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속되는 취재진 방문에 주민들 피로감 호소
- 서울역 확진 여파...영등포 무료급식소로 사람 몰려
- 공공주택 개발...주민들 사이에서도 갈등 빚어

[뉴스포스트=이해리 기자] “(취재진이) 1년 동안 100명은 다녀간 것 같아요. 우리가 동물원의 원숭이도 아니고...”

20년째 서울 영등포 쪽방촌에 거주 중인 최 씨는 서울역 노숙인 센터 운영 중단의 여파가 영등포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해리 기자)
20년째 서울 영등포 쪽방촌에 거주 중인 최 씨는 서울역 노숙인 센터 운영 중단의 여파가 영등포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해리 기자)

“언론의 보여주기식 관심 지쳐”


27일 기자가 찾은 서울 영등포구 쪽방촌 골목에는 무료 주먹밥, 간식을 받기 위한 주민들의 줄이 50m 가량 쭉 이어져 있었다. 기자가 사진을 찍으려 하자 고함이 들려왔다. 

한 주민이 현장을 살펴보던 기자에게 다가와 사진을 찍지 말라며 흉기를 들이밀었다. 지난 2019년 11월 입동 전 쪽방촌을 방문했을 당시 조용했던 분위기와는 달리 한껏 예민해진 모습이었다. 주변 주민들은 그를 말리며 취재진에 대한 피로감을 호소했다. 

진 씨(58)는 “새해가 된 지 한 달도 안 돼 5개 방송사에서 우리를 촬영해갔다. 며칠 전 서울역 센터에서도 확진자가 나오고,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어떻게 비칠지 몰라 그만 나갔으면 한다”라고 호소했다. 

쪽방촌에 30년째 거주 중인 권수길(79) 씨는 “지난 1년 동안 기자들이 100명은 다녀갔어. 우리가 무슨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것 마냥 찍어가더라니까. 이럴 때만 바짝 관심이지”라며 혀를 찼다. 

이어 “KBS, MBC, SBS 공중파부터 YTN, TV조선 케이블까지 다 왔으니 이제는 CNN도 오겠다는 우스갯소리를 한다”라고 덧붙였다. 

쪽방촌 거주 20년 차 한 씨(70)는 “기자들은 사진만 열심히 찍고 인터뷰만 해가지, 인터뷰 응해줘서 고맙다는 말도 막걸리 한 잔도 사준 적이 없어. 얄짤없이 가버려”라고 말했다. 

쪽방촌 주민과 노숙인들이 간식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줄은 쪽방촌 초입부터 50m가량 이어졌다.  (사진=뉴스포스트 이해리 기자)
쪽방촌 주민과 노숙인들이 간식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줄은 쪽방촌 초입부터 50m가량 이어졌다.  (사진=뉴스포스트 이해리 기자)

 


서울역 확진 영향으로 무료 급식 중단


마을 한쪽에서는 통장이 주민들의 마스크 착용 여부를 확인하고 있었다. 통장 김 모 씨는 “영등포구청과 쪽방상담소 등에서 마스크를 지원해 줘 수급에는 문제가 없다”면서 “솔직히 젊은 친구들이 술집에 놀러 가는 게 위험하지, 우리는 잘 착용한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무료 간식을 타러 온 주민들 중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지 않은 사람들은 없었다. 하지만 주민들은 급식이나 간식을 받을 때 거리두기가 지켜지지 않는다며 감염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조 씨(53)는 “쪽방 안에서는 음식을 해먹을 수 있고, 귀찮아서 나오지 않는 경우도 많다. 무료급식은 쪽방촌 내부 주민보다 다른 곳에서 오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인천, 안양, 천안까지 전국 노숙인들이 와서 200m가 넘게 역 앞까지 줄을 선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마스크를 끼고 있다고 해도 다닥다닥 서 있는데 무슨 방역이 될까 생각한다. 방역 담당자가 와서 그 광경을 본다면 놀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서울역 노숙인 센터의 확진 여파가 영등포까지 영향을 주고 있어 상황이 더 힘들어졌다고 호소했다. 

최 씨(67)는 “서울역에서 모든 게 올 스톱되니까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여기까지 몰려온다. 무료급식은 11시에 시작인데 새벽 6시부터 줄을 선다”면서 “서울역 센터에서 확진자가 나와 영등포 무료급식도 이번 주는 쭉 중단되고, 다음 주 월요일에도 상황을 봐야 한다더라”라고 말했다.  

27일 서울 영등포 쪽방촌에서 만난 권수길 씨는 쪽방촌에서만 30여 년을 거주했다. 쪽방촌 초입에 위치한 828 건물은 쪽방촌에서 제일 깨끗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해리 기자)
27일 서울 영등포 쪽방촌에서 만난 권수길 씨는 쪽방촌에서만 30여 년을 거주했다. 쪽방촌 초입에 위치한 828 건물은 쪽방촌에서 제일 깨끗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해리 기자)

 


안이 춥고 밖이 따듯한 곳


쪽방촌 거주 30년 차 권수길(79) 씨는 머무는 방을 보여줄 수 있겠냐는 기자의 요청에 어렵게 취재에 응했다. 단둘이 다니면 주변의 시선이 좋지 않다며 한 씨와 함께 동행했다.

권 씨가 자리를 내어줬지만 2평(6.6㎡) 남짓한 쪽방은 두 명이서 앉기에는 비좁았다. 권 씨는 해당 쪽방 건물이 화장실과 싱크대가 내부에 있어 쾌적하고, 방도 깨끗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권수길 씨가 거주하는 쪽방촌 내부 모습. 권 씨는 내부에 공용 화장실이 있는 가장 깨끗한 방 중 하나라고 소개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해리 기자)
권수길 씨가 거주하는 쪽방촌 내부 모습. 권 씨는 내부에 공용 화장실이 있는 가장 깨끗한 방 중 하나라고 소개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해리 기자)

권수길 씨는 “초입에 있는 이 건물이 가장 좋은 편이야. 나도 얼마 전에 이사했는데, 보통 낮에는 방에 잘 안 와. 냉골이거든 냉골. 오늘 같이 따뜻한 날에는 안이 훨씬 춥고 밖이 따뜻해서 다들 나와 있지”

방 안에 깔려있는 장판은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를 막기 위해 고장 난 장판을 주워다 깔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권 씨는 “대부분 박스를 깔고 사는데 나는 나이가 많다고 동생들이 챙겨줘서 운이 좋았지”라고 말했다. 

한 씨는 “지난주에 쪽방촌 동생이 굶다가 세상을 떠났다. 지병도 있긴 했지만 나도 당뇨를 20년째 앓고 있고, 쪽방촌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지병을 갖고 있다. 아픈 사람들이 갈 곳이 없어 마지막으로 모인 곳이 쪽방촌이다. 꼭 호스피스나 다름없다”고 전했다. 


코로나 보다 ‘공공주택’ 우려


쪽방촌에 걸려 있는 재개발 반대 현수막. 쪽방촌 주민끼리도 찬반이 갈려 말을 조심하는 분위기다. (사진=이해리 기자)
쪽방촌에 걸려 있는 재개발 반대 현수막. 쪽방촌 주민끼리도 찬반이 갈려 말을 조심하는 분위기다. (사진=이해리 기자)

이날 인터뷰를 나눴던 주민들의 모습은 재작년 방문했을 때와는 사뭇 달랐다. 편하게 하고 싶은 말을 해주던 전과는 달리 지금은 서로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언론에 자주 노출돼 불편함도 있었지만, 재개발에 대한 찬반이 나뉘어 말을 조심하고 있다는 것. 

현재 쪽방촌 내부 분위기는 코로나보다도 재개발에 대한 여론을 의식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쪽방촌 안쪽에는 재개발을 반대한다는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현수막 사진을 찍으려하자 이를 제지하는 주민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기자는 또 그 자리에서 쫓겨났다. 

영등포구는 지난해 12월 구민들이 투표한 2020년 한 해를 빛낸 영등포구의 10대 뉴스 중 1위는 ‘영등포 쪽방촌 공공주택사업 추진’이 선정됐다고 발표했다. 

정부의 정비 계획에 따르면 서울 영등포역 앞 부지 1만㎡의 쪽방촌을 철거되는 대신 최고 36층짜리 주상복합 등 건물 4동이 들어선다. 36층짜리 주상복합 두 동에는 민간 주택 600호를 분양하고, 나머지 두 동에 쪽방 주민을 위한 영구임대 370호와 행복주택 220호 등이 입주한다.

영등포구는 이 같은 투표 결과는 쪽방촌 일대의 정비와 도시재생 개선 사업에 대한 구민의 염원과 기대를 한눈에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작 쪽방촌 내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쪽방촌에 35년 거주했다는 황 씨(81)는 “여기 있는 사람들의 절반 이상이 기초생활 수급자다. 사실 나는 90%까지도 본다”면서 “정부에게 받는 기초생활수급으로는 방세와 식비, 약간의 술값이면 끝인데, 영구임대주택에 가려면 보증금 150만 원이 필요하다. 사실상 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은 정해져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주민 오 씨(45)는 “이 동네는 사람들이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정착하는 곳이다”면서 “솔직한 심정을 말하고 싶어도 자기 이익 여부에 따라 생각이 달라 함부로 말을 할 수 없다”라며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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