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부모의 자녀 체벌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민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아동학대 가해자들의 법적 방어수단을 차단하고, 아동 인권 향상이 이유다. 하지만 자녀 양육 현장에 있는 학부모들은 해당 개정안에 대해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

14일 정세균 국무총리가 민법 개정안에 대해 페이스북에 글을 남겼다. (사진=정세균 총리 페이스북 캡처)
14일 정세균 국무총리가 민법 개정안에 대해 페이스북에 글을 남겼다. (사진=정세균 총리 페이스북 캡처)

14일 정세균 국무총리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취약계층 아동에 대한 돌봄 공백과 학대 여부 등을 집중 점검하고, 방임 또는 정서학대 피해 아동에 대해 정부가 적극 개입해 돌봄 사각지대가 없도록 힘쓰겠다”며 “훈육이란 이름으로 자녀를 체벌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어제 국무회의에서 통과한 민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조속히 처리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정 총리가 이 같은 발언을 한 배경에는 전날인 13일 국무회의에서 부모의 자녀 체벌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내용의 민법 개정안이 통과한 데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민법 915조는 친권자가 아동의 보호나 교양을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해당 조항이 부모의 체벌을 합법화하는 근거 규정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많았다.

해당 조항 때문에 훈육 목적의 체벌은 아동학대로 인정받지 못했고, 단순한 체벌을 넘어 명백한 아동학대를 가한 부모들이 자신의 행위를 방어하는 논리가 됐다. 자녀를 학대한 친권자들의 법적 방어수단으로 악용됐다는 이야기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같은 날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제 어떤 이유로든 아동 학대와 폭력은 교육이 아닌 범죄”라며 “기본적으로 생명에 대한 신비와 외경이 없이 인권 감수성이 싹틀 수 없다. 어린 생명일수록, 약할수록 더 보듬어 안는 사회 속에 인권이 뿌리내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체벌 금지, 국가의 양육 개입?

정치권과 인권 단체 등에서는 이번 개정안에 대해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자녀를 직접 양육하는 학부모들은 이번 개정안에 대해 다소 갸우뚱하다는 입장이다. 법적으로 ‘사랑의 매’를 금지한다고 하는 게 비현실적이라는 이야기와 일정 부분의 훈육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에 거주하는 30대 A모 씨는 개정안에 대한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뉴스포스트>에 “체벌을 금지한다고 학대할 사람들이 학대를 안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학대의 방법은 다양하다. 학대 사실이 밝혀지면 바로 법적인 제재를 가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고, 공권력에 힘을 주는 게 우선이다. ‘학대 금지’가 아닌 ‘학대 처벌’ 강화가 맞다고 본다”고 전했다.

대전에서 초등생 자녀를 양육하는 30대 B모 씨 역시 해당 법안 삭제에 대해 크게 와 닿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본지에 “조항의 유무와 상관없이 체벌을 가하는 부모는 하고, 아닌 부모들은 안 한다”며 “학교 내 체벌 금지로 교사들의 교권이 떨어진 것만 봐도 어느 정도의 훈육을 위한 체벌이나 징계는 필요한 거 같다”고 말했다.

체벌이 필요악이라는 이들도 있었다. 경기 파주에서 2세 아이를 양육하는 30대 C모 씨는 “아이의 성향과 발달 단계에 따라 체벌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아이를 바르게 양육하고, 교육하기 위한 부모의 책임과 권한”이라며 “훈육을 넘어 학대가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단순히 민법 조항 삭제가 아니라 아동학대에 대한 구체적인 법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양주의 초등학생 이하 자녀를 둔 30대 D모 씨는 “애들 키우는 입장에서는 말만으로 훈육이 어렵다. 훈계 없이는 아이를 가르칠 수 없다”며 “부모가 아이들 키우는데, 국가가 키우는 것처럼 둔갑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양육에 대한 지원도 없으면서 정부가 개입만 한다. 현실성 없는 법안이다. 학교 폭력 근절에 더 신경 써 주시길 바란다”고 비판했다.

지난달 14일 굿네이버스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민법 915조 징계권 삭제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달 14일 굿네이버스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민법 915조 징계권 삭제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구시대적 산물 청산, 찬성 입장도 多

반면 민법 개정안을 찬성하는 학부모들의 여론도 만만치 않다. 서울에 거주하는 30대 E모 씨는 “체벌 금지를 법으로 해야 할 정도로 우리나라에 아동학대 사건이 많은 게 아닌가 싶다”며 “기준이 모호할지라도 법으로 정하는 게 맞다고 본다. 이번 개정안이 아동학대 처벌 강화의 시발점이 되리라 생각한다”고 기대를 모았다.

부산에서 자녀를 양육하는 40대 F모 씨는 “어떤 이유에서도 체벌은 정당화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인내와 공부가 많이 필요하지만, 체벌 없이 교육하는 방법은 많다”며 “체벌은 자녀를 교육하는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한 부모들의 변명이다. 체벌을 시작하면 점점 강도가 높아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시흥의 40대 학부모 G모 씨는 “‘징계’라는 이름으로 사랑의 매가 합법화하면서 학대받는 아이들이 있었다. 삭제됐어도 가정에서 어느 정도 아이들 키우면서 훈육하니까 정상적인 가정에서는 문제가 될 건 없다고 생각한다” 며 “요즘엔 옛날처럼 매로 다스리지 않는다. 부모들도 변하고 있다. 세상이 바뀌는데 법이 그대로이면 안 된다. 대신 아동학대 처벌법이 생겨서 다행이다”라고 전했다.

또 다른 학부모 40대 H모 씨는 역시 “때린다고 부모 말을 듣는 것도 아니다. 말을 듣지 않은 아이를 체벌로 다스린다는 생각 자체가 상하 관계적, 구시대적 사고라고 생각한다”며 “학대를 근절하는 계기와 더불어 부모와 자식이 평등하게 소통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개정안을 환영했다.

한편 법무부는 오는 16일 최종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다.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대한민국은 1958년 민법이 제정된 이후 62년 만에 자녀 체벌을 법적으로 금지하는 국가가 된다. 우려와 기대를 한 몸에 받는 개정안이 아동 인권 향상과 아동학대 방지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지켜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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