.

이러한 주택 단지들 일부는 분당의 두 산 아래에 자리한다. 불곡산과 영장산을 오르려면 이들 주택가를 거쳐 올라가야 한다. 아파트 단지는 편의 시설이 다양한 장점이 있지만 산 아래 자리한 주택 단지는 자연 친화적 환경에 장점이 있다. 기자가 40년 넘게 산 아파트를 떠난 가장 큰 이유이다.

(2019. 10. 09)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 불곡산 자락에 걸린 멧돼지 출몰 주의 안내.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19. 10. 09)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 불곡산 자락에 걸린 멧돼지 출몰 주의 안내.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얼마나 자연에 가까우냐 하면 멧돼지를 만날 수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산 아래 주택가에는 멧돼지 출몰을 경고하는 플래카드를 내건 곳이 있었다. 그곳과 가까운 어느 텃밭 주인에게 멧돼지를 보았는지 물어봤다. 

“지난해쯤인가 엽사들이 왔다 간 후로 잠잠하네요. 그 전에는 근처 텃밭을 파헤쳤다거나 등산로에서 목격했다는 소문이 나돌았죠. 지금은 멧돼지가 문제가 아니라 고라니들이 자주 내려와 골치 아파요.”

고라니는 기자도 여러 번 봤다. 뒷산인 불곡산을 오르다 눈을 마주친 적도 있고, 심지어 서재 창문 밖으로 집 근처 산기슭을 오르내리는 고라니를 본 적도 있다.

혹시, 고라니 울음소리를 들은 적 있는가? 언제가 밤에 처음으로 그 소리를 들었을 때 사람 비명인 것으로 착각해 등골이 서늘해진 경험도 있다. 그만큼 분당의 주택 단지는 자연과 가깝다.

(2020. 05. 02) 불곡산에서 만난 고라니.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0. 05. 02) 불곡산에서 만난 고라니.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개발에서 소외됐거나 혹은 생존했거나

신도시로 개발할 당시 분당에 속하는 모든 지역이 택지로 수용된 것은 아니다. 특히 이매촌 아파트 단지 건너편 영장산 아래 이매동은 분당 신도시 입주 이후에도 농촌 정경이 한동안 남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당시 농촌 마을의 자취는 찾을 수 없고 빌라들이 들어섰다. 이 지역 전체를 총괄하는 택지 설계가 없다 보니 도로와 택지 구획이 똑바르지 않고 옛 지형지물이나 옛길 흔적에 따라 구불구불한 구획이 많다.

(2020. 09. 05) 성남시 분당구 이매동의 한 주택. 철거를 앞두고 비어있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0. 09. 05) 성남시 분당구 이매동의 한 주택. 철거를 앞두고 비어있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영장산 어느 등산로 입구에 오래된 주택 한 채가 있었다. 개량 한옥 스타일의 집이었다. 대문 앞에 큰 개 한 마리가 지나가는 등산객들을 무료히 바라보곤 했다. 그러던 작년 어느 날 그 개가 보이질 않았다. 집 안에는 인기척이 있었다.

하지만 그다음 주에 가보니 인기척은커녕 대문에 금줄까지 처져 있었다. 아마도 헐릴 모양이었다.

사진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런데 마침 카메라도 가져오지 않았는데 핸드폰 배터리도 거의 떨어졌다. 결국 몇 장 찍지 못했다.

당시에는 내일이라도 다시 와서 찍으면 되겠지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몇 주 후 다시 가보니 그 집은 사라졌다. 현재는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빌라 건축 현장이 되었다.

(2020. 10. 10) 성남시 분당 이매동. 이 자리에 있던 집이 허물렸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0. 10. 10) 성남시 분당 이매동. 이 자리에 있던 집이 허물렸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9. 30) 옛집을 허문 자리에 새 집이 들어서고 있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9. 30) 옛집을 허문 자리에 새 집이 들어서고 있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분당은 계속 개발 중

분당으로 처음 이사한 20여 년 전에는 농촌 분위기가 남아 있는 마을이 여럿 있었다. 어쩌면 신도시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기도 했지만 그 마을 주민들은 아파트 거주자가 이주해 오기 전 이미 오래전부터 분당에 터 닦고 살던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선주민은 이방인이 되고 이주민이 주인 노릇을 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아마도 판교 거주자나 대장동으로 이주할 사람들은 분당 구시가지(?) 아파트 거주민들을 선주민 바라보듯 하지 않을까.

지난 20여 년 옛 마을들이 차츰 사라지는 모습을 무심코 바라봤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사라진 모습들이 그리웠다. 그 흔적들이 사라지기 전에 기록하지 못한 것이 아쉽기도 했다. 그곳에 그 마을들이 존재했었다는 것은 거기에 살았던 사람들과 지켜본 사람들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추억으로만 남았다. 

(2021. 09. 30) 성남시 분당구 이매동 영장상 아래의 오래된 주택. 아마도 이 동네에 남은 마지막 개량한옥인 듯하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9. 30) 성남시 분당구 이매동 영장상 아래의 오래된 주택. 아마도 이 동네에 남은 마지막 개량한옥인 듯하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영장산의 다른 등산로 입구에도 개량 한옥 한 채가 있다. 아마도 이 동네에 남은 마지막 옛집이 아닐까 싶다. 그 주변을 둘러보면 새로 지은 건물로 즐비하다. 그것들도 예전에는 이 집과 비슷한 형태의 주택이 아니었을까. 이 집의 머지않은 미래가 보이는 듯했다.

분당에 살다 보니 산에도 땅 주인이 따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래전에는 분명 등산로 주변 녹지였지만 공동주택이 건축되거나 등산로였던 곳에 철조망을 치고 지나다니지 못하게 한다. 

아마도 항공 사진으로 지난 몇 해를 비교해보면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금도 영장산 자락 녹지와 택지 경계에서는 뭔가를 건축하거나 분양 안내를 하고 있다. 부동산 개발은 어쩌면 초록색이 사라지는 모습일지도 모른다.

(2021. 09. 30) 분당 영장산 자락의 주택 분양 홍보관.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9. 30) 분당 영장산 자락의 주택 분양 홍보관.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  참고 자료

안건혁, 《분당에서 세종까지》, 한울 아카데미

김시덕, 《서울선언》《 갈등도시》 《대서울의 길》, 열린책들

김재현 등, 〈신도시 단독주택지 토지 이용 패턴 결정요인에 관한 연구〉, 국토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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