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 이배근 회장 인터뷰
“아동학대, 적극적인 신고로 예방이 중요”

태어난 지 16개월밖에 되지 않은 여아 정인이가 양부모의 끔찍한 학대 끝에 사망했다. 신고 의무자들이 지속적인 신고를 했음에도 정인이는 국가 기관의 방치 속에 고통스럽게 숨을 거뒀다. 아동학대 방지법은 진화했다지만, 끝내 아이의 생명을 지킬 수 없었다. <뉴스포스트>는 제2, 제3의 정인이가 발생하지 않도록 아동학대 범죄의 근절과 예방법을 고민해보았다.  -편집자주-

정인이 사건 첫 재판이 열렸던 지난 13일 오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검찰청 앞에서 한 가족이 아동학대 반대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인이 사건 첫 재판이 열렸던 지난 13일 오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검찰청 앞에서 한 가족이 아동학대 반대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서울 양천구에서 양부모의 끔찍한 학대로 16개월 여아가 사망한 사건. 사회는 이를 피해 아동의 입양 전 이름을 따 ‘정인이 사건’이라고 부른다. 지난해 10월 발생한 정인이 사건이 시민단체의 노력과 TV 매체의 힘으로 연초부터 재조명되자 한국 사회에서는 아동학대 근절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인이 사건 이후 사회는 조금씩 변하고 있다. 당장 지난 9일 신고 즉시 수사를 한다는 내용의 아동학대처벌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경찰은 아동학대 전담팀 신설 계획을 밝혔다. 당장 올해부터 아동보호전문기관과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 수가 증가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 같은 방침으로 아동학대 범죄가 근절될 거라고 믿는 이들은 많지 않다. 

슬하에 두 아들을 둔 방송인 김나영 씨는 자신의 SNS에 김희경의 저서 ‘이상한 정상 가족’을 인용해 정인이를 애도하고, 아동학대 근절을 촉구했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한 아이를 학대하는 데에도 한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문구다. 아동학대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국회, 지방자치단체의 대책뿐만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의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뉴스포스트>는 아동학대 근절을 위해 평범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았다. 이를 위해 이달 13일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 이배근 회장과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유엔아동권리협약 한국 NPO연대 회장과 복지법인 무궁복지월드 상임이사인 그는 정부 기관과 대학 등에서 24년 간 아동복지와 부모 교육을 강의한 아동학대 문제 전문가다. 인터뷰는 코로나19 확산 방지 및 예방을 위해 서면으로 진행됐다.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 이배근 회장. (사진=이배근 회장 제공)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 이배근 회장. (사진=이배근 회장 제공)

 

Q. 아동학대의 개념과 유형은 무엇인가.

A. 아동복지법은 아동학대를 ‘보호자를 포함한 성인에 의한 18세 미만의 아동의 건강 또는 복지를 해치거나 정상적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신체적, 정서적, 성적 폭력이나 가혹행위를 하는 것과 아동의 보호자가 아동을 유기하거나 방임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일반적으로 고의성과 우발성, 상처의 정도가 아동학대 판정에 참고된다.

아동학대 유형에는 신체적 학대, 정서적 학대, 성적 학대, 방임 등 크게 4가지가 있다. 구타나 화상·골절은 물론 영유아를 손으로 잡아서 질질 끌거나 밀치거나, 발로 어깨를 잡고 흔드는 행위인 ▲ 신체적 학대가 있다. 생후 12개월 이하의 영아에게 가해진 체벌은 학대로 간주한다. 신체적 구속이나 감금, 언어적·정서적 위협, 모욕, 아동 혼자 복도나 외딴곳에 세워두는 행위는 ▲ 정서적 학대다.

성폭력과 성기 노출, 성적 유의 등으로 성인의 성적 충족을 목적으로 아동에게 가해진 모든 신체적 접촉이나 상호작용은 ▲ 성적 학대다. 보호자가 고의적 반복적으로 아동에 대한 양육 및 보호를 소홀히 하거나, 의식주 미제공, 학교 안 보내기, 병원치료 거부 등 아동 양육 태만이나 무관심 행위는 ▲ 방임이다.

Q. 아동학대 관련 법안에도 한해 수만 건의 범죄가 발생한다. 현장에서 느끼는 심각성은 어떤가.

A. 2001년 최초로 발행된 아동학대현황보고서에 따르면 당시에는 2,100건이었다. 하지만 2019년도에는 3만 45건으로 무려 15배가 넘게 증가했다. 이처럼 아동학대는 해마다 늘고 있다. 2019년 한 해에만 아동학대로 42명의 어린 생명이 목숨을 잃었다. 

(최근 들어) 코로나19 여파로 학교에 가지 못하고 집안에 갇힌 자녀들이 부모와 충돌하고, 소득 감소 등 경제적 위축에서 오는 부모의 스트레스로 아동학대 발생 건수는 1.5배가 넘었다. 학대 치사 등 아동학대의 정도가 점차 잔혹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Q. 일반 시민들은 아동 몸의 상처가 학대의 흔적인지, 생활하다 다친 것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학대 피해 아동의 전형적인 신체적, 정신적 특징이 있다면 무엇인가. 

A. 넘어지거나 놀다가 이마, 광대뼈, 턱을 다칠 수 있다. 하지만 ▲ 입 주위, 귓불, 엉덩이 등에 나타난 멍 ▲ 머리카락으로 가려진 머리의 혹이나 상처 ▲ 줄이 쳐진 신체 부부의 상처 ▲ 반원형의 상처 ▲ 움직이지 못하는 영아에게 나타난 골절은 아동학대로 의심해야 한다. 줄이 간 상처는 혁대나 막대기에 의한 학대로 의심해야 하고, 물린 상처는 반원형으로 나타난다. 영아의 골절은 대부분 사지를 잡고 억지로 뒤틀었을 때 나타나는 학대 흔적이다.

▲ 낯설거나 새로운 환경에 지나친 두려움 ▲ 말더듬이 등 언어 장애 ▲ 부모와 보호자의 접촉을 두려워함 ▲ 물건을 훔치는 습관 ▲ 잦은 거짓말 ▲ 전반적 발육 부진 등은 정서적 학대를 받는 아이들의 특징이다. 또한 성적 학대를 받은 아이는 속옷이 찢어지거나, 이곳에 피가 묻었다. 걷거나 앉을 때 통증을 호소하며, 옷을 벗기 싫어한다. 심각한 우울증을 앓거나 가출을 시도한다. 

방임된 아동은 또래보다 왜소하거나 빈약하다. 야위었지만, 배만 불룩한 경우가 많다. 피부가 마르고, 주름이 보인다. 항상 굶주리면서 음식을 찾는데, 음식을 발견하면 지나치게 급하게 먹는 게 특징이다. 옷이 지저분하고, 사이즈 또는 계절과 맞지 않은 옷을 입는다. (학교생활을 하면서) 지각과 결석이 잦으며, 교육과정을 따라가지 못하는 특징을 보인다.

Q. 학대와 훈육의 경계를 구분하기 어렵다.

A. 훈육은 타이르고 가르치는 것을 말한다. 일체의 체벌이나 모욕적인 욕설, 차별 등은 훈육을 가장한 학대이며 부모의 자기 화풀이다. 따듯하고 깊은 사랑이 바탕이 된 훈육은 자녀들이 가슴으로 받아들이며, 스스로 깨닫고 잘못된 행동을 수정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감정이 담긴 체벌이나 강압적인 폭력은 아동을 공격적이거나 수동적인 성격으로 만들고, 정상적 성장발달에 심각한 장애를 가져온다. 17세기에 이미 북유럽에서는 체벌금지를 법으로 규정했다. 늦었지만, 우리나라가 최근 이를 법제화한 것은 다행이다.

Q. 학대받는 아동을 발견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A. 아동학대의 79%가 가정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누군가가 신고를 하지 않으면, 심하게는 아이가 목숨을 잃을 때까지 반복되는 경우가 많다. 아동학대는 신고가 있어야 발견이 가능하고, 예방과 치료를 할 수 있다.

아동학대 신고는 국번 없이 전화 112번으로 가능하다. 일단 의심이 된다고 판단될 경우 24시간 언제라도 신고하면 된다. 신고하면 사법 관리와 시‧군‧구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이 즉각 가정을 방문해 조사하며, 즉시 분리제도에 의해 아동을 가정으로부터 분리해 아동보호시설에 배치한다.

Q. 가해자의 협박 등의 이유로 아동학대 신고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를 방지하기 위한 대처는?

A. 현행법에 따르면 신고자의 신고 사실은 법적으로 비밀이 보장되고, 어떤 불이익도 받지 않도록 관계기관에서 보호해야 한다. 신고인의 인적 사항 또는 신고임을 미루어 알 수 있는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거나 공개 또는 보도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신고자가 신고를 꺼리는 것은 지금까지 법이 규정한 대로 실시하지 못한 관계기관에 책임이 있다. 하지만 최근 정인이 사건으로 신고 활성화를 위한 정부의 시책이 변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Q. 학대를 겪으면 후유증이 남는다. 학대 피해 아동이 장차 사회 구성원으로서 정상적인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일반 시민들은 무엇을 해야 하나.

A. 어린이는 굳지 않은 시멘트와 같아서 그 위에 무엇이 떨어지든 간에 깊은 자국을 남긴다. 성장발달기의 아동에게 가해진 아동학대는 일생을 짊어지고 가야 할 무거운 짐이 된다. 어린 시절에 학대를 받고 성장한 어린이의 85%는 성인이 되어 배우자 폭력과 자녀학대 가해자가 된다고 한다. 

학대를 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장차 성장해 사회의 바람직한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을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이 때문에 아동학대는 치료보다는 ‘예방’이 우선이다. 조기에 발견돼야 하기 때문에 아동학대가 의심되는 경우 누구나 즉시 신고를 해야 한다. 국번 없는 112 전화 한 통은 우리의 미래사회를 짊어질 오늘의 어린이들을 학대와 폭력이 없는 어린이와 청소년이 행복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Q.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이 있다면.

A. 인구절벽의 위기를 맞이한 우리나라에서 이미 이 땅에 태어난 어린 생명을 학대와 폭력으로부터 보호한다는 것은 국가와 사회의 우선적 과제다. 그런 의미에서 아동학대 예방과 근절을 위한 아동학대 인식을 높여야 한다. 신고율을 높이기 위한 국민적 참여와 부모 교육이 필요하다. 바람직한 아동 양육과 보호를 통해 밝고 씩씩한 어린이들을 길러내기 위함이다. 또한 법과 제도를 실시하는 기관의 전문 인력 보완과 관련 아동보호 시설의 확충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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