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20년 전보다 나아진게 없어”...멈춰버린 노숙인의 시간
[르포] “20년 전보다 나아진게 없어”...멈춰버린 노숙인의 시간
  • 이해리 기자
  • 승인 2019.11.08 15: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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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활 복귀 가능한 금융 제도 지원 시급
전문가, 개별적 주거 공간 필요

[뉴스포스트=이해리 기자] “쪽방촌의 시간은 멈춰있어. 들어온 지 20년 됐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거의 없어.”

겨울이 시작되는 입동(立冬)을 하루 앞둔 7일, 서울 영등포역 6번 출구 앞에는 한 노숙인이 막걸리를 마시며 앉아있었다. 그는 별다른 안주도, 따라 마실 컵도 없이 막걸리를 두 병째 들이켰다. 출구 옆 골목을 지나 무료 급식소가 있는 지점에 다다르면 골목을 따라 쪽방촌이 늘어서 있다. 이른 아침,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골목길에는 쪽방촌 주민들과 노숙인 대다수가 나와 있었다. 

(사진=이해리 기자)
(사진=이해리 기자)

노숙인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없다. 단어 그대로 일정한 숙소가 없어 거리에서 잠을 자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들이 지역 사회 문제로 부각된 시기는 1997년 IMF 경제 위기 이후다. IMF 사태로 기업이 무너져 많은 실업자들이 생겨났고 그전까지는 ‘부랑인’으로 불렀던 주거공간이 없는 사람들을 이때부터 ‘실직 노숙자’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현재 노숙인이 몇 명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2016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하 보사연)이 길거리와 시설에 있는 노숙인, 쪽방 주민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국의 노숙인 수는 총 1만 1,340명으로 나타났다. 각종 생활 시설(자활·재활 등)에 있는 노숙인이 9,325명으로 가장 많고 거리(1,522명), 일시보호시설(493명) 등의 순이었다. 채 1~2평이 안 되는 열악한 주거 환경에 놓인 쪽방 주민도 6,192명이었다.

이후 2017년 노숙인에 대한 정부 차원의 전면 실태조사가 처음으로 실시됐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안정된 주거 공간 없이 거리나 공원, 역, 쉼터, 쪽방에서 사는 노숙인은 전국에 1만 7,000여 명에 달했다. 이들은 특히 음주와 우울증, 신체장애 등 건강 상태에 ‘빨간불’이 켜져 있다. 

쪽방촌 구석에 한 노숙인이 나무 판자 위에서 잠을 자고 있다. (사진=이해리 기자)
쪽방촌 주민들이 소주를 마시고 있다. (사진=이해리 기자)
쪽방촌 주민들이 소주를 마시고 있다. (사진=이해리 기자)

제대로 관리받지 못한 노숙인의 건강 상태는 위험 단계였다. 자신의 건강 상태가 ‘나쁘다’고 응답한 비율은 39.3%에 달했다. 고혈압과 당뇨병 등 대사성 질환(36.1%), 치과 질환(29.5%), 조현병·알코올중독 등 정신질환(28.6%) 진단을 받았다는 응답자도 상당수였다. 또한 조사 대상 10명 중 3명(29.5%)은 장애인으로 등록됐다고 응답했다. 특히 중증인 1~3급이 76.2%로 대부분이었다.

알코올 중독과 우울 증세도 심각했다. 노숙인·쪽방 주민의 18.5%는 매주 4번 이상 술을 마신다고 응답했다. 특히 알코올 의존도가 높은 고위험 음주자는 전체 음주자의 절반(45.3%)에 가까웠다. 우울증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응답자도 51.9%에 달했다. 특히 거리 노숙인(69%)과 쪽방 주민(82.6%)에게서 우울증이 두드러졌다.

실제로 골목길 안쪽으로 들어서자 상자를 깔고 앉아 소주를 마시고 있는 쪽방촌 주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2도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바닥에 신문지만 깐 채 잠을 자는 노숙인도 있었다. 집을 나온 지 30년이 됐다는 신 모(59) 씨는 “쪽방촌이다 보니 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만 있고, 이주할 곳도 마땅히 없다”면서 “여기 있는 대다수의 사람은 정신질환이나 알코올 중독을 앓고 있는 기초생활수급자다”라고 전했다. 

점심시간이 되어 무료 급식소의 급식이 시작되자 사람들이 하나둘 줄을 섰다. 임 모(50) 씨는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하루 세끼를 모두 다 주는 급식을 운영하기 때문이다”라면서 “지금 입고 있는 옷도 다 이곳에서 얻은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들이 노숙·쪽방 생활을 하게 된 이유와 현재 겪고 있는 어려움은 뭘까. 쪽방촌 주민들은 이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직업을 가지려 했지만 할 수 있는 일자리도 줄었다고 한다.

사업 실패로 집을 나온 지 10년 됐다는 오 모(45) 씨는 “주방장 출신으로 식당에 취업하기 위해 벼룩시장을 보고 전화했지만, 4대 보험이 필수라 일하지 못했다”라면서 “월급이 들어오는 순간 모두 압류돼 버린다. 이 바닥에 있는 사람들은 소득이 잡히는 게 부담스럽다”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나 지원센터가 연계해주는 일자리는 4대 보험이 필수다 보니 각자 알아서 일용직 사무실을 찾아 막노동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라면서 “하지만 오랜 거리 생활로 몸도 망가져 꾸준히 일할 수 없고, 일 자체도 거의 없다. 정말 바닥에 있는 힘든 사람에게는 평범한 사람이 아닌 그들의 눈높이에 맞는 제도적 지원이 활성화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열악한 쪽방촌 내부 모습. (사진=이해리 기자)
쪽방촌 골목. (사진=이해리 기자)

보사연이 노숙인 가운데 표본 2,032명을 뽑아 심층 면접 조사를 한 결과에 따르면 노숙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로는 ‘개인적 부적응’(54%), ‘경제적 결핍’(33%), ‘사회적 서비스 또는 지지망 부족’(6%) 이 주로 꼽혔다. 구체적인 원인은 질병 및 장애(정신질환) 26%, 이혼 및 가족해체 15%, 실직 14%, 알코올 중독 8% 등이다. 

보사연 조사 결과 이들이 평소 필요로 하는 것은 ‘소득 보조(36.9%)’가 가장 많이 꼽혔고 주거 지원(23.5%), 의료 지원(13%) 등이 뒤를 이었다. 다만 거리나 일시보호시설에 거주하는 노숙인은 ‘주거 지원’이 가장 필요하다고 답했고, 생활 시설에 입소한 노숙인과 쪽방 주민은 ‘소득 보조’를 1순위로 꼽았다.

하지만 일방적인 금전적 지원이 아니라 노숙인들이 성장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쪽방촌에 3년 거주한 최창복(54) 씨는 “무조건 쪽방촌이라고 물건을 갖다주고, 이런 것은 일시적인 효과일 뿐이다”라면서 “기초생활수급액이 20일에 들어오면 경마와 같은 도박으로 그 당일 모두 날려버리는 사람들도 많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아무리 얘기해도 안 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변할 수 있다”라며 “사람들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고, 사람들도 본인이 변하는 것을 느끼면, 이곳도 변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서울역 거리의 노숙인들 (사진=이해리 기자)

목적전치된 정부 지원

이날 서울역의 풍경도 비슷했다. 서울역 광장 계단 바로 밑에는 돗자리를 깔고 소주를 마시며 만취된 여러 노숙인을 볼 수 있었다. 추워진 날씨에 겨울 외투를 입고 쭈그려 잠을 자거나 다시서기센터에서 컵라면을 받아와 점심을 먹는 노숙인도 있었다. 

보건복지부(복지부)는 노숙인의 보호·재활·자립 기반 조성을 위해 2012년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 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한 이후 노숙인 자활 목적의 시설을 지속해서 늘렸다. 현재 정부에서 관리하는 노숙인 생활 시설은 전국 57개소, 지방자치단체에서 관리하는 재활센터는 60개소다.

하지만 혹서기와 동절기에 노숙인에게 응급 잠자리를 제공하는 노숙인 종합지원센터는 전국 10곳(서울 2, 부산 2, 경기 3, 대구 1, 대전 1, 제주 1)에 지나지 않는다. 겨울철 노숙인들이 추위로 인한 사고를 피할 수 있도록 보호 공간을 마련하지만 한참 부족한 실정이다. 

서울역에서 만난 거리 노숙인의 대부분은 시설 입소에 거부감을 드러냈다. 노숙인 김 씨(63)는 “길에서 지내다 시설에 있어 봤는데, 거리가 더 편하다”면서 “여러 사람과 같이 생활하는 게 너무 불편하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노숙인 유 씨(70)는 “시설에 가보기도 했지만, 너무 열악하고 비좁다”라면서 “시설에 들어온 사람들끼리도 매일 싸워 도무지 잠을 잘 수 없다”라고 답했다. 

제도상의 문제 등으로 입소를 하지 못하는 노숙인들도 있었다. 어렸을 때 버려져 출생신고를 하지 못했던 노숙인은 호적이 없기 때문에 시설에 입소하지 못했다. 노숙인 생활에서 자립할 수 있는 첫 단계인, 각종 시설에 진입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노숙인들 위해 현실에 맞는 제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전문가들은 노숙인 주거 정책을 개별 주거 지원으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서울역 다시서기센터 이수범 실장은 “지금은 개별적으로 본인의 사적 공간을 굉장히 중요시하게 생각하는 사회다”라면서 “쉼터나 시설들은 공간이 좁기도 하지만 여러 사람이 같이 생활하고 정해진 규율도 지켜야 하므로 ‘집’으로 인식되기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옆방의 소리가 다 들리고, 화장실도 공동으로 쓰는 등 이는 주거가 아니다”라면서 “시설을 늘리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 아니며, 개인이 혼자 주거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개별 노숙인에 대한 자립을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해리 기자 h42182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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