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배제가 아닌 지역사회로...탈시설은 인권이다
해외서 탈시설 논의 활발...현 정부 정책 부족해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코로나 19가 전국적으로 확산하면서 25일 기준 국내 총 확진 환자 수가 9천 명을 넘었다. 환자는 종교시설 등 인구가 밀집된 장소를 중심으로 급격히 확산했다. 청도 대남병원 폐쇄병동과 대구·경북의 중증장애인 시설 등 장애인 시설도 집단감염을 피하지 못했다. 특히 대남병원에서는 지난달 7명의 정신장애인이 사망하기도 했다. 이에 정부는 건물 전체를 봉쇄하는 코호트 조치를 내렸다. 하지만 장애인 단체들은 반발했다. 

장애와 인권 발바닥 행동 김재환 활동가가 장애인 수용 시설 폐지를 외치고 있다. (사진=장애와 인권 발바닥 행동 제공)
장애와 인권 발바닥 행동 김재환 활동가가 장애인 수용 시설 폐지를 외치고 있다. (사진=장애와 인권 발바닥 행동 제공)

장애인 인권 단체 장애와 인권 발바닥 행동은 지난달 25일 정부의 이 같은 조치에 대해 “수십 년간 사회에서 배제·분리된 장애인들에게 필요한 감염 대책은 또다시 고립되는 코호트 격리가 아니다”라며 “시설 봉쇄가 아니라 필요한 의료조치가 신속히 이뤄지도록 병원으로 이송해야 한다”고 성명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정부의 조치가 장애인을 또다시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것이라고 보고, 당사자들이 시설에서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단체인 장애인차별철폐연대도 비슷한 의견을 전했다. 장애인차별철폐연대 관계자는 본지에 “집단으로 거주하다 보면 위생이나 환경이 열악해질 수밖에 없다. 면역력이 약한 장애인들은 시설에서 건강이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환경에서 바이러스가 침투하면 확산이 엄청날 것”이라며 “대남병원이나 다른 장애인 시설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장애인들이 시설에 격리 수용됐기 때문에 감염병 위험에 노출됐다는 이야기다.

흔히 시설은 장애인 복지 사업의 일환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시설이 도리어 장애인들에게 위해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 전대미문의 국가적 위기에서 피어나고 있다. 실제로 많은 장애인 인권 단체는 코로나 19 사태 속에서 일명 ‘탈시설’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왜 시설에서 나와야 한다고 주장할까. 탈시설은 정확히 무엇이며, 현재 시설들은 어떤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일까. <뉴스포스트>는 해답을 얻기 위해 지난 20일 장애와 인권 발바닥 행동의 김재환 활동가와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지난해 3월 26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앞에서 장애인거주시설폐지법 결의대회가 열렸다. (사진=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제공)
지난해 3월 26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앞에서 장애인거주시설폐지법 결의대회가 열렸다. (사진=장애와 인권 발바닥 행동 제공)

‘탈시설’이란?

김 활동가에 따르면 탈시설은 쉽게 말해서 장애인 거주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는 장애인 당사자들이 시설 밖으로 나오는 것을 뜻한다. 또한 더 이상 시설로 입소하지 않는 것도 포함된다. 그는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시설에서 평생을 살아가는 게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며 “(장애인 당사자들도)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일상적인 생활을 하도록 하는 게 ‘탈시설-자립생활 운동’”이라고 설명했다.

김 활동가는 현재 국내 장애인 거주 시설을 약 1,500곳으로 추산했다. 이곳에서 약 3만 명의 장애인 당사자들이 거주하고 있다. 그는 이들 모두가 지역사회로 나오는 것 역시 ‘탈시설’이라고 말했다. 시설이 어떤 문제점을 안고 있기에 3만 명 이상의 당사자들이 모두 시설에서 나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그는 장애인 거주 시설이 과거 국가의 이른바 ‘사회 정화’ 목적으로 만들어진 잘못된 정책의 산물이라고 지적했다.

과거 군사 정권은 복지국가 구현이라는 허울 좋은 구호를 내걸고 장애인들을 지역사회로부터 격리해 시설에 수용하는 정책을 펼쳤다. 여기에 ‘사회 정화’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시설에 수용된 장애인 당사자들은 이곳에서 끔찍한 인권 유린에 시달려 왔다. 1970~80년대 부산형제복지원에서 2020년 코로나 19 사망자가 집단으로 발생한 대남병원 폐쇄병동까지 시설에서 발생하는 장애인 인권 유린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김 활동가는 시설 내에서 발생하는 인권 유린뿐만이 아니라 ‘시설’ 자체가 문제라고 보았다. 김 활동가는 “시설이 존재한 이후부터 현재까지 발생하는 온갖 비리와 인권침해 사건은 차치하더라도, 장애인을 가둬두고 있는 ‘시설’ 자체가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시설에 입소한 장애인들은 시설의 관리와 보호 대상이다. 스스로 삶을 개척하는 주체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 때문에 이들은 시설에서 정한 시간에 맞게 생활을 해야 한다. 식사도, 수면 같은 기본적인 일상생활도 마음대로 하기 어렵다.

시설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쉽게 나올 수 없는 것 역시 큰 문제다. 김 활동가는 “시설은 입소는 하기 쉬우나 퇴소는 어렵다”며 “많은 장애인 당사자들은 가족에게 행여 부담이 될까 봐 나오길 어려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시설 외부 정보가 차단되는 점도 당사자들이 시설에서 나오기 어려운 원인 중 하나다. 그는 “시설에 있다 보면 다른 고민을 못 하게 된다. 시설 밖 세상이 어떤지에 대해 정보를 알기 어렵다”며 “언제 나올지 기약도 없는 곳에서 날마다 반복되는 삶을 살아가는 것 자체가 인간의 기본권 침해”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4월 5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등 장애인 단체들을 중심으로 탈시설 당사자 증언대회가 열렸다. (사진=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제공)
지난해 4월 5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장애와 인권 발바닥 행동 등 장애인 단체들을 중심으로 탈시설 당사자 증언대회가 열렸다. (사진=장애와 인권 발바닥 행동 제공)

탈시설한 장애인 당사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실제로 시설에서 나온 장애인 당사자들의 삶의 만족도는 획기적으로 올라간다고 김 활동가는 증언했다. 그는 “▲ 시설은 감옥이다 ▲ 내 것이 생겼다 ▲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 내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들이 생겼다 등의 말은 어디서 지어낸 게 아니라 장애인 거주 시설에서 탈시설 당사자들이 직접 했다”며 “탈시설 당사자들의 증언대회나 관련 저서에 자세히 나와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당장 시설이 폐쇄되면 이곳 노동자들의 생계와 장애인들의 거주지가 사라진다는 지적이 많다. 이에 김 활동가는 “노동권은 중요한 문제지만, 시설에 살아가는 장애인 당사자의 삶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며 “노동자들의 고용 승계는 정부가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시설에 살아 마땅한 사람은 없다”고 단언했다. 시설폐쇄로 인한 부작용 우려보다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가 우위에 있다는 이야기다.

탈시설, 해외서는 대세

유럽과 미국 등 서구 국가에서는 수십 년 전부터 시설 수용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시설을 없애는 강력한 정책을 펼쳐왔다고 김 활동가는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영국은 1960년부터 점진적인 탈시설 과정이 진행됐고, 캐나다 온타리오주에서는 2000년대 발달장애인서비스법을 비롯한 사회통합법 등이 제정됐다. 뉴질랜드는 2006년 킴벌리 센터를 마지막으로 모든 대형국가 시설을 폐쇄하고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스웨덴 역시 1997년 시설폐지법 제정을 통해 장애인을 수용하고 있는 모든 시설을 없애고 있다. 미국은 옴스테드 판결(1999)과 펜허스트 사건(1977) 등 소송을 통해 장애인을 시설에 격리하는 것은 장애에 대한 차별이라는 판결을 이끌어 냈으며, 지역사회 서비스를 받을 권리를 얻었다. 김 활동가는 “한국은 시설 수용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한 후 막대한 시설 예산을 탈시설 지원체계를 만드는 것에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탈시설은 일부 서구 국가만의 일이 아닌 세계적인 흐름이다. UN은 장애인권리협약 제 19조에 ‘모든 장애인이 다른 사람과 동등한 선택을 통해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동등한 권리를 가지며, 지역사회로의 통합과 참여를 촉진하기 위해 효과적이고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라고 명시했다. 또 ‘자신의 거주지 및 동거인을 선택할 기회와 지역사회로부터 소외되거나 분리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개별지원 지원을 포함 주거지원 서비스 및 지역사회지원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여전히 시설이 존재하고, 탈시설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다고 하지만 국내에서도 탈시설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김 활동가는 “10년 전 석암베데스다요양원에서 8명의 장애인 당사자들이 원장의 비리에 맞서 싸웠고,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 공원으로 나왔다”며 “이들은 그곳에 천막을 치고 노숙을 하면서 서울시를 상대로 탈시설-자립생활 정책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앞서 2009년 석암베데스다요양원에서 생활하던 장애인 당사자 8명은 재단의 비리를 알리고, 탈시설 자립생활 쟁취를 촉구하며 마로니에 공원에서 60여 일간 노숙 농성을 진행한 바 있다. 당시 사회는 이들을 마로니에 8인이라고 불렀다. 김 활동가는 “이것이 불꽃이 돼 서울시와 대구시, 전주시 등에서 탈시설 지원 제도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며 “자유를 찾아 나온 탈시설 당사자들이 증가했고, 이들이 장애인 자립생활센터를 통해 지역사회에 연착륙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4일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 공원에서 석암 투쟁 10주년을 기념하는 문화제가 열렸다. (사진=장애와 인권 발바닥 행동 제공)
지난해 6월 4일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 공원에서 석암 투쟁 10주년을 기념하는 문화제가 열렸다. (사진=장애와 인권 발바닥 행동 제공)

현 정부 탈시설 정책 점수는?

장애인 당사자들의 투쟁으로 전국 각지에 장애인자립생활센터들이 생겨났다. 국내에서는 200여 개의 자립생활센터가 운영되고 있다. 자립생활센터는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지원하는 기관으로 지방자치단체 등으로부터 지원을 받는다. 격리 수용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 개방된 공간이다. 김 활동가는 “서울시의 경우 ‘거주시설연계사업’이라고 해서 관할 시설과 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연계해 거주인들의 탈시설-자립생활을 지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지자체와는 달리 국가적인 차원의 탈시설 정책은 전무하다고 봐도 무방한 상황이다. 김 활동가는 “문재인 정부는 ‘탈시설’을 정부 정책 과제로 선정했지만, 임기가 반이 지난 지금까지도 구체적인 정책은 나오고 있지 않다”며 “‘장애인 서비스 종합조사’에 시설로 입소하는 기준을 정해놓은 걸 볼 때 정부의 정책 방향에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21세기인 현시점에서도 지역사회와는 단절된 시설에서 격리·보호하는 게 ‘복지’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게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한편 김 활동가는 장애인 당사자들이 시설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장애인이 자립할 수 있는 환경을 국가가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시설 밖 세상은 복지 서비스 등이 부족해 장애인들이 자립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장애인들이 시설에서 나와 자립하도록 외부 사회를 바꾸라고 싸우고 있다”며 “정부는 여타 국가보다 한참 뒤떨어지긴 했지만, 지금이라도 현실을 제대로 보고 지역사회에서 (장애인 당사자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지원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법 제정도 중요하다. 김 활동가는 “지난 20대 국회에서 일부 국회의원들이 탈시설 정책을 담은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을 발표했지만, 국회 파행으로 안건 상정부터 가로막혔다”면서 “(21대 국회에서는) 반드시 개정돼야 할 사안”이라고 피력했다. 아울러 ▲ 장애인 권리보장법 ▲ 장애인 거주시설 폐쇄법 등 탈시설을 법적·제도적으로 이행할 수 있는 강력한 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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