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지 16개월밖에 되지 않은 여아 정인이가 양부모의 끔찍한 학대 끝에 사망했다. 신고 의무자들이 지속적인 신고를 했음에도 정인이는 국가 기관의 방치 속에 고통스럽게 숨을 거뒀다. 아동학대 방지법은 진화했다지만, 끝내 아이의 생명을 지킬 수 없었다. <뉴스포스트>는 제2, 제3의 정인이가 발생하지 않도록 아동학대 범죄의 근절과 예방법을 고민해보았다.  -편집자주-

지난 4일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양부모의 학대로 짧은 생을 마감한 만 16개월 정인이 사건을 애도하며 정인아 미안해 챌린지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4일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양부모의 학대로 짧은 생을 마감한 만 16개월 정인이 사건을 애도하며 정인아 미안해 챌린지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코로나19 백신이 접종이 본격화하면서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려 했던 것도 잠시, 연초부터 전해진 소식이 온 국민을 슬픔과 분노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지난해 발생한 끔찍한 아동학대 사망 사건이 재조명되면서다. 시민사회계가 사건 공론화를 시작하고, 지상파 채널 유명 시사프로그램이 집중 조명했다. 16개월 두 살배기 아이의 죽음은 새해부터 한국 사회에 크나큰 숙제를 던졌다.

5일 이날 오후 1시 30분 기준 인스타그램에는 ‘#정인아미안해’라는 해시태그 수가 7만 건을 넘어섰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부터 인기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의 멤버 지민까지 정치계는 물론 연예계 인사들까지 해시태그 운동에 동참했다. 정인이는 아동학대 사망 사건 피해 당사자다. 지난 2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 따르면 위탁모로부터 보호받던 정인이는 양부모에 입양된 이후 지속적인 학대를 받다가 지난해 10월 사망했다.

입양부터 사망까지, 정인이의 흔적

2019년 6월에 태어난 정인이는 친부모의 사정으로 위탁모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다. 양부모는 지난해 초 홀트 아동복지회를 통해 정식으로 정인이를 입양했다. 안정적인 가정에서 자랄 것으로 기대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정인이를 돌보던 어린이집 교사는 같은 해 5월 아이의 몸에서 학대 흔적을 발견해 신고했다. 신고를 받은 지역 아동보호전문기관은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 조사에서 양부모는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고, 혐의점을 찾지 못한 경찰은 이들을 무혐의 처리했다. 첫 번째 신고 이후 정인이의 어린이집 결석은 잦아졌다. 두 번째 신고는 어린이집 결석이 잦았던 7월이었다. 양부모의 동네 주민은 차량에 방치된 정인이를 보고 신고했다. 이번에도 아동보호 전문기관을 거쳐 경찰이 수사를 진행했다. 불과 수개월 사이에 아동학대 신고가 두 차례나 접수됐지만, 경찰은 또다시 양부모를 무혐의 처리했다. 

마지막 신고자는 지역 소아과 전문의였다. 정인이의 몸 상태를 살펴본 전문의는 9월 경찰에 아동학대 혐의가 의심된다며 신고했다. 하지만 경찰은 또다시 무혐의 처분했다. 정인이는 마지막 신고 이후 채 한 달이 되지 않은 10월에 목숨을 잃었다. 사망 당시 온몸에 멍이 든 것은 물론 골절상을 입고, 내부 장기까지 파열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정인이의 사인을 외력으로 인한 복부 손상이라고 판단했다. 전형적인 아동학대 사망 사고 원인이었다.

정인이가 사망한 이후 그의 양모는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남편은 폭행 방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 상태다. 양부모가 자신들의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학대의 잔혹성을 근거로 양모를 아동학대치사가 아닌 살인죄로 기소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양부모에 대한 첫 공판은 오는 13일 진행된다.

16개월의 짧은 생을 살다 간 정인이의 생전 모습. (사진=SBS  ‘그것이 알고싶다’ 캡처)
16개월의 짧은 생을 살다 간 정인이의 생전 모습. (사진=SBS ‘그것이 알고싶다’ 캡처)

누가 16개월 여아를 죽도록 내버려뒀나

입양 이후부터 사망까지 270여 일 동안 정인이를 구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아이는 끝내 가해자인 양부모와 분리되지 못했다. 무고한 어린 생명이 어른들의 방치 속에 죽어가자 국민들의 분노는 거셌다. 청와대 국민 청원 홈페이지는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과 가해자인 양부모를 처벌해야 한다는 각종 청원에 20만 명 이상이 동의했다. 가해자를 엄벌해야 한다는 내용의 진정서도 법원에 쏟아지는 상황이다.

‘#정인아미안해’ 해시 태그 운동과 진정서 제출을 제안한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공혜정 대표는 <뉴스포스트>와의 통화에서 정인이 사건에 대해 “수없이 되풀이돼왔던 아동학대 문제가 집약된 결과”라며 “가해자가 제일 문제지만, 가해자로부터 구할 수 있는 많은 시간과 기회들을 무산시킨 게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홀트”라고 설명했다.

공 대표는 “어린이집 교사, 주민, 의사 등 다양한 곳에서 그냥 지나치지 않고 신고를 했다. 하지만 경찰은 현장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아이가 (가해자에게) 안겨있다는 이유로 애착 관계가 형성됐다는 어이없는 판단을 했던 것”이라며 “경찰관들의 전문성과 인식의 전환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아동학대 신고를 했는데, ‘애 키우다 보면 그럴 수 있다’라는 반응으로 허탈해하시는 분들이 많다. 전문성과 교육이 부재해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설명했다.

경찰뿐만 아니라 아동보호전문기관과 입양기관 역시 문제라는 게 공 대표의 주장이다. 그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아동학대 신고가 들어갔으면, 사례 관리를 해야 한다. 대면이 아닌 전화 통화만으로 관리가 안 된다. 가해자에게 전화하면 당연히 ‘때렸다’고 자백을 하겠나. 이런 어이없는 매뉴얼을 고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아이가 2번이나 아동학대 신고가 들어왔다는데, 그걸 인지했으면 홀트는 빨리 아이를 만나야 했다”고 덧붙였다.

정인이의 죽음의 원인은 다양했다. 가해자의 끔찍한 학대가 가장 큰 원인이다. 학대 신고 이후에도 관리에 소홀했던 아동보호전문기관과 입양기관 역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무엇보다도 세 차례나 무혐의 처분으로 정인이를 가해자 품에 돌려보낼 수밖에 없도록 만든 수사기관의 안일함도 책임이 크다. 사건을 담당한 경찰관들이 경고와 주의·인사 조치의 처분의 솜방망이 처벌을 받은 것을 보면 수사기관이 얼마나 사건에 안일했는지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그래픽=뉴스포스트 김혜선 기자)
(그래픽=뉴스포스트 김혜선 기자)

“문제는 법이 아니라 사람”

정치권에서는 정인이 사건을 계기로 관련 입법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정인이 사건과 관련해 40여 개의 법안이 여야 국회의원들을 막론하고 속속 발의됐다. 비슷한 상황은 지난해에도 있었다. 충남 천안에서 계모의 학대로 9살 남아가 숨지는 사고와 경남 창녕에서 9세 여아가 친모와 계부로부터 학대를 받다가 도망쳐 나온 사건이 발생하자 그해 12월 ‘아동복지법 일부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해당 개정안은 아동학대 재발 방지 등을 위한 업무수행 등을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방해하거나, 상담·교육·심리적 치료 등에 참여하지 않는 등 재발 방지 노력을 다하지 않은 아동학대행위자에게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학대 고위험군 아동 정보를 토대로 보건복지부 장관 및 시장·군수·구청장이 양육환경 조사, 복지서비스 제공, 수사기관 또는 아동보호전문기관과의 연계 등 조치를 한다.

해당 법안이 좀 더 일찍 통과됐더라면 정인이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을까. 하지만 전문가들은 기존의 법만으로도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공 대표는 “우리나라의 법과 제도, 시설이 부족하긴 하다. 그러나 16개월짜리 작은 아이 하나 보호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만약 보호하지 못한다면 나라라는 이름을 붙이는 게 부끄럽다”며 “법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였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전문성과 책임감, 사명감 부재가 아이를 죽게 했다”고 말했다.

기존의 법만으로도 막을 수 있었던 16개월 두 살배기 여아의 죽음. 한국 사회는 제2, 제3의 정인이가 나오지 않도록 대수술이 필요하다. 법보다는 사람이 문제였던 사건이기에 수술은 더욱 어려울 전망이다. 다음 편에서는 아동 인권 선진국의 사례들을 통해 아동학대 문제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전환해야 하는지 방향을 알아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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