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파로 붐비는 청와대, 그리고 북촌과 서촌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2년 5월 청와대가 사람들로 북적인다. 지난 5월 10일 청와대를 시민에게 공개한 이후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는 것. 청와대 앞길은 예전에도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으나 청와대 내부를 일반에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인파가 몰리는 것은 그만큼 궁금했던 장소였기 때문은 아닐까.

기자는 예전에 대통령비서실 회의에 자주 참석한 시절이 있었다. 그 첫 회의를 앞두고 긴장했던 기억이 새롭다. 아무나 허락되지 않는 공간에 들어가는 경험을 한다니. 복잡한 입장 절차와 보안 검색도 기억난다. 당시 영풍문 회의실이나 여민관만 출입할 수 있었지만 나라 운영의 핵심이 모이는 곳이라는 느낌을 받기에는 충분했다. 그런 곳이 시민에게 열렸다.

(2022. 05. 18)시민에게 개방된 청와대.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2. 05. 18)시민에게 개방된 청와대.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청와대의 유래

청와대는 북악산 남쪽에 자리한다. 경복궁을 감싸듯 둘러싼 바위와 숲이 어우러진 산이다. 고려 시대에 서울은 남경(南京)이었고 북악산 아래에 이궁(離宮)이 있었다. 조선 시대에는 이궁 남쪽으로 경복궁이 들어섰고 이궁이 있었던 곳에는 후원을 조성했다. 그곳을 지금의 청와대 자리로 추정한다. 

하지만 임진왜란으로 경복궁과 후원은 폐허가 된다. 그 후 270여 년간 방치되었다가 고종 시절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한다. 이때 후원 인근에 경무대(景武臺)를 함께 지었는데 창덕궁 후원의 춘당대(春塘臺)와 더불어 인재를 뽑는 과거장의 기능을 했다. 

옛 조선 총독 관사. 경무대로 불렸고 1960년에 청와대로 이름이 바뀐다. (사진: 서울역사아카이브)
옛 조선 총독 관사. 경무대로 불렸고 1960년에 청와대로 이름이 바뀐다. (사진: 서울역사아카이브)

일제강점기인 1929년에는 조선총독부 통치 20년을 기념하는 조선박람회가 경복궁과 옛 후원 일대에서 열리면서 궁궐 건물과 후원 시설 대부분이 헐렸다. 1939년이 되자 한동안 공원으로 이용했던 옛 후원 자리에 조선 총독 관사가 들어섰고 경무대라 불렀다. 

경무대는 광복 후 이승만 초대 대통령 시절부터 대통령 관저와 집무실로 이용되다가 4대 대통령인 윤보선 시절에 청와대로 이름이 바뀐다. 경무대 본관의 청기와 지붕에서 착안해 청와대(靑瓦臺)로 했다고. 지금의 본관은 1991년에 새로 지은 건물이고 옛 총독 관저는 1993년에 철거됐다.

1993년에 철거되는 옛 총독 관사. (사진: 국가기록원)
1993년에 철거되는 옛 총독 관사. (사진: 국가기록원)

청와대는 대통령이 사는 집이면서 일하는 집무실이기도 했다. 행정의 중심지였고 정치·외교·군사 등 국내외의 관심이 쏠리는 곳이었다. 청와대 하면 대통령의 생활 공간인 관저와 집무실이 있는 본관이 떠오르지만, 대통령을 보좌하고 보호하는 비서실과 경호실의 업무 공간이기도 했다. 

대통령비서실은 늘공(전문 공무원)과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함께 일하며 민관의 장점을 조합해 대통령을 보좌한다. 다만 논공행상으로 청와대에 입성한 이들의 사심이, 그들을 관리 하지 못한 윗선의 관용이 나라를 뒤흔든 시절도 있었다. 

때론 그 논란의 중심에 대통령경호실이 있기도 했었다. 무력에 기반을 둔 정권이었을 때는 경호를 위해 경복궁 뒷마당에 군부대가 주둔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임무를 수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다만, 관저와 집무실을 옮긴 지금 대통령의 이동은 눈에 띄는 경호 행사가 되어버렸다.

청와대 개방 이후

오전에 비가 내렸지만 5월 중순 어느 날 청와대 앞에는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인근 지하철역에서 이들을 실어나르는 셔틀버스는 물론 지방에서 올라온 관광버스들도 주변 도로를 메웠다.

(2022. 05. 18) 청와대 입구.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2. 05. 18) 청와대 입구.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경복궁 담장을 끼고 청와대로 향하는 시민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경복궁 담장을 끼고 청와대로 향하는 시민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하지만 인파들 모두가 청와대 관람 신청에 당첨된 것은 아니었다. 60대로 보이는 일군의 남성들이 청와대 입구에서 “지방에서 멀리 왔으니 좀 들여보내 주시오”라며 직원과 실랑이하고 있었다.

“인터넷에서 원하는 관람 일자로 신청한 후 추첨을 거쳐 당첨 안내와 입장 큐알코드를 받아야 하는데 그것을 모르고 그냥 오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멀리서 오셨다느니, 일행이 먼저 들어갔다느니 하셔도 큐알코드 없으면 못 들어가세요.”

영빈문 앞에서 관람객을 맞이하던 관계자의 말이다. 청와대 개방 이후 1주일간 누적 관람 인원이 20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그런데 청와대 관람에 당첨되지 않았지만 그 인근이라도 구경하려고 오는 사람이 훨씬 많은 것으로 보인다. 경복궁 동쪽 돌담길과 서쪽 돌담길에는 청와대로 향하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청와대 춘추관에서 삼청동으로 가는 길. 구멍가게 2곳이 있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청와대 춘추관에서 삼청동으로 가는 길. 구멍가게 2곳이 있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청와대 인근의 등산객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청와대 인근의 등산객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청와대에 관광객이 몰리니 인근 동네도 함께 들썩이는 듯했다. 청와대 춘추문에서 삼청동으로 향하는 길에 구멍가게 두 개가 있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 편의점 대신 아직 구멍가게가 영업할 정도로 관심받지 않는 상권이었나 보다. 서울 한복판이지만 인적이 드물어 편의점이 들어서기 힘들었을까. 그렇게 한적했던 길에 관광객들이 계속 오갔다. 

“사람들이 많이 오니 인근 가게들은 좋겠지만 이 동네에 사는 입장에서는 복작거리고 시끄러워서 불편해졌어요.”

청와대 춘추관 바로 옆 삼청동 골목에 사는 어느 주민의 말이다. 그에 따르면 청와대 인근이라 어느 정도 제약은 있었지만 범죄가 없고 한적해서 좋았다고 했다. 그런데 청와대 개방 이후 사람이 몰리고 조용했던 골목이 관광객의 소란과 카메라를 감수해야 하는 곳으로 변했다고 하소연했다. 청와대 서쪽 효자동이나 궁정동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청와대를 비운다고 해서 시위 소리가 줄어들 줄 알았는데 이제는 각종 행사 소리로 시끄러워졌어요. 특히 등산객들이 소란스럽게 지나거나 인근 골목에서 담배 피우시는 분들이 늘었어요.”

궁정동 한 어린이집 학부형의 말이다. 청와대 내부 마당과 청와대 서쪽 담장 역할을 하는 칠궁(조선의 왕을 낳은 어머니이지만 왕비가 되지 못한 후궁의 신위를 모신 곳), 그리고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각종 문화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각종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로 청와대 앞은 물론 인근 동네까지 시끌벅적했다.

등산복 차림의 관광객들도 서촌과 삼청동 일대에 많이 보였다. 이번에 새로 개방한 북악산 등산로가 청와대 서쪽 경계인 칠궁과 동쪽 경계인 삼청동에서 출발한다. 등산객이든 관광객이든 평일에도 인파가 몰리는데 주말은 더하지 않을까.

옛 흔적, 청와대는 이제 역사로

청와대를 둘러보니 바뀐 시절을 절감할 수 있다. 청와대 외부에 있었던 직원 주차장과 기자 주차장이 한적한 것. 예전엔 비표가 있어야 그 골목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지금은 지켜보는 이조차 없다. 청와대 일대에 있었던 보안 시설도 많이 철수한 듯 보였다. 

물론 청와대에 있었던 기능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다만 다른 곳으로 옮겨갈 뿐. 그래서 용산이 시위의 명당으로 새로이 뜰 듯하다. 아무튼, 청와대는 이제 역사에 기록으로 남을 건축물이 되었다. 

(2022. 05. 18) 청와대 담장 옆 기자 주차장.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2. 05. 18) 청와대 담장 옆 기자 주차장.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이제는 쓰이지 않는 검문 시설이 청와대 인근에 보관되어 있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이제는 쓰이지 않는 검문 시설이 청와대 인근에 보관되어 있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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