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에서 중장년과 노년 세대는 보수적 색채로 그려지곤 하는데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방송에서 예능 장르는 트렌드에 민감하다. 최근 엇비슷한 연애 예능이나 재테크 예능이 많은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대중의 관심이 많이 쏠릴만한 것들을 방송 소재로 삼는다. 예능은 때로 자극적이어서 논란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대중에게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을 관찰하게 함으로써 일종의 대리 경험을 맛보게 하는 긍정적인 면도 조금은 있다.

KBS2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 출연진들. (사진: KBS2 제공)
KBS2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 출연진들. (사진: KBS2 제공)

그런데 중장년이나 노년 세대를 소재로 삼은 예능은 어떨까? 기존 예능이 관찰과 대리 경험을 통해 재미나 정보를 얻게 한다면 이런 예능은 주로 관습화된 세대 관계의 틀, 과거부터 정형화되어 틀에 박힌듯한 세대별 역할을 보여주는 것에 초첨을 맞춘다. 그래서 과거에 매몰된 모습을 보여주거나 보수적 세대 담론을 펼치면서 웃음 포인트를 찾는 것에 머물고 만다.

나도 젊었을 땐 예뻤지...

KBS2에서 방영하는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에는 왕년의 여성 스타들이 출연한다. 박원숙의 귀촌한 시골집에 동료들이 함께 모여 여가를 즐기며 인생 후반전에 관한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것을 콘셉트로 한 이 프로그램은 2017년 추석에 파일럿으로 시작했다.

당시 방송가에서 중년 여성은 주로 토크쇼에 나와 수다를 떠는 등 소비적 혹은 논쟁적 소재로 쓰였었다. 정형화된 ‘아줌마’의 모습을 강조한 것.

그래서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가 관찰 카메라를 통해 실제 모습을 보여주고 진솔한 고민을 털어놓은 것이 대중에게 신선하게 다가갔을 것이다. 그 후 이 프로그램은 정규 편성되었고 2022년 6월 현재 시즌4가 방영 중이다.

방송 콘셉트는 시즌이 변해도 거의 변하지 않았다. 고정 출연진도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활발히 활동했던 왕년의 인기연예인들이 계속 나오고, 초대 손님들도 그에 준하는 이들이 나온다. 

콘셉트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안정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언젠가 본듯한 상황이 반복되곤 한다. 출연진들끼리 서로에게 가졌던 앙금을 털어놓는다는지, 젊었을 때는 다들 예뻤다든지, 혹은 과거의 선택을 후회하는 하소연 말이다. 

물론 이런 상황을 만드는 출연자들은 계속 바뀌지만 반복되는 비슷한 사연은 시청자들에게 기시감에 빠지게 한다. 그래서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를 보는 젊은 시청자들에게 중년은 어쩌면 ‘과거의 추억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이런 아버지 어때요

<갓파더>는 KBS2의 ‘가상의 가족’을 소재로 한 예능 프로그램이다. 전통적 가족 개념을 넘어선 신개념 가족 이야기를 표방해 지난 2021년 10월부터 방영 중이다. 방송 콘셉트는 피가 섞이지 않아도 가족이 될 수 있다는 취지 아래에 선배 세대 연예인과 후배 세대 연예인을 가족으로 짝지어 준다.

KBS2 '갓파더' 포스트. (사진: KBS2 제공)
KBS2 '갓파더' 포스트. (사진: KBS2 제공)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방송 초기에는 부자 관계를 맺어주며 시작했다. 선배 출연진 이순재, 주현, 김갑수가 후배 출연진 허재, 문세윤, 장민호와 부자 관계를 맺었다.

방송사는 짝을 이룬 가상의 부자가 보여주는 재미있는 조화를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관계가 무르익기도 전인 3개월 만에 이순재 부자와 주현 부자는 하차했고 그나마 김갑수 부자만 몇 달을 더 출연했다.

이들이 방송에서 관계를 지속하지 못한 것은 가상의 부자라는 한계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부자 관계를 단순하게 해석해서였을까.

아무튼, 가상이기 때문에 깊은 관계, 혹은 진솔한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다소 관습적인 부자 관계로만 연출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일까 방송으로 연출한 관계, 상황 설정에 따른 연기는 어색해 보이기까지 했다.

특히, 부자 관계를 안일하게 표현한 장면이 있다. 늙은 아버지를 젊게 보이게 꾸미는 것, 그리고 젊은 아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늙은 아버지는 젊은 아들이 이끄는 대로 옷을 입고 머리를 하고는 아들에게 환호하는 대중을 보며 대견해 한다. 역할 놀이가 뻔히 보이는데 대중이 몰입할 수 있었을까?

아무튼, 늙은 아버지 출연진들이 퇴장한 지금 <갓파더>는 말 그대로 예능적 가족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모녀 관계를 맺어주더니 나이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 부자나 모자 관계도 맺어주었다. 그러나 관계성을 보여주기보다는 함께 쇼핑을 하거나 맛집 탐방을 하는 등 트렌드 소비에 머물고 있다. 

그 과정에서 언뜻언뜻 보이는 세대 간 의견 차이를 웃음 포인트로 편집한다. 특히, 후배 출연자의 생각과 행동이 선배 출연자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장면에 초점을 맞춘다. 선배들은 계속 바뀌는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는 나이 많은 세대로,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비치기도 한다.

할머니에게 고민 상담을?

전통적 사회에서는 어른의 역할이 중요했다. 어른의 경험이 생존을 좌우했고 현명한 어른이 가족 사회는 물론 더 큰 사회까지 이끌었다. 특히, 할머니는 밖에서 노동해야 하는 어른들을 대신해 집 안에서 아이들의 양육을 담당했다. 그런 할머니는 생활의 달인이자 경험의 보고이기도 했다. 그래서 아이들이 자라면서 생기는 다양한 고민까지 받아주는 할머니가 많았다.

채널S의 <진격의 할매>는 이러한 전통적 할머니의 모습을 예능에 녹인 프로그램이다. <진격의 할매>는 인생 후배들이 털어놓는 고민을 김영옥, 나문희, 박정수 등 인생 경험 도합 238살의 할매들이 들어주고 그녀들의 경험에 근거해 조언해 준다.

채널S '진격의 할매' 포스터. (사진: 채널S 제공)
채널S '진격의 할매' 포스터. (사진: 채널S 제공)

그런데 <진격의 할매>에 소개되는 고민과 사연들이 평범하지 않다. 때로는 자극적이기까지 하다. 여기서 할매들의 성격이 나온다. 고민을 털어놓는 출연자와 함께 화내고 슬퍼하고 웃어준다. 필요하다면 호통도 친다. 아무리 고민이 특별해도 <진격의 할매>의 국민 할머니들은 인생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을 들려준다.

하지만 할매들은 방송에서 관습 차이, 혹은 세대 차이를 보여줄 때가 많다. 고민자가 더 참았어야 한다거나 고민자의 잘못도 있다는 양비론적 조언으로, 때로는 일방통행식 조언으로 마무리하기도 한다.

방송에 나온 할매들은 대체로 보수적이며 무난한 조언을 내놓는다. 출연자들도 할매들이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며 조언의 질보다는 출연 자체에 의미를 둔다.

그런데 우려되는 점이 있다. 방송사가 프로그램 홍보에 사연의 자극적인 면과 할매들의 극단적인 면을 강조하는 경향이 짙은 점이다. 특히, 예고편에 그녀들이 눈살을 찌푸리거나 역정을 내는 장면이 나오곤 한다. 할매들이 꼰대로 비칠 수도 있는 지점이다.

방송사는 이런 편집 포인트를 홍보 자료로 뿌리고 각종 연예 미디어들은 이를 그대로 받아 기사로 쓴다. 이를 접한 젊은이들이 모든 노년층을 소통이 어려운 꽉 막힌 꼰대로 오해하는 것은 아닌지 염려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렇듯 예능에서 소재로 삼은 중장년층이나 노년층은 과거에 매몰되어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이 많은 데다 트렌드도 쫓아가지 못하는, 심지어는 소통하기 두렵거나 어려운 사람들로 그려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방송이 나와 다르다고, 혹은 우리와 다르게 왜곡되었다고 비난만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젊은층 관점에서 들여다보면 중장년층 대부분은, 그리고 노년층 대부분은 그렇게 보일지도 모를 테니까. 

그런 관점에서 중장년을 소재로 삼은 예능은 어쩌면 중장년을 비추는 거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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