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피해 사실을 세상에 고발하는 ‘미투(MeToo)’ 운동이 국내를 휩쓴 지도 2년이 지났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성폭력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과제로 남아 있다. 특히 친족 간의 성폭력은 국내에 여전히 잔존하는 성범죄에 대한 그릇 인식과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 때문에 더욱 드러나기 어려운 상황이다. <뉴스포스트>는 한국 사회의 성폭력 문제 중에서도 유독 금기시된 ‘친족 성폭력’의 근절 방안을 고민해보았다. -편집자 주-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한국 사회에서 친족 성폭력 문제가 인식된 지는 30년이 다가간다. 지난 1992년 의붓아버지로부터 십여 년간 성폭력을 당했던 여성이 자신의 남자 친구와 공모해 가해자를 살해한 사건에서 친족 성폭력 문제가 공론화됐다. 가부장 중심의 보수적인 당시 한국 사회에서 존속살인은 용납할 수 없는 중대 범죄였다. 하지만 여론은 친족 간 성폭력에 더 분노했고, 법원은 여성에게 살인죄로써는 이례적으로 집행유예형을 선고했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친족 성폭력 문제에 대해 분노하는 여론은 비슷하다. 심심치 않게 쏟아지는 친족 성폭력 보도에서 가해자를 ‘인면수심’, ‘악마’ 등의 원색적인 표현으로 묘사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다만 시대가 변하면서 친족 성폭력 피해 당사자들이 직접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서게 됐다는 게 과거와는 다른 점이다. 피해 당사자들은 가해자에 대한 원색적 비난보다는 친족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바로잡고, 법을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피해 당사자들과 여성계는 친족 성폭력 사건에 대한 공소시효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행법에 따르면 친족 관계인 사람이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경우 7년 이상 유기징역에, 강제추행의 경우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공소시효는 범죄 유형에 따라 7년에서 10년 사이다. 어린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이 자신이 당했던 일을 명확히 ‘성폭력’으로 이해하고, 수사 기관에 알리는데 최대 10년이라는 시간은 매우 짧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과 여성계의 주장에도 법은 꿈쩍하지 않고 있다. 국회 차원에서 관련 입법 움직임이 보이는 정도다. 무소속 양정숙 의원이 지난 1월 친족 성폭력 범죄의 공소시효를 폐기해야 한다는 내용의 법안을, 이형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친족 성폭력을 은폐한 친족에 대해 최대 징역형을 부과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해당 법안들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트위터에 프랑스 누리꾼들이 게재한 친족 성폭력 고발 글 일부 발췌 (사진=트위터 편집)
트위터에 프랑스 누리꾼들이 게재한 친족 성폭력 고발 글 일부 발췌 (사진=트위터 편집)

달라지는 프랑스

친족 성폭력 범죄가 보이지 않은 곳곳에 일어나는데도 근절 단계까지는 갈 길이 먼 상황.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의미 있는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예술과 혁명의 나라로 알려진 프랑스가 친족 성폭력 문제로 연초부터 발칵 뒤집힌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단순한 분노에서 멈추지 않고 강화하면서 실제 법 개정 단계까지 속전속결로 나아갔다.

프랑스의 법학자 카미유 쿠슈네르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의붓아버지이자 프랑스 저명 정치학자인 올리비에 뒤아멜이 자신의 형제를 수차례 성폭행했다고 폭로했다. 가족들은 물론 뒤아멜과 관련된 많은 정계인사들이 이를 알고도 묵인했다고 덧붙였다. 쿠슈네르의 고백 이후 SNS상에서는 친족 성폭력을 의미하는 해시태그 ‘#metooinceste(미투엥세스트)’ 운동이 벌어졌다. 수많은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이 SNS상으로 자신의 피해 사실을 고백하기에 이르렀다.

미투엥세스트 운동에 놀란 프랑스는 서둘러 관련 법 정비에 나섰다. 프랑스 상원의회는 13세 미만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맺는 행위를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형사처벌 대상으로 규정하는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공소시효는 피해자가 18세가 된 이후 30년에서 40년으로 연장했다. 또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친족 간 성적 학대 피해 여부를 조사하고, 이들에게 성폭력 예방 교육을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 모든 조치는 쿠슈네르의 저서가 지난 1월 7일(현지 시간) 발간한 이후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아 속전속결로 이뤄졌다. 미투엥세스트 운동을 촉발한 친족 성폭력 가해자인 뒤아멜은 국립정치학연구재단 이사장 자리에서 물러나는 등 대가를 치르는 모양새다. 친족 성폭력에 대한 분노가 프랑스 사회를 빠르게 바꾸고 있다.

연초부터 프랑스를 휩쓴 미투엥세스트 운동은 한국 사회에도 교훈을 던져준다. 친족 성범죄 근절 단계에 빠르게 가기 위해서는 여론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친족 성범죄 문제가 근절되기 위해서는 피해 당사자들과 여성계의 주장이 무엇인지 귀를 기울이고, 지지해야 한다. 적어도 가해자에 대해 원색적인 비난만 일삼거나, ‘불편한 진실’이라는 이유로 문제를 외면 할 단계는 지나야 한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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