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피해 사실을 세상에 고발하는 ‘미투(MeToo)’ 운동이 국내를 휩쓴 지도 2년이 지났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성폭력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과제로 남아 있다. 특히 친족 간의 성폭력은 국내에 여전히 잔존하는 성범죄에 대한 그릇 인식과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 때문에 더욱 드러나기 어려운 상황이다. <뉴스포스트>는 한국 사회의 성폭력 문제 중에서도 유독 금기시된 ‘친족 성폭력’의 근절 방안을 고민해보았다. -편집자 주-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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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하루에도 수천, 수만 건씩 홍수처럼 쏟아지는 뉴스들 중 성범죄 관련 소식은 끊이질 않고 있다. 2018년 ‘미투(MeToo)’ 운동으로 성폭력 근절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청소년부터 노인까지, 동종 범죄 이력의 전과자부터 사회 최상위 권력층까지, 가해자는 악마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평범해 보이는 이웃도 자신보다 약자에게 잔혹한 폭력을 가하는 가해자 일 수 있다는 게 한국 사회의 어두운 면이다.

가정 역시 예외는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공간이 돼야 하는 가정에서도 성범죄 가해자가 나올 수 있다. 가해자들은 ‘가족’이라는 이름을 방패 삼아 자신보다 약자인 다른 가족 구성원에게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다. 사회는 이를 ‘친족 성폭력’이라고 부른다. 성폭력특별법에 따르면 친족이란 4촌 이내 혈족·인척, 동거하는 친족을 의미한다.

친족 성폭력이 한국 사회에 인식된 지는 약 30년 정도다. 지난 1992년 십여 년간 의붓아버지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던 여성이 자신의 남자 친구와 공모해 가해자를 살해한 사건에서 친족 성폭력 문제가 공론화됐다. 가족 간의 성폭력 사건은 당시 한국 사회에 엄청난 충격파를 던졌다.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 듯 법원은 의붓아버지의 범죄를 참착해 여성에게 살인죄로써는 이례적으로 집행유예형을 선고했다.

한국 사회에 친족 성폭력 문제가 공론화 된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최근 통계를 살펴보면 친족 성폭력은 여전히 근절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양정숙 무소속 의원이 지난달 말 공개한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최근 4년간 성폭력 사건은 12만 8,994건이다. 이들 중 친족에 의한 성폭력 사건은 3,115건으로 약 2.5%에 해당한다. 매년 평균 779건의 친족 성폭력 사건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통계에서 나타난 ‘매년 평균 779건’마저도 최소치일 가능성이 크다. 친족 성폭력은 대표적인 ‘암수 범죄’로 꼽히기 때문이다. 암수 범죄란 실제 범죄가 발생했지만, 공식적 통계에 집계되지 않은 범죄를 말한다. 쉽게 말해서 피해 당사자 또는 제3자가 수사 기관에 신고도 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친족 성폭력 피해연령별 피해자와 가해자와의 관계. (표=한국성폭력상담소 제공)
친족 성폭력 피해연령별 피해자와 가해자와의 관계. (표=한국성폭력상담소 제공)

범죄 사실 알리는 데만 10년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지난해 3월 발표한 ‘2019년 한국성폭력상담소 상담통계 분석’에 따르면 피해자들이 왜 신고를 하기 어려운지 이유를 알 수 있다. 분석 따르면 그해 친족 성폭력 총 상담 건수는 87건. 피해 당시 연령대는 미성년자가 전체의 과반을 차지했다. 피해가 가장 많은 시기는 8세에서 13세가 33.3%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14~19세 청소년기에 피해를 입은 사례가 20.7%로 뒤를 이었다. 20세 이상 성인 19.5%, 7세 이하 18.4% 순이다.

가해자는 4촌 이내 친족이 33.3%로 가장 많았고, 친부가 23%로 뒤를 이었다. 형제 역시 20.7%로 적지 않은 수치를 차지했다. 그 외 친족 10.3%, 2촌 이내 친족 5.7%, 의부 4.6%, 시부 2.3%가 순이다. 가해 유형은 강제 추행이 49.4%로 대부분을 차지했고, 강간은 35.6%를 기록했다. 그 외 성희롱이나 카메라를 이용한 불법 촬영, 스토킹 피해 등 친족 성폭력 범죄 유형도 다양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가족관계 내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피해를 인식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며 “피해 당시 가족에게 말하기도 어렵고 말하더라도 지지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피해자들이 친족 내 성폭력 피해를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상담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피해 발생 직후 10년 이상이 무려 55.2%다. 1년 이내는 10년 이상의 절반도 못 미치는 24.1%에 불과하다.

피해 사실을 가족 구성원에게 털어놓기도 어려운 데다 털어놔도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친족 성폭력. 심지어 피해 발생 당시 연령대가 매우 어려서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피해자들은 자신이 겪은 일을 범죄라고 인식하게 된다. 친족 성폭력이 오랫동안 드러나지 못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단죄해야 하는 법은 이 같은 친족 성폭력 범죄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말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 폐지를 담은 성폭력 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한 무소속 양정숙 의원. (사진=양정숙 의원실 제공)
지난달 말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 폐지를 담은 성폭력 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한 무소속 양정숙 의원. (사진=양정숙 의원실 제공)

법은 피해자를 아우르지 못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친족 관계인 사람이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경우 7년 이상 유기징역에, 강제추행의 경우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공소시효는 범죄 유형에 따라 7년에서 10년 사이다. 범죄 피해를 수사 기관이 아닌 상담 기관에 알리기까지만 10년 이상이 걸리는 상황에서 공소시효 최대 10년은 친족 성폭력 가해자들을 단죄하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이다.

가해자들이 단죄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피해자들의 고통은 커진다. 의과학대학교 임상상담심리학과 장수진, 신숙경, 단국대학교 상담학과 김수임 교수가 지난해 발표한 ‘친족 성폭력에 관한 국내 연구 동향’ 논문에 따르면 피해자들은 대체로 자아존중감과 대인기피증 등 ▲ 정서적 문제, 외부 손상 등 ▲ 신체적 문제, 신경 쇠약과 불안장애 등 ▲정신적 문제, 학업 중단 등 ▲ 사회적 문제를 겪는다.

다행히 국회나 정부 차원에서 문제의 공소시효를 손 보려는 움직임은 있다. 친족 성폭력 통계를 공개했던 양정숙 의원은 피해자가 13세 이상 미성년자이거나 성인인 경우에도 친족 관계라는 특성으로 신고가 어려운 점을 고려해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내용의 성폭력 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현행법상 13세 미만 미성년자에 대해서만 공소시효가 없는데, 이를 친족 성폭력 사건에 한해서 공소시효를 없애자는 것이다. 법안은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심사 중이다.

한국 사회에 친족 성폭력 문제가 제기된지도 30년이 다 돼간다. 여성계가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거나 관련 법 개정 움직임이 있다는 점에서 희망은 보이지만, 여전히 갈길은 멀다. 다음 편에서는 친족 성폭력 문제 전문가를 통해 피해 시 대처 방안과 사회가 피해자들을 위해 취해야 하는 점 등을 알아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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