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 1인 가구 대상 성범죄 통계부터 잡아야
- 관악구·동작구·광진구 등 ‘아파트의 보호력’ 없다
- 세계 손꼽히는 CCTV 개수...범죄예방 효과는 글쎄

[뉴스포스트=이상진 기자] 앞서 <뉴스포스트> 취재진은 지난달 18일엔 서울 관악구 대학동 원룸촌을, 30일에는 동작구 흑석동 원룸촌을 찾았다. 지난 5월 28일 관악구 신림동 강간 미수 사건 이후 원룸촌에 거주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다.

이들은 취재진에게 “신림동 사건이 남 얘기가 아닌 것 같아 좁은 골목을 지날 때면 낮에도 자꾸 주변을 살피게 된다”거나 “얼마 전 경찰이 여성을 성추행하고 성폭행을 시도하려고 한 것을 뉴스로 봐 사람 자체가 무서워서 어떤 방편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성범죄에 대해 안심하고 살려면 월세를 많이 내더라도 신축 원룸으로 가야 한다”고도 했다.

정말 여성 1인 가구가 성범죄에 대해 안심하고 살기 위해선 비싼 월세를 개인이 부담하는 방법밖에 없을까? 공권력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진 현실을 타개하고 정부나 지자체가 성범죄를 예방하는 치안 서비스를 제공할 수는 없을까?

본지는 19일 한민경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범죄조사연구실 부연구위원을 만나 여성 1인 가구 치안을 해결할 묘안에 대해 묻고 해결책을 모색해봤다. 한민경 부연구위원과의 인터뷰는 서울시 서초구 태봉로에 위치한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서 진행했다.

한민경 부연구위원은 여성 1인 가구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의 통계부터 잡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사진=이상진 기자)
한민경 부연구위원은 여성 1인 가구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의 통계부터 잡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사진=이상진 기자)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권미혁 의원실은 주거침입 성범죄가 증가 추세라고 했다. 그러면서 여성 1인 가구의 성범죄 예방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성 1인 가구 대상 성범죄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가?
“여성 1인 가구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가 얼마나 발생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공식 통계는 없다. 지난 국정감사 때 권미혁 의원실에서 발표한 자료도 주거침입 성범죄 건수로, 그 가운데 몇 건이 여성 1인 가구를 대상으로 발생한 것인지는 모른다. 킥스(KICS)라고 부르는 형사사법포털 시스템은 피의자원표 중심으로 작성한다. 1인 가구인지 여부는 수사관들이 수사과정에서 확인할 수는 있지만, 통계화하지 않는 항목이다. 그래서 통계적으로 늘어났다, 줄었다를 명확히 얘기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다만 최근 신림동 강간 미수 사건 등을 계기로 여성 1인 가구 대상 성범죄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사회가 본격적으로 인식했다고 본다.”

-2014~2018년 서울 주거침입 성범죄의 26%를 관악구와 광진구, 동작구가 차지했다. 관악구는 신림동 강간 미수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고. 왜 지역별로 주거침입 성범죄율에 편차가 생기는지?
“이들 세 개 구 전 지역에 걸쳐 주거침입 성범죄 비율이 높다고 해석하는 것은 오류가 있다. 세부적으로 파악한다면 주거침입 성범죄는 해당 구 안에서도 특정 동에 집중됐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구 단위로 통계를 살펴보면 언급한 세 지역은 주택 유형 중 아파트 비율이 서울의 다른 곳보다 낮은 편이다. 동작구가 50%, 관악구가 43%, 광진구가 35.5%다. 그런데 서초구만 봐도 아파트 비율이 70.7%다. ‘아파트의 보호력’이라는 논의가 있다. 외국의 경우에는 찾아보기 어려운, 우리나라에만 유효한 한 개념인데 아파트에 거주할수록 범죄피해 가능성이 낮고 심리적으로도 안전하다고 느끼는 비율이 높은 것을 말한다. 또 이들 지역은 여성 1인 가구의 절대적인 숫자가 다른 지역에 비해 많다. 관악구가 5만 3,288명, 광진구가 2만 9,280명, 동작구가 2만 9,420명이다. 이는 서울 다른 지역인 중구 1만 751명, 종로구 1만 2,691명, 도봉구 1만 7,262명보다 훨씬 많다. 성범죄에 취약한 여성 1인 가구의 절대적 숫자가 많아 이들 지역에서 주거침입 성범죄 건수 역시 높게 나타났다고 해석할 수 있다.”

-오피스텔 등에 비해 대학가 원룸촌의 방범이 취약하다는 지적이 있다.
“오피스텔은 사실상 ‘준아파트’로 볼 수 있다. 오피스텔에도 ‘아파트의 보호력’이 유사하게 나타난다는 얘기다. 오피스텔은 원룸 대비 출입을 통제하기가 쉽다. 셉테드(CPTED:범죄예방환경설계) 용어를 빌리면 원룸촌은 감시성이 확보되지 않고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이 구분되지 않아 충분한 영역성이 확보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원룸 건물의 경우 주차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필로티 구조로 건물을 짓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 필로티 기둥 뒤에 숨어있다면 잘 관찰되지 않을뿐더러, 거주 공간이 시작되는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

-성범죄 예방을 위해 도입한 전자발찌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있는데.
“전자발찌를 착용한 성범죄자들의 재범률은 2014년부터 2018년 10월까지 모두 292명이었다. 법무부에서는 재범률을 2% 미만으로 관리하는 것을 목표해 왔지만, 이미 2%가 넘은 상황이다. 성범죄자 전자발찌를 도입한 초창기엔 시범용으로 성범죄 가석방 대상자를 중심으로 전자발찌를 채웠다. 때문에 재범률이 상당히 낮게 나타났다. 하지만 이제 형기 종료 후에 전자발찌를 차는 성범죄자들이 늘어나고 이들이 전자발찌를 차는 기간도 최대 30년이기 때문에 앞으로 전자감독을 받는 성범죄자들의 재범률은 계속 높아질 수밖에 없다.”

전자발찌 성범죄자의 재범 건수가 계속 증가할 것이라고 분석한 한민경 부연구위원. (사진=이상진 기자)
전자발찌 성범죄자의 재범 건수가 계속 증가할 것이라고 분석한 한민경 부연구위원. (사진=이상진 기자)

-여성 1인 가구를 대상 성범죄를 막기 위해 CCTV나 방범창 등을 정부나 지자체 지원으로 늘리는 방안에 대해서는.
“전 세계적으로 CCTV를 우리나라만큼 많이 설치한 나라를 찾아보기 힘들다. CCTV 증가 추세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성범죄는 최근 몇 년간 계속 증가 추세고. 많은 범죄가 CCTV 설치 여부와 무관하게 발생하기 때문에 전자발찌든 CCTV든 기술을 통해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는 생각은 근본적으로 수정돼야 한다. 어떻게 하면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는 뚜렷한 답이 없는 상황에서 CCTV라도 설치하려는 노력을 멈추기는 어렵지만, CCTV가 성범죄 예방 효과가 있는지는 명확히 말할 수 없다.”

-동작구 흑석동에서 만난 청년들은 최근 경찰이 성범죄를 저지르면서 경찰도 믿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전경과 의경을 대체할 경찰관을 대폭 충원하면서 소명으로써 경찰관보다는 직업으로써 경찰관을 목적으로 경찰에 입직한 사람이 적지 않다고 보인다. 또 경찰의 절대적인 숫자가 많다는 이유도 있다. 우리나라 경찰은 약 12만 명이다. 단일 공무원 조직으로는 군 다음으로 많다. 성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특정 직업군은 없다. 하지만 경찰이 절대적인 숫자가 많다 보니 이들 가운데 성범죄가 발생한 건수도 많은 것처럼 보인다.”

-경찰 내 자체적인 성범죄 예방 교육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될까?
“그런 교육은 예전부터 계속 해왔다. 외부 전문가를 데려와 지방청 단위에서 교육했다. 최근에는 양성평등담당관이란 제도도 도입했고. 하지만 성범죄에 대한 인식은 하루 이틀, 한두 번 교육한다고 달라지는 게 아니다. 지금 사회 전반적으로 이런 부분에 대한 인식 수준이 낮다. 문제는 공권력에 대한 신뢰가 계속 추락한다면 우리 사회에 어떤 식으로든 손해가 나타나리라는 것이다.”

-원룸촌 현장에서 만난 대학생들은 성범죄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성전용원룸이나 신축 원룸에 입주하고 있었다. 이들 원룸은 방범을 보장하는 대신 월세가 비싸다. 치안의 개인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데. 실태가 어떤가.
“월 소득 대비 월 임대료 비율이란 게 있다. 월 소득이 100만 원인데 30만 원을 임대료로 지출하면 이 비율이 30%가 되는 거다. 똑같은 30%라도 월 소득이 얼마냐에 따라서 지출할 수 있는 임대료 비중이 달라진다. 100만 원을 벌면 30만 원인데, 1000만 원을 벌면 300만 원이다. 20~30대 여성 1인 가구는 안전을 위해 소득을 임대료로 지출하는 것을 아끼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주거환경이 좋은 만큼 안전도 확보됐다고 믿는다. 임대료를 지출할 충분한 소득이 없는 대학가 원룸촌이 주거환경이 열악하고 안전 이슈에 있어 상대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다. 소득이라고 해봐야 부모님이 보내준 돈이라든지, 아르바이트해서 아낀 돈이 전부인 대학생은 아주 적은 수준의 주거비를 마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치안의 개인화 현상을 해결할 수 방법이 있을까?
“이런 현상은 당연히 옳지 않다. 2000년대 초반 범죄 예방을 위해 물리적 환경과 건축적 고려를 해야 한다는 개념의 셉테드가 도입됐고 많은 지자체가 하고 있다. 문제는 셉테드가 건축법상 신축 건물을 중심으로 적용된다는 거다. 이미 지어진 건물에 적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래서 많은 지자체가 여성안심귀갓길이라는 문구를 도로에 페인트로 칠하고, CCTV를 달고, 담장에 그림 그리는 정도밖에 할 수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방범이 취약한 노후 건물의 설비를 보충하도록 건물주의 인식을 바꾸든지, 시설이 너무 열악할 경우 건물을 철거하거나 수리를 강제하는 등의 방안이 필요하다. 아직 치안의 개인화 현상을 완화하고 해결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단계로, 향후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한민경 부연구위원은 주거침입 성범죄 이외의 다른 성범죄에 대해서도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이상진 기자)
한민경 부연구위원은 주거침입 성범죄 이외의 다른 성범죄에 대해서도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이상진 기자)

-여성 1인 가구의 치안을 보장하는 대표적인 사회적 제도를 소개한다면.
“서울시에서 추진하는 공동체 주택 플랫폼이 있다. 서울시에서 폐가나 공가를 개발해 1인 가구가 살 수 있는 주택을 제공하는 거다. 1인 가구만 입주하고 거주하는 사람들이 공동 심사해 새로운 입주자를 선정한다. 장기적으로 임대주택도 1인 가구가 신청할 수 있지만, 다인 가구 중심의 현행 주택공급 정책상 다수의 1인 가구가 임대주택에 입주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입주하더라도 도심지에서 떨어진 임대주택의 위치상 거주지가 직장이나 학교와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도 1인 가구의 수요와 맞지 않는다. 공동체 주택 플랫폼처럼 정부에서 개입하고 관리하는 셰어하우스를 확대하는 것은 직접적으로 범죄 예방을 위한 활동은 아니지만, 궁극적으로는 여성 1인 가구의 주거안전과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본다. 최고의 사회정책이 가장 최선의 형사정책인 법이니까.”

-정부 정책에 아쉬운 점은 없나?
“여성 1인 가구 안전을 위한 대책을 추진하기에 앞서 여성 1인 가구를 중심으로 한 통계부터 파악하라고 말하고 싶다. 여성 1인 가구 대상 범죄가 증가한다거나 또는 감소한다고 말할 통계 자체가 없다. 통계를 작성해 실태 파악부터 해야 한다. 또 우리나라 성범죄 체계가 굉장히 복잡하다. 성범죄 관련 규정의 개정이 잦고 여러 법령에 분산돼 법조인도 헷갈린다. 최근 스토킹이 사회적 이슈이지만, 스토킹을 무전취식 등 질서위반 행위의 하나로 간주해 경범죄처벌법으로 처벌하는 것도 문제다. 장기적으로 성범죄 관련 법조문을 정비하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끝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주거침입 성범죄가 물론 심각한 범죄고 지금 우리 사회가 집중적으로 논의해야 하는 이슈인 건 맞다. 하지만 경찰청에서 발표한 2018년 범죄통계를 보면 강간 6000여 건 가운데 주거침입 성범죄는 300건 정도다. 성범죄의 경우 신고하지 않는 범죄가 많다고 봤을 때 실제 건수가 더 많을 수 있지만, 비율상으로 주거침입 성범죄는 전체 강간에서 5% 정도만 차지한다. 나머지 95%를 차지하는 대다수 강간은 집이 아닌 직장, 학교 등 생활공간에서 발생한다. 주거침입 성범죄에 한정하지 않고 성범죄 전반에 대해 우리 사회가 지속적인 경각심을 갖고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 한민경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약력

경찰대학 법학사/서울대학교 사회학 석사/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사회학 박사/독일 막스플랑크 국제형법 및 비교형법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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