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둥을 옆으로 늘린 ‘벽식 구조’... 진동 벽 타고 내려와
‘사후 확인제도’ 실효성 의문...점진적 후분양 목소리도
층간소음 갈등 해소는 ‘이웃 간 이해’가 핵심
한국에는 이웃과 관련한 속담이 유독 많다. 옛 어른들은 ‘먼 사촌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 ‘팔백 금으로 집을 사고, 천금으로 이웃을 산다’라고 표현했다. 특히 혈연관계를 중요시하는 우리 사회에서 촌수를 파괴한 ‘이웃사촌’이라는 단어에는 ‘이웃’을 혈연관계만큼이나 중요시했던 삶의 방식과 정서가 담겨있다.
하지만 급격한 근대화와 산업화, 도시화의 영향으로 아파트가 보편화되고 개인주의가 확산하면서 과거와 같은 소통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오히려 아파트 층간소음 문제로 이웃주민들 간의 폭행·살인·방화와 같은 강력 사건 이어지며 층간소음은 피할 수 없는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분쟁이 만연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층간소음과 관련한 갈등을 현명하게 헤쳐나가기 위해 <뉴스포스트>는 층간소음의 원인과 대처법, 배상 기준, 해외 사례, 전문가 인터뷰 등 5편의 기획기사를 보도한다. -편집자주-
[뉴스포스트=이해리 기자]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6월 공공주택 층간소음을 개선하기 위해 시공 이후 바닥 충격음 차단 성능을 확인하는 ‘사후 확인제도’를 마련했다. 30세대 이상의 아파트는 입주 전 샘플 가구의 층간소음 차단 가능성을 측정해, 지자체의 확인을 의무화하는 내용이 골자다. 지방자치단체는 아파트 세대의 5%를 대상으로 아이들이 뛰는 수준의 소음이 차단되는지 검사하고, 차단이 안 되면 보완 공사를 권고하게 된다.
다섯 차례 걸친 정부 정책... 효과는?
이웃 간의 다툼을 넘어 심각한 사회문제로 자리 잡은 ‘층간소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그동안 층간소음 규제를 꾸준히 강화해왔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91년 1기 신도시가 개발되면서 국내에서 처음으로 아파트 층간소음 저감 제도가 도입됐다. 당시 정부는 ‘주택건설기준 규정’을 제정, ‘각 층간 바닥충격음을 충분히 차단할 수 있는 구조로 시공해야 한다’는 선언적 내용을 삽입해 운영했다.
12년 후인 2003년 주택건설기준규정 개정을 통해 경량 충격음 58dB 이하, 중량 충격음 50dB 이하라는 ‘바닥충격음 차단 최소성능기준’을 마련했다. 2004년 바닥충격음관리기준을 제정해 경량충격음 차단을 위해 슬래브 두께 180mm 이상의 표준바닥구조를 도입했다. 2005년에는 바닥충격음관리기준을 개정, 중량충격음도 측정 대상에 포함하는 표준바닥구조를 도입했다. 2013년에는 주택건설기준규정 개정을 통해 표준바닥구조와 인정바닥구조를 통합해 바닥 슬래브 두께를 180mm에서 210mm로 강화했다.
층간소음 갈등을 줄이기 위한 정부의 노력은 계속돼 왔지만,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아파트의 주민들도 층간소음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층간소음은 노후 아파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건설 구조와 제도의 본질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2018년 12월 완공된 서울 송파구 ‘헬리오시티’는 84개동, 총 9510세대로 국내에서 가장 세대 수가 많다. 대규모 단지와 함께 구축 아파트와 대비되는 품질 향상으로 관심이 모아졌다. 하지만 인터넷 부동산 카페에는 ‘층간소음이 심해서 윗집 사람 동선이 그려진다’, ‘층간소음 역대급이다’ 등의 글이 올라와 있다.
국내 아파트 대부분 층간소음 취약 ‘벽식 구조’...세대간 소음도 한몫
전문가들은 층간소음에 취약한 벽식 구조를 이유로 꼽았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뉴스포스트>와 통화에서 “일반적인 건물은 기둥과 기둥 사이에 긴 막대기(보)를 얹는다. 위층 바닥판의 무게가 긴 막대기 위에 분산돼 얹어지는 것으로, 이게 일반적인 기둥과 보 구조다”라며 “벽식 구조는 기둥을 옆으로 길게 잡아 늘려 벽 모양처럼 만들어 보의 역할을 하게 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벽식 구조는 보가 없기에 위층에서 쿵쿵거리면 진동이 벽을 타고 내려온다. 기둥을 세우면 기둥이 상부하중을 한 점으로 받지만, 옆으로 늘린 벽은 상부하중을 넓게 받기 때문에 층간소음에 취약하다”라고 덧붙였다.
벽식 구조는 1980년대 후반부터 유행하며, 국내 아파트는 대부분 벽식 구조를 채택하고 있다.
이 연구원은 “벽식 구조에는 보가 들어가지 않아 공사비가 줄어들고, 보의 높이만큼 한 층의 높이도 낮아져 층수를 더 올릴 수 있는 등 건설사의 입장에서는 경제적으로 더 효율적이다”라며 “사실 벽식 구조도 돈을 더 들여서 두껍게 만들면 소음은 줄어들지만, 시공비가 많이 들어가면 분양가를 높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층간소음뿐만 아니라 ‘세대 간 소음’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지금은 세대 간 소음을 따로 분리하지 않고 대부분 층간소음이라고 합쳐서 얘기하는데, 소음은 단순히 위층뿐만이 아니라 옆집이나 대각선에서 들려오는 것 일 수도 있다”라며 “지금은 세대 간 소음에 대한 기준은 마련돼 있지 않아, 이와 관련한 규정을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라고 강조했다.
점진적 후분양 목소리도
익명을 요구한 다른 전문가는 분양 시장의 특수성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층간소음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점진적 후분양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것.
그는 “100만 원 이하의 컴퓨터를 산다고 하더라도 이것저것 따지고 비교하고 실제 물건을 보고 사지만, 아파트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물건을 제대로 본 적도 없는데 내가 평생 벌어야 할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면서 “‘돈을 먼저 내고 계약하고, 구매한 이후 와서 살아보니 성능이 안 나왔다’ 이런 식의 접근이다 보니 분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다 지어놓고 분양을 한다면 집의 성능에 따라 분양가의 차이가 있고, 수요자들도 이해할 수 있을 텐데 지금은 그런 구조가 아니다”라며 “내 평생의 비용을 지불하고 들어가는 집인데 소음이 난다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라고 덧붙였다.
지금까지 층간소음은 2005년 도입된 시공 이전 건축자재(바닥재 등)에 대한 사전 점검인 ‘사전 인정제도’로 진행을 해왔다. 사전 인정제도는 실제 아파트 공사 현장이 아닌 실험실에서 바닥충격음 차단 성능을 평가해 통과된 바닥구조를 현장에서 시공했다. 층간소음은 아파트의 구조, 바닥 두께 등 다양한 이유로 발생하고 공장 제작이 아니라 현장에서 직접 시공하다 보니 같은 자재를 쓰더라도 결과는 다르게 나온다는 문제가 있었다.
이에 정부는 오는 7월부터 아파트 층간소음을 시공 후에 측정하겠다는 ‘사후 확인제도’ 도입 계획을 발표했지만, 해당 제도에 대한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소음 차단 능력이 떨어져도 시공사에 요구할 수 있는 것은 보완 시공 권고 정도뿐이다. 또한 아파트를 다 지은 상태에서 소음 차단 능력을 높이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능을 변화시키려면 리모델링 수준의 커다란 공사가 있어야 하는데, 이는 건설사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고 집값 하락 우려에 입주민들의 불만도 늘어날 것이라는 것.
층간소음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해당 제도가 아닌 후분양 제도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이웃 간 이해와 교육 이뤄져야
아울러 층간소음 갈등 해소의 핵심은 주민들의 이해라고 제언했다. 이성찬 영산대학교 건축공학과 교수는 <뉴스포스트>와 통화에서 “이미 지어진 아파트들을 보완할 수 있는 방안이 많지 않기 때문에, 서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아파트 내 커뮤니티가 활성화돼 ‘윗집, 아랫집에 누가 살고 어떤 사정이 있는지’ 이런 것들을 이해하는 문화가 형성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정보가 있으면 소음이 언제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접근이 오해가 되고 감정적으로 변해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얘기하며 소음을 내는 어린이들에 대한 교육이 우선적으로 이뤄지고, 새로 지어지는 아파트들에 대한 성능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어린 친구들이 약속을 더 잘 지킨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보면 초등학생 친구들이 마스크를 어른들보다 더 착실하게 잘 쓰고 방역수칙을 더 잘 이행한다. 그 친구들은 커서도 그럴 확률이 높다”라며 “환경부에서 뽀로로 캐릭터를 활용한 ‘사뿐사뿐콩’이라는 만화를 만든 적 있는데, 이처럼 어려서부터 ‘이웃집에 피해를 주는 나의 행위’ 자체에 대한 교육이 먼저 이뤄져야 할 것이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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