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동연 교육학박사

용인대 객원교수

[뉴스포스트=전문가칼럼 황동연] 아동은 그저 청소년 시기를 거쳐 어른으로 성장해나가는 과정이며 어른의 보호를 필요로 하는 존재로 인식해 온 것은 동서양이 다르지 않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랜 세월동안 아동은 권리의 주체가 아니었다.
아동은 미성숙성, 의존성, 불완전한 의사결정능력 등의 이유로 항상 부모나 성인의 시각에서 보호와 동시에 통제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20세기에 와서 비로소 아동의 권리 보호에 대한 국제적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1924년「아동의 권리에 관한 제네바 선언」은 이동의 권리보호에 대한 인식 전환과 국제적 공감대 형성의 계기가 되었다. 그로부터 65년이 지나고 1989년 유엔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된 UN아동권리협약(UN Convention on the Rights of the Child)은 아동권리보호에 대한 선언적 한계를 뛰어넘는 조약(국제법, 1990년 9월 발효)으로 발전하였다. 아동의 권리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국제사회 최초의 조약인 UN아동권리협약은 범세계적이며 가장 대표적인 국제규범이다.

우리나라는 1991년 11월에 UN아동권리협약 당사국이 되었으며, 동 협약 비준이후 아동의 권리보장을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아동의 권리보장 사각지대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국회입법조사처의 “우리나라 아동학대 사건의 현황 및 시사점”(지표로 보는 이슈, 제 57호, 2016)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아동학대 발생 건수는 2001년은 2,105건에 불과하였으나 2015년에는 11,709건으로 약 5.5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
특히, 2014년에 전년대비 아동학대 증가율이 47.5%로 현저히 높아졌는데, 이는 아동학대 행위 자체의 증가와 더불어, 2012년 정부합동조사 실시로 인한 영향으로 아동학대 의심사례 신고 수의 증가한 결과라고 한다.

‘모든 아동은 태어나면서부터 존엄성과 행복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취약한 위치에 있는 아동에 대한 학대는 계속 늘어나고 있으며, 학대행위자와 학대장소도 다양해지고 있고, 사망에 이르게 할 정도의 피해정도가 심각한 아동학대가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우리를 경악하게 하는 것은 아동학대 가해자의 80%가 친족 특히 친부모라는 점이다. 아동학대는 가정의 부모에 의해 발생하는 경우가 절대적으로 많기 때문에 학대받은 아동의 개인의 문제로 볼 경우, 피해아동은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사회가 남의 가정 일에는 개입하는 것을 유달리 싫어하는 문화적인 배경과 관습적인 문제이며, 또한 ‘아동학대’와 ‘부모의 자녀훈육방식’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동학대의 부모요인으로 나이가 어리고 안정되지 못한 부모들 일수록 건전한 가족관계의 형성에도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고, 아동의 행동이나 욕구를 이해하지 못하여 아동학대를 쉽게 행하게 된다.
특히, 다양한 아동발달에 대한 지식의 부족은 어떻게 아동을 키울 것인가를 잘 모르거나 건전한 가족 관계가 어떤 것인지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아이들을 때로는 분풀이 대상으로 삼는 경우도 있다.

인간처럼 아무런 준비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동물은 없다. 혼자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상태로 태어나지만 부모와 가족 그리고 주변 이웃들의 보호와 양육을 받으며 어떤 동물보다도 뛰어난 적응력을 가지고, 주변사람들과 상호작용을 하며 우정을 나누고, 사랑을 하며 행복을 추구하며 삶을 영위한다.
모든 아동에게는 건강한 민주시민으로서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충분한 준비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유엔헌장에서 천명하고 있는 바와 같이 모든 아동은 평화ㆍ존엄ㆍ관용ㆍ자유ㆍ평등ㆍ연대의 정신 속에서 성장해야 한다. 그 중심에 부모가 서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아동학대의 가해자의 절대 다수가 부모라는 사실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아동을 부모의 소유물이라는 인식을 버릴 때만이 체벌과 훈육을 혼동을 피할 수 있으며, 아동을 성인과 마찬가지로 권리의 주체로 인정하게 된다는 것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찰스 마이어스(C, Myers)의 “어머니의 기도”에는 부모가 양육자의 입장이 아니라 아동의 입장에서 무엇을 어떻게 보호하고 배려해야 하는가에 대한 것이 잘 나타나 있다.

“아이들을 이해하고 아이들의 말을 끝까지 들어 주며, 묻는 말에 일일이 친절하게 대답하도록 도와주소서. 면박을 주는 일이 없도록 도와주소서. 아이들이 우리를 공손히 대해 주기를 바라는 것과 같이 우리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느꼈을 때 아이들에게 잘못을 말하고 용서를 빌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아이들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비웃거나 창피를 주거나 놀리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들의 마음속에 비열함을 없애 주시고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찰스 마이어스, 어머니의 기도 중에서)

모든 부모들은 누구나 자녀 양육에 어려움을 겪는다. 부모가 되기는 쉬어도 제대로 부모 노릇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부모들은 일찍이 엘렌 케이(E. Key)가 주장 했던바와 같이, 자신의 자녀인 아동들에게 건강하게 출생할 권리, 건강하게 자랄 권리,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누릴 권리, 교육을 받을 권리, 정신적·도덕적 훈련을 받을 권리, 놀이와 오락을 즐길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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