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우리마을 콩나물 공장, 2019년 화재로 전소
'온정이 만든 기적' 4월 준공식...발달장애인 노동자 근무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발달장애인 노동자들이 근무하던 인천 강화도 우리마을 콩나물 공장이 화재로 소실됐다가 약 1년 반 만에 재건됐다. 화재와 코로나19의 여파로 고통의 시간이 결코 짧지 않았지만, 각계의 노력으로 준공식을 마칠 수 있었다. 노동자들은 기적처럼 다시 세워진 공장에서 자립의 꿈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지난 22일 인천 강화 우리마을 콩나물 공장에서 발달장애인 노동자들이 마무리 청소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지난 22일 인천 강화 우리마을 콩나물 공장에서 발달장애인 노동자들이 마무리 청소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지난 22일 인천 강화에 위치한 발달장애인 직업재활시설 ‘우리마을’에는 활기가 돌고 있었다. 수익 대부분을 차지하는 콩나물 공장에서는 생산 작업을 마친 노동자 십수 명이 분주하게 마무리 청소 작업을 하고 있었다. 노동자 1명이 취재진을 향해 손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불과 약 1년 6개월 전만 해도 화재로 전소됐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앞서 지난 2019년 10월 우리마을 콩나물 공장에 큰 불이 났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공장 건물과 설비 등이 전부 타버렸다. 화재 원인은 전기 누전이었다. 소방 당국의 빠른 대처 덕분에 불길은 번지지 않았으나, 공장에서 근무하던 발달장애인 노동자 수십 명의 일자리가 한순간에 잿더미가 됐다.

지난 2019년 11월 5일 우리마을 이대성 원장 신부가 불탄 콩나물 공장 내부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지난 2019년 11월 5일 우리마을 이대성 원장 신부가 불탄 콩나물 공장 내부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뉴스포스트>는 같은 해 11월 화재 발생 한 달 후에 우리마을을 방문한 바 있다. 공장 건물 외부에는 검은 그을음이 짙게 칠해졌고, 흐트러진 콩나물 원두가 사방에서 나뒹굴었다. 탄 내음과 부패한 콩나물 냄새가 한 데 섞여 취재진의 코를 찔렀었다. 당시 우리마을 원장 이대성 신부는 공장 재건에 최소 1년의 시간과 수십억 원의 비용이 든다고 전망했다.

약 1년 8개월 만에 다시 만난 이 신부는 화재 발생 후부터 공장 재건 이전까지 어려움을 회고했다. 그는 “여러 군데서 도와주신 후원금 일부를 노동자들의 생계비로 지급했다. 고맙게도 풀무원에서도 우리 노동자들에게 급히 소일거리를 줘 충당할 수 있었다”면서도 “금액은 화재 이전 급여의 절반 수준이었다. 어떤 달은 절반에 미치지 못할 때도 있었다”고 전했다.

지난 22일 인천 강화 우리마을 콩나물 공장 앞에서 이대성 원장 신부가 서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지난 22일 인천 강화 우리마을 콩나물 공장 앞에서 이대성 원장 신부가 서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인천 강화 우리마을 콩나물 공장 입구 옆에 지난 2019년 10월 발생한 화재 이후 공장 재건을 위해 후원한 이들의 이름을 액자로 걸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인천 강화 우리마을 콩나물 공장 입구 옆에 지난 2019년 10월 발생한 화재 이후 공장 재건을 위해 후원한 이들의 이름을 액자로 걸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평범한 이들 덕에 되찾은 공장

하지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지원금, 기업 기부금, 평범한 시민들의 소액기부가 모이면서 재건의 희망이 싹텄다. 이 신부는 “동네 주민분들이 우리마을을 위해 바자회를 열어주셨다. 철물점 사장님, 국숫집 사장님 등이 다 도와주셨다”며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이 돼지저금통을 기부했고, 불을 꺼주신 소방관님들도 모금해주셨다. 익명의 누리꾼들은 댓글로 기부를 독려했다. 발달장애인 시설이 환영받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인데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각계각층의 손길이 1년 반 동안 이어지면서 콩나물 공장은 지난 4월 준공식을 열 수 있게 됐다. 공장 외부에는 후원자 3,642명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이들의 이름이 새겨진 대형 액자가 걸려있다. 후원자들의 이름이 모여 ‘강화도 우리마을’이라는 문구가 완성됐다. 공장은 1층 콩나물 공장과 2층 사무실 및 휴게 공간으로 구성됐는데, 휠체어가 이동할 수 있도록 계단 대신 엘리베이터와 완만한 경사로로 이어졌다.

연면적은 1,329㎡ 규모로 예전 공장(1,100㎡) 보다 더 넓어졌다. 생산 공정 전반에 자동화 시스템을 적용됐다. 사무실에 위치한 스크린 화면은 손가락으로 터치만 하면 콩나물의 상태를 한눈에 확인 가능했다. 스프링클러 등 화재 방지를 위한 설비도 마련됐다. 규모가 커지고, 시스템이 발달하면서 콩나물 생산량이 기존 1.5t에서 3t으로 2배나 증가했다. 이 신부는 오는 연말께 2019년 화재 이전 수준의 매출액을 회복할 수 있을 거라고 전망했다.

지난 22일 인천 강화 우리마을 콩나물 공장 2층에서 이대성 원장 신부가 콩나물 생산량과 온도 등의 내용이 담긴 스크린을 보며 설명하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지난 22일 인천 강화 우리마을 콩나물 공장 2층에서 이대성 원장 신부가 콩나물 생산량과 온도 등의 내용이 담긴 스크린을 보며 설명하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인천 강화 우리마을 콩나물 공장 2층으로 올라가는 경사로 옆에는 콩나물 생성 과정 설명 사진들이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인천 강화 우리마을 콩나물 공장 2층으로 올라가는 경사로 옆에는 콩나물 생성 과정 설명 사진들이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되찾은 자립의 꿈, 다음 목표는?

화재를 이겨내고 다시 활기를 찾았지만, 코로나19 장기화로 우리마을 측의 우려는 크다. 오랜만에 마주한 이 신부의 얼굴에는 근심과 걱정이 사라진 대신 마스크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발달장애인들은 옆에서 케어가 필요하다. 만약 확진 판정을 받는다면, 무작정 격리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다. 걱정이 매우 커 더욱 엄격하게 관리한다”며 “밀집도를 낮추기 위해 격주 출근을 한다던가, 심할 때는 출근을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여파에도 우리마을은 분주하게 다음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당장 매출을 높이는 게 목적이 아니다. 이 신부는 “발달장애인 노동자는 법적으로도 예외 조항이 있어 최저임금을 받기가 어렵다. 다행히 저희는 여태까지 최저임금은 다 드렸다”면서 “발달장애인 노동자한테 최저임금만 줘도 ‘많이 준다’고 말하는데, 이런 인식을 넘어서고 싶다. 공장의 생산성과 설비도 더 좋아졌으니, 향후에는 최저임금 이상의 금액을 주고 싶다”고 설명했다.

노년층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공간에 대한 고민도 크다. 지난달 우리마을 설립 최초로 만 60세 이상 정년 퇴임 노동자가 나왔기 때문이다. 이 신부는 “60대 발달장애인을 80대 부모가 자택에서 케어하기 어렵다. 장애인 시설에서는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가기 어렵고, 노인 시설에서도 소외당하기 쉽다”며 “직업재활시설에서 정년퇴직을 한 장애인 노동자들이 갈 곳을 만드는 게 우리마을의 남은 과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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