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성폭력상담소 유호정 활동가 서면 인터뷰
친족 성폭력 피해자, 가정·사회·법적 지지 필요

성범죄 피해 사실을 세상에 고발하는 ‘미투(MeToo)’ 운동이 국내를 휩쓴 지도 2년이 지났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성폭력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과제로 남아 있다. 특히 친족 간의 성폭력은 국내에 여전히 잔존하는 성범죄에 대한 그릇 인식과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 때문에 더욱 드러나기 어려운 상황이다. <뉴스포스트>는 한국 사회의 성폭력 문제 중에서도 유독 금기시된 ‘친족 성폭력’의 근절 방안을 고민해보았다. -편집자 주-

지난 2019년 12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 앞에서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 폐지를 위한 액션 공폐단단’ 활동가들이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이 받는 편견을 타파해야한다는 취지의 피켓을 들고 있다. 피켓에 따르면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은 장기간 피해 사실을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들 역시 행복할 권리가 있다. (사진=한국성폭력상담소 제공, 사진 혜영)
지난 2019년 12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 앞에서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 폐지를 위한 액션 공폐단단’ 활동가들이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이 받는 편견을 타파해야한다는 취지의 피켓을 들고 있다. 피켓에 따르면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은 장기간 피해 사실을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들 역시 행복할 권리가 있다. (사진=한국성폭력상담소 제공, 사진 혜영)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친족 성폭력이 기타 성폭력 범죄와 다른 점은 가해자가 가족 구성원 내에 있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보금자리가 돼야 하는 가정이 범행 현장이 될 수 있다. 가정이라는 지극히 사적이고 폐쇄적인 공간에서 범죄가 발생하기 때문에 친족 성폭력은 수사기관이나 상담기관 등 외부로 알리기 더욱 어렵다.

실제로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지난해 3월 발표한 ‘2019년 한국성폭력상담소 상담통계 분석’을 통해 친족 성폭력 피해자 대부분이 피해 사실을 수사 기관이 아닌 상담 기관에 알리는데만 10년 이상이 걸린다고 발표한 바 있다. 피해자들의 피해 당시 연령대는 20대 미만 미성년자 시절이 과반을 넘었고, 다른 가족 구성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한 피해자들도 많았다는 게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설명이다.

이 같은 특징들 때문에 친족 성폭력은 대표적인 ‘암수 범죄’로 꼽힌다. 실제 범죄가 발생했지만, 신고 접수 등이 이뤄지지 않아 공식 통계에 집계되지 않은 범죄를 ‘암수 범죄’라고 한다. 양정숙 무소속 의원이 지난달 말 공개한 통계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최근 4년간 친족 성폭력 발생 건수는 매해 평균 780건. 통계가 최소치임을 고려하면 한해에 얼마나 많은 친족 성폭력 범죄가 벌어지는지 정확히 알기 어려운 수준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친족 성폭력 피해 당사자들이 언론 또는 출판 매체를 통해 목소리를 내거나, 여성계가 공소시효 폐지 등 관련법을 뜯어고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희망적인 소식도 들린다. 하지만 한국 사회 어딘가에서는 여전히 친족 성폭력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피해자들이 존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국 사회에서 친족 성폭력 근절은 언제 가능할까. 근절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현재는 어느 단계에 있을까. 지금도 고통받을 피해자들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뉴스포스트>는 해당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질문의 해답을 얻기 위해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여성주의상담팀에서 활동하는 유호정 활동가와의 인터뷰를 지난달 28일 진행했다. 인터뷰는 코로나19 확산 방지와 예방을 위해 서면으로 이뤄졌다.

무소속 양정숙 의원에 따르면 친족 성폭력은 매해 최소 779건 꼴로 발생한다. 친족 성폭력이 대표적인 암수 범죄임을 고려하면 실제로 더 많을 가능성이 높다.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 폐지를 위한 액션 공폐단단’ 활동가가 들고 있는 피켓의 내용처럼 친족 성폭력은 우리 사회 어디에서나 발생할 수 있다.  (사진=한국성폭력상담소 제공, 사진 혜영)
무소속 양정숙 의원에 따르면 친족 성폭력은 매해 최소 779건 꼴로 발생한다. 친족 성폭력이 대표적인 암수 범죄임을 고려하면 실제로 더 많을 가능성이 높다.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 폐지를 위한 액션 공폐단단’ 활동가가 들고 있는 피켓의 내용처럼 친족 성폭력은 우리 사회 어디에서나 발생할 수 있다. (사진=한국성폭력상담소 제공, 사진 혜영)

 

Q. 친족 성폭력 문제가 근절되지 않는 원인은 무엇인가.

A. 친족 성폭력이 은폐돼 있는 만큼 이에 대한 교육이나 가해자 처벌, 피해자 보호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가해자가 실질적인 보호자 역할을 하고 있거나 친밀한 경우, 피해자의 나이가 어린 경우 피해자는 성폭력을 애정과 혼동하기도 한다. 또한 가해자에 대한 양가감정을 갖기도 하며 자책감을 갖기도 한다. 그만큼 당시의 경험을 피해로 인지하고 ‘성폭력’이라고 명명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에 대한 이해가 없는 친족 성폭력 통념이나 편견은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주변에 알리고 대응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게 한다.

Q. 최근에는 피해 당사자들이 언론이나 출판을 통해 목소리를 내는 등 긍정적인 바람도 분다. 친족 성폭력 문제 해결과 관련해 현재 한국 사회는 어느 단계까지 와 있다고 보는가.

A. 한 해 동안 한국성폭력상담소에 걸려온 상담 전화의 9.5%가 친족 성폭력일 정도로 이는 우리 주변에서 드물지 않게 발생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직 친족 성폭력이 ‘우리 주변에 있을 수 없는 소수의’ 가해자, ‘아주 비상식적이고 나쁜’ 가해자에 의해 발생한다는 (잘못된) 통념을 갖고 있다. 이러한 통념은 오히려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말하기 더 어렵게 한다. 

실제로 2018년 ‘미투 운동’ 당시 친족 성폭력은 다른 성폭력에 비해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하지만 최근 친족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이 목소리가 더 커지고 있다. 아울러 사람들의 관심 또한 커진다면, 친족 성폭력에 관한 사회의 인식과 제도가 조금씩 변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Q. 친족 성폭력이 발생하는 가정의 특징이 있는가.

A. 친족 성폭력이 발생하는 가정의 특징을 이야기하는 것은 성폭력의 원인을 구조적인 문제가 아닌 개인적인 문제로만 환원하게 하거나 친족 성폭력에 관한 편견을 강화할 우려가 있다.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알렸을 때 지지받고 보호받을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와 제도를 만들어나가는 게 더 중요하다.

Q. 만약 자신이 친족 성폭력 피해를 당했을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가. 

개별 상황과 주변의 자원에 따라 할 수 있는 대응이 다양하다. 피해를 인지했다면, 여성긴급전화 1366이나 거주 지역 인근의 성폭력 상담소에 전화해주시기 바란다. 가해자가 동거 중인 가족 구성원이라면, 가해자와의 분리가 시급하나 여건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때는 성폭력 피해자 보호시설 쉼터에 거주할 수 있으며, 성폭력 상담소를 통해 연계받을 수 있다.

Q. 가정 내에서 친족 성폭력이 발생했을 경우 피해자가 아닌 다른 가족 구성원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A. 피해자를 비난하지 않고, 피해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들어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 피해자가 다른 가족에게 어렵게 피해 사실을 이야기해도, 그들은 ‘정상’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가정 내의 피해 사실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피해자의 말을 믿지 않거나 오히려 피해자를 비난하는 가족들도 많다. 피해 사실을 알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거나 “왜 이제야 이야기하니”, “네가 착각한 것 아니니” 등의 말을 하는 것은 피해자에게 큰 상처가 될 수 있다.

피해가 지속되는 경우 피해자와 가해자를 즉시 분리해야 하고, 가해자는 본인의 행동이 잘못됐음을 알아야 한다. 잘못에 대한 가해자의 사과와 처벌에 대한 논의를 피해자와 함께 할 수 있고, 성폭력 상담소에서 조언을 구할 수도 있다. 주변인이 피해자를 믿고 지지하는 정도는 피해자의 치유 과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

지난 2019년 12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 앞에서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 폐지를 위한 액션 공폐단단’ 활동가들이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 폐지를 주장했다 (사진=한국성폭력상담소 제공, 사진 혜영)
지난 2019년 12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 앞에서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 폐지를 위한 액션 공폐단단’ 활동가들이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 폐지를 주장했다 (사진=한국성폭력상담소 제공, 사진 혜영)

Q. 친족 성폭력 피해자의 피해 회복을 위해 정부 차원에서 해야 할 법적, 행정적 조치는 어떤 게 있는가.

A. 친족 성폭력은 그 특성상 피해 사실을 인지하고 알리고 대응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 이 때문에 공소시효가 지나 법적인 대응을 할 수 없는 피해자가 많다.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 폐지’는 뒤늦게 대응을 시작하는 피해자의 피해 회복을 위해 정부가 고려할 수 있는 조치 중 하나다. 

성폭력 특별법 개정으로 미성년자 시기에는 공소시효가 적용되지 않지만, 형법상 강간 및 강제추행의 공소시효는 10년이다. 가해자가 실질적인 보호자였을 경우 피해자가 가해자의 울타리를 벗어나 물리적·경제적·정서적 독립을 하고 대응을 시작하기까지 10년의 기한은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아울러 현재 여성가족부는 성폭력이 발생한 지 2년이 지난 성폭력 피해자가 의료지원을 받으려면 의사 소견서 등의 서류가 필요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2년이 지나 성폭력 대응을 시작하는 피해자가 매우 많다는 것을 고려할 때 현실과 잘 맞지 않는 규정이다. 이와 같은 행정적 지침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다.

Q. 여성계에서는 친족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 공소시효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관련 정부 부처는 법적 형평성을 고려해 시효를 없애는 게 어렵다는 입장이다.

A. 성폭력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변화함에 따라 공소시효가 변화한 역사가 있다. 2013년에 성폭력특별법이 개정돼 13세 미만 아동과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의 공소시효가 없어진 것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또한 성폭력 피해를 입은 미성년자의 공소시효를 성인이 된 날부터 기산되기 시작한 것도 법이 개정된 결과다.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가 법 개정으로 폐지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피해 사실을 인지하기도 오래 걸리고 경제적, 정서적 독립 후 대응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친족 성폭력의 특성을 충분히 고려한다면 (법) 개정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작권자 © 뉴스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