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동연 용인대 객원교수

교육학박사

[뉴스포스트 전문가칼럼=황동연] 대통령 탄핵 정국이 몇 달 간 지속되고 있다.

 지금까지 광화문 등지에서 14차례의 촛불집회가 있었다. 이에 맞서 소위 태극기 집회라고 하는 탄핵 반대 집회도 계속 되고 있다. 이 와중에 조기 대선이 가시화 되고 있고 대선 후보자들의 행보도 빨라지고 있다. 예비 후보들은 저마다 정치개혁, 경제 살리기, 민생 안정, 안보 와 외교 등에 대한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교육에 대한 공약을 하는 예비 후보들도 있다.

 최순실 게이트 국정농단으로 상처를 입은 국민들은 과거 어는 때보다도 이번 대선후보자들의 국가 경영능력에 대한 많은 관심을 가질 것으로 생각한다. 이번 대선 공약에서는 아니면 말고 식의 공약이 없기를 기대한다. 과거 대선에서 후보들의 공약의 70%는 지켜지지 않았고 공약이 실천된 것은 30%미만 이라고 한다. 지키지 못할 공약은 안하니 못하다.

교육이 국정의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새삼 말할 필요가 없다. 선거철마다 현안문제 해결에 대한 교육공약이 무수히 있어왔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예컨대, 대학입시와 사교육비 해결, 공교육 정상화, 청년실업문제 해결 등은 선거철마다 있었던 선거공약의 단골메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우리교육을 우왕좌왕하게 하는 고질적 교육문제가 바로 이들 문제이다. 근본적인 해결을 하지 못한 현안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들 교육문제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 매우 높다. 이번에도 대선후보들이 표를 의식한 나머지 설익은 교육 공약을 내세우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교육은 문자 그대로 개인의 평생을 좌우하고, 국가의 미래 운명이 달린 중대사임은 말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인간가치 실현이라는 기본원칙과 확고한 교육철학이 필요하다. 교육이 지니는 어떤 수단적 가치보다도 ‘사람을 사람답게 성장’ 시키는 교육본연의 목적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교육은 대학입시에 휘말려 무엇이 교육의 본질인지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맹목적일 정도로 이웃과 친구를 적대시 하는 점수 따기 위주의 극도의 경쟁교육에 치중하여 왔다. 이에 설익은 교육공약으로 또다시 학교현장을 갈팡질팡하게 하고, 교사, 학생, 학부모를 혼란에 빠뜨리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한 줄짜리 교육 공약으로 우리교육을 개혁하려 든다면 그 것은 너무나 위험한 일이다. 만약 구색 갖추기식 교육 공약을 내세운다면 이것이야 말로 국민을 우롱하는 것이다. 그것이 당장 실현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정권을 이어가며, 교육의 본질적 기능을 다할 수 있는 장기적 안목에서 교육의 청사진을 제시해 주기를 희망한다.

누가 뭐라 해도 교육의 바탕은 사람을 사람답게 성장 시키는 ‘인간가치 실현’에 두어야 한다. 산다는 것은 아픈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모든 것을 만족할 수 없다. 우리는 원하는 것을 제때에 얻을 수 없다.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도 없다.
부족한 것을 제때에 다 채울 수 없기 때문에 아픈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자신의 노력만으로 해결 할 수 없는 것이 더 많다. 그래서 사람은 혼자서는 살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아픈 인생살이(삶)를 치유해 주는 약이 바로 주변의 이웃이다.
그들 중에는 머리 아픈 인생살이를 치유해주는 아스피린 같은 사람도 있다. 뿐만 아니라 진통제․소화제․비타민과 같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시련과 고통 속에서도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않고 희망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렇지만 이러한 이웃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웃들 중에는 아픈 인생살이를 더욱 아프게 하는 독약 같은 사람도 있다. 덧난 상처에 소금을 뿌려 참기 어려울 정도의 고통을 안겨주는 이웃도 있다. 더 많이 가지기위해 욕심을 부리고 속임수를 쓰며 억지를 부리는 이웃이야 말로 우리들의 죽음으로 이끄는 독약 같은 이웃이 아닐 수 없다.

남의 것을 부러워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억지로 가지려고 하면 그것이 바로 불행이다. 그러나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즐길 수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행복이다. 사람은 누구나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것이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유이다. 우리들의 목표는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렇게 되고자 하는 염원을 담은 것이다.
그래서 선의의 경쟁은 우리들을 성장하게 하는 에너지가 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을 부러워하는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그것을 억지로 빼앗으려고 하면, 그것은 빼앗기는 자나 빼앗는 자나 모두를 불행하게 하는 일이다.

대학생 모집정원보다 대학 진학자가 적은 ‘공급이 수요보다 많은 상황’ 에서도 속칭 일류대학을 가야한다는 이유로 유치원부터 고등학교에 이르기 까지 여전히 줄을 세우는 극도의 경쟁에서 행복을 느끼는 청소년들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소수의 승리자를 만들기 위해서 절대다수의 패배자를 만드는 교육을 언제까지 할 것 인가. 입시지옥에서 취업전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청년실업자들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는 우리가 지금까지 수많은 정책과 노력을 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해결하지 못한 해묵은 과제이다.

우리는 과거 반세기동안 대학입시 문제와 사교육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이유를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그것은 교육의 본질을 잘못 이해한 것에서 비롯된다. 교육의 본질적 가치보다 수단적 가치를 중심으로 생각한 것이 잘못이다. 교육의 본질은 사람을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교육이 단순히 부와 권력, 명예를 얻기 위한 수단적 가치가 강조될 때 지식기반 사회가 요구하는 창의적 인재를 길러내는 것을 기대할 수 없다. 오히려 타고난 능력마저도 말살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는 지난 반세기 우리 교육 역사를 보면 자명하다. 더 이상 시행착오를 반복하여서는 안 된다.

이번 대선에서는 위정자들이 무책임한 선심성 대증적 교육공약 남발에 대해 유권자들이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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