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권, 엘리베이터 수 아닌 ‘접근성’ 고려 필요
“지하철은 시민의 발·휠체어·유모차 되어야”

[뉴스포스트=김혜선 기자] 왜 하필 ‘시민의 발’인 지하철일까.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장애인 단체의 ‘이동권 시위’를 비판하며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 대표가 지하철 이동권 시위를 주도하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을 공격하는 ‘포인트’는 바로 이것이다. “최대 다수의 불편에 의존하는 사회가 문명입니까?(3월 27일 페이스북)”

지하철에 설치된 엘리베이터. (사진=뉴스포스트 최고은 기자)
지하철에 설치된 엘리베이터. (사진=뉴스포스트 최고은 기자)

7일 우정규 전장연 조직국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그 문명 속에 장애인이 배제되어 있다”고 답했다. 우 국장은 “안 해본 것이 없다”고 했다. 정부 부처, 지자체와 만나고, 간담회를 열고, 정치인을 면담하고, 토론회를 열고, 포럼과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 2001년 한 장애인이 지하철 리프트에서 굴러 떨어져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전장연의 이동권 시위가 시작됐지만, 장애인 이동권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게 우 국장의 주장이다.

왜 지하철 시위인가에 대해 우 국장은 “지난 21년간 이동권을 주장해왔지만 또 사람이 다치고 죽는 일이 발생했다”며 “전장연의 요구를 가장 잘 알릴 수 있는 공간으로 지하철을 선택했다”고 했다. 이어 우 국장은 “지하철은 서울시 전역을 거미줄처럼 연결하는 거대한 교통수단이며 곧 문명”이라며 “대중교통은 시민의 이동을 위해 존재하지만 설계 과정부터 장애인을 배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하철에 매달리는 장애인들…이마저도 또 사망사고

대다수 장애인은 대중교통 중 ‘지하철’을 압도적으로 많이 이용하고 있다. 지난 2019년 인권위원회가 벌인 조사 결과, 장애인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은 ‘장애인 콜택시’와 ‘지하철’이었다. 장애인들의 대중교통 선호도 역시 장애인 콜택시와 지하철 순이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탑승하는 데 불편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5일 서울 시청역에서 장애인이동권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배차를 위해 몇 시간씩 기다려야 하는 장애인 택시와 달리, 지하철은 정시성이 있다. 서울 같은 대도시는 지역 요지마다 지하철이 깔려 있기 때문에 쉽게 이동이 가능하다. 서울 내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율은 94%이고, 장애인이 누군가의 도움 없이도 승강장에서 지상까지 오르내릴 수 있는 ‘1역사 1동선’도 꾸준히 늘려가고 있다. 현재 서울시내 전체 326개 역사 중 ‘1역사 1동선’이 확보되지 않은 곳은 모두 21곳이다.

그러나 여기까지 오는데 많은 장애인들의 목숨이 희생됐다. 지난 1999년, 한 장애인이 지하철 리프트에서 낙상 사고를 당하면서 당시 서울지하철공사는 법원 판결에 따라 500만 원을 배상해야 했다. 우 국장은 “서울 지하철 역사는 그때도 260개가 넘었는데 엘리베이터 도입률은 12%에 불과했다”며 “위험한 리프트조차 없어 전체 역 중 실제 장애인이 이용가능한 역시 절반도 되지 않았다”고 했다.

이후 2001년 한 노부부가 리프트를 이용하다가 아내가 사망하는 비극이 있었고, 2017년에도 리프트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그리고 지난 7일에도 한 장애인이 휠체어로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다가 낙상으로 숨졌다. 사고가 난 에스컬레이터 입구에는 휠체어나 유모차 진입을 막는 차단봉이 없었다. 전장연은 이번 사고를 두고 “이번 양천향교역 사망사고도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차단봉 설치 ‘의무’가 아닌 ‘권고’로 되어 있었다. 이번 사고의 책임은 개인이 아니라 명백하게 서울시의 관리 책임”이라는 논평을 냈다.

우 국장은 “지하철은 어느 지역에 가도 ‘시민의 발’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지하철은 ‘발’ 뿐만 아니라 시민의 휠체어, 시민의 유모차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설계 과정부터 장애인의 이동권을 배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전장연의 이동권 투쟁은 지하철에서 그 효과가 가장 크게 발휘됐다. 지난 2001년에는 장애인들이 지하철 선로에 몸을 던지는 시위를 시작해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으로부터 “2년 안에 모든 지하철역에 승강기를 설치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전장연이 이동권 투쟁의 장소로 지하철을 선정한 것은 필연의 결과다.

보도블럭부터 버스, 지하철까지 ‘접근성’ 향상해야

다만, 전장연은 최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 면담을 통해 저항 방식을 ‘삭발 투쟁’으로 바꿨다.

전장연은 지난달 29일 임이자 인수위 사회복지문화분과 간사와 만나 “21년동안 이동권 보장되지 않은 부분, 탈시설 등 이미 발의됐던내용들 지금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며 “여야가 함께 시급하게 풀어주셔야 할 중요한 과제로 방향 잡아주시면 고맙겠다”고 전했다. 당시 임 간사는 “권리를쟁취하기 위한 부분도 이해하지만 다른 시민들께서 불편을 겪고 계시니 이를 지양해주시고 오늘 중으로라도 (이동권 시위를) 배제해주셨으면 한다”고 요청했고, 전장연은 투쟁 방식을 선회했다.

오 국장은 “오는 20일 장애인의 날까지 인수위에서 의미 있는 결과를 가져오면 좋겠다”며 “이준석 대표는 우리나라 이동권이 잘 돼있다고 말하지만, 현장에서는 우리나라 이동권은 후진국”이라고 말했다.

8일 서울 시내 한 버스 정류장. 일부 정류장들은 높은 연석으로 저상버스가 리프트를 내려도 휠체어 통행이 불가한 상황이다.  (사진=뉴스포스트 김혜선 기자)
8일 서울 시내 한 버스 정류장. 일부 정류장들은 높은 연석으로 저상버스가 리프트를 내려도 휠체어 통행이 불가한 상황이다. (사진=뉴스포스트 김혜선 기자)

이 대표가 핵심 공약으로 내세운 ‘저상버스 도입’에 대해서도 “단순히 저상버스를 몇 퍼센트 도입하는 정도가 아니라, 전반적인 장애인 이동에 대한 접근성 향상에 초점을 둬야 한다”고 했다. 그는 “저상버스 운전기사도 휠체어 경사로를 어떻게 내리는지 조작방법을 모르는 분도 있고, 대부분 휠체어 장애인은 부피가 큰 전동 휠체어를 이용하지만 저상버스 설계는 작은 수동휠체어 위주로 설계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서울시의 경우 저상버스가 도입 불가능한 노선은 도입 계획조차 세우지 않는다”며 “단자 턱이 높다던가 하는 이유로 저상버스 도입이 불가능하다면, 도로를 개선해야 하는데 그냥 안 된다고 한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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