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개발의 그림자, 노점상들의 삶의 터전, 보물 142호 동묘를 가다

[뉴스포스트=강대호 기자] 서울 동대문 근처 동묘에 간다고 하면 사람들은 어떤 모습을 떠올릴까. 아마도 대부분은 구제 옷, 혹은 빈티지 패션 아이템을 ‘겟(Get)’하러 간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동묘(東廟)가 어떤 곳일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지 궁금했다. 기자가 속한 여러 단톡방에 물어봤는데 ‘종묘’와 관련 있는 시설로 알고 있는 사람이 의외로 많았다. 동쪽에 있는 종묘가 아닐까 하는. 물론 헌 옷 파는 곳으로만 알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사실 동묘는 삼국지의 관우(關羽)를 신으로 숭모하는 사당으로 종로구 숭인동에 있다. 정식명칭은 동관왕묘(東關王廟)이고, 임진왜란 후인 1601년(선조 34년)에 세워졌다. 

관우 사당은 임진왜란에 참전한 명나라 장군 진인(陳璘)이 부상으로 서울에 머물던 1598년(선조 31년) 그가 기거하던 집 후원에 남관왕묘를 세운 것에서 유래한다. 그 뒤 동관왕묘를 세우고, 고종 시절인 1883년에 북묘가, 대한제국 시절인 1902년에는 서묘까지 설립했다. 현재 남아있는 건 동대문 근처 동묘가 유일하다.

동묘 전경. 대로변을 빼고 3면은 노점이 들어섰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동묘 전경. 대로변을 빼고 3면은 노점이 들어섰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동묘 담장 옆 노점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동묘 담장 옆 노점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노점에 둘러싸인 동묘는 공사 중

2021년 3월 어느 날, 보물 142호인 동묘는 노점에 둘러싸여 있었다. 서울 지하철 1호선과 6호선 '동묘앞역'을 지나는 찻길 쪽만 빼놓고 3면의 동묘 담장에는 각종 물건을 파는 벼룩시장이 펼쳐져 있다. 동묘는 공사로 닫혀 있었고, 화장실만 개방했다. 

넓지 않은 이면도로에 노점들이 들어차서인지 동묘 인근은 사람들로 붐벼 보였다. 행인들은 거의 길바닥을 내려다보며 걸었다. 동묘 담장을 둘러싼 노점상들은 길바닥에 온갖 물건들을 펼쳐 놓았는데 만물상이 따로 없는 듯했다. 

빈티지로 불리는 헌 옷가지가 많았지만, 때론 새것으로 보이는 아웃도어 의류나 신발, 트로트 노래가 수백 곡이 자동으로 재생되는 소형 음향기, 그리고 몸에 좋다는 식품과 온갖 주전부리 등 그 구색이 다양했다. 

길바닥으로 눈을 향하고 있는 사람들의 면면도 전 세대를 아울렀다. 노인들과 중장년은 물론 젊은이까지 모든 세대가 구경과 쇼핑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래도 노년층이 가장 많아 보였다.

그래서일까 노인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저렴하고 빠른 임플란트 전문 치과, 국고 지원금으로 (거의) 공짜로 살 수 있다는 전기 휠체어나 전기 자전거, 심지어 단기 고수익을 보장한다고 노인들 사이를 속삭이며 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헌 옷을 길바닥에 펼쳐 놓은 노점상.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헌 옷을 길바닥에 펼쳐 놓은 노점상.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온갖 잡화를 파는 동묘의 한 점포.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온갖 잡화를 파는 동묘의 한 점포.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골동품 파는 동묘의 한 점포.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골동품 파는 동묘의 한 점포.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빈티지, 헌책 그리고 LP

“연예인들이 이곳을 찾는 방송이 나왔을 때부터 젊은이들이 몰리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코로나19로 그때만 못하지만요. 예전엔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이 찾아와서 지금보다는 훨씬 붐볐고요.”

식혜를 파는 노점 주인에게 들은 이야기다. 구제 옷이 빈티지 패션 아이템으로 뜨고, 동묘가 연예인들도 자주 찾는 핫한 곳이 되자 사람들이 몰렸고 상권도 확장되었다고. 

동묘 인근 여러 골목에는 빈티지 샵을 표방하는 가게들이 많이 보였다. 그들은 좌판에서 파는 헌 옷들과는 달리 진열도 체계적이고 가게마다 개성이 있어 보였다. 동묘를 둘러싼 골목들의 노점과 빈티지 샵은 서로의 이질감을 극복하며 공존하고 있었다. 

동묘에는 벼룩시장과 빈티지 샵만 있는 건 아니다. 헌책방도 있다. 서울에는 청계천 헌책방 거리가 유명하지만 지금은 문을 많이 닫았고 명맥만 유지하는 곳이 많다. 반면 동묘 앞 헌책방들은 규모도 크고 인터넷 중고서점에서 구하지 못하는 책도 간혹 발견할 수 있는 곳이다. 

지금은 규모가 큰 헌책방 세 곳만 남았지만 불과 이년 전만 해도 몇 곳이 더 있었다. 문 닫은 곳은 모두 빈티지 샵으로 바뀌었다. 

동묘에는 중고 LP 전문 가게도 한 곳 있다. 팝송부터 가요 그리고 클래식까지 구색을 갖추고 영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구매하는 손님보다 구경하러 들어오는 손님이 훨씬 많은지 여러 ‘경고’ 안내가 붙어 있어서 편하게 살펴볼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런 면에서 노점이 오히려 마음에 편할 듯도 하다. 구경한다고 해서 눈치 주지는 않는다. 그래서인지 번듯한 가게보다 길거리 노점들에 사람들이 더 몰리는 모양새다.

그런데 이곳은 언제부터 노점들이 들어섰을까.

동묘의 빈티지샵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동묘의 빈티지샵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동묘의 헌책방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동묘의 헌책방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동묘의 노점상, 도시 개발의 어두운 그림자

일제 강점기 시절 동아일보 기사에 조선 시대부터 동묘 인근에 시장이 형성되었다든가 가축시장이 있었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시장들이 지금 동묘 인근에 자리한 노점상의 원류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다만 동묘와 노점상 관련 연구 논문들을 보면 지금의 노점상들은 청계천 일대 도시개발과 관련이 있다고 분석한다.

특히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진행된 청계천 복원사업으로 철거된 노점상 중 일부가 동대문운동장 내 벼룩시장으로 이전했다. 그 과정에서 동대문운동장에 자리를 얻지 못한 노점상들이 동묘 인근으로 옮겨 왔다. 

그런데 2006년에 동대문운동장 공원화 사업이 진행되자 동대문운동장 내에 있던 노점들은 다시 해체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서울시가 해결책으로 신설동 옛 숭인여중 자리에 마련한 ‘서울풍물시장’으로 노점상 일부가 들어갔고, 다른 일부가 동묘로 흘러들었다. 

하지만 동묘와 비교해 외진 곳에 자리한 서울풍물시장 입지 때문에 동묘로 다시 옮긴 노점상들이 많았다. 

“2010년대 초반만 해도 헌 옷가지와 값싼 중고 물건 위주였습니다. 주말에만 좀 몰리는 분위기였고요.”

종로구청 관계자의 기억이다. 그런데 2010년대 중반에 분위기가 싹 바뀌었다고. 몇몇 연예인이 동묘에서 구한 헌 옷으로 트렌디하게 입고 다니고 방송에서도 수차례 다루자 동묘 구제 거리는 그야말로 핫한 플레이스가 되었다고 설명했다. 

2010년대 중반 동묘가 빈티지 거리로 뜨자 노점상들이 더욱 몰려 들었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10년대 중반 동묘가 빈티지 거리로 뜨자 노점상들이 더욱 몰려 들었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동묘가 뜨자 빈티지 샵들이 들어섰고, 젊은 층들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도 찾아오는 서울의 명소가 되었다. 이들을 쫓아 노점들은 더욱 밀려들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서울은 물론 모든 도시에서 허가받지 않은 노점상의 영업을 금하고 있다. 게다가 동묘는 보물로 지정된 사적지이기도 하다.

동묘는 노점을 규제하는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은 물론 문화재를 관리하는 ‘문화재보호법’으로도 강력한 규제를 받아야 하는 곳이다.

당연히 갈등이 많았다. ‘청계천서 쫓겨나 동대문서 길 잃다(주간경향, 2009)’, ‘한쪽선 철거하고, 또 한쪽선 생기고(헤럴드경제, 2015)’ 등 동묘와 노점을 검색어로 한 과거 기사들 제목만 봐도 갈등과 사건 사고를 잘 알 수 있다.

“코로나19로 경제가 침체 된 상황이라 (현재는) 계도 위주로 단속합니다. 노점상 단체에서 자율적으로 질서를 유지하려고도 하고요.”

2021년 봄, 동묘 거리에는 노점을 금지한다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고, 그 아래에는 어깨띠를 두른 노점상 단체 회원들이 보행과 차량 통행 안내를 하고 있었다.

서울시는 산하 기관과 외부 용역을 통해 노점상을 관광 자원으로 만들거나 도시재생의 아이템으로 활용하는 각종 연구를 진행했고,  여러 분야 전문가들도 관련 제안들을 내놓았다.

서울시는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

노점 금지 플래카드.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노점 금지 플래카드.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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