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자사서 2호선 교대역까지
수동형 휠체어 타고 가면 1시간 11분
문틈에 걸리고 장애물 앞에서 멈추고
“도움 필요하나요?”...시민의식은 빛나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시위가 연일 화두에 오르고 있다. 장애인들의 이동권을 보장해달라는 게 주목적이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라면 비난과 혐오까지 감수하겠다고 말한다. 무엇이 이들의 결기를 다지게 했을까. 장애인들이 일상에서 겪는 불편을 알아보기 위해 취재진은 수동 휠체어를 대여했다. 마침 왼쪽 무릎 부상으로 오래 걷기가 어려우니 겸사겸사 ‘잘 됐다’고 생각을 했다.

지난 14일 오후 2시 <뉴스포스트> 취재진은 서울 송파구 본사에서 지하철 2호선 교대역까지 가기 위해 휠체어에 몸을 맡겼다. 타는 순간 ‘휠체어를 타고 이동해도 괜찮을 것’이라는 판단이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서서 걸을 때보다 시야는 절반 정도 낮아졌고, 휠체어는 취재진이 의도한 대로 순순히 움직이지도 않았다.

지난 14일  취재진이 서울 송파구에서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다가 정차 차량을 마주했다. (사진=뉴스포스트 김혜선 기자)
지난 14일 취재진이 서울 송파구에서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다가 정차 차량을 마주했다. (사진=뉴스포스트 김혜선 기자)

만일 엘리베이터 위치를 몰랐다면?

30대 비장애인 여성 기준으로 본사에서 교대역까지 가는 데 약 25분의 시간이 소요된다. 본사에서 환승역인 종합운동장까지 이동 후 지하철로 여섯 정거장만 가면 도착할 수 있다. 하지만 지하철역으로 이동하는 과정부터 순탄치 않았다. 정차된 차량이 휠체어 앞을 가로막은 것이다. 다행히 차량 주인이 빨리 나타나 길을 터줬다. 평소에는 이동에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을 상황도 휠체어 앞에서는 넘어야 할 큰 산이 됐다.

종합운동장역에서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탑승했다. 휠체어에 탄 채 장애계 투쟁의 산물을 마주하니 감회가 남달랐다. 전장연 등 장애계에서는 1999년 혜화역과 2001년 오이도역에서 발생한 지체장애인 리프트 추락사고 이후 엘리베이터 설치 투쟁을 본격화했다. 지하철에서 휠체어가 이동할 수 있는 수단에는 리프트와 엘리베이터가 있는데, 리프트에서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서 엘리베이터 만이 장애인 안전과 이동권 보장 대안이 됐다.

지난 14일 서울 지하철 종합운동장역에서  취재진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김혜선 기자) 
지난 14일 서울 지하철 종합운동장역에서 취재진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김혜선 기자) 
지난 14일 서울 지하철 종합운동장역 휠체어 탑승 공간 앞에서 취재진이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김혜선 기자)
지난 14일 서울 지하철 종합운동장역 휠체어 탑승 공간 앞에서 취재진이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김혜선 기자)

출·퇴근길 매일 같이 다니는 길이라 엘리베이터에서 승강장까지 어렵지 않게 이동할 줄 알았다. 평소에는 느리다고 생각했던 엘리베이터 문 닫히는 속도. 막상 휠체어를 타고 탑승하려 하니 문이 금방이라도 닫히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휠체어 전용 개찰구는 또 왜 이렇게 멀까. 한 손으로는 교통 카드를, 다른 한 손으로는 개찰구 문을 열어야 하는 불편함도 컸다.

더 큰 문제는 지하철 탑승이었다. 승강장과 지하철 사이의 단차로 휠체어 바퀴가 열차에 들어갈 수 없었다. 열차로 들어가는 입구가 승강장보다 약 2cm 높았는데, 수동 휠체어의 힘으로는 입장할 수 없었다. 역무원에 전화해서 ‘이동식 안전 발판’을 따로 요청해야 탑승이 가능하다. 이 과정에서 3대의 지하철을 그냥 보냈다.

간신히 교대역을 도착한 취재진은 엘리베이터부터 찾았다. 취재진에게 익숙한 종합운동장역에서는 엘리베이터 앞까지 도착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익숙지 않은 지하철역에서는 엘리베이터 찾기 삼만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고난의 길을 뒤로하고 개찰구에서 요금을 정산하고 밖으로 나오니 시간은 오후 3시가 훌쩍 넘었다. 30분이면 갔던 거리를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니 시간이 두 배가 넘게 걸렸다.

지난 14일 취재진이 휠체어 전용 공간에서 지하철을 이용하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김혜선 기자)
지난 14일 취재진이 휠체어 전용 공간에서 지하철을 이용하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김혜선 기자)

성숙한 시민의식에 못 미치는 장애인 교통권

휠체어에 앉아서 본 세상은 녹록지 않았다. 비교적 장애인 이동권이 잘 갖춰졌다는 서울 지역 지하철에서도 숱한 장애물을 만났다. 이동의 장벽은 열차와 승강장 사이 단차 2cm와는 비교할 수 없이 높았다. 하지만 약자를 대하는 성숙한 시민의식 역시 휠체어를 타고 나서야 비로소 마주할 수 있었다.  

휠체어를 탄 취재진에게 보인 시민들의 태도는 친절했다. 길을 막던 정차 차량의 차주는 연신 사과의 뜻을 전하며 서둘러 비켜줬다. 지하철 탑승을 위해 휠체어를 끌어주려고 한다던가, 개찰구를 빠져나가는 동안 문을 잡아주는 시민도 있었다. 한 시민은 승강장에서 헤매는 취재진에게 선뜻 “몸이 불편하신데, 도와드려도 되나요”라고 묻기도 했다. 이동권 보장을 요구한다는 이유로 장애인에 대한 혐오를 서슴지 않는 사회에서 한줄기 희망이 보였다.

지난 14일 서울 지하철 교대역에서 취재진이 엘리베이터를 찾기 위해 지도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김혜선 기자)
지난 14일 서울 지하철 교대역에서 취재진이 엘리베이터를 찾기 위해 지도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김혜선 기자)

하지만 장애인 이동권은 성숙한 시민의식에 미치지 못했다. 사용한 휠체어를 반납하러 가는 길조차 험난했다. 지하철 1호선 구일역에는 엘리베이터가 2번 출구에만 있다. 구일역 휠체어 이용자가 1번 출구로 나가기 위해서는 리프트를 탑승할 수밖에 없다. 리프트에 호출 버튼을 누르면 역무원이 오는 시스템이다. 넓은 지하철역에서 역무원이 도착하기까지 시간도 소요된다. 취재진은 역무원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지하철을 나갈 수 있었다.

지상에서 승강장까지 교통약자가 타인 도움 없이 이동할 수 있는 동선을 ‘1역사 1동선’이라고 한다. 서울교통공사는 오는 2024년까지 공사가 관할하는 1~8호선의 275개 역에 1역사 1동선을 확보한다고 공약했다. 현재 254개 역에만 1역사 1동선이 확보됐다. 1역사 1동선이 확보되지 않은 역은 21개 역이고, 이중 2개 역은 엘리베이터조차 없다.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도 높은 지금 성숙한 시민의식에 맞는 대책이 필요하다. 김성열 서울교통공사 기술본부장은 “이동권은 국민의 기본적 권리지만 법령이 만들어지기 전에 건설된 초기 지하철은 여전히 미흡한 곳이 많아 최선을 다해 1역 1동선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관리 사각지대에 놓인 민자 연결통로 편의시설에 대해서도 공사가 대안을 마련해 불편 최소화에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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