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피 뽑히는 공혈견 위해 한국헌혈견협회 창립
헌혈 못하는 중·소형견도 헌혈 받으려면 협회 들어와야
"반려견이 헌혈하면 매우 건강하다는 뜻"

측은지심(惻隱之心)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17세기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에게 측은지심이란 오직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것이었다. 그는 마취 없이 동물을 해부하는 등 잔혹한 동물실험으로 악명이 높았는데, 동물이 ‘쾌락이나 고통을 느낄 수 없는 기계’라고 철석같이 믿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21세기에는 데카르트보다 공감의 범위가 넓은 이들이 많아졌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플라스틱 빨대 퇴출 붐이 일어난 것도 빨대가 콧속에 들어가 고통스러워하는 바다거북이 동영상이 화제가 되면서부터였다. 이제는 ‘동물권’을 이야기하는 시대다. 오랫동안 동물들은 인간을 위해 살아왔지만 인간들이 동물을 위해 기꺼이 불편함을 감수하기도 한다. <뉴스포스트>는 동물을 위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5편에 걸쳐 준비했다. 동물에게까지 측은지심을 느끼는 이들에게는 사람에게도 그러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우리는 더 따뜻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이다. <편집자주>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지난해 통계청 인구 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반려동물을 기르는 집은 566만 가구(반려견 454만, 반려묘 112만)로 전체 2천만 가구 4분의 1 이상이다. 약 4명 중 1명꼴로 반려동물을 기르고 있는 상황. '반려인구 천만시대'라는 말이 과언이 아니다. 반려 가구가 전체 가구에서 무시할 수 없는 비율을 차지하면서 반려동물을 단순히 애완동물이 아닌 가족 구성원의 일부로 보는 시각이 커지고 있다.

지난 7일 경기 포천의 한 애견 펜션에서 강부성 한국헌혈견협회 대표가 반려견 찰스와 로빈과 함께 있다. (사진=이별님 기자)
지난 7일 경기 포천의 한 애견 펜션에서 강부성 한국헌혈견협회 대표가 반려견 찰스와 로빈과 함께 있다. (사진=이별님 기자)

항상 건강하길 바라지만, 반려동물 역시 생명이기에 아플 수 있다. 가족이 아프면 의료기관에 데려가는 것 처럼 반려동물이 다치거나 질병에 걸리면 동물병원으로 데려간다. 부상이 심각해 수술을 해야 하거나 빈혈 등의 질병이 악화하는 경우 혈액을 공급받아야 할 일이 생기기도 한다. 별도의 반려동물 헌혈 기관이 없는 한국에서 동물의 혈액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앞서 지난 2015년 동물권 보호단체 '케어'는 열악한 환경에서 피가 뽑히는 '공혈견'이 사육되고 있다고 폭로한 바 있다. 공혈견은 반려견의 수혈을 위한 용도로 길러지는 개다. 이 문제가 알려지자 동물 학대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하지만 공혈견의 피가 없으면 많은 반려견들이 도리어 목숨을 잃기 때문에 당장 공혈견을 없애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공혈견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은 없을까. 최근 반려인들을 중심으로 열악한 현실을 바꾸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공혈견의 피를 뽑는 대신 반려인들이 자발적인 반려견 헌혈에 동참하자는 취지의 '한국헌혈견협회'가 지난해 10월 설립된 것이다. 한국헌혈견협회는 헌혈을 하는 반려견 즉 '헌혈견'을 통해 공혈견을 줄여나가고 장기적으로는 공혈견을 없애자고 주장한다.

이달 7일 본지는 한국헌혈견협회(이하 '협회')와 헌혈견, 공혈견 문제 등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경기 포천시의 한 애견 펜션에서 강부성 대표를 만났다. 이곳에서 강 대표의 반려견 '찰스'와 '로빈'이 취재진을 반겼다. 래브라도 리트리버인 로빈은 이미 두 차례 헌혈을 한 헌혈견이다.

-협회 설립 계기와 과정은?

협회가 만들어지기 1년여 전인 2017년부터 헌혈견 캠페인을 시작했다. 당시 반려동물 팟캐스트 '개소리'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다룬 주제 중 하나가 '공혈견'이었다.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하다가 대안이 '헌혈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팟캐스트 게스트 대부분이 대형견 보호자들이었는데, '우리 애들이 헌혈을 해보자'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렇게 캠페인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서울대학교 동물병원이 진행하는 헌혈견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하지만 서울대학교 동물병원에 국한되지 않도록 중랑구의 로얄동물메디컬센터 등 다른 동물병원에서도 자발적 헌혈에 동참했다. 이 같은 활동을 지속하다 지난해 10월 28일 팟캐스트 모임과 완전히 분리된 '한국헌혈견협회'를 정식 설립했다.

-현재 동물병원에 혈액량이 부족한 상황인가?

반려견 가족이 많기 때문에 혈액 공급량이 부족하다. 반려견이 빈혈에 걸리거나 큰 사고로 출혈이 심하면 혈액을 공급받아야 한다. 요즘은 진드기 매개 질병 때문에 수혈을 받아야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이 때문에 수혈이 많이 필요하다. 그동안 그 피를 전부 공혈견 피로 대체했었는데, 이젠 헌혈견이 이를 대체하고자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협회 회원과 헌혈견은 얼마나 되나?

네이버 카페 회원분은 300명이 넘는다. 연 6만원의 일정한 회비를 내시는 정회원은 약 80명이다. 정회원 분들이 기르는 반려견 중에 60마리가 헌혈이 가능하다. 헌혈할 수는 없지만, 협회를 후원하고 응원해주시는 소형견 반려인들도 18명 정도 된다.

헌혈견들이 헌혈할 때마다 호를 붙이는데, 명예의 전당과 같은 일종의 이벤트다. 2017년 1호를 시작으로 오늘까지 49호 헌혈견이 나왔다. 로빈이는 생에 헌혈을 두 번 해서 호가 2개다. 현재까지 2번 헌혈 기록을 가진 헌혈견은 총 4마리다. 나중에 100호가 나오면 함께 축하할 예정이다.(웃음)

-협회 주요 활동은?

건국대학교 동물병원과 경기 성남의 해마루동물병원, 의정부 서정동물병원과 MOU를 체결했다. 연계 병원에서 다달이 정기헌혈을 진행하는데, 협회 회원들이 참여한다. 또 급하게 수혈이 필요할 경우 병원에서 요청을 하면 여건이 되는 회원들이 반려견을 데리고 긴급헌혈에 동참한다.

정회원 반려견이 긴급 수혈이 필요할 경우에는 연계병원이 아닌 곳에서도 수혈해드린다. 협회에 들어온 반려견들이 아프면 헌혈견을 연결해 주는 게 우리의 시스템이다.

-운영에 어려운 점이 있다면?

동물병원과 MOU를 맺고 연계 병원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 번에 확 커지는 거보다는 회원이 들어오는 속도와 연계 병원이 늘어나는 속도가 맞아야 한다. 현재 연계병원이 수도권에 몰려있기 때문에 회원들은 서울·경기권에서 거주하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충청권과 제주도에서도 회원이 계시지만, 이곳에는 연계 병원이 없다. 헌혈이 가능한 병원이 없기 때문에 회원들이 충남 천안, 충북 청주 등지에서 올라와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수도권 이외 지역 동물병원과도 연계가 됐으면 좋겠다.

헌혈은 대형견만 가능하지만, 중소형견이 공혈견 혈액이 아닌 헌혈견 헌혈을 받으려면 협회에 가입해야 한다. 협회에 헌혈이 가능한 대형견 반려인들만 가입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아 아쉽다. 오히려 중소형견주들이 가입해야 한다. 우리나라 헌혈은 대부분 중소형견들이 받아간다. 근데 그 피가 정작 어디서 왔는지 모르고 계신다. 그거 다 공혈견 피들 사 온 거다. 이 아이들이 아파서 엄한 대형견들이 철창에서 피만 뽑히고 있었던 거다.

지난 7일 경기 포천의 한 애견 펜션에서 강부성 한국헌혈견협회 대표와 그의 반려견 로빈과 찰스가 뛰어 놀고 있다. (사진=이별님 기자)
지난 7일 경기 포천의 한 애견 펜션에서 강부성 한국헌혈견협회 대표를 그의 반려견 로빈과 찰스가 따르고 있다. (사진=이별님 기자)

-헌혈 가능 기준이 있다면?

동물병원 기준으로는 25kg 이상 대형견이다. 하지만 협회는 30kg이라고 이야기한다. 25kg 이상 이라고 말하면 20kg 반려견을 기르고 계시는 분들이 자발적 헌혈을 하겠다고 하신다.(웃음) 그래서 안전하게 30kg이라고 말한다. 또한 나이는 2살에서 8살 성견만 가능하다. 규칙적인 예방접종과 구충을 한 건강한 반려견들. 헌혈을 할 수 있다는 건 반려견이 건강하다는 의미다.

협회에서는 1년에 한번 헌혈하기를 권장한다. 동물병원에서는 3개월에 한번을 권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3개월에 한번은 생각보다 부담스러운 일이다. 자발적 헌혈은 캠페인이기 때문에 부담을 주면 안 된다고 생각해 1년의 한번 하기를 권장한다. 다만 괜찮으면 6개월에 한 번도 좋다. 로빈이의 경우 1년에 2번을 한다.

-적합한 견종이 따로 있는가?

사람과 친화적이면서 온순하고, 낯선 환경에서 잘 적응하는 반려견들이 헌혈을 잘한다. 그래서 래브라도 리트리버가 많다. 하지만 래브라도 리트리버만 대형견이 아니다. 실제로 헌혈에 참여한 대형견에는 케인코르소, 골든 리트리버, 사모예드, 시베리안 허스키, 진돗개, 로트 와일러도 있다.

우리 협회는 아픈 강아지에 피를 제공하고, 공혈견을 없애는 것과 함께 대형견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것도 목표로 삼는다. 리트리버라고 다 순한 것도 아니다. 반려견도 다 개성이 있다. 맹견이라고 알려진 로트와일러나 케인코르소는 래브라도 리트리버인 로빈이보다 더 헌혈을 잘했다.(웃음) 협회는 다양한 견종과 모색깔의 아이들이 헌혈에 동참하길 원한다.

-헌혈 과정은 어떻게 되는가?

일단 헌혈을 신청하면, 반려견은 일정 기간 약 복용이나 예방접종을 하면 안 된다. 헌혈 당일 컨디션이 좋은 반려견들은 병원에서 몸무게를 재고, 혈액 검사를 해 적혈구량 등을 확인한다. 야외에서 키우는 반려견은 심장사상충 감염 여부도 살펴본다. 건강한 반려견이라면 웬만하면 이 같은 테스트는 통과한다.

건강한 반려견이라고 판명되면 채혈을 시작한다. 피가 잘 나오면 30분 안쪽으로 채혈이 끝난다. 정기헌혈의 경우 몸무게의 1%인 300~350cc를 뽑는다. 소형견 3~4마리의 수술을 할 수 있는 양이다. 긴급헌혈은 필요한 만큼만 뽑아 정기헌혈만큼 많지 않다.

-혈액형도 구분해야 하나?

개들의 혈액형은 13~14가지나 있다고 알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많이 본 혈액형은 1.1형이다. 1.2형은 협회에 한 마리 밖에 없다. 1.2형은 구하기 매우 어려운 귀한 피다. 사람으로 치면 O형에 해당하는 혈액형인 '유니버셜 도너'라는 것도 있다. 모든 개가 다 수혈받을 수 있는 혈액형이다.

강아지들은 특이한 게 처음 수혈할 때는 혈액형과 상관없지만, 다음에 수혈 받을 때는 처음에 받은 혈액형으로만 수혈을 받아야 한다. 사람은 A형이면 A형 피를 받아야 하는데, 강아지는 첫 수혈 받은 혈액형만 받아야 문제가 없다. 다른 건 안 된다. 사람과 이런 점이 다르다.

헌혈견 상징 스카프를 매고 있는 강부성 한국헌혈견협회 대표의 반려견 로빈. (사진=이별님 기자)
헌혈견 상징 스카프를 매고 있는 강부성 한국헌혈견협회 대표의 반려견 로빈. (사진=이별님 기자)

-헌혈견이 받는 혜택이 있다면?

우리 협회는 헌혈견을 최우선으로 보호하는 걸 중시한다. 헌혈견들이 헌혈을 해주기 때문에 최대한 혜택을 주려고 한다. 헌혈하기 전 무상으로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는 점은 기본적인 혜택이다. 대형견의 경우 크기 때문에 건강 검진 비용도 40~50만 원이나 드는데, 이게 무상으로 제공된다.

바이엘 코리아 등 후원사에서는 협회에 심장사상충 예방약 및 내외부 구충제 등을 후원해 주신다. 사료 회사와 반려 용품 판매업체에서도 후원이 들어온다. 헌혈 한번 받고 상당한 양의 약과 사료, 반려 용품 등을 받을 수 있다. 또 헌혈견 한테는 상징적인 의미로 노란색 헌혈 인증 스카프를 선물해준다.

-협회의 궁극적 목표는?

두 번 헌혈할 공혈견을 한 번만 하게끔 하는 게 대외적 목표다. 하지만 최종 목표는 공혈견을 없애는 거다. 우리나라에 대형견 많다. 다 잘 먹어서 체구도 크다. 건강만 하다면 1년에 한번 헌혈은 문제가 없다. 보호자들의 편견만 없다면 말이다. 나중에 우리 애가 아프면 헌혈 받을 수도 있는데, 공혈견 피보다 건강하게 자란 다른 반려견의 피를 받고 싶지 않겠는가.

아울러 전국 헌혈견들의 적십자사와 같은 '헌혈견 지원센터'를 만드는 것이다. 다른 진료를 하는 게 아니라 헌혈만 하는 센터를 만드는 게 목표다. 지부까지 4~5개를 만들고 싶다. 건물이 크고 예쁠 필요도 없다. 그 동네 대형견들의 건강도 관리해주고, 정기적으로 헌혈도 해주는 기관이다. 공혈견으로 사육돼 피를 뽑히는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헌혈을 하기 위한 센터를 만드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여기까지 온 거도 재작년만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자발적 헌혈을 한 반려견이 50마리 가까이 나온 거다. 꾸준히 계속하고, 도와주는 병원과 후원사만 있다면 우리의 운동은 커질 수 있다. 다만 속도의 문제다. 빨리 커지나 천천히 커지냐다. 반려견 헌혈을 꺼리는 보호자들의 인식을 바꿔야 하는 것도 우리가 할 일이다.

유기견이나 공혈견 이야기가 나오면 우울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리 협회는 처음부터 우울하게 접근하지 않기로 했다. 우울하게 접근해서는 동정심만 유발할 뿐, 캠페인에 즐겁게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든다. 캠페인은 자발적으로 즐겁게 해야하는 게 아니냐. 노란색 스카프를 선물하는 것도 이 일환이다. 대형견 반려인들이 이 캠페인을 즐겁게 참여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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