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학대 경계의 모호함...판단 기준 마련 연구 진행
-팬데믹 이후 아동 학대 위험성 높아져...종합대책 필요
-낡은 놀이터 개선, 놀 시간 확보 등 아동의 놀 권리 보장해야
[뉴스포스트=이해리 기자] “세계인권선언에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권리와 존엄성에 있어서 평등하다’고 명시돼 있듯이, 아동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중해야 합니다.”
정태영 세이브더칠드런 사무총장은 뉴스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아동은 4대 권리(생존, 보호, 발달, 참여)를 포함한 모든 기본권을 충분히 누려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국가 차원에서 코로나 돌봄공백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대책을 세워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스포스트는 지난 9일 정태영 세이브더칠드런 사무총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아동 정서 학대와 코로나 시대의 아동 인권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서면으로 진행했다.
-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아동 학대 유형별 발생 현황을 보면 48%가 중복학대(신체·정서·방임·성학대 등이 중복)였고, 25%가 정서학대, 방임 학대는 9.6%였습니다. ‘정서학대’에 대한 인식이 아직 미흡한데, 정서적 학대란 무엇인가요?
“아동복지법 제3조 제7호는 정서학대를 ‘보호자를 포함한 성인이 아동의 건강 또는 복지를 해치거나 정상적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정신적 폭력이나 가혹행위를 하는 것’으로 보고 이는 아동이 가정폭력을 목격하도록 하는 것, 아동을 시설 등에 버리겠다고 위협하거나 짐을 싸서 쫓아내는 행위 등을 포함합니다. 아동복지법 동 조항에서 방임은 아동의 보호자가 아동을 유기하거나 방임하는 것으로 정의하는 데, 이는 불결한 환경이나 위험한 상태에 아동을 방치하거나 아동의 출생신고를 하지 않는 것 등을 포함합니다.“
- 정서 학대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려면 우리 사회와 정부의 어떠한 노력이 있어야 하는지요?
“그동안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정서학대와 방임, 훈육 행동에 있어 경계의 모호함 이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아동을 어떤 존재로 보았는지의 결과로 많은 아동이 방임이나 정서학대 등으로 사망에 이르기도 하였습니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아동에 대한 정서적 학대 및 방임의 판단 기준 마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법원 등 사법기관에서 정서학대와 방임 등의 위험성에 대한 민감성을 높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한 정서학대나 방임의 아동학대 개입에 있어 부모나 보호자의 변화를 요구하거나 기다리다 아동의 안전을 놓치는 경우가 있는데, 조사와 개입 과정에서 사법적 절차에의 의뢰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더불어 부모의 적절한 양육 방법 교육과 홍보 또한 중요합니다.”
- 아이를 대하는 부모의 올바른 자세를 알려주신다면?
“지난해 세이브더칠드런은 창립 100주년을 맞아 언어폭력으로 인한 정서적인 아동학대 문제를 환기 시키고자 ‘말 상처’에 대한 논의를 제안한 바 있습니다. 아동에게 말 상처가 되는 부모의 100가지 언어를 선별하고 3세에서 16세까지의 어린이 300여 명을 대상으로 ‘말 상처’를 들었을 때 느끼는 감정을 그림으로 그리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사실 아이에게 상처가 되는 100가지 말을 다 조심하는 것보다 100가지 말을 통해 자세와 관계를 배우는 게 중요합니다. 아이의 마음과 생각을 이해해주고 그 연령대에서 아이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를 알아보려고 하는 자세, 그리고 그 욕구나 감정을 이해하고 수용해주는 따뜻함을 일단 줘야 합니다.
성장기 아동은 부모와의 관계를 통해 스스로에 대한 첫 이미지를 생성하기 때문에 성장기의 아동에게 부모의 언어는 특히 중요합니다. 학교처럼 외부에서 맺는 관계는 사회가 원하는 기준에 맞춰 아이를 판단하므로 아이가 온전히 수용 받기 힘든 상황에서 아이의 감정을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은 부모가 거의 유일합니다. 부모에게까지 수용 받지 못하면 아이는 ‘난 있는 그대로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란 이미지가 형성될 수 있습니다.”
- 코로나19 사태가 가정 내 아동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요?
“최근 세이브더칠드런이 전 세계 37개국 아동과 성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코로나19로 인한 아동 삶의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하던 3월 이전까지 평균 8%에 머물던 전체 아동 중 학대 신고 비율은 3-8월 평균 17%로 급증했습니다. 또한 팬데믹이 시작한 이래로 32% 가구의 아동과 보호자가 가정 내에서의 신체적 또는 정서적 폭력이 있었다고 답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올해 1-8월 아동학대 발생건수는 작년에 비해 19%가 증가하였으며, 가정 내 아동학대 건수는 8,452건으로 작년 대비 12% 증가하였습니다.
특히 어린이집과 학교 등 아동 돌봄 기관과 교육기관이 휴교, 휴원하는 상태가 장기화되면서 아동이 가정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증가했습니다. 공적 돌봄에 공백이 발생하면서 가족 내 돌봄 부담이 가중되었고, 양육자의 스트레스가 아동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높아졌습니다. 또한 평소 교사나 의사 등 아동학대 신고 의무자 의해 발견되던 아동학대가 휴교에 의해 아동과 직접 대면할 기회가 줄어들었습니다. 이 때문에 위험에 노출된 아동을 발견하고 신고하는 데 어려움이 생기면서 아동학대의 위험성이 높아졌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 그렇다면 코로나19가 장기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동에게 필요한 지원은 무엇이 있을까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아동의 안전을 확인하고 돌봄에 있어 종합적인 계획이 필요합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가족의 돌봄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경제적 지원뿐만 아니라, 가족돌봄휴가나 유연근무제 등 다양한 근무형태 등을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국가적 차원에서 장려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아동들이 가정폭력, 학대, 성폭력의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아동보호전문기관 등 아동의 학대 예방에 있어 최일선에 있는 기관들이 감염병 시기에 단계별로 대응할 수 있도록 지침 마련이 필요해 보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거리두기 상황에서도 취약한 아동과 가정에 대한 돌봄은 지속되고 강화되어야 합니다. 세이브더칠드런에서는 코로나19 시기에 아동의 안전에 있어 위험성이 높은 가정들을 고위험군으로 분류하고 이들 가정에 대해 집중적인 대면 사례관리를 하는 고위험군 사례관리 모델을 개발해 시범 적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언택트 시대이기 때문에 취약성이 더욱 노출되는 가정에 대해서 오히려 대면 사례관리를 더욱 집중하자는 취지입니다.“
- 아동 인권을 위해 적극적인 지원을 하고 있는 해외 사례를 소개해 주세요.
“스웨덴의 경우, 1979년 전 세계 최초로 가정 내 체벌을 금지했습니다. 체벌을 금지할 당시, 스웨덴 역시 체벌이 포함된 엄격한 훈육이 당연시되었던 시대였기에 지금 우리와 같은 논란이 있었으나 훈육을 빙자한 다수의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하고 국가가 강력하게 법으로 제정해 체벌을 금지한 것입니다. 1971년 4세 여아가 계부에 의한 폭력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나 스웨덴이 충격에 빠진 사건이 있습니다. 이때 정부는 아동권리위원회를 통해 사건을 조사하였으며, 1978년 가정 내 체벌 보고서를 발표하고 이듬해 ‘가정 체벌금지법’을 시행했습니다.
이후 사회적 공감대 형성과 인식개선을 위한 캠페인 진행하며 우유팩에 관련 만화를 노출시키고, 관련 양육 가이드라인에 대한 전문가의 논의와 함께 이를 안내하는 홍보물을 거의 모든 국민에게 발송하는 등 적극적으로 아동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활용을 진행했습니다. 단순히 체벌을 하는 부모를 벌받게 하겠다는 것이 아닌, 아이에게 어떠한 폭력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의 전환을 꾀한 것입니다. 이 덕분에 법 개정 2년 만에 대다수의 국민들로 하여금 아동을 때리는 것은 학대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습니다.”
- 아동 인권 증진을 위해 우리 사회는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할까요?
“세계인권선언에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권리와 존엄성에 있어서 평등하다’고 명시되어 있듯이 아동 역시 권리를 가지고 있는 존재입니다. 유엔 아동권리협약에 따르면 아동 권리는 생존, 보호, 발달, 참여 등 4대 권리를 포함한 모든 기본권을 충분히 누리며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중받는 것입니다. 아동이 ‘부모의 소유물’이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중해야 합니다.
출생통보제를 통해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아이는 등록될 권리를 보장받아야 하며, 생명에 대한 보호와 보살핌이 가정의 기능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때 국가는 아동의 최선의 이익이 최우선으로 고려되도록 모든 적절한 입법적·행정적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더불어 또 다른 방향에서 아동의 권리를 이야기해보자면 ‘놀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의 아이들은 충분히 쉬고 놀 권리가 있습니다. 또한 놀이를 통해 세상을 배우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아동 세 명 중 한 명은 하루 30분 이상 놀이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죠. 학원을 가고 과외를 하느라 자신의 시간을 가지며 놀지 못하게 하는 것 역시 놀 권리를 침해하는 것입니다. 이런 아동의 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놀이공간을 새롭게 만들어주거나 낡은 공공 놀이터와 같은 환경을 개선하고 아동에게 놀 시간을 보장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기관 소개
세이브더칠드런은 1919년에 창립돼 아동의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인종, 종교, 정치적 이념을 초월해 전 세계 약 120개 국가에서 활동하는 국제 구호개발 NGO(비정부기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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